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5 부. 만월의 밤 - 50 화

만월의 밤 – 50

방금 건수의 공격에 릴리카는 물리적인 충격보다도 정신적으로 더 크게 놀랐던 것 같았다. 그녀는 이를 갈며 건수를 째려보았다.

“이 더러운 늑대의 사제 놈아! 네놈이 아주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좋다. 어차피 그 더러운 늑대 놈은 검은 방에서 나왔으니 그놈의 눈앞에서 네놈을 찢어 죽여주마!”

릴리카는 다시 손에 힘을 집중시키더니 빛나는 주먹으로 쓰러져있는 건수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의 몸에 주먹을 날렸다.

‘쉬이이익-!’

그런데 그녀의 얼굴에 풍압이 느껴질 만큼 바람이 일더니 눈앞에서 감쪽같이 건수가 사라져 버린 게 아닌가! 그리고 곧바로 그녀는 뒷통수에 충격이 가해진 것을 느껴졌다. 그녀는 머리를 손으로 감싸며 땅에 쓰러졌다. 하지만 그녀가 몸에 걸치고 있는 금색 그물로 인해 대부분의 충격은 다시 건수에게 그대로 돌아갔다. 그녀가 올려다보니 고통에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는 건수가 서 있었다. 그것을 보면 가문의 보물이라는 금색 그물의 효과는 분명해 보였다.

“아악! 네놈이 감히 내 머리를 발로 차?”

릴리카는 재빨리 일어나서 다시 건수를 공격했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주먹을 휘둘러도 건수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었다. 그의 움직임이 너무 재빨랐기 때문이었다.

“이... 이놈이! 뭐가 이렇게 빨라?!”

릴리카는 연속으로 쉴 새 없이 공격했지만, 연거푸 실패했다. 이제 건수는 그녀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그녀는 건수의 너무 빠른 움직임에 눈이 적응할 틈도 없었다. 건수의 움직임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빨라지더니 심지어는 그녀에게 반격까지 시도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마지막 공격에 그는 뒤로 멀찌감치 피했다가 다시 앞으로 날아올라 그녀의 얼굴을 발로 차버렸다.

“끄어어.....!”

릴리카가 얼굴을 맞더니 뒤로 쓰러졌다. 역시 이번에도 그녀에게 가한 충격이 그에게도 똑같이 전해졌다. 그도 뒤로 쓰러져서 바닥을 뒹굴면서 신음했다.

* * *

이제는 충격에서 벗어나 좀 정신을 차리게 된 데디쿠스는 건수가 릴리카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며 속으로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아니, 건수의 저 움직임은 전에 와본동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더 빨라져 있잖아! 세상에! 저렇게 싸울 수 있는 사제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만약 릴리카가 몸에 그녀 가문의 보물을 두르고 있지 않았다면 이미 벌써 저 사제에게 당했을 거야!”

그러자 누군가 그의 머리 위에서 맞장구를 치는 것이었다.

“맞아. 저 움직임... 너무 빨라서 아예 보이지도 않아.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움직일 수 있지?”

데디쿠스가 위를 쳐다보니 어느새 히메이오스와 붉은 수염의 헨리가 그의 곁으로 다가와 서 있었다. 그때까지 아까 릴리카에게 목숨을 잃은 이사우라를 손에 들고 있던 헨리는 그녀의 시신을 땅에 눕힌 후, 릴리카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건수를 지켜보았다.

“아니, 저 녀석이 릴리카를 상대로 저 정도로 잘 싸울 줄이야! 만약 저게 케르케로우스 신전 사제의 실력이라면 그쪽의 신전 전사들은 도대체 얼마나 강했다는 거지? 그런데 어떻게 불새군이 저런 능력자들을 철저하게 굴복시키고 잔인하게 도륙할 수 있었다는 거야? 허... 참.”

