양치기 늑대소년

6 부. 솔로우스 - 15 화

솔로우스 – 15

이제는 릴리카가 베토케로우스의 공격을 감당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그의 몸에 이상이 생겨 한 박자 늦게 들어온 느려 터진 공격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신수의 공격이었다. 애초에 인간이 그녀가 막아낼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당연히 그녀는 그 공격을 피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자신의 전력을 다한 공격이 베토케로우스에게 소용없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던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새 템포를 놓치고 말았다. 그녀가 뺨에 무언가 휘두를 때 생기는 풍압을 느꼈을 때는 이미 괴수의 날카로운 발톱이 바로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아차!’

하지만 그녀의 메이크바는 방어막을 펼치지 않을 것이다. 베토케로우스의 공격은 노란 돌이 감지할 만큼 빠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위기를 느낀 릴리카는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다. 그녀의 눈에 괴수의 발톱이 보였다. 급히 팔을 올리며 허리를 뒤로 젖혔지만 이미 피하긴 늦었다. 큼지막한 괴수의 앞발은 그대로 그녀의 몸 전체를 강타했다.

‘콰아아.... 쾅!’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공기 중에 뭔가가 폭발하는 소리가 나더니 릴리카와 베토케로우스를 동시에 뒤로 날려버렸다. 사람이 눈으로 확인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빨리 지나간 찰나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사실 둘의 대결 전에도 밤새 내내 그녀에게 계속되었던 일이었지만 사실은 설명하자면 이랬다. 그녀가 지니고 있던 노란 정령석, 메이크바는 방어막을 펼치지 않았지만, 베토케로우스의 발톱이 그녀에게 닿는다 싶었던 순간에, 그녀가 속에 입고 있었던 그물 모양의 보호구에서 강력한 힘이 빠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그녀의 몸을 뒤덮었다. 그리고 그 힘은 베토케로우스의 공격의 충격을 그대로 흡수한 후, 대부분 그대로 베토케로우스에게 돌려주었다. 하지만 괴수의 공격이 워낙 강력했기 때문에 일부는 남아 그녀에게도 전해져 둘은 동시에 뒤로 튕겨져 나갔던 것이다.

“아악!”

“크어어!”

릴리카와 베토케로우스는 동시에 뒤로 몇 m나 날아갔다. 하지만 대부분의 충격이 그대로 돌아간 베토케로우스 쪽이 더 피해가 심했다. 그는 큰 소음을 내면서 뒤에 있던 나무들의 몸통을 부러뜨리면서 어두운 숲속에 처박혔다.

“하아... 하아... 하아....”

아주 잠시 정신을 잃었던 릴리카는 눈을 뜨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아직 충격의 여파가 몸에 남아 있어서 몸의 모든 뼈마디가 아파왔다. 그녀는 어지러운 머리를 두 손으로 잡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녀는 정신이 얼떨떨했다. 조금 전 공격을 받을 땐 반드시 죽을 줄만 알았는데 어떻게 살 수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눈을 돌려 여러 그루의 나무를 엉망으로 만들고 숲속에 쓰러져 있는 베토케로우스를 보게 되자 비로소 무슨 영문인지 깨닫게 되었다.

‘베토케로우스는? 그는 저 쪽에 쓰러져 있다. 아니 어떻게 내가 신수의 공격을 받고도 무사할 수 있었지? 아, 이 갑옷 덕분이다. 이것을 걸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아직 살아 있는 거야. 맙소사. 이게 벌써 몇 번 째인가? 이 엉성한 옷 덕분에 내가 목숨을 건졌던 것이? 이것을 입게 만든 맥스 라볼타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군. 그 불쌍한 새끼....’

“우우우.....”

그녀는 신음소리를 내며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한 후 힘을 쥐어짜서 다시 ‘화르륵’ 하고 상체에 화염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쓰러져 있는 베토케로우 쪽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베토케로우스가 쓰러져 있을 때 끝장을 내지 않으면 내가 거꾸로 당할 지도 몰라. 무슨 일이 있어도 저놈의 숨통을 끊어 놔야해!’

