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 예언자들 - 73 화
예언자들 – 73
건수가 알렉시스를 담벼락으로 던진 뒤 얼마 안 지나 검은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그의 생각이 맞는다면 케르케로우스는 죽지 않는 몸을 가진 신수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다시 부활할 것이다.
건수는 케르케로우스를 위기에서 구해냈지만 정작 본인은 알렉시스를 살해한 일로 너무 큰 충격에 빠졌다. 18 년 전 그는 공사장에서 그를 괴롭히고 생명을 위협했던 아이들을 마구 패줬던 일이 있었다. 그 땐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그랬던 것이지만 지금은 분명히 제정신으로 사람을 살해한 것이었다. 건수는 덜덜 떨면서 텔리에게 울부짖었다.
“테... 텔리님! 이거 어떡해요. 제가 알렉시스를 죽였어요! 내가 사람을 죽이다니!”
텔리가 갑자기 그를 무서운 눈으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러게. 이 정신 나간 녀석아. 사람을 벽으로 던지면 어떡하겠다는 거냐! 세상에! 네 놈이 알렉시스를.... 알렉시스를......!”
텔리는 건수에게 다가가서 그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기절시키면 어떡하겠다는 거냐?”
눈물을 흘리던 건수는 자기가 방금 무슨 말을 들은 건지 귀를 의심하면서 다시 텔리에게 되물었다.
“기... 기절이요? 방금 코에 손을 댔더니 수... 숨을 안 쉬던데요!”
“훗훗훗. 이 멍청아!”
텔리는 건수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공중에 띄운 채 그의 얼굴을 알렉시스의 얼굴 가까이에 갖다 댔다.
“자, 어때? 숨결이 느껴지지?”
“아... 아니, 이럴 수가. 방금 전엔 분명 코에서 숨을 쉬지 않았었는데...”
텔리는 건수를 다시 땅에 세우고 멱살을 풀었다.
“멍청아. 손가락을 콧구멍에 대야지. 넌 그냥 코에다 댔잖아. 코 아래에 대야지. 코 아래. 코 위에 대지 말고.”
“아.... 그렇네요. 제가 그런 실수를.....”
“해서, 알렉시스는 살아있어. 다만 이 모습이 완벽하지 않아. 내가 봤을 땐 말이야.”
텔리는 알렉시스가 쓰러진 담장 위에 손을 대고 힘을 집중시켰다.
‘쾅!’
그는 또 한 군데의 담벼락을 허물어버렸다. 그러자 부서진 담의 돌과 흙이 쓰러진 그녀 머리 위로 잔뜩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텔리님, 뭐 하시는 거예요? 살아있다면서요! 그런데 왜 다시 죽이시는 거예요?”
“장례식. 코리안 스타일의 무덤으로 만들어 봤어. 이 거지같은 인간 계집애가 오늘은 이상하게 내 신경을 곤두서게 하더라고. 그래서 제대로 모욕을 주는 거야.”
“네? 모욕이요?”
“그렇지. 사실은 죽이고 싶었는데, 그냥 이 정도로 끝내려고. 내가 얘랑은 인연이 좀 깊어서. 오랫동안 내 상관처럼 모셨는데 차마 죽이지는 못하겠더라고. 아무튼 아까부터 이 계집애가 우습게 구는 꼴을 참느라고 진짜 고생했네. 훗훗훗.”
“산사람을 돌무더기에 묻어놓고 무덤이라니요. 어휴. 그러다 진짜 죽으면 어떡해요.”
건수가 알렉시스 위로 떨어진 돌무더기를 치우려고 하자 텔리가 그의 손등을 때렸다. 손등이 어찌나 아프던지 건수는 손을 잡고 비볐다. 하지만 그의 손등은 이미 부어오르고 있었다.
“치우지 마. 이건 내 작품이야. 작품 넘버는.... 9200인가? 아, 아니다. 9201. 작품명은... 음, 그래. 그게 좋겠다. 건방진 계집의 무덤.”
