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부. 솔로우스 - 64 화
솔로우스 – 64
불새군 병사들은 바이베노파시스가 자기들과 떨어진 먼 곳에서, 그것도 자기들에게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손쉽게 동료를 죽이는 것을 본 후, 극심한 공포에 휩싸였다.
“이건 신의 능력이야. 저 신은 우리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어! 난 못해. 저런 신과는 못 싸우겠다고!”
병사들 중 하나가 그렇게 말하면서 바닥에 방패와 칼을 던졌다. 바이베노파시스에게 저항하려는 의지를 완전히 상실한 것이었다. 그러자, 하나, 둘씩 다른 병사들도 땅에 무기와 방어구를 내려놓았다. 그것을 본 데비아나는 그들에게 고함쳤다.
“너희들,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게냐! 어서 무기를 주워들지 못해!”
제일 먼저 무기를 내려놓은 병사가 그녀에게 대꾸했다.
“대장님, 그냥 항복합시다. 어떻게 저런 무서운 신에게 대항한단 말입니까?”
“뭐... 뭐야? 어서 무기를 줍지 못해!”
“못하겠어요.... 이 지경까지 왔는데 어떻게 더 싸우라는 겁니까?”
“맞아! 어떻게 저 정도 되는 신과 싸우라는 거야?”
“암! 말도 안 되지. 우리 목숨이 솔로우스님처럼 몇 개나 되는 줄 아쇼? 우린 단 한 번밖엔 못 산다고.”
병사의 말에 다른 병사들도 가세해서 항명하였다. 데비아나는 자신의 옷 속에 몸통을 감싸고 있는 얇은 흉갑을 주먹으로 ‘쾅쾅’ 치면서 명령을 듣지 않는 병사들에게 고함쳤다.
“이 멍청이들아! 우린 불새군이다! 우린 몇 백 년 동안 에피로제님을 위해 전쟁을 벌여왔다. 우리의 머리 위로 번개를 떨어뜨리는 신과도 맞서 싸웠고 바람을 일으키는 신과도 싸워 이겼다!”
“그 땐 에피로제님도 전쟁터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저 신은 그런 신들과 다릅니다! 저렇게 손이 닿지도 않는 곳에 멀리 있는데 사람을 못 움직이게 하고 손짓 하나로 사람을 죽이는 신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맞아! 진짜 죽음의 신인가 봐요! 더 말해 뭐해? 우린 항복해야 해!”
데비아나는 이를 꽉 물고 분통을 터뜨렸다.
“뭐라고? 이이익! 이 자식들이.....!”
병사들에 대한 자신의 지도력과 영향이 약해진 것을 느끼자 그녀는 현재 상황이 너무 막막하고 억울했다.
‘솔로우스님께서 부상당하신 상황에 이 녀석들까지 포기하려고 들다니...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솔로우스님께서 정상이셨다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텐데.’
그녀는 한 병사가 치료하고 있는 솔로우스를 무심코 쳐다보았다. 그런데 지금 그도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눈도 제대로 깜박이지 못할 정도로 전신이 마비되어 있었는데 이제 그는 시선을 자유롭게 옮길 수 있었던 것이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솔로우스는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데비아나의 시선 역시 그의 시선을 따라 아래로 향했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자신의 손가락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자신의 눈을 따라 아래로 움직이자, 솔로우스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아니, 이럴 수가! 지금 솔로우스님의 손가락이 조금 움직였어! 마비가 풀리고 있는 지도 몰라.’
데비아나는 솔로우스 곁으로 다가가 그의 귀에 속삭였다.
“솔로우스님, 몸의 마비가 풀리고 있습니까? 맞는다면 신호를 보내주십시오.”
데비아나가 그렇게 말하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자, 솔로우스의 눈꺼풀 한 쪽이 부르르 떨렸다.
‘역시 마비가 풀리고 있는 거야!’
그녀는 아직도 땅바닥에 얼굴을 대고 쓰러져 있는 그녀의 부관을 보았다. 여전히 그녀는 땅에서 일어나려고 애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보였다. 그녀는 베도아를 보자 결심이 선 듯 했다.
