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 예언자들 - 99 화
예언자들 – 99
강 소장은 미스터 황에게 말을 걸며 다가왔다.
“할머니를 찾고 있는데, 혹시 할머니께서 아직 이 집에 계시나?”
“안녕하세요. 오늘은 혼자 오셨네요.”
“어. 아니, 그게.....”
강 소장은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어제 일이 좀 생겼었어....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할머니를 뵈러 온 거야. 그리고 나 혼자 온건 아니고 조금 있다가 또 누가 올 거야. 혹시 할머니, 여기 계시나?”
“네, 할머니는 안에 계세요.”
강 소장은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집안에 발을 들이자마자 마루에 서 있는 할머니를 보았다. 혹시 그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는 흠칫 놀라며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뭘 그리 놀래? 네가 올 줄 알고 있었어. 들어와 앉아.”
강 소장은 자기가 올 줄 알았다는 할머니의 말을 듣자 속으로 크게 당황했지만, 애써 그 기색을 숨기며 거실에 들어섰다.
“저, 제가 여기 온 목적은.....”
“잠깐만.”
앉자마자 할머니를 찾아 온 목적을 얘기하려는 강 소장을 할머니가 막았다.
“무슨 얘기건 간에 너 뒤에 따라 들어오는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
“아니, 그걸 어떻게......”
강 소장은 이번에는 놀라는 기색을 억지로 감추기 어려웠다. 자기 혼자 집에 들어왔는데 다른 사람과 온 것을 눈 먼 할머니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낄낄. 아는 수가 다 있다. 옳지, 너랑 함께 온 녀석이 밖에서 담배를 다 피우고 마당에 들어왔구나. 이제 들어오겠군. 넌 일어나서 문 열어줘라.”
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의 말대로 딱 시간에 맞춰 자기의 일행이 찾아오자 강 소장은 기가 막혔다. 그는 넋나간 표정으로 문을 열면서 혼잣말을 했다.
“아니, 어떻게 알았지? 허, 참.”
함께 온 사람은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문을 열어준 강 소장에게 물었다.
“아니, 뭐가 어떻게 뭐? 이 안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요. 잠깐 할머니와 얘기를 하다가 신기한 말씀을 들어서요.”
“신기한 얘기? 무슨 얘기?”
강 소장은 그와 같이 온 남자가 자기보다 나이도 한참 어린데 슬쩍 말을 놓는 게 영 불편했다. 그래서 대놓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냥 그런 얘기가 있어요. 여기 와서 앉으세요.”
강 소장과 함께 온 남자는 자리에 앉으면서 할머니에게도 영 예의없게 굴었다.
“아, 여기 이 할매가 그 점쟁이구만.”
“뭐?”
할머니 역시 그 말을 듣고 순간 인상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그는 허허 웃으면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전 강원도 경찰청에서 온.....”
할머니는 하얗게 변한 눈동자로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의 말을 끊었다.
“어. 나도 알아. 너도 여기 강 소장처럼 경찰이구나.”
“뭐, 그거야 점쟁이가 아니더라도 분위기만 보면 그 정도는 알 수 있지 않나? 허허허. 듣자하니 다른 무당과는 달리 상당히 용하다고 하시던데, 온 김에 내 운수나 좀 알고 갈까? 급하게 오느라 복채는 준비하지 못했지만.”
“글쎄다, 뭘 알고 있어도 네가 별로 듣고 싶어 할 것 같진 않구나.”
“뭐요? 허허허.”
한방 먹은 형사는 조금 겸연쩍어 하면서 또 허허허 웃으며 넘겼다.
“할매가 기가 꽤 세시네. 무당들은 다 기가 세다며. 허허허. 그럼 다음에 들어봅시다. 오늘은 더 중요한 일로 왔으니까.”
“흥! 다음에 날 만날 일이 있을까 모르겠다.”
할머니는 예의없는 형사의 태도에 단단히 화가 났는 듯 고개를 홱 돌리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분위기가 안 좋아지자 옆에 있던 강 소장이 나섰다.
“할머니, 어제..... 여러 가지 일이 좀 있었어요. 먼저 어제 저와 같이 여기 왔던 임 순경이 말입니다. 저랑 집에 가다가 큰일을 당했는데 지금 행방불명입니다.”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대충 들었어. 그래도 네가 먼저 얘기를 꺼냈으니 한 번 자세히 말해 봐.”
“그게 참...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 일이라.....”
그렇게 말하면서 강 소장은 옆에 앉은 형사의 얼굴을 바라봤다. 형사는 눈을 가늘게 뜨고 강 소장의 다음 얘기를 기다렸다.
* * *
강 소장에따르면 지난밤에 일어난 일은 이랬다.
