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4 부. 예언자들 - 107 화

예언자들 – 107

에뮤니우스는 주위를 살피며 콘도에서 빠져나와서 최대한 인적이 드문 산길을 택해서 도망가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베토케로우스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하고 싶지만 그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한시라도 빨리 M에게서 멀어진 후 얼마간이라도 몸을 피하고 있다가 적당한 방법을 간구하려고 했다.

‘일단은 좀 사람들이 왕래하는 곳까지 가야겠다. 그런 곳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눈도 있으니 함부로 날 납치해서 데려가진 못할 거야. 또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교통수단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뭐가 어떻게 될지 한 번 생각해보자. 아아..... 천리안을 가지신 베토케로우스님이라면 이렇게 곤란한 지경에 빠진 내 모습을 모른 척하진 않으실 텐데. 강원도 지역에 계신 줄 알았는데 얼마나 멀리 계시기에 날 이렇게 내버려두시는 걸까?’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베토케로우스가 그를 이미 놔버린 게 아닌가 싶었다. 자신이 버려진 카드로 여겨지는 것 같아 속이 상했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무시 받는 현재의 상황을 반드시 딛고 일어서겠다는 각오가 생기는 것이었다.

“그래, 모두 날 이용해먹으려고만 했지. 불새 놈들은 내가 케르케로우스님의 대사제라고 그를 잡기 위한 미끼로 삼으려고 했고, 나중엔 그를 죽이고 정수를 뽑는 기구로 사용하려고 했지. 오포코톤님도 마찬가지였어. 날 속여서 내 육체를 당신의 각성과 부활에 사용하려고 했어. 그런데 베토케로우스님이라고 뭐가 다르겠는가? 한 때 부하를 시켜 날 감시까지 하더니, 이젠 내가 쓸모없어지니까 이렇게 도망가고 있는데도 지원 하나 없지 않나? 그러니 다 똑 같아. 나 이외에 다른 누구에게 믿음을 주고 충성을 다 한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글러먹었던 거야.”

그가 혼잣말을 하며 수풀이 우거진 언덕을 내려가고 있는데, 수풀 너머에서 수상한 인기척을 느꼈다. 그는 처음에는 무시하고 조금 더 내려가다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 누구 있소?”

그는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상하군. 분명히 무슨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음..... 그래, 지금의 나라면 케르케로우스님 외에 누가 검은 방의 주인이 되든지 간에 그를 내 주인으로 섬길 수 있어. 내가 이 상태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말이야.”

그는 방금 전에 느꼈던 인기척이 신경 쓰였던 건지 계속 주위를 경계하며 걸음을 빨리했다.

에뮤니우스가 인적이 드문 산길에서 수상한 인기척을 느꼈던 것은 전혀 착각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를 주시하는 눈동자들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 눈동자들의 주인은 바로 두 마리의 검은 늑대들이었다. 방금 전의 부스럭거렸던 소리는 검은 늑대 두 마리 중 하나가 실수로 냈던 소리였다. 그 두 늑대는 일전에 와본동에서 사람들을 공격한 후 그들의 피 묻은 지갑을 훔쳐서 에뮤니우스에게 전해 주었던 바로 그 놈들이었다. 아무래도 그 이후 쭉 멀리서 그를 지켜보며 감시하지 않았나 싶다. 두 늑대들은 주위를 경계하기 시작한 에뮤니우스에게서 더 멀찌감치 떨어져 자신들의 인기척을 숨기려고 애썼다.

* * *

그 시각, 릴리카와 그 부하들은 차를 타고 막 강원도의 어느 사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이사우라는 여느 때와 마찬 가지로 릴리카와 한 차를 타고 있었는데 속으로 몹시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릴리카가 넌지시 물었다.

“이사우라, 지금 긴장해 있는 건가?”

“네... 네?”

혹시 릴리카에게 자신의 복잡한 속생각을 들켰나 싶어 이사우라는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아... 아닙니다.”

