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5 부. 만월의 밤 - 40 화

만월의 밤 – 40

텔리와 그의 일행, 할머니, 스라소니 산신령이 멧돼지 산신령의 장소에서 나갈 준비를 마치고 서 있었다. 멧돼지 산신령은 그들이 선 곳 몇 m 앞에 무지갯빛 통로를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또 다른 통로를 열었다. 그것은 식량을 구하러 나갔다 와야 하는 아저씨를 위한 것이었다. 멧돼지 산신령은 자신의 장소에 대피 중인 다른 인간들과 함께 머무르기로 했다.

“문을 열었다. 너희 앞에 열어 놓은 통로를 따라가면 건수가 있는 장소 근처로 나갈 수 있다. 오다리는 다른 장소로 가는 통로로 들어간다. 빨리 음식을 구해온다. 모두 몸조심한다. 특히 내 친구, 스라소니 몸조심한다.”

스라소니 산신령은 히죽 웃으면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나더러 몸조심하라고? 자넨 덩치에 안 맞게 너무 걱정을 많이 해. 내 발은 매우 빠르고 내가 마음만 먹으며 다른 이들은 내 몸을 볼 수조차 없는데 무슨 걱정인가?”

“스라소니는 그동안 검은 늑대들을 많이 공격했다. 이젠 늑대들이 스라소니 냄새를 알 수도 있다. 조심해야 한다.”

“허어... 그런 쓸데없는 잔소리는 그만하게. 자자, 모두 나가보세나.”

스라소니 산신령은 자신만만하게 큰소리치며 통로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다음 텔리부터 할머니까지 차례대로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모두 통로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멧돼지 산신령이 통로 입구를 막으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뒤에서부터 라볼타 사장이 달려오더니 통로 안으로 몸을 던지는 것이었다.

“꾸울! 꿀? 뭐 하는 거다? 왜 갑자기 저 서양 사람이 저기 안으로 뛰어든 거다?”

그것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다른 사람들이 그를 말릴 새도 없었다. 도대체 라볼타는 왜 텔리 일행을 뒤따라가서 전쟁터로 뛰어들었던 걸까?

* * *

텔리와 일행이 통로 밖으로 나오자 이미 시간은 밤이었다. 그들이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에 어둠이 짙게 내리운 숲속이었다. 텔리 뒤에 서 있던 미스터 황이 두리번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까 멧돼지 신령이 건수가 있는데 근처로 우리를 보낸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런 숲속에 뭐가 있다는 걸까요?”

할머니도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좀 더 높은 곳으로 가서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산을 좀 더 올라가야겠습니다. 신령님.”

텔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삐죽거렸다. 그들이 서 있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한 나무를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는 나무 밑에서 위를 한 번 올려다보고는 말했다.

“옳지. 저 정도 높이라면 좀 멀리까지 보일 것 같기는 한데. 에잇!”

텔리는 무릎을 구부리며 앉았다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4 m 정도 치솟으면서 위쪽에 있는 나뭇가지를 붙잡았다. 그는 다시 더 위로 이동하려고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는 채로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그가 격렬하게 몸을 흔들고 있던 그때, 라볼타가 점점 닫히고 있던 무지갯빛 통로를 통과해서 후다닥 달려 나왔다.

““저... 저 자식 뭐야? 왜 갑자기 저 자식이 통로에서 튀어나온 거야?”

텔리가 크게 고함치는 소리에 놀라 일행이 일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들의 눈에 라볼타가 들어왔다. 그는 닫히고 있던 통로를 간만의 차로 달려 나오느라 숨이 찼는지 헉헉대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에게 엘리시움어로 물었다.

“아니, 자네는 어떻게 우리를 따라 온 거야?”

“헉헉헉. 통로가 닫히기 전에 뛰어 들어갔어요. 그다음엔 여러분들이 모르게 뒤에서 천천히 따라왔구요.”

“근데 왜 따라온 거야? 지금 이 장소는 위험해. 우린 곧 늑대들과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랑 싸울 거란 말이야.”

“헉... 헉... 알아요. 그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사람들 중에 제가 아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을 만나야 해서요.... 헉헉. 그래서 따라왔어요.”

미스터 황은 라볼타와 함께 지내는 동안 여러 번 그와 대화를 나눴던 적이 있어서 그가 만나야 하는 사람이 이미 누군지 알고 있었다.

“사장님, 설마 불새군의 릴리카인가 하는 여자를 만나려고 그러시는 거예요? 지금 아무런 준비도 없이 얼마나 위험한 곳에 오신 건지 아시는 거죠?”