이미 늦을 대로 늦은 시각, 강 소장과 임 순경은 강원도 아저씨의 집을 떠나 함께 차를 타고 임 순경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임 순경은 아저씨의 집을 나설 때부터 어떤 일로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아서 강 소장에게 투덜거리고 있었다.
“아니, 고생은 제가 했잖아요. 도깨비인지 신선인지를 만나서 몇 번이나 기절까지 하고요. 어디 그뿐이에요? 팔이랑 손에서 불까지 쏘는 괴상한 외국 여자까지 봤어요. 그 많은 일을 겪은 건 전데, 어떻게 그 집 아저씨 딸을 만나보라는 얘기가 왜 소장님 셋째 아드님한테 갑니까?”
강 소장은 조수석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대답했다.
“야, 나도 몰라. 너도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알겠지만 그 할머니가 중매에 나선 거잖아. 내가 그 집 아저씨한테 시집 안간 딸이 있었는지 알기나 했었냐? 그 할머니가 날 딱 보자마자 인연이라고 하는데 그걸..... 하, 나 원 참. 별일이 다 있네, 진짜. 아무튼 난 첨부터 물어보지도 않은 일이야.”
임 순경은 한숨을 쉬면서 강 소장을 쳐다보았다.
“아니, 그럼 아드님한테 그 집 막내딸을 만나보라고 하실 거예요?”
“아니, 뭐.... 너도 그 때 병원에서 할머니한테서 들었잖아. 우리 애가 지금 만나는 여자가 영 이상하다고. 애까지 딸렸는데 우리 아들 자식도 아닌데 속이고 있다잖아. 우리 아들과 결혼하면 그 여자가 우리 집안 말아먹는다는데, 그 여자랑 완전히 끝내게 하려면 이번이 좋은 기회일 수도 있지. 그런데 왜 만나보면 안 돼?”
임 순경은 강 소장의 말을 듣고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럼 저는요? 우리 집에서도 저더러 이젠 진짜 색시를 데려와야 한다고 얼마나 쪼는데욧!”
“내 얘기도 아니고 할머니가 알아서 중매를 서주시는 건데 왜 너가 그리 야단이냐. 너야 또 다른 데서 인연을 만나겠지.”
“와아아.... 너무하십니다, 소장님! 저도 급해요. 오늘 애쓴 것도 저고요. 상을 받는다고 하면 제가 받아야지, 이 일에 관련도 없고 저 멀리 서울에 살고 있는 소장님 셋째 아들이 왜 상을 받냔 말이에요.”
그 때였다. 강 소장이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야야야! 앞에! 앞에 봐봐!”
임 순경이 고개를 앞으로 돌리자 도로 위에 큰 바위 같은 게 있는 것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우왓! 저거 뭐야!”
임 순경은 온 힘을 다해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 차 안에 두 사람의 몸이 순간 앞으로 튕겨졌다가 돌아왔다. 임 순경은 순간 너무 놀라서 몸이 돌처럼 경직되었다.
“헉헉헉. 와.... 장가는커녕 저승 갈 뻔 했네.”
강 소장이 차문을 열고 나갔다.
“야, 임 순경. 저거 뭔데 찻길위에 저렇게 있는 거냐? 저거 뭐야?”
임 순경도 문을 열고 나왔다.
“글쎄요. 제가 한 번 볼게요.”
그는 도로 위에 놓여 있는 검고 큰 물체가 무엇인지 자세히 보려고 다가갔다. 가까이에서 그 물체를 본 후 뒤를 돌아 외쳤다.
“이건 들개인데요? 몇 달 전 산불 나던 날 죽어 있던 그 검은 색 들개들이랑 비슷하게 생겼어요! 그런데 죽어 있어요! 차에 치었나 봐요.”
강 소장은 몇 달 전 산불이 났던 장소에 널브러져 있던 검은 들개들의 사체들이 생각났다.
“그럼 빨리 치워봐. 왜 죽어도 하필이면 도로 위에서 죽어 있는 거야. 에이, 오늘 영 운수 사나운 날이네.”
강 소장이 찝찝한 마음에 담배나 한 대 피우려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서 불을 붙이고 있는데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아아악!”
불을 붙이려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강 소장이 고개를 들자 임 순경이 방금 전까지 있던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사람도 도로 위에 올라와 있던 검은 물체도 사라져 있었다. 그는 임 순경이 있던 곳에 뛰어가 봤지만 누군가가 방금 흘린 핏자국만 있을 뿐, 그 어디에서도 임 순경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임 순경! 임 순경! 야, 어딨어? 어..... 어딨어?”
“으아아..... 으아아아아....”
그는 소리쳐 불러봤지만 멀어져 가는 임 순경의 비명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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