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부. 솔로우스 - 67 화
솔로우스 – 67
베토케로우스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바이베노파시스는 늦었지만 괴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베토케로우스는 어떤 힘에 막혀서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멈췄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앞으로 이동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괴수는 거친 숨을 내쉬면서 으르렁거렸다.
“텔리..... 네놈을... 죽이겠다!”
바이베노파시스는 왜 괴수가 자신더러 자꾸 텔리라고 하는 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난 바이베노파시스다. 고대의 괴수, 왜 자꾸 날 텔리라고 부르는 거냐?”
‘컹!’
베토케로우스는 큰 소리로 한 번 짖었다. 마치 바이베노파시스를 꾸짖는 것 같았다.
“거... 짓말.... 하지 마라! 네놈에게서... 텔리의 냄새가... 난다... 암흑의... 냄새....”
바이베노파시스는 자신의 어깨에 코를 대고는 냄새를 맡아보았다.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괴수 네놈의 코가 잘못된 거 아니냐?”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눈에 힘을 집중시켰다. 그의 눈이 밝은 빛을 내뿜었다. 그가 빛나는 눈으로 베토케로우스를 자세히 살펴보자 그의 입이 벌어졌다.
“우오오. 이봐, 괴수. 네 꼴이 정말 말이 아니로구나. 네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냐? 아니, 어떻게 그런 몸을 가지고 아직도 숨이 붙어 있을 수 있는 거지?”
그가 놀란 이유는 베토케로우스의 몸의 많은 부분이 이미 잔뜩 썩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토케로우스의 몸을 확인한 바이베노파시스는 그제야 괴수가 움직일 때마다 내뿜는 고약한 악취를 코로 맡게 되었다. 그는 얼굴을 옆으로 돌리며 괴수에게 말했다.
“크.... 뭐야, 코가 썩게 될 정도로 고약한 냄새는? 베토케로우스, 너 마지막으로 몸을 물에 담갔던 게 언제냐?”
그러자 베토케로우스가 사납게 짖으며 으르렁거렸다.
‘컹! 컹! 크르르르르....’
“헛소리는.... 집어치워라.... 네 놈이... 날 이렇게.... 만들었지... 않느냐?”
그 얘기인즉슨, 텔리가 베토케로우스를 이렇게 엉망인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바이베노파시스는 처음엔 괴수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주 오래 전, 엘리시움에서 다른 신들과 연합하여 베토케로우스와 싸운 적이 있었던지라 이 괴수의 무서운 능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그는 열심히 용감하게 베토케로우스와 맞서 싸웠지만 결국은 패하고 말았던 쓰디 쓴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내 동생 텔리, 그놈이 네 놈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 놨다는 거지?”
‘크르르르.... 크르르르르....... 컹!’
베토케로우스는 대답대신 낮은 목소리로 그르렁거리며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의 앞에 놓인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벽에 가로 막힌 듯 조금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텔리.... 널 죽여버리겠다...!”
“이 미친놈을 봤나? 내가 어딜 봐서 텔리라는 거냐? 눈이 멀은 게냐?”
바이베노파시스는 그렇게 말하고 빛이 나는 눈으로 다시 한 번 베토케로우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괴수는 바이베노파시스가 플래쉬 빛처럼 자기 얼굴에 비추는 안광을 보고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괴수의 얼굴을 비춰본 바이베노파시스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이 녀석, 눈이 안 보이게 됐잖아?”
베토케로우스의 양 쪽 눈 부위가 전부 썩어 문드러져 있었던 것이다. 괴수는 포효하며 대꾸했다.
“널....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 텔리! 크아아아!”
베토케로우스는 몸을 비틀면서 힘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그가 조금씩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 모습을 본 바이베노파시스는 탄성을 질렀다.
“놀랍구나! 내가 너에게 가하고 있는 압력은 큰 바위로 밀어내어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인데, 그걸 밀어내다니! 과연 무서운 괴수로구나!”
“널... 죽여버리겠다.... 텔리!”
그의 말을 듣고도 무시하는 것인지, 베토케로우스는 계속 같은 말만 반복했다. 분명 그의 몸은 이미 한계 상황을 넘은 것일 텐데 아직도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텔리 녀석이 무슨 수로 너 같은 괴물을 이런 모습으로 만든 거지?”
바이베노파시스의 마음 속에는 엉망이 되어버린 육체를 가지고도 자신의 힘에 필적하는 베토케로우스의 무서움보다도, 그를 홀로 이 지경으로 만든 텔리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커져갔다.
‘텔리, 그 자식이 도대체 무슨 수로 이런 괴물을 혼자서 상대했다는 것인가? 지금 이렇게 베토케로우스가 눈이 보이지도 않는 데도 그 놈에게 복수하려고 찾아다니는 것을 보면 아직 어디에선가 살아 있다는 것 아냐? 세상에, 엘리시움의 어떤 신이 이런 괴물을 홀로 상대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혹시 그놈, 아버지에게서 받은 힘을 사용했던 것인가?’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베토케로우스는 거친 숨을 내쉬며 조금씩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 모습이 마치 폭풍우를 힘겹게 뚫고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크아아아아! 텔.... 리! 죽어라! 텔리!”
순간 바이베노파시스의 얼굴에서 여유가 전부 사라지고 표정이 굳어졌다.
“이렇게 어이없는 경우가 있나! 지금 가하고 있는 압력은 나무도 바위도 날려버릴 정도인데 그걸 뚫고 있잖아! 그렇다면 에잇! 네가 원한다니 더 강하게 날려주마!”
바이베노파시스의 손에 하얀 빛이 났다. 그가 더 큰 힘을 사용하는 증거였다. 주위에서 강한 바람이 불며 나뭇가지들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베토케로우스의 몸이 뒤로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괴수는 괴로운 지 계속 소리를 질렀다.
‘크어어어어..... 크어어어어......’
그 결과 그가 지금까지 앞으로 내딛었던 몇 발자국이 소용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며 다시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죽여... 버... 리겠....다.... 텔리...!”
바이베노파시스는 검은 늑대 괴수를 쉽게 날려버리지 못하게 되자 마음이 초조해졌다.
“미친 늑대! 난 텔리가 아니라니까! 왜 자꾸 나더러 텔리라고 하는 거냐? 설마 귀까지 썩어버린 건 아니겠지?”
아니긴 왜 아니겠는가? 그가 아까 빛나는 눈으로 가까이에서 베토케로우스의 머리를 자세히 살펴보지 못해서 그렇지, 이미 그의 귀에까지도 텔리가 주입했던 독이 퍼져서 그 부분이 썩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의 몸은 이제 다 죽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텔리에게 품은 원한이 몸을 어떻게든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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