그의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건수와 릴리카의 싸움을 지켜보는 것은 비단 그 셋뿐만이 아니었다. 아까 이사우라가 릴리카를 공격할 때 발생한 큰 충격파로 인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일어난 다른 불새군 병사들도 모두 하나같이 입을 벌리고 그 놀라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 중 절반은 릴리카를 응원하고 있었지만, 일부는 마음속으로 건수를 응원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지금 릴리카와 대등하게 싸우고 있는 건수의 능력을 보며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젠 아무도 케르케로우스와 맞서 싸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건수의 능력을 보고 나니까 그에게 능력을 준 늑대 신수는 더 무서울 게 분명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 * *

불새군에게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서 이 모든 일을 지켜보던 베토케로우스는 이빨을 드러내며 하악거렸다.

“저 녀석들 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난 건가? 이거 흥미로운 전개로군. 그건 그렇고 케르케로우스의 사제 놈 말이다. 인간으로서는 낼 수 없는 속도를 보여주는구나. 저건 신수의 축복을 받은 늑대의 움직임이 아닌가.”

인간들의 시시한 결투에 별 관심이 없는 카베쿠스는 딴 데를 보고 있다가 주인이 하는 말을 듣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아까 건수의 체취를 맡으면서 느꼈던 늑대의 냄새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그는 기분이 상했는지 베토케로우스에게 자기가 릴리카와 건수를 해치울 수 있게 해달라고 물었다.

“주인님. 저놈이 감히 인간인 주제에 케르케로우스의 축복을 받았다고 늑대 흉내를 낸다니 보시고 있기 아주 역겨우시다는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주인님께서 제게 허락해주신다면 지금이라도 제가 나서서 저 귀찮은 것들을 싹 청소하겠습니다.

“아니다. 지금은 그저 지켜보자. 크크크.”

* * *

그 뒤로도 건수와 릴리카는 몇 번이고 다시 붙었지만, 도무지 결투의 승패가 나지 않았다. 그들의 결투를 그저 겉으로 본다면, 건수의 압승이었지만 실제로 충격을 입는 것은 릴리카가 아니라 건수였다. 하지만 그녀도 건수를 조금도 공격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점점 몸이 지쳐가고 있었다. 이러다간 케르케로우스가 그녀 앞에 나타난다고 해도 과연 그와 싸울 수 있는 체력이 남게 될지 의문이었다.

그녀가 건수에게 빛나는 팔을 휘두르자 이번에 그는 그녀의 등 뒤로 돌아가 그녀의 옆구리를 찼다. 물론 그것은 건수가 따로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공교롭게도 아까 이사우라가 그녀를 암살하려고 시도했을 때와 비슷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1 대 1 전투 중 적에게 등을 드러낸 것도 굴욕이었지만, 그것은 누가 보더라도 건수가 이사우라의 공격을 모방하여 그녀를 농락한 것처럼 보였다.

“크윽! 이 쳐죽일 놈! 감히 이사우라가 기습한 방식으로 날 능멸하다니!”

그의 발에 옆구리를 맞은 릴리카는 몇 발자국 옆으로 밀렸다가 그만 땅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하지만 건수는 건수대로 방금 했던 공격의 충격이 그대로 그의 몸에 전해져 그는 더 많이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케르케로우스로부터 힘을 받은 건수는 아주 빠른 몸놀림도 특기였지만 회복능력도 보통 인간의 몇 배에 달했다. 그래서 원래대로라면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상처나 빼앗긴 체력이 빨리 회복되어야 했지만, 지금은 조금 상황이 달랐다. 건수가 릴리카에게 가하는 공격은 모두 전력을 다하는 것으로, 매번 공격이 성공할 때마다 그에게 돌아오는 충격 또한 상당했다. 도무지 그가 가진 회복능력만으로는 그렇게 매회 받는 충격을 빨리 제대로 회복시키지 못했다. 아마 그가 조금 더 머리가 명석했더라면, 그가 아무리 릴리카를 때린다고 해도 그녀에게 크게 충격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벌써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공격을 최대한 많이 유도한 후 계속 피하는 전략으로 그녀의 체력을 고갈시키는데 집중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건수는 그렇게 머리가 돌아가지 못했다. 그는 계속 그녀의 공격을 피한 후 반격하는 패턴만을 고수했다. 그 결과, 자기가 가한 공격의 충격이 그의 몸에 다시 차곡차곡 쌓는 것을 반복했다. 음......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는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