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 예언자들 - 80 화
예언자들 – 80
알렉시스는 텔리가 신인 줄도 모르고 자기 부하로 삼아 지금껏 마음대로 부렸던 것을 생각하니 무서워서 온 몸의 뼈가 다 흔들릴 참이었다. 아무리 고민하고 고민해 봐도 신을 우롱한 죄가 커서 죽음을 면할 길이 없어보였다. 펠리시아는 알렉시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대충 눈치 채고 그녀를 위로했다.
“괜찮아요. 잘못이 있다면 텔리에게도 있는 거죠. 처음부터 신분을 속였으니까요. 그리고 내가 아는 텔리는 그렇게 막무가내로 행동하진 않을 테니까요.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언니를 용서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아? 잠깐. 텔 리가 막무가내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합리적이라고? 잘못 들었나? 가만있자.... 방금 그 말을 들은 알렉시스 역시 얼굴이 여전히 어둡다. 그녀 역시 펠리시아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이구나. 그렇지. 텔리가 합리적이라니? 그건 말도 안 돼지.
“펠리시아, 네가 뭘 잘 몰라서 그래. 우리 세계의 신들이란 존재는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도 변덕이 심한 존재들이야. 예전엔 그 누구보다도 중립을 지키시면서 평화와 번영을 사랑하셨던 불새 에피로제님께서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세상 모두와 전쟁을 시작한 것만 봐도 그래. 신들은 다 하나같이 변덕쟁이들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힘이 너무 강하니까 그들의 지배하에 놓인 우리 인간들은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함께 하는 경우도 있다고.”
“세상에. 그럼 그건 신도 아니지 않아요?”
“그나마 에피로제님은 선심 쓰듯 죽은 자들을 다시 살려주시기도 하니까 낫지. 다른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에겐 그런 혜택도 없어.”
펠리시아는 그 말을 듣고 놀라며 물었다.
“죽은 사람을 되살린다고요? 그게 정말이에요?”
“응. 그 사람의 정수가 파괴되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아니, 파괴되었더라도 에피로제님은 되살리실 수 있으실 거야. 부활의 능력이 워낙 뛰어나시니까.”
펠리시아는 다급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언니, 진짜 그 불새 신수가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다는 게 정말이에요? 그 분을 어디 가서 만날 수 있어요?”
알렉시스는 펠리시아의 목소리에 간절함이 녹아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 역시 예전에 애인인 후안 마르티네즈가 죽었을 때 그녀의 심정도 저렇게 고통스럽고 간절했었기 때문이다.
“너... 왜그래? 너 무슨 일 있지? 아니, 쥬니아....! 쥬니아는 어딨어? 네 어머니한테 무슨 일이 생겼구나!”
또 다시 펠리시아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흐흐흑. 우리 어머니는..... 오늘 아침에 에뮤니우스와 함께 M을 만나다가.... 흐흐흐흑.”
알렉시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에뮤니우스..... 그 놈 짓이구나. 그 빌어먹을 놈이 쥬니아에게 무슨 짓을 했어. 아아아....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결코 그 놈이 쥬니아에게 나쁜 짓을 할 수 없게 했었을 텐데!”
“흐흐흐흑.......”
펠리시아는 얼마 동안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알렉시스는 그녀를 위로하려고 다시 입을 열었으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떨고 있는 그녀의 작은 어깨를 감싸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펠리시아는 몇 분 동안이나 서럽게 울었다. 그렇게 울었더니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는지 M과 만났을 때 있었던 일을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알렉시스는 원래 자기도 그 자리에 있고 싶었기 때문에 펠리시아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그러니까 네 얘기는, 그 모임에서 처음에 M이 먼저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고 쥬니아가 뭔가 위험한 상황을 감지하고 널 도망치게 만들었다는 거네?”
“네. 결론적으로는 그런데, 제가 먼저 밖으로 나가겠다고 했어요. 심심해서 놀러나간다는 핑계를 댔지요. M이 그랬거든요. 우리 어머니와 제가 그 자리에 에뮤니우스를 따라온 것이 심각한 규정 위반이라나 뭐라나. 그가 먼저 그렇게 말하면서 둘 사이의 분위기가 얼어붙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전 약하니까 혹시라도 어머니와 에뮤니우스에게 짐이 될까 봐서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요.”
“그리고 쥬니아가 너가 도망갈 수 있게 시간을 벌어준 거다 이거지?”
“아마 처음에는 어머니도 어떻게든 그 자리를 피해서 나오시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거의 그럴 수 있었을 거라 봐요. 왜냐면 M은 말만 험했지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거든요. 옆 자리에 앉은 후안도요. 그걸 보면 어머니나 에뮤니우스를 해칠 생각까지는 없었던 거예요. 아, 물론 나중에 그들도 화를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었났어요. 다만 정작 어머니를 공격했던 건 그들이 아니라 에뮤니우스였죠.”
“그것 참 이상하군. 그런데 도대체 왜 에뮤니우스가 쥬니아를 공격했던 거지? M과 설전이 오갔다면 그들과 싸우는 것이 당연하잖아?”
“자세한건 모르겠어요. 전 밖에 숨어서 레스토랑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을 뿐이니까요.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에뮤니우스가 우리 어머니를 배신했다는 거예요. 어머니는 에뮤니우스를 부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방비 상태로 당했던 거예요.”
알렉시스는 그렇게 어이없게 어머니를 잃은 펠리시아가 가여웠지만 좀 더 후안에 관한 정보를 얻지 못해서 답답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펠리시아가 재빨리 알아차렸다.
“그리고 후안에 관한 정보는 그게 다에요. 어머니와 에뮤니우스는 그 자리에 더 오래 있었으니까 뭔가 들으셨을 게 분명한데 전 나가 있어서 잘 모르겠네요.”
“그래. 알았어. 하는 수 없지.”
알렉시스는 분명히 아쉬운 마음이 있었지만 지금 어머니를 잃고 큰 슬픔에 빠져 있는 펠리시아에게 더 많은 걸 기억하라고 하는 건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펠리시아를 꼭 안아주었다.
“내가 어떻게 네게 위로를 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반드시 쥬니아가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는 일은 없었을 거야. 에뮤니우스, 네 놈이 감히 쥬니아를.... 하아아...”
알렉시스는 한숨을 쉬면서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요. 아마 언니라면 어머니를 지켜줬을 거예요.”
“쥬니아의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 나의 후안에게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진실을 제대로 알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둘이 함께 사라진 에뮤니우스를 반드시 찾아내서 죗값을 치르게 하자.”
“......”
펠리시아는 말이 없었다. 대신 알렉시스의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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