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6 부. 솔로우스 - 16 화

솔로우스 – 16

릴리카는 정면의 베토케로우스를 주시하며 등으로 기어서 도망치고 있었다. 베토케로우스는 차가운 눈빛으로 릴리카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을 뿐 별 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표면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그는 사실 상당한 에너지를 사용하여 그녀의 정신을 완전히 지배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그가 한 번 말한 것은 산 속의 메아리나 타일로 된 방에서 소리가 반사되는 것 같이 계속 그녀 머릿속에서 반복되는 것이었다. 릴리카는 머릿속에 맴도는 베토케로우스의 목소리 때문에 무척 혼란스러워했다.

“아아! 내 머릿속에서 말하지 마! 입 닥쳐! 입 닥치란 말이야!”

“아직도 제법 버티는군. 하지만 뒤로 물러설 셈이냐? 설마 계속 등 뒤로 기어서 내게서 도망가려는 건 아니겠지? 크크크.”

“으으으.... 쳐다보지 마. 네놈의 사악한 술수에 절대 당하지 않을 거야.”

릴리카는 혹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베토케로우스와 시선과 마주쳐서 정신을 지배당하게 되는 것인가 싶어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흔들어 댔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베토케로우스의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베토케로우스는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다 꿰뚫어보고 있는지 그녀를 비웃었다.

“멍청하긴. 내 시선을 피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란다. 이미 네 정신은 내 지배 하에 있단다. 이제 슬슬 마무리를 져야 되겠군. 크크크.”

베토케로우스는 릴리카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힘을 집중했다. 그의 이마가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헉!”

등 뒤로 기어서 도망가고 있던 릴리카는 갑자기 동작을 멈추더니 허리를 활처럼 휘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좌우로 격렬하게 흔들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어어......”

“크크크. 자, 조금 전 날 죽이려고 했던 그 손을 들어보아라.”

베토케로우스의 말이 떨어지자 릴리카의 오른손이 서서히 들리더니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러자 그녀의 손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손이 자신에게 무슨 일을 할지 그야말로 불 보듯 뻔한 일이었기에 릴리카는 지금 벌어지는 일이 몹시 두려워졌다.

“내 손이 왜 저절로 움직이다니. 내 몸이 왜 이러지?”

그녀는 정신을 집중해서 자신의 손을 내리려고 노력했지만 올라가는 손을 막지 못했다. 서서히 자신의 몸의 제어력을 잃어가자 크게 당황했다.

‘아아.... 어쩌지? 내가 내 목숨을 노리게 되다니! 아... 안 돼!’

“크크크. 네 몸이 내 수중에 떨어진 마당에 안 될 것이 뭐가 있겠느냐? 날 죽이려고 했던 네 손에 오히려 네가 죽는 것이다.”

베토케로우스는 릴리카의 생각을 읽었는지 비열한 웃음을 입가에 흘리면서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 * *

자, 이제 시간을 조금 이전으로 되돌려보자. 릴리카가 몸을 활활 불태우며 베토케로우스에게 달려가고 있을 때였다. 그 둘이 대결을 벌였던 장소에서 꽤 떨어진 장소에서 미스터 황은 옴니테바를 이용해서 열심히 신기 할머니를 치료했다. 그의 도움으로 그녀는 늑대의 기습을 받아 중태에 빠졌었는데, 점차 의식과 체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미스터 황을 지켜보고 있던 데디쿠스가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봐, 사제. 지금 상태가 어떤가? 이 마법사는?”

미스터 황은 할머니를 치료하면서 그녀의 이마에 빛나는 손을 대고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그녀의 이마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자기 이마에 흐르던 땀을 닦으면서 깊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휴우우... 됐어. 이제 할머니는 무사하셔. 조금만 늦었어도 아주 위험할 뻔 했어.”

그에 따르면 할머니는 치명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자 데디쿠스는 손가락으로 조금 떨어진 곳의 나무들 사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것 정말 다행이군. 그럼 저기 쓰러져 있는 사람도 좀 치료해야 하지 않을까?

미스터 황은 데디쿠스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물었다.

“응? 누구 말이야? 또 우리 편 중에 누가 부상당했어?”