릴리카가 쓰러진 나무더미 위에 누운 베토케로우스를 가까이 가서 보니, 그는 긴 혀를 주둥이 밖으로 내어 놓은 채 아직도 기절해 있는 상태였다. 그녀가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모르는 것을 보니 완전히 정신을 잃은 듯 했다. 그녀는 가까이에서 집채만큼이나 큰 괴수를 보게 되니까 지금까지 없었던 두려움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세상에.... 자세히 보니 이놈의 몸집이 이렇게 컸다니! 아깐 내가 눈이 뒤집혀서 전혀 몰랐었다. 과연 정말 내가 가진 힘으로 이놈을 죽일 수나 있긴 한 건가!’

하지만 릴리카에겐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만약 괴수가 다시 눈을 뜬다면 그녀가 살아남을 기회는 다시없을 지도 모른다. 그녀의 심장이 마구 요동쳤다.

“자, 이제 이놈을 처리하고 신화 속의 영웅이 되어보자!”

그녀는 그렇게 나지막이 혼잣말을 내뱉고는 불타는 주먹을 들었다. 베토케로우스의 몸을 죽 둘러보며 살펴보니, 목덜미가 시커멓게 변해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으윽.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 구나! 목덜미가 이상하게 변해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아까 공격했던 목덜미가 분명 급소였나 보다. 아까는 이 녀석이 제 정신이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어떻게든 방어했었던 모양이지. 기절해 있는 지금은 무방비 상태니까 이번에 다시 공격하면 통할지도 몰라.’

릴리카는 입을 꽉 다물고 가슴 위치까지 들고 있던 주먹을 더 높이 들었다. 잘만 된다면 그녀 말대로 후대의 사람들은 그녀를 신화 속의 영웅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었다. 인간의 몸으로 악한 신수를 죽인 그런 신화 속의 인물 말이다.

“죽어라! 베토케로우스!”

그렇게 외치며 릴리카는 체중을 실어 불타는 주먹을 내리치려고 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번쩍!’

기절해 있던 베토케로우스가 눈을 꿈틀거리다가 뜨더니 불타오르듯이 붉은 안광을 그녀에게 쏘아댔다.

“크르르르르.....!”

“허헉! 아니!”

그 매서운 눈빛에 릴리카는 그만 순간 주춤하고 말았다. 베토케로우스는 입을 열어 그녀를 향해 크게 짖었다.

“컹!”

날카로운 송곳니와 어금니를 드러낸 큰 몸집의 괴수가 자기를 향해 무섭게 짖자, 릴리카는 다리에 맥이 풀려 그만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베토케로우스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괴수는 서서히 큰 덩치를 일으키고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녀는 조금도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기에 눌려서 그런 걸까?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 후 조금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화염이 불타오르고 있던 그녀의 상체에서 불이 꺼지고 점점 피부를 드러냈다.

‘어찌 된 일이지? 힘이... 힘이 모이지 않는다!’

그 때 그녀의 머릿속에서 베토케로우스의 음성이 들려왔다.

‘조그맣고 허약한 인간 계집이 감히 내 목숨을 노리다니 가소롭구나! 크크크.’

릴리카는 너무 무서워서 턱이 덜덜 떨렸다. 정면에 보이는 베토케로우스는 분명 입을 다물고 있는데, 그녀의 머릿속에선 계속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니, 어떻게 내게 말을 하... 하는 거지?”

‘크크크. 머릿속에서 내 목소리가 들리니 두려워졌나 보군. 궁금한가? 바로 네가 내게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나 강인할 줄만 알았던 네 마음이 무너지니 내가 네 의식을 파고든 것이다. 불새의 여전사여, 아니, 힘없고 가련한 릴리카여, 이제 네 몸은 내 것이 되었다.’

“아으... 아으으으.....”

릴리카는 얼굴이 창백해져서 등 뒤로 몸을 끌며 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