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부. 만월의 밤 - 34 화
만월의 밤 – 34
데디쿠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눈동자가 초조함에 흔들리고 있었다.
“이사우라님. 히메이오스 얘기의 요점은 우리가 한시라도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 있었던 세월이 벌써 18 년입니다. 그동안 고향에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지 모릅니다.”
이사우라는 자기도 마음이 초조해져서 신경질을 냈다.
“아니, 히메이오스 넌 왜 그런 얘기를 이제야 하는 거야? 그동안 얘기 안 하고 뭐 했어?”
“워낙 제가 어렸을 때 있었던 일이라 전혀 기억하지 못하다가 갑자기 생각났어요. 그리고 방금 이사우라님도 그게 어디 말이나 되는 얘기냐며 절 헛소리꾼 취급하셨듯이, 그런 걸 동료들한테 말하면 뭣합니까? 절 바보라고 놀릴 텐데요. 게다가 제가 잘못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이사우라가 바닥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어서 릴리카님께 알려드려야지.....”
그러자 삼총사가 깜짝 놀라며 일제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릴리카님께...... 알려드린다니요.....?”
“아...!”
이사우라는 그제야 자기 잘못을 깨달았는지 다시 자리에 앉으며 손바닥을 앞으로 뻗으며 사과했다.
“미안. 미안. 내가 그녀에게 뭐든지 보고하는 게 오랜 습관이 되어서 말이야.”
“그래도 그렇지. 내일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는데 그러시면 저흰 얼마나 놀라겠습니까! 깜짝 놀랐잖아요.”
붉은 수염의 헨리가 마치 호통치듯이 그녀에게 항의했다. 데디쿠스는 그에게 그만하라고 손짓하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이사우라님, 저흰 내일 일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조금만 더 신중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게다가 조금 전 히메이오스에게 들은 얘기까지 사실이라고 하면 내일 일은 반드시 성공시켜야 해.”
히메이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배신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인생을 송두리째 도둑맞을 수 있는 일인데요.”
“그래도.... 난 처벌을 면하기 어려울 거야. 일을 성공시켜도 말이지. 너희들과 다른 병사들은 엘리시움으로 돌아간 후 다른 신들을 섬길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아마도... 도망자의 삶을 살겠지.”
이사우라의 말에 나머지 세 명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들의 능력만으로는 감히 릴리카를 칠 수 없으므로, 그나마 어느 정도 불새의 축복을 받은 이사우라만이 그들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것이었다. 다만 그녀는 그런 중요한 일을 담당하고도 거사가 성공한 후에 안전한 삶을 보장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녀 말대로 불새군의 적이 되어 늘 도피를 염두하고 살아야 할 수도 있다. 세 명은 그런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기에 그녀에게 큰 빚을 지게 된 것이었다. 그들이 잠시 침묵을 지키는 중에 붉은 수염의 헨리가 제일 먼저 어색한 분위기를 깨며 말했다.
“거... 걱정마십시오! 제가 이사우라님을 안전하게 보호하겠습니다. 왜... 왜 이... 이사우라님만 도망을 다니셔야 합니까! 저... 저도 곁에서 돕겠습니다.”
“뭐? 이 자식 봐라?”
히메이오스와 데디쿠스는 헨리의 말을 듣고 잠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둘은 거의 동시에 헨리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인마, 너가 뭔데 이사우라님 곁에서 보좌한다는 거야? 갑자기 의리의 사나이 역할을 담당하려고 드네!”
“그러니까! 이 바보 자식이 자기가 뭐라도 된 것처럼 말이야! 이사우라님, 이 바보 뚱보놈을 믿으시렵니까? 차라리 제가 더 믿음직스럽습니다.”
이사우라는 삼총사가 우스꽝스럽게 치고 받는 것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분위기가 조금 환기되자 그녀는 그들에게 마지막 질문 한 가지를 던졌다.
“난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데, 바로 검은 방의 늑대가 우리의 계획을 아직 모르고 있다는 거야. 너희들 계획은 내가 릴리카를 쓰러트리자마자 늑대 신수에게 바로 항복하겠다는 거잖아. 그런데 만약 그 타이밍이 안 맞는다면 어떡할 거냐고. 그가 멈추지 않고 우리를 공격한다면 어떡할 거야? 릴리카도 없는데 우리 전사들은 그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 거야. 전에도 말했지만 너희의 계획은 너무 허술해.”