“저기.... 저기 사람이 쓰러져 있잖아. 혹시 치료할 수 있는지 가까이 가서 보자고.”

둘은 사람이 쓰러져 있다고 하는 장소에 함께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그곳에 도착하자, 미스터 황의 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쓰러져 있는 사람은.... 음, 사람은 절대 아니지. 다름 아니라 살육의 신, 텔리였던 것이다. 그는 몸통에 큰 구멍이 여러 개 뚫린 상태로, 상처가 크게 열려 있어서 내장이 보일 정도였다. 게다가 그 상처로부터 얼마나 피를 많이 흘렸는지 주변 땅이 검붉게 변해 있었다. 마치 그 모습은 해부대에 올려 있는 해부용 시신 같은 끔찍한 모습이었다. 미스터 황도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손에 쥐고 있던 옴니테바를 땅에 떨어뜨릴 정도였다.

“텔리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으.... 으......”

텔리는 입에서 희미하게 신음소리를 냈다. 놀랍게도 텔리는 아직도 의식을 완전히 잃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미스터 황은 땅에 떨어뜨렸던 옴니테바를 줍고는 서둘러 힘을 자신의 왼손에 집중시켰다. 그의 손바닥에서 하얀 빛이 번지기 시작하자, 텔리의 이마에 대고 상태를 점검하였다.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아... 맙소사! 이 양반, 거의 송장이나 다름없잖아! 텔리님! 죽지 말아요!”

미스터 황은 옴니테바를 쥔 오른 손을 어디에 대야 할지 난감해했다. 텔리의 가슴과 복부의 피부가 크게 찢어져 있어서 어디서부터 치료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는 일단 제일 크게 찢어진 복부에 옴니테바를 갖다 대었다. 그러자 옴니테바는 빠르게 텔리 몸에 난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끄어어어.....”

텔리는 쇼크가 오는지 두 눈의 흰 자위를 보이며 신음했다. 그 소리를 들은 데디쿠스는 긴장의 눈초리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봐, 사제. 이 분이 살육의 신이 맞지? 그런데 어떻게 이런 상태가 되어 버린 거야? 자네의 능력으로 이분의 육체를 고칠 수 있긴 한 거야?”

미스터 황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모.... 모르겠어. 너무 상태가 안 좋아. 텔리님이 이렇게 되실 분이 아닌데. 이분은 세상에서 제일 센 존재란 말이야. 군대가 와도 혼자 감당할 수 있을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혹시 가능하다면 이분이 좀 조용히 하실 수는 없을까? 아직 이 부근에 늑대들이 있을지 몰라서 그래. 신이 신음하는 소리를 듣고 우리한테도 달려들까봐.”

“제기랄!”

미스터 황은 치료가 생각처럼 되지 않는지, 화를 냈다. 상처가 너무 커서 그런지, 도저히 시간 안에 텔리를 살리기 어려울 것 같았다. 텔리는 다시 한 번 신음소리를 낸 후 숨을 헐떡였다. 미스터 황은 얼굴에서 땀을 비오듯 흘리며 치료에 전념했지만 그의 표정은 좀처럼 밝아지지 않았다.

“아아... 안되겠어. 너... 너무 늦었어.”

그때였다. 텔리가 힘겹게 손가락을 움직여 미스터 황의 무릎을 건드렸다. 미스터 황이 상처에서 눈을 떼고 텔리를 보았다. 텔리는 자신의 사제에게 무슨 할 말이 있는지 자꾸 입술을 움직였다.

“텔리님! 제게 무슨 하실 말씀이 있어요?”

미스터 황은 텔리가 뭘 말하고 싶은지 들으려고 그의 입술에 귀를 가까이 댔다. 그리고 모기가 윙윙 거리는 소리만큼 작은 목소리가 그에 귓가에 들렸다.

“...... 넣어.... 옴니... 테바... 내 몸에.... 그냥.... 넣어.”

“네? 옴니테바를 텔리님 상처 안에 넣으라고요?”

“헉... 헉... 헉헉....”

“말씀해주세요. 그러니까 이 옴니테바를 아예 뱃속에 넣으라는 말씀이신가요?”

“헉..... 헉....”

텔리는 이미 한계에 봉착했는지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