“알아, 안다고. 하지만 그 여자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잖아.”

그 말을 들은 알렉시스는 어이가 없어 고개를 돌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맥스 라볼타. 정신 나간 녀석. 짝사랑하는 릴리카 때문에 명을 재촉하려고 들다니. 쯧쯧쯧.”

텔리는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로 아래쪽의 상황을 지켜보다가 손이 미끄러져 그만 나무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아아아!”

소리를 지르며 땅에 떨어진 텔리는 등을 다치기라도 했는지 손으로 등을 문지르며 일어났다. 알렉시스는 깜짝 놀라서 텔리에게로 달려갔다.

“텔리님, 괜찮으십니까?”

“뭐하러 그런 걸 물어? 설마 나무에서 떨어졌다고 신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 아뇨. 아닙니다.”

“잉? 알렉시스 잠깐만 비켜봐. 저기!”

텔리는 알렉시스의 어깨너머 숲속의 어두운 곳을 응시하더니 손으로 그녀의 몸을 밀었다. 그리고 손가락 끝에 힘을 집중시켜서 가느다란 빛의 실을 뽑아냈다. 그가 팔을 들어 가볍게 흔들자 빛나는 실은 공기를 가르며 어두운 숲속으로 날아갔다.

‘쉬이익-’

잠시 후, 숲속에서 검은 늑대 한 마리가 그르렁거리며 걸어 나왔다. 그 녀석의 얼굴에는 방금 텔리가 날렸던 빛의 실이 꽂혀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다른 일행은 갑자기 나타난 검은 늑대를 보고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텔리는 늑대의 상태를 보고 뭔가 아쉽다는 듯이 ‘쯧’ 소리를 내며 말했다.

“에이! 거리가 좀 애매했나 보네. 원래는 대가리를 잘라내려고 했던 건데 실이 꽂히기만 했어. 짜증 나는군.”

텔리가 늑대를 약 올리듯이 녀석의 얼굴에 박힌 빛의 실을 살살 잡아당겼다. 늑대는 텔리가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얼굴이 잡아당겨 지니까 화를 냈다.

“크르르르... 컹! 컹!”

“하하하하. 웃기네. 곧 죽을 놈이 감히 내게 성질을 내네.”

“컹컹!”

텔리 옆에 서 있던 알렉시스는 재빨리 이동하더니 늑대의 뒤로 돌아가서 빛나는 손으로 녀석의 머리를 가격했다. 그 동작이 워낙 신속한 데다가 늑대는 텔리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어서 그녀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머리에 알렉시스의 주먹만 한 구멍이 생긴 늑대는 더이상 소리를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텔리는 알렉시스에게 항의했다.

“알렉시스! 뭐 하는 거야. 왜 늑대를 그냥 죽여버렸어? 내게 덤비도록 살살 성질을 긁고 있었는데!”

알렉시스는 한숨을 쉬더니 텔리에게 대답했다.

“텔리님, 지금 검은 늑대 무리 중 한 놈이 우리를 발견하고 짖었으니 곧 다른 늑대들도 이 근처로 몰려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놈이 더는 소리를 못 내게 죽여버린 것입니다.”

“그게 무슨 답답한 소리야? 검은 늑대가 여기서 어슬렁거린다면 이 지역 어디엔가 베토케로우스도 있다는 거 아냐. 그놈도 케르케로우스처럼 천리안이 있는데 우리를 발견했어도 이미 벌써 발견했겠지. 멍청한 알렉시스. 괜히 내 흥만 떨어트리고. 에이.”

“그렇다면 더더욱 시간을 조금도 지체하지 말고 어서 불새군에게 잡혀있는 건수가 있는 쪽으로 이동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아으······. 간만에 재밌는 상황이 연출되었는데. 그걸 그렇게 한 방에 보내버리나?”

텔리는 아쉬워하며 쓰러진 늑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텔리님, 나무요. 나무. 어서 건수를 찾으셔야지요.”

알렉시스는 나무 위를 가리키면서 텔리더러 어서 올라가라고 사인을 보냈다.

텔리는 다시 나무 위로 뛰어올랐다. 그가 꼭대기에 올라가서 멀리 바라보다가 건수가 있는 장소를 찾았는지 아래를 보며 소리쳤다.

“저기다! 저기가 분명해! 저쪽에서 뭔 일이 났네. 빛이 번쩍거리고 난리가 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