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부. 만월의 밤 - 69 화
만월의 밤 – 69
베토케로우스는 붉은 눈을 번뜩이며 에뮤니우스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에뮤니우스는 그의 압도적인 기세에 눌려 저절로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돌렸다.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베토케로우스는 입을 열었다. 아까보다는 안정되었지만, 힘에 부친 듯 여전히 거친 호흡이었다.
“도대체 너처럼 간사한 녀석에게서 뭘 본 것이었을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큰 뱀의 신수, 오포코톤 말이다. 그가 도대체 너 같은 놈에게 무슨 가능성을 봤던 것일지 잠시 생각해봤다.”
“오포코톤님! 주인님은 오포코톤님을 아십니까?”
“쿠쿠쿠... 그래. 알다마다. 네놈이 방금 내게 허튼짓을 하려고 할 때 확신했다. 그런데 지금 네 모습을 보니 완전히 각성한 게 아니구나. 네 안의 오포코톤은 어찌 되었느냐?”
에뮤니우스는 이전에 숙소에서 텔리와 건수가 자신을 습격했을 때 벌어졌던 일을 떠올렸다.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때 일만 떠올리면 어깨의 상처가 쑤셔오는 것이었다.
“그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전 혼자 숙소에 있었는데 텔리와 케르케로우스님의 사제가 쳐들어와서는 제 몸 안에 계시던 오포코톤님을 제거해버렸습니다.”
“뭐라고? 텔로토마, 그놈이 감히!”
베토케로우스가 미간을 찡그리며 큰 소리로 성을 냈다.
“사실 전 그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때 텔리놈이 제게 오지 않았다면, 그래서 제 안에 계시던 오포코톤님이 각성에 성공하셨으면 전 어떻게 되는 것이었습니까?”
“흥!”
베토케로우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코웃음을 쳤다.
“글쎄다. 아마 그랬다면 넌 역사에 남을 인물이 되었겠지. 쿠쿠쿠.”
“....역사에 남을 인물이 되었을 수도 있다······? 마치 과거 인물의 일처럼 말씀하시는군요. 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말씀해주십시오. 오포코톤님은 도대체 어떤 신수이십니까? 전 예전에 그분을 만났었던 어떤 기억도 없는데, 어떻게 그분이 제 몸 안에 들어와 계셨던 겁니까?”
베토케로우스는 컴컴한 골짜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실패한 일. 지금은 그것에 대해 더 말해주고 싶지 않다. 다만 한 가지, 난 네게 기대를 걸고 있었다. 지금 보니 넌 오포코톤의 부활을 원하지 않았던 것 같구나. 뭐, 이젠 더 이상 상관없는 일이다. 네 몸 속에 있었던 오포코톤처럼 나 또한 곧 죽을 운명이니 말이다... 쿠쿠쿠. 텔리놈에게 완전히 당해버렸다. 설마 그놈이 죽음의 신의 힘까지도 빌릴 수 있었을 줄이야. 하지만, 내가 죽어야 한다면 난 살육의 신과 함께 죽을 것이다. 자, 어서 가자!”
“네? 어딜 말씀이십니까?”
베토케로우스는 보고 있던 어두운 골짜기 저편을 가리키며 고갯짓했다.
“저 너머 위로 올라가면 검은 문이 있을 것이다. 아까 카베쿠스와 네가 가려던 곳이 아니냐.”
“아니.... 전 사실 지금은 좀...... 주인님께서 먼저 가시고 전 뒤에 따라가면 안 되겠습니까?”
에뮤니우스는 텔리의 무서움을 너무나 잘 알게 되어버려서 그의 발걸음이 향한 곳으로 가기가 영 꺼림칙했다. 게다가 현재의 베토케로우스는 무적을 자랑하던 전설의 괴수의 모습과는 영 거리가 멀지 않은가. 괜히 이 신수와 동행해 봤자, 텔리에게 걸리면 자기들은 한 주먹거리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에이, 젠장. 이 녀석이 뭐가 전설의 괴수냐. 차라리 가능하기라도 하다면, 이놈을 버리고 텔리, 그 원수 놈에게 붙어서 살려달라고 빌고 싶은 심정이구먼!’
에뮤니우스가 자꾸 미적거리는 모습을 본 베토케로우스는 큰 입을 쩌억 벌리더니 일갈했다.
“컹! 내가 분명히 말했지! 더 이상 허튼짓을 하면 살려두지 않겠다고!”
“히익!”
“간사한 놈! 잔말 말고 따라와라. 네게 오포코톤의 힘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그것도 부족하지만 네가 가진 힘도 내겐 도움이 된다.”
“예. 예. 그럼요. 주인님을 따르겠습니다..... 예.”
에뮤니우스는 베토케로우스더러 ‘차라리 포기하고 빨리 죽어버리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속으로만 깊은 한숨을 쉬고 억지로 웃는 얼굴을 하며 죽어가는 검은 괴수를 따라갔다.
* * *
산길을 걷고 있는 텔리는 몇 m를 가다가 멈추고 생각하고 또 가다가 멈춰 생각하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거 기분이 영 찜찜해. 꼭 가스 불에 냄비를 올려놓고 외출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이야...... 키쥬아의 환영 말대로 베토케로우스 놈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 놨어야 했나? 아냐아냐아냐. 어차피 꼼짝없이 그 자리에서 죽을 놈인데, 뭐하러 그놈이 죽을 때까지 옆에서 기다리면서 그 꼴을 지켜보나. 그건 죽어가는 놈에게 고통을 주며 즐기는 키쥬아나 할 짓이지. 그럴 바에야 검은 문 앞에 모여있는 케르케로우스와 조무래기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러 가는 게 낫지. 아냐아냐. 사실 지금 와서 검은 방이 어떤지 그런 것 따위 내가 알 게 뭐야. 그걸 알아봐달라고 의뢰했던 쥬니아는 이미 죽어버렸잖아? 그 계집애, 그렇게 세상을 떠날 거였으면 차라리 약속했던 돈이나 다 주고 갈 것이지. 쩝. 그나저나 열려있다는 검은 문의 위치가 어디야? 다 어디 있는 거지?”
텔리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가 능력을 사용하자 이마에서 하얀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나눠준 힘을 가지고 있는 황광식과 알렉시스의 위치를 쉽게 찾아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그의 힘의 흔적을 추적한 것이었다.
“저 너머에 함께 모여있군그래. 모두 무사하구만. 으으음.... 아무래도 난 영 찝찝해서 다시 베토케로우스에게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그놈을 심문해서 바이와 키쥬아가 그놈과 무슨 일을 꾸미고 있었는지 알아볼 수 있었던 거였어. 순순히 말하지 않는다면, 뭐 어차피 꼼짝없이 죽을 놈인데 그놈의 기억이라도 통째로 확 다 읽어버리면 되었잖아. 그래, 다시 돌아가자. 그놈과 바이, 그리고 키쥬아까지 그 세 년놈들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겠어!”
텔리가 정신병자 같은 긴 독백을 마치고 다시 베토케로우스를 쓰러뜨렸던 계곡 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려고 하던 그때였다.
‘콰아아아앙!’
어두운 숲속에서 굉음과 함께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그는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가 실눈을 뜨면서 꽥하고 소리 질렀다.
“어억! 뭐... 뭐야! 저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텔리는 서둘러 앞으로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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