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6 부. 솔로우스 - 45 화

솔로우스 – 45

붉은 수염의 헨리는 아직 온기가 사라지지 않은 늑대의 사체를 한 손으로 들고 뒤쪽에 있는 데비아나에게 걸어갔다. 그가 한 손으로 크고 무거운 늑대를 들고 가자, 병사들이 웅성거렸다.

“와.... 저 큰 늑대를 한 손으로 들고 가다니 힘이 장사군!”

헨리는 데비아나 앞에 늑대를 내려놓더니 녀석의 감긴 눈꺼풀을 벌렸다. 늑대의 눈이 붉게 변해 있었다. 데비아나와 베도아가 그 눈을 보고 놀라워했다.

“붉은 눈....!”

“이 눈이 보이시죠? 예, 붉게 변해 있습니다. 이놈들이 이런 눈을 하고 있을 땐 특히 사나워집니다. 저희들은 이런 녀석들에게 당했던 것입니다.”

데비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건 우리도 알고 있다. 엘리시움에서 베토케로우스와 싸울 때, 종종 그런 눈을 가진 검은 늑대들과 싸운 적이 있었거든. 아마도 검은 늑대들 중에서도 정예가 아닌가 싶다.”

“정예 늑대요? 아닙니다. 이들은 원래 보통의 늑대였습니다. 하지만 베토케로우스가 늑대들을 이렇게 사납게 만듭니다.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것 같습니다.”

“마인드.... 컨트롤...?”

헨리가 지구의 용어를 사용하자, 데비아나는 알아 듣지 못했다. 그는 두 눈썹을 위로 올렸다가 내리더니 다시 설명했다.

“그러니까 베토케로우스가 늑대들의 정신을 조종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경우에 늑대들은 그처럼 붉은 눈을 가지게 됩니다.”

“뭐라고? 베토케로우스가 늑대들의 정신을 조종한다고?”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뿐이 아닙니다. 저희가 관찰한 바로는, 늑대가 그런 상태가 되면 베토케로우스는 그들을 자기 수족처럼 부릴 수 있게 됩니다. 저와 제 친구의 생각엔, 그와 늑대들의 정신이 하나로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바로 하이브 마인드죠.”

“하이브.... 마인드....? 그건 또 뭐야?”

데비아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헨리가 계속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헨리는 그녀의 불쾌한 표정을 보고는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아, 제가 자꾸 지구의 말을 사용해서 죄송합니다. 하이브 마인드란 한 개체가 다수의 정신을 지배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되면, 베토케로우스는 이 늑대들에게 직접 명령을 내릴 수도 있고 자신의 수족처럼 이들의 몸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즉, 이들이 보고 듣는 것, 혹은 그 외에 모든 느끼는 것을 그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말이지요.”

“그렇다면 그 얘기는 그가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저희가 베토케로우스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으면서 늑대들을 조종해서 저희 부대를 전멸시키다시피 했습니다. 이제 그가 이 세계에 있다고 했던 저희의 보고를 믿으시겠습니까?”

데비아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는 나도 내 눈으로 직접 보았으니 믿겠다.”

헨리는 그녀의 태도가 조금 우호적으로 변한 것을 보고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지금부터 그가 그녀에게 말해야 하는 것은 그런 용기가 꼭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서 이 지역을 벗어나야 합니다. 그 괴수는 인간의 힘으로 물리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특히 이 정도 인원으로는 도저히 무리입니다. 다행히 우리를 도울 수 있는 분이 있습니다.”

“우릴 도울 수 있는 분?”

“예. 바로 검은 방의 주인, 케르케로우스님입니다. 그 신수께서 우리를 다시 엘리시움으로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갑자기 데비아나의 얼굴이 사납게 변했다.

“이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케르케로우스는 우리의 적이다. 에피로제님께서는 그를 발견 즉시 척살하라고 전군에게 명하셨다. 그런데 그에게서 도움을 얻으라고? 우리가 적의 자비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냐?”

“우리의 대장 릴리카도 당신처럼 그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전멸 당했습니다. 제 친구가 곧 신수를 이리로 데려올 것입니다. 솔직히 그 방법 외엔 베토케로우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습니다. 제발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십시오.”

그의 말을 듣자 데비아나의 기분이 매우 불쾌해졌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히메이오스가 있는 곳을 가리키더니 그에게 소리쳤다.

“시끄럽다! 내가 당장에라도 헛소리나 지껄이는 네놈의 그 혀를 잘라버려야겠지만, 한 번 사선을 넘어 살아 돌아온 것을 생각해서 너희들에게 마지막으로 온정을 베풀겠다. 너희 둘 다 일단은 살려둘 것이니, 더 이상 우리가 하는 일에 참견하지 말고 저기 네 동료가 있는 곳에서 꼼짝하지 말고 있어라! 두 번 다시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아라.”

“.....알겠습니다.”

헨리는 더 이상 그녀를 설득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릴리카와 닮은 모습이었다. 그저 입을 다물고 히메이오스가 있는 곳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가까이 오자, 히메이오스가 그를 보고 입을 열었다.

“헨리, 네가 뭘 하려고 하는지 알겠는데 소용없는 일이야. 저들은 너무 강하게 세뇌당해 있다고. 우리도 우리가 그 동안 잘못된 길을 걷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데 무려 18 년이나 걸렸어. 그런데 저들은 이제 막 이 세계에 도착한 거잖아. 게다가 저들은 아직 이곳의 사람들도 만나지 못했고 문명도 보지 못했어. 바깥세상을 보지 못한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은 사람들인데 뭘 알겠어?”

헨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입에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난 그렇게 거창한 얘기를 했던 게 아니잖아. 그저 생존에 대해서 얘기했던 거라고. ‘이대로 여기 있으면 죽는다. 그러니 어떻게든 살아남자’ 그렇게 말한 것뿐이야. 그런데 저 여자는 하는 말이 딱 릴리카와 똑같았어. 하아..... 난 저 성전사라고 하는 자들을 모르겠어. 무엇이 저들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에피로제님을 따르게 만드는 걸까?”

히메이오스는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신앙심. 그릇된 신앙심. 거짓 신들을 향한 그릇된 신앙심.”

헨리는 깜짝 놀라며 입술에 손가락을 대며 말했다.

“쉿! 조용히 해. 저들이 들으면 어떡해? 인마, 너 때문에 베토케로우스에게 죽기 전에 저들의 칼에 죽겠다. 어쨌든 고향에는 돌아가야 할 것 아니야?”

“그래.... 네 말이 맞아. 고향엔 돌아가야지. 가서 사람들에게 이곳 지구에 대해 알려주고 더 큰 세상이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줘야지. 가짜 말고 진짜를 알게 해줘야지.”

헨리는 황급히 손으로 히메이오스의 입을 덮었다.

“우웁.”

“진짜 너 조용히 안 해? 너 때문에 나까지 죽게 할 셈이냐? 너 계속 그렇게 나불거리면 제 명에 못살아!”

이때까지만 해도 헨리는 나중에 히메이오스에게 어떤 죽음이 찾아올지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다. 어쩌면 그는 혹시 은연중에 예감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