텔리는 건수를 보고 눈썹을 올리며 ‘낄낄’ 웃었다. 하지만 건수는 그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만, 속으로 한 단어가 떠올려졌다.
‘또라이.....!’
텔리는 웃고 건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계속 서 있었는데 임 순경이 다가와서 건수의 오른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벌벌 떨면서 텔리의 눈치를 보고 건수에게 말했다.
“너... 널 사... 살인 및 기물 파... 파손죄 등으로 긴급 체... 체포한...다!”
건수는 펄쩍 뛰었다.
“살인이라뇨! 이 여자 아직 살아 있어요! 그리고 기물 파손이라뇨?”
“기.. 기물 파... 파손은 담벼락을.... 담벼락을 허물었잖아!”
“아니예요. 심지어 그것도 잘못됐어요. 담벼락을 허문 건 제가 아니라 여기 이 분이라고요!”
건수는 수갑 찬 오른손으로 텔리를 가리켰다. 텔리는 건수가 임 순경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지만 건수의 손목에 채운 수갑을 보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미소 지었다.
“헉!”
임 순경은 그 모습이 너무 무서워서 바로 시선을 건수에게로 돌렸다.
“너 이 자식, 그 때 병원에서 봤을 때도 영 맘에 안 들었어. 그런데 몇 달 지난 뒤 나타나서 이렇게 사고를 치다니, 넌 인마 딱 걸렸어. 너가 나타난 후에 우리 차도 망가지고, 이상한 귀신들린 할머니도 보게 되고, 도깨비도 만나게 되고, 또 이런 끔찍한 살인 사건까지 목격하고... 하여간 네 녀석의 정체를 좀 알아야겠다.”
임 순경은 건수의 왼손에도 수갑을 채우려고 했다.
“와... 아니, 제가 뭘 잘못했다고 그렇게 말씀하세요. 전 정말 아무도 안 죽이고 파손한 것도 없어요!”
건수가 저항하며 오른손을 휘두르자 그의 손에 채운 수갑이 텔리의 뺨을 때렸다. 텔리는 눈을 질끈 감으며 입술을 삐죽 앞으로 뺐다.
“아, 텔리님. 죄송합니다. 전 잘 모르고.....”
그러자 텔리는 눈을 감은 채 자기에게 사과하는 건수에게 말했다.
“아냐아냐아냐. 잘못이 있다면 네 손목에 수갑을 채운 놈이겠지.”
그가 눈을 뜨고 임 순경을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임 순경은 울상을 지었다.
“흐아아아... 제... 제가 때린 게 아닌데요... 여... 여기 얘가 그런 건데요.... 흐아...,”
그는 손가락으로 건수를 가리키며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아, 물론 한국말로. 당연히 텔리가 알아들었을 리가 없다. 텔리는 웃으면서 그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임 순경은 마치 얼음 기둥처럼 몸이 얼어붙었다.
“너 이 자식. 감히 케르케로우스의 사제에게 수갑을 채워?”
텔리는 한 손으로 임 순경의 벨트를 잡더니 그의 몸을 들었다. 공중에 매달린 임 순경은 마치 짐짝처럼 가만히 있었다. 텔리는 그를 땅 바닥에 던져버렸다.
‘쿵.’
“아아악.”
임 순경은 알렉시스를 묻어버린 돌무더기 바로 앞에서 쓰러졌다. 그가 일어나려는데, 그의 앞에 있는 돌무더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돌들의 틈에서 새어나오는 불꽃을 보았다.
‘우두두두두....’
“케르케로우스의 사제놈! 내 기필코 널 죽여 버리겠다.”
알렉시스가 잔뜩 화난 얼굴을 하고 돌무더기를 헤치고 나오고 있었다. 그녀가 힘을 집중시키자 그녀의 팔이 붉은 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다가 곧 거기에 불이 붙었다. 아까 케르케로우스와 싸울 때보다 더 큰 불이었다.
“으아악! 괴.... 괴물! 괴물이다!”
그녀의 발아래에 쓰러져 있던 임 순경은 비명을 지르더니 네 발로 기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 쪽으로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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