‘그래, 베도아. 너나 나나 이렇게 허무하게 삶을 마감할 수는 없어.’
데비아나는 굳은 표정을 하고 솔로우스를 치료하고 있는 병사에게 말했다.
“이봐, 네게 부탁이 하나 있다.”
“옛? 말씀하십시오.”
“조금 있다가 기회를 봐서 솔로우스님을 모시고 도망가라. 내가 시간을 끌어보겠다.”
“하지만 솔로우스님은 몸에 마비가......”
“마비는 풀리고 있다.”
“예? 마비가 풀리시고 있다고요?”
“쉿. 조용히 해. 네가 치료를 잘 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쩌면 곧 움직이실 수도 있을 거야. 여기 있는 우리는 다 죽는다고 해도 솔로우스님만은 반드시 다시 엘리시움으로 모시고 가야 한다. 알겠느냐? 저기 저 녀석.....”
데비아나는 손가락으로 한 쪽 구석에서 꿇어 앉아 있는 붉은 수염의 헨리를 가리켰다.
“저 녀석 말이다. 이름이 뭐라 그랬지? 아, 그래. 헤베이투스라고 했던 것 같다. 저 녀석에게 부탁해라.”
“아니, 배신자놈에게 말입니까?”
병사는 놀라며 대꾸했다. 데비아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저 녀석은 이곳에서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분명 어떻게든 살아남을 방법이 있을 거야. 병사, 자네의 이름이 뭔가?”
“트레디우스입니다.”
그녀는 트레디우스라는 병사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좋아, 트레디우스. 네게 내리는 마지막 명령, 아니, 부탁이다. 반드시 솔로우스님을 회복시켜서 이곳을 벗어나는 거다.”
트레디우스는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가 너무나 과중해서 되도록 거절하고 싶었지만, 대장이 명령이 아닌 부탁까지 하는 마당에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데비아나는 말을 마치고 일어났다. 여유롭게 천천히 걸어오던 바이베노파시스와 일당들은 이미 근처까지 다가와 있었다. 바이베노파시스를 보자 그녀의 눈에 분노의 불꽃이 번쩍였다. 그녀는 화난 목소리로 주위의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저 괴상한 녀석은 내가 맡겠다. 모두 자기 목숨을 위해 도망 갈 준비해라!”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후 온 몸에 힘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의 다리부터 시작해서 화염이 타오르기 시작하더니 허리를 지나 머리끝까지 온 몸이 불에 휩싸였다. 베도아는 여전히 땅에 쓰러져 있는 채 고개를 돌려 불에 활활 타고 있는 데비아나를 보고 소리쳤다.
“안... 안 됩니다! 대장님! 제발 피하십시오. 차라리 제가.... 으으윽.....!”
베도아는 데비아나가 죽기를 각오하고 바이베노파시스에게 덤벼드는 것을 알고는 그녀를 막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온 정신을 바이베노파시스를 쓰러뜨리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는 데비아나의 귀에 그 외침은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뭐라고 크게 외친 후, 바이베노파시스에게 돌진했다.
병사들 중 여럿은 이미 바이베노파시스와 맞서 싸우기를 포기한 상황이었다. 눈치 빠른 그들은 등을 돌려 도망가려고 했다. 그런데 다른 동료들이 그들의 앞을 막아서더니 칼로 그들을 베어버렸다.
“데비아나님께서는 목숨을 걸고 우리를 지키시려고 하는데 도망이 웬 말이냐! 불새군에는 배신자가 없다!”
앞서 도망가려고 했던 병사들이 다른 병사들의 칼에 쓰러지자 그 뒤를 따르던 자들은 머뭇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주위에 칼을 든 동료들이 칼끝을 그들에게 향했다.
“네놈들도 어서 무기를 주워 들어라! 어서!”
“아... 알았어.”
데비아나에게 충성스러운 동료들의 위협에 의해 도망가려던 이들은 모두 그렇게 자기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시 무기를 줍고 바이베노파시스와 싸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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