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5 부. 만월의 밤 - 38 화

만월의 밤 – 38

다른 불새군 병사들이 모두 나가고 없는 방에 삼총사만이 건수 주위에 있었다. 건수는 낮고 침착한 목소리로 그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제가 어젯밤에 쓰러졌던 것은 검은 방에 들어가기 위해 그랬던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삼총사는 몹시 놀랐다.

“뭐? 검은 방에 들어가기 위해 그랬다고?”

“네.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어서 정신만 검은 방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방법으로 검은 방에 가서 케르케로우스님을 뵙고 왔어요.”

“세상에......”

셋 중에 히메이오스가 가장 크게 놀라는 듯했다. 그는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의 두 눈이 호기심에 반짝거렸다.

“케르케로우스님을 뵙고 여러분의 뜻과 계획을 전부 전했습니다.”

“그래서? 신수는 뭐라고 했나?”

데디쿠스는 긴장했는지 자꾸 입술에 침을 묻혔다.

“케르케로우스님은 여러분들이 엘리시움으로 갈 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됐어!”

“야아아아아!”

삼총사는 서로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그들은 서로 얼싸안으면서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데디쿠스는 건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마워했다.

“케르케로우스의 사제, 정말 고마워. 아직 계획이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네 덕분에 우린 크게 용기를 얻게 되었어.”

“데디쿠스, 너무 걱정하지마. 이미 계획은 반쯤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잖아. 조금은 기뻐해도 돼. 하하하.”

데디쿠스는 많이 흥분해서 긴장이 조금 풀어진 히메이오스의 어깨를 툭 치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니야. 릴리카를 그렇게 만만하게 보지 마. 우리에겐 없는 불새의 은총을 받은 여자라고. 여기서 그녀를 상대할 수 있는 건 알렉시스 정도밖엔 없어.”

“실은요. 케르케로우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굳이 릴리카를 죽이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엘리시움으로 갈 수 있도록 해주신다고 하셨어요. 또, 여러분들뿐만 아니라 불새군 전체를 검은 방을 통과하게 해주신다고..... 당신을 더는 귀찮게만 하지 않는다는 조건이라면 말이에요.”

삼총사는 방금 들은 건수의 말을 잘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물었다.

“뭐? 우리뿐만 아니라 불새군 전체를 다 통과하게 검은 방을 열어주겠다고?”

“예. 여러분더러 왜 굳이 릴리카를 죽이려고 하냐고 하시던데요?”

그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붉은 수염의 헨리가 심각한 얼굴로 셋 사이의 침묵을 깼다.

“뭐야? 케르케로우스의 환심을 얻기 위해 릴리카를 죽이려고 했는데, 필요 없다고 하다니..... 그는 받고 싶은 생각도 없는데 우리끼리 열심히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건가?”

데디쿠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냐. 우린 여전히 이 계획을 완수해야 해. 만약 이 이야기를 릴리카에게 전한다고 해도 그녀가 이렇게 좋은 기회를 잡을 것 같아? 그녀의 머릿속엔 오직 18 년 전에 에피로제님으로부터 받은 임무를 완수하려는 생각 말고는 없을 거야. 그녀를 죽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우린 엘리시움에 갈 수 없다고.”

히메이오스도 데디쿠스의 의견에 힘을 보탰다.

“데디쿠스의 말이 맞아. 케르케로우스가 그랬잖아. 자신을 귀찮게 하지만 않으면 검은 방을 통과시켜주겠다고. 하지만 릴리카는 케르케로우스를 해치는 임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녀가 죽어야 이 일이 끝나.”

“알겠어. 그게 릴리카의 운명이라는 거군.”

붉은 수염의 헨리도 고개를 끄덕이며 두 친구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건수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난 케르케로우스가 우리에게 그렇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잘 이해 가지 않는데? 어떻게 우릴 용서할 수 있냔 말이야? 우리가 그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한 일이 있는데.... 우린 그의 철천지 원수잖아?”

“글쎄요. 그건 그분을 한 번 만나보시면 더 이해하시기 쉬우실 거예요. 원래 그런 식이시더라구요.”

