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6 부. 솔로우스 - 40 화

솔로우스 – 40

아까 전 베토케로우스와 함께 검은 방을 향하던 에뮤니우스가 어떻게 지금 솔로우스 앞에 나타나게 된 것일까? 게다가 릴리카는 원래 순서대로라면 바이베노파시스와 그 일행 보다도 먼저 검은 방으로 향했었기 때문에, 그들 이전에 도착했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상태로 나무 위에서 던져진 것이다.

* * *

일이 이렇게 된 과정은 사실 이랬다. 검은 늑대 위에서 베토케로우스와 함께 동행하던 에뮤니우스는 가장 뒤에서 그를 따라가고 있었다. 오직 텔리에 대해 복수심에 불타던 베토케로우스는 앞서가고 있다가 텔 리가 눈에 들어오자 곧 바로 튀어 나갔고, 그를 태우고 있던 검은 늑대 역시 그를 버리고 주인을 지키려고 뛰어 갔던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그 역시 베토케로우스를 도와주러 뒤를 따라야 했겠지만, 이미 그의 마음 속에는 괴수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그도 텔리를 증오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죽어가는 베토케로우스를 따르자니, 선뜻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두고 주인을 따라가는 검은 늑대를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저 늑대... 마침 여기에 나를 버려두고 가다니 그것 참 다행이로군. 어떻게 베토케로우스의 눈에 띄지 않게 도망가야 하나 그것만 걱정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크크크. 난 이대로 케르케로우스님에게 가서 사정하고 어떻게든 엘리시움으로 돌아갈 방법을 좀 찾아봐야겠다.”

다 죽어가는 베토케로우스는 텔리의 적수가 될 수 없을 거라고 계산한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홀로 검은 방의 입구로 발걸음을 돌렸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그대로 적중했다. 베토케로우스는 그 이후 두 번이나 텔리에게 패배했던 것이었다.

* * *

검은 방의 입구로 발걸음을 향하고 있는 에뮤니우스는 생각했다. 그때, 그의 맘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바로 엘리시움으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그는 이 세계로 온 이후부터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더 큰 운명의 물살에 휩쓸려 살아가는 인생을 살았다. 배신에 배신을 거듭했지만 어디에서도 소모품 이상의 대우를 받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그 동안 벌였던 일이 성공적이지도 않았다. 우연한 기회로 조금 힘을 얻었지만, 그 댓가로 더 이상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살 수 없게 되었다. 지난 인생을 돌아보자 후회만이 몰려왔다. 그는 생각했다.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케르케로우스님에게 다시 돌아가는 거야. 받아주시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그 앞에서 절을 하고 빌면 일단 얘기를 들어주시지는 않을까?’

그는 아까 불새군을 배신한 반역자들뿐만 아니라 릴리카를 따르는 불새군 병사들까지 모두 용서하고 엘리시움으로 돌려보내주겠다는 케르케로우스를 보고 약간의 희망이 생겼다. 자신이 그에게 한 일이 너무 극악스러워서 과연 용서 받을 수 있겠나 싶었지만, 그래도 다른 신이나 신수였다면 아예 말조차 꺼내기 어려울 것이었다.

‘어차피 거절당해도 날 해치지는 않으실 거야. 케르케로우스님은 그런 분이시니까.’

게다가 케르케로우스는 에뮤니우스가 한국으로 오기 바로 전 날, 그를 검은 방으로 불러 참회의 기회를 주면서 회유해보려고 했었던 일이 있었던 것도 있어서 그는 마음속에 작은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만약 엘리시움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과거에 내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낼 수 있을지 몰라. 어떻게 오포코톤을 만났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또 어떻게 내 몸에 그의 알이 자리잡게 되었는지 알 수 있을 지도 몰라. 그리고 내가 꿈꿨던 일도 어떻게든......’

그는 자신의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가 몹시 궁금했던 것이었다. 왜 그의 기억이 그렇게 불안정하고 완전하지 않은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면 전부 돌아올 것만 같았다. 또, 그가 원하던 영원히 사는 육체를 완성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 이곳에서 내가 할 일은 이제 아무 것도 없다. 어떻게든 엘리시움으로 돌아가자.’

그렇게 생각이 정리되자, 마음이 후련해졌다. 텔리와 일전을 벌이고 있는 베토케로우스를 돕는 일 따위는 그의 머릿속에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케르케로우스를 만나는 것만 생각했다. 검은 방의 입구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 * *

에뮤니우스가 검은 방의 입구에 도착했을 때, 그는 수풀 뒤로 몸을 숨겼다. 그는 곧바로 수풀 밖을 나서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가 아무리 둘러봐도 만나야 할 케르케로우스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 자리엔 불새군의 반역자 3 인방과 미스터 황이 있었다. 그들도 서로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아니었기에, 그는 나가서 말을 나눠볼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자신의 평판을 감안하면 저들에게 굳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어차피 케르케로우스님은 곧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실 거다. 검은 방의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으실 리도 없고 말이야. 분명 근방에 계실 거야. 그때까지 조용히 때를 기다리자.’

그는 케르케로우스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결정하고 몸을 잘 숨기고 있었다.

에뮤니우스가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을까? 조용하던 검은 방 안에서 크고 작은 폭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 번 ‘쾅!’하고 큰 폭발음이 들려왔다. 검은 방 안에서 무슨 일이 분명히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더니 잠시 후, 한 두 마리씩 몸에 불이 붙은 검은 늑대들이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그 중 한 마리가 그가 몸을 숨기고 있는 수풀 가까이까지 와서 몸에 붙은 불을 끄려고 땅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그의 코앞까지 와서 몸을 뒹구는 늑대 때문에 그는 놀라서 서둘러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선 다음, 등 뒤에 있는 나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무를 오르면서 그는 생각했다.

‘내가 오포코톤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 딱 하나 있군. 예전 같으면 내가 이런 나무 위로 오르는 것은 꿈에도 꿀 수 없는 일이었을 텐데, 지금은 이런 체력이 생겼다는 것.’

거동이 불편해서 빨리 걷는 것조차 불가능 했던 노인이었던 그가 이제는 나무를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이 생겼던 것이다. 그것은 그의 몸 안에서 부화하지 못한 오포코톤의 능력이 그에게 흡수된 뒤로, 이따금씩 다른 생명체의 활력을 흡수했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었다. 그는 겉모습까진 아니어도 체력적으로 젊음을 어느 정도 되찾은 것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어쩌면..... 그래, 정말 어쩌면, 젊음을 되찾는 것뿐만 아니라 영원히 사는 신의 육체를 갖는 것도 가능할지 몰라. 그 때까지만 살아남자. 어떻게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