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4 부. 예언자들 - 109 화

예언자들 – 109

에뮤니우스가 자기 팔을 또 올린 것은 수갑을 풀어달라는 의미였다. 릴리카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그를 어떻게 할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눈치빠르게 이사우라가 그녀대신 답했다.

“당신 손목의 수갑은 안 풀어줄 겁니다. 에뮤니우스.”

그러자 에뮤니우스는 자신의 팔을 더 높이 올리며 말했다.

“릴리카님, 절 꼭 이렇게 포로로 취급하셔야겠습니까? 전 당신에게 정말 중요한 정보를 드리려고 하는 겁니다.”

옆에 앉아 있던 이사우라가 그의 팔을 강제로 내리면서 다시 핀잔을 주었다.

“에뮤니우스, 정말 이럴 겁니까? 당신이 지금 어떤 입장에 놓였는지 알고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에뮤니우스가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이사우라의 손을 보면서 말했다.

“이사우라, 손에 물기가 많네요. 설마 그게 다 땀인가요? 흐음. 뭣 때문에 그렇게 잔뜩 긴장해 있는 겁니까? 내가 해코지라도 할까봐서요?”

“내가 긴장은 무슨! 쓸데없는 얘기 하지 말아요.”

이사우라는 순간적으로 잡고 있던 그의 팔을 놓으면서 재빨리 바지에 손을 닦았다.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고 에뮤니우스는 입을 삐죽거렸다.

“아아아.... 전 그저 차를 한 잔 하면서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릴리카님께 말씀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그런데 손이 이렇게 묶여있다면 어떻게 차를 마시겠습니까?”

“자꾸 시끄럽게 할 거에요? 무슨 꿍꿍이입니까? 왜 이렇게 릴리카님의 신경을 긁는 겁니까?”

“아니야, 이사우라. 잠깐만.”

릴리카가 다시 에뮤니우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에뮤니우스, 네 말이 맞다. 우린 네 도움이 필요해. 케르케로우스를 죽이더라도 그의 생명의 정수를 취하는 건 지금으로선 너만이 할 수 있는 거지.”

그 말을 듣고 에뮤니우스는 미소를 지었다.

“역시 릴리카님과는 말이 잘 통하는 군요.”

“먼저 네가 원하는 걸 말해봐.”

“으흠. 제가 원하는 건....”

에뮤니우스는 먼저 목소리를 가다듬고 잠시 뜸을 들였다. 옆에 있는 이사우라는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조마조마한 마음을 다스리며 기다렸다.

“여러분들과 마찬 가지로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뿐입니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전 릴리카님을 총력을 다해 돕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함께했던 우리를 배신했던 거지? 자, 에뮤니우스. 한 번 배신한 널 무슨 수로 믿겠냔 말이야?”

“그건 18 년을 함께한 저를 처단하시려고 했던 릴리카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제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을 때 절 제거하시려고 했잖습니까? 우린 모두 다 한 번씩 서로를 속였던 죄인들입니다. 이미 상호간에 신뢰가 없는데 믿고 안 믿고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릴리카는 짜증이 나서 얼굴을 찡그렸다. 그녀가 짜증이 난 이유는 사실 에뮤니우스의 말에 틀린 게 없었기 때문이다. 릴리카 역시 그에게 신의를 지키지 않은 것도 사실이잖은가. 그녀가 그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를 정당하게 심판할 명분이 없었다.

“그래서 넌 어떻게 하고 싶다는 거야? 네 목숨 줄을 쥐고 있는 내가 이 만큼이나 인내하고 내 말을 들어줬으면 본론을 얘기해야 할 것 아니야!”

흥분하기 시작한 릴리와는 대조적으로 에뮤니우스는 더욱 차분한 톤의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제 안전입니다. 그걸 불새군의 대장님의 명예를 걸고 보장해 주십시오. 그럼 전 제가 알고 있는 것을 릴리카님께 다 말씀드리고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제가 가진 정보의 가치는 릴리카님이 생각하신 제 목숨 값보다는 클 것입니다.”

“아우우....”

릴리카가 손으로 뒷목을 쓸어내렸다. 두 사람 사이에 이상한 분위기가 형성되자 가만히 듣고만 있었던 이사우라가 끼어 들었다.

“릴리카님, 이대로 아무렇지 않게 에뮤니우스를 받아들이실 건가요? 그러면 병사들의 사기 문제도 있습니다. 이렇게 이 배신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시면 오랫동안 고생해 온 당신의 부하들이 얼마나 실망...”

“잠깐만.”

릴리카는 손을 들어 이사우라의 말을 막았다.

“넌 조용히 해. 여기서는 내가 곧 군법이다.”

“릴리카님!”

릴리카는 에뮤니우스의 눈을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뮤니우스, 널 사면한다. 그리고 엘리시움에 돌아갈 때까지 네 안전을 보장하겠다.”

“당신의 명예를 걸고 말입니까?”

“그래, 내 명예를 걸겠다.”

에뮤니우스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손을 들며 자신의 손목에 찬 수갑을 릴리카에게 보여주었다.

“아니, 에뮤니우스. 지금은 그 수갑을 풀어줄 수 없어. 알다시피 그것의 열쇠는 아까 그 형사가 가지고 있거든. 이사우라, 적당한 곳을 찾아 차를 세워. 다른 차들도 주차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 에뮤니우스의 정보를 들어야 하니까.”

“예, 알겠습니다.”

이사우라는 마지못해 릴리카의 명령을 따랐다.

릴리카가 에뮤니우스를 용서하고 받아들이자 이사우라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이 심란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오전에 스위트룸에서 데디쿠스와 나눴던 얘기가 계속 맴돌았다.

‘데디쿠스와 다른 부하들은 내가 곧 릴리카를 처리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버리다니. 릴리카는 케르케로우스를 처치하고 그의 정수를 뽑아낸 후의 일은 전혀 계획을 세우고 있지 않아. 그 다음 일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없는 마당에 그들과 내가 엘리시움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검은 방의 주인인 케르케로우스에게 직접 부탁하는 것일 텐데..... 아, 이걸 어쩌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마음은 더욱 더 흔들리는 것이었다.

* * *

강원도 아저씨의 집.

건수와 다른 일행들은 식사를 하며 강원도 아저씨 부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막 식사를 마칠 무렵,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하늘에서 큰 박수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건수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더니. 비도 안 오는데 벼락이 치네.”

그러자 그들 뒤에 있던 할머니가 말했다.

“신령님이 오시고 계시는구나.”

“누가 또 오나요?”

“내가 오늘 손님이 여러 분 있을 거라고 하지 않았더냐. 그 때 산에서 뵈었던 스라소니 신령님이 오시는 구나.”

그녀가 말을 하고 있는데 마당의 공간에 주름이 잡히고 있었다. 그 주름이 잡힌 공간은 잠시 무지개빛으로 변했다가 곧 그곳에 큰 구멍이 열렸다.

“산신령님!”

건수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 질렀다. 모두의 시선이 마당으로 향했다.

구멍을 통해 나온 것은 할머니가 말한 대로 스라소니 산신령이었다. 그는 입에 무언가를 물고 있었는데, 구멍에서 나오자마자 그것을 땅에다 뱉었다.

“인간들이여, 가까이 와서 이걸 좀 보거라.”

건수와 미스터 황이 스라소니 산신령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그는 주둥이로 자기가 방금 뱉은 물체를 가리켰다. 건수와 미스터 황은 물체를 보자 각각 손과 옷소매로 입을 가렸다.

“으으윽... 이건 죽은 검은 늑대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