“그건.....”
삼총사는 대답할 수 없었다. 구석에서 가만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건수가 입을 열었다.
“그건 잘못 알고 계신 거예요. 케르케로우스님은 여러분들을 해칠 분이 아니에요.”
“아이, 깜짝이야.”
갑자기 건수가 말을 해서 놀랐었는지 손을 가슴에 대면서 그를 째려봤다.
“야, 넌 왜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말을 하는 거야! 깜짝 놀랐네.”
“그분은 처음부터 아예 누구와도 싸울 분이 아니라구요. 여러분을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건 제가 장담할 수 있어요.”
히메이오스가 건수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건 맞아요. 역사상 케르케로우스는 한 번도 전쟁을 일으킨 적이 없었어요.”
“영토의 면적도 작은 편이지. 아니, 어쩌면 제일 작을걸?”
“그 정도면 아예 욕심이란 게 없는 거 아니야? 생각해보니 그런 신은 없었어. 전부 욕심과 야망이 가득했지.”
삼총사가 케르케로우스에 대해 미담만 늘어놓자 이사우라는 손으로 방바닥을 치면서 그들의 대화를 중지시켰다.
“잠깐만. 잠깐만. 너희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그렇게 무르기만 한 신이 좋은 게 아니야. 자기 혼자 고고하게 군다고 다 좋은 건 줄 알아? 그가 비교적 선하고 욕심이 없다는 건 나도 인정해. 하지만 그런 그의 성품 때문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피해를 보았어? 적들의 쉬운 먹이가 되었잖아.”
히메이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늑대 신전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우리 불새군에게 몰살당했죠.”
이사우라는 히메이오스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째려봤다.
“꼭 그렇게 우리를 거기에 대입했어야만 했는지 모르겠지만.... 히메이오스의 말이 완전히 틀리진 않아. 입장을 바꿔서 만약 그런 일이 우리에게 벌어졌었다고 생각해봐. 에피로제님은 어떻게 하셨겠는지. 아마 당장 큰 날개를 펼치시고 군대를 이끌어서 적들을 섬멸하셨을 거야.”
히메이오스는 잠시도 생각할 시간을 갖지도 않고 바로 대꾸했다.
“어쨌거나 맞서 싸울 의지도 없는 상대였는데 너무 심하게 괴롭힌 건 아니구요? 전 그때 늑대 신전을 공격하는 부대에 있지 않아서 자세한 사항은 모르지만, 나중에 그 일을 전해 듣고 쭉 그렇게 생각했어요. 릴리카가 너무 했다고요. 심지어 항복하는 사람들도 다 죽였다면서요?”
“이놈! 히메이오스! 이제 완전히 불새군으로부터 등을 돌렸구나!”
이사우라의 언성일 높아지면서 다시 분위기가 험악해지려고 하자 데디쿠스는 또 한 번 손을 뻗어서 히메이오스에게 말조심을 하라고 타일렀다.
“이사우라님이 말씀하신 것은 잘 이해했습니다. 거사를 치루시기 전에 기회를 봐서 어떻게든 늑대 사제가 늑대 신수에게 이 쪽의 뜻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계획을 실행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사우라는 완전히 불새군을 배신한 히메이오스에게 화가 났는지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그때, 그들을 지켜보던 건수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케르케로우스님께 미리 알려드릴 방법이 하나 있어요.”
불새군의 네 전사는 일제히 건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건수는 턱으로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창문의 커튼을 걷어주세요. 오늘 밤에도 보름달에 가까운 달이 떴겠지요? 만약 그렇다면 가능할 지도 모릅니다.”
데디쿠스가 일어나 창문에 드리워진 커튼을 걷었다. 그러자 밤하늘에 뜬 둥근 달이 그의 눈동자에 들어왔다.
“네. 저런 모양의 달이라면... 될 것 같아요.”
건수는 일어나 창가로 가까이 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창밖의 달을 쳐다보았다. 몇 분이 지나자 그는 몸에서 점차 힘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몸이 힘없이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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