“그래, 평소에 늘 냉정하던 너가 그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어쩌면 오늘 그 늑대 놈과 맞닥뜨리게 될 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하지만, 너무 그렇게 긴장하고 있지 마. 그러면 몸이 굳어버려서 평소에 하지 않던 실수를 저지르게 될 지도 모르니까.”

“아... 예. 예.”

“우리가 지금 데려가고 있는 이 인원들을 수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은 알아봤나?”

“예... 인원이 100 명도 넘는 지라 아무래도 나눠서 지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미스터 초를 시켜서 몇 군데 알아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케르케로우스의 사제 놈의 친구들도 함께 데려 왔습니다. 일단 병원 근처에 도착하면 친구를 시켜서 케르케로우스의 사제 놈에게 다시 연락을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좋았어. 반드시 혼자만 나오게 해야 한다. 다른 일당도 나오게 하면 안 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늑대의 사제 놈이 나오면 많은 수의 인원으로 최대한 빨리 제압해서 데려가자. 그 놈만으로 케르케로우스를 밖으로 끌어낼 수 없다면 그 놈의 친구들까지 전부 이용해. 어떤 방법을 이용해서라고 반드시 그 늑대가 기어 나오게 만들어.”

이사우라는 릴리카가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상당히 적극적으로 임무에 임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설사 케르케로우스를 잡아 죽인다고 해도 그 다음이 문제 아니던가.

“혹시 그 다음은 어떻게 하실지 정하셨습니까?”

릴리카는 짧은 한숨을 쉬었다.

“글쎄..... 원래대로라면 에뮤니우스가 죽은 케르케로우스의 육체에서 정수를 뽑아내야 하는 것이었는데..... 기다려봐. 케르케로우스의 사제도 찾았는데 에뮤니우스도 어떻게든 찾을 수 있지 않겠나? 일단은 케르케로우스 일부터 해결해 보자고.”

“그 다음도 문제입니다. 운이 좋아서 케르케로우스를 죽이고 그의 생명의 정수를 취하는 것까지 성공한 다음에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내가 방금 한 얘기 못 들었어? 하나씩 차근차근히 풀어가자고.”

릴리카도 앞이 깜깜한지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녀는 속이 답답해졌는지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봤다. 그런데 돌연 그녀의 눈이 커졌다. 그녀가 급히 상체를 앞으로 당기며 운전수의 헤드레스트를 손바닥으로 치며 신호를 보냈다.

“저거..... 저거......! 야, 잠깐! 잠깐 차를 세워! 야야, 어서!”

운전수는 요청에 따라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이익-’

차가 급정지하자 릴리카가 흥분해서 벌겋게 된 얼굴로 이사우라에게 명령했다.

“이사우라! 뒤에 따라오는 병사들에게 빨리 연락해서 전부 나오라고 해!”

“네? 지금 여기서 말씀이십니까?”

“그래! 에뮤니우스다! 지금 바로 뒤 길거리에서 에뮤니우스가 걷고 있는 걸 봤어!”

릴리카가 재빠르게 차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거지꼴을 하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에뮤니우스가 그녀의 시야에 포착되었다. 그녀는 그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에뮤니우스!”

에뮤니우스는 누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는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검은 차량 옆에 릴리카가 씩씩 거리면서 자기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그녀를 보자 맥이 풀렸는지 한숨을 쉬며 혼잣말을 했다.

“산 넘어 산, 곰을 피해 달아났더니 이젠 호랑이를 만난 것인가.... 하하.....”

릴리카는 손에 힘을 집중해서 불을 피웠다. 그 불타는 주먹을 서서히 올려 에뮤니우스가 볼 수 있도록 했다.

“에뮤니우스! 오랫동안 널 찾았다. 각오는 했겠지?”

에뮤니우스는 아무 말 없이 두 손을 올렸다. 항복한다는 신호였다. 그는 많이 지친 기색이었지만 담담한 태도로 릴리카에게 말했다.

“안 그래도 릴리카님께 어떻게 연락을 취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습니다.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을 보니 과연 이게 제 운명인가 보군요.”

그가 말을 끝내자 릴리카의 차 뒤로 수많은 차량들이 섰다. 그 안에부터 그녀의 부하들이 쏟아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