“난 아무래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말이야. 자기 사람들을 해친 우리가 여전히 그 목에 칼끝을 겨누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를 용서한다는 거냐고. 혹시 이거 늑대 신수가 우리를 함정에 빠트리려는 것은 아니겠지?”

“함정이라뇨? 그건 절대 아니에요! 케르케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붉은 수염의 헨리는 케르케로우스와 건수를 의심하는 것이었다. 건수는 목소리를 높이며 강하게 부정했다.

그때였다. 데디쿠스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데디쿠스는 핸드폰을 품속에서 빼내더니 이사우라의 전화를 받았다.

“너희들! 아직도 내려오지 않고 뭐하고 있는 거야! 릴리카님께서 이미 차에 타고 계시는데!”

“죄송합니다. 곧 내려가겠습니다.”

데디쿠스는 이사우라에게 사과한 후 핸드폰을 다시 품속에 넣으면서 말했다.

“이크, 이사우라님이 부르신다. 어서 출발하자.”

삼총사는 건수를 데리고 급히 방을 나섰다.

안타까운 일은, 건수가 그들에게 텔리와 알렉시스 등이 그와 함께 있었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런 든든한 아군이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았다면 좀 더 용기와 희망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는 에뮤니우스에 대한 얘기도 하는 것을 깜박한 것 같은데, 그것도 큰 실수였다. 이제 에뮤니우스는 다른 평범한 엘리시움인들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힘을 소유하고 있는데, 그는 충분히 이사우라와 삼총사가 지금부터 하려는 일에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 * *

릴리카, 이사우라와 함께 차에 탄 에뮤니우스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그의 얼굴에선 비릿한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릴리카가 그에게 물었다.

“즐거워 보이네, 에뮤니우스?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거지?”

“큭큭큭. 제가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될지도 모르잖습니까?”

“호호호. 그래. 에뮤니우스, 당신도 이제 때가 다한 모양이군. 고향을 그리워하니 말이야. 1000 년의 인생이라..... 오래 살긴 했어.”

“그렇습니다. 긴 세월이었지요. 하지만 이미 1000 년을 살았어도 전 부족함을 느낍니다. 더 오래 살고 싶군요.”

그 말을 듣고 릴리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뭐라고? 1000 년이 부족해? 지구의 사람들이 들으면 모두 뒤로 넘어지겠구만. 호호호.”

에뮤니우스는 어깨를 들썩였다.

“그래도 욕심이 생기는 걸 어떡합니까? 제가 좀 더 살게 된다면 이젠 정말 재밌게 살고 싶습니다. 예전의 저를 버리고 완전히 새롭게.....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고 싶군요. 큭큭큭.”

“뭐, 좋을 대로. 일단 네게 엘리시움에 데려가겠다고 하는 약속은 지킬 테니 그 후의 삶은 알아서 살아보든가.”

에뮤니우스는 싱글벙글거리면서 창밖을 내다보며 말을 이었다.

“네. 새로운 삶을 살 겁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즐거운 이유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그토록 미워하는 자가 죽게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뭐라고? 이놈! 모시던 신수를 배신해 놓고 그게 어디 할 말이냐!”

릴리카가 언성을 높이며 에뮤니우스에게 짜증 냈다. 그러자 앞 좌석에 탄 이사우라가 고개를 돌리며 에뮤니우스를 꾸짖었다.

“에뮤니우스,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할 거면 그만 입을 다물고 말을 아껴. 릴리카님은 뼛속까지 군인이신 분이다. 곧 중요한 작전을 지휘하실 분의 심경을 어지럽히지 마라.”

창밖을 보고 있던 에뮤니우스는 다시 시선을 릴리카에게로 돌리며 사과하는 척했다.

“용서하십시오. 제가 너무 까불었습니다. 부디 저를 포함한 모두를 위해 오늘 작전이 성공적이길 바랍니다. 진심입니다.”

“흥!”

릴리카는 에뮤니우스와 시선이 마주치자 속이 역겨워져서 고개를 돌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