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5 부. 만월의 밤 - 29 화

만월의 밤 – 29

텔리는 자기가 말한 대로 다른 곳에서 클로브 담배를 피우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렉시스도 함께 일어나며 그에게 물었다.

“텔리님, 방금 제가 잘못 들은 건가요? 신을 도운 자라뇨?”

“그게 뭐 어때서? 나한테 라이터도 주고 했잖아. 그 정도면 날 도운 거지?”

“하지만 신을 도운 자라는 뜻은.....”

“어, 내 능력 안에서 뭐든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뜻이지.”

“텔리님께 라이터를 바쳤다는 게 그 정도로 대단한 것입니까? 전 잘 이해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뭐?”

텔리는 클로브 담배를 문 채 고개를 한 바퀴 돌리더니 귀찮다는 듯 짜증 나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거야 내 맘이지. 너가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내가 소원을 하나 들어준다 한들, 저 녀석이 살육의 신인 나에게 뭘 바랄 게 있겠어. 안 그래? 누굴 죽여 달라고 하겠어?”

“아! 과연 그렇습니다. 그런 뜻으로 말씀하셨던 거군요.”

텔리가 그녀에게서 등을 돌리고 사람들이 있는 공터에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알렉시스가 그를 쫓아 왔다.

“텔리님, 한 가지 더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얘가 나를 영 귀찮게 하네. 또 뭐야?”

“텔리님께서도 현재까지 상황을 잘 파악하셨겠지만, 적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불새군도 있고 베토케로우스도 있습니다. 게다가 저를 공격하고 건수 친구 중 하나를 잡아두었던 에뮤니우스도 있습니다.”

“음... 에뮤니우스. 맞아, 그놈도 있었지.”

“지난 며칠 동안 텔리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베토케로우스만으로도 상대하기 벅찬 상대인데 다른 세력들을 어떻게 다 상대하실 생각이신가요? 게다가 저와 당신의 사제는 아직 당신의 주신 힘을 사용하는 법을 완전히 깨우치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잠깐만. 스톱.”

텔리는 손을 내밀며 알렉시스의 말을 중단시켰다.

“알렉시스, 넌 문제가 뭔지 알아? 넌 모든 일을 다 앞서서 계획하려고 하려는 거야.”

“하지만 지금 상황이 너무 암담하지 않습니까.....”

“아니, 난 그런 식으로 일을 하지 않는다니까. 그러니까 너도 느긋하게 내가 전해준 힘을 제때 쓸 수 있도록 연습을 하도록 해.”

느긋하게 준비하라니? 알렉시스는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텔리님이 주신 힘을 빨리 제어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 제 능력이 부족한 것이고 또 제 잘못입니다. 하지만 당장 내일로 다가온 결전을 앞두고 느긋하게 마음 놓고 있으라는 텔리님의 뜻을 전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실은 그 일 때문에 제가 꼭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아이, 짜증나게 진짜. 야, 난 지금 클로브 담배를 피우고 싶다니까! 왜 자꾸 방해하는 거야?”

“진짜 중요한 질문입니다.”

텔리가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했지만, 알렉시스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루아침에 그들은 서로 간 위치가 180˚로 변하긴 했지만, 그 이전엔 몇십 년 동안 그녀가 텔리에게 명령을 내리던 입장이었다. 그녀가 거의 모든 일에 대책 없이 행동하는 텔리의 특성을 모를 리 없었다. 이번 일에 대해서도 그가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을 것을 잘 알기에 그녀가 더 작전을 짜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최근 언급하시기로는 텔리님의 형제이신 바이베노파시스님도 이 지구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응. 그것도 한국에 있어. 이 일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고. 에뮤니우스 놈의 기억에서 최근 사신교 놈들과 대화한 부분을 읽어냈지. 그런데 그건 왜?”

“제가 예전에 역사를 배울 때, 텔리님과 형님은 베토케로우스와 함께 맞서 싸우시지 않았습니까? 그럼 지금도 같이 힘을 모으실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뭐? 누구랑 손을 잡으라고?”

텔리는 기가 찬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몇 천 년 전에 이 지구로 온 이유도 다 그 빌어먹을 놈 때문인데. 내가 그동안 고생한 거 어떻게 하고. 처음에는 나도 그놈과 감옥에 갇혀 있었단 말이야. 겨우 신들에게 그 고생을 인정받아서 자유를 얻어서 나왔더니. 이젠 그놈이 나도 모르게 감옥에서 빠져나와서 사신교니 푸라 글로리아니 뭐니 하면서 이상한 음모나 꾸며대고 있는데! 누구더러 누구와 힘을 합치라는 거야? 미쳤어?”

“그럼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잠깐만이라도 그와 손을 잡는 게 유리하지 않을까요?”

텔리는 머리를 격하게 흔들었다.

“아니. 아니. 절대로 아니야. 그놈은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 혹시 그 녀석이 현재 육체를 가지고 있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말만 파괴의 신이지 길거리의 도둑고양이보다도 못한 거야.”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디레이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요? 만약 바이베노파시스가 새로운 육체를 얻었다면요?”

그 말을 듣고 텔리와 알렉시스는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라볼타가 서있었다.

“뭐야? 이디레이아. 넌 어떻게 여기에 들어왔냐? 아까 우리가 통로로 들어갈 때넌 거기 없었잖아.”

“난 내가 힘을 나눠준 사람들이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그 사람의 몸을 빌릴 수 있습니다. 물론 검은 방만 빼고요. 실험해 본 결과, 여기는 가능하네요.”

텔리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이디레이아, 네가 어디 있건 난 상관하지 않아. 관심도 없어. 그리고 네가 틀렸어. 바이베노파시스는 다른 육체로 부활할 수 없어.”

“아니 왜요? 호호호.”

“그놈은 너무 무식하니까. 그런 녀석이 무슨 기술이 있어서 다른 사람의 몸을 취하겠어?”

텔리의 말에 라볼타의 몸을 빌린 이디레이아는 슬쩍 웃으면서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요.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어떻게 하겠냐고요?”

“못한다고.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어. 왜냐면 바이는 그 정도 지능이 없어. 너희들이 몰라서 그러는데, 바이는 우리보다 세 배 더 강한 특별한 육체가 필요해. 그렇지 않고서는 그가 내뿜는 무엇이든지 폭발시키고 파괴해버리는 에너지를 감당할 수가 없어. 이 지구에서는 그런 힘을 버틸만한 육체를 구할 수 없다니까.”

텔리의 대답을 듣고 이디레이아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물었다.

“그래요? 그러면 그가 어디서 그런 육체를 구했을까요? 난 분명히 봤는데. 피와 살이 있는 육체를 가진 파괴신 바이베노파시스를 말이에요.”

텔리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허! 어이가 없네. 이디레이아, 무슨 헛소리야! 그가 자기에게 어울리는 육체를 얻으려면 처음 육체가 만들어진 검은 방밖에는 방법이 없을 텐데. 어? 잠깐만..... 검은 방이라고? 내가 지금 분명 검은 방이라고 했지? 아, 그렇다면!”

텔리는 방금 자기가 아무 생각 없이 말해놓고 뭔가 깨달은 게 있는지 눈을 굴리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디레이아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