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6 부. 솔로우스 - 44 화

솔로우스 – 44

데비아나는 처음부터 도망갔던 검은 늑대들이 다시 돌아와 공격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예상은 옳았다. 릴리카와 비교하면 그녀는 훨씬 나이가 어렸지만, 릴리카에게 버금갈 정도의 실력이 있었다. 그녀는 침착하게 병사들을 지휘했다.

“늑대 녀석들이 자꾸 숲속에서만 움직인다. 열린 공간보다는 숲 속이 우리를 기습하기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모두 자기 자리를 지키고 솔로우스님을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라. 저들이 기다리지 못하고 모두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방어 태세를 유지하는 거다.”

“옛!”

그녀의 그런 명령이 있었기 때문에 몇 늑대들이 병사들 앞에 모습을 살짝 드러내면서 숲 속으로 유인하려고 해도 병사들은 유혹당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데비아나는 그녀의 부관 베도아를 포함한 몇 십 명의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늑대는 번개같이 나타나서 너희의 목덜미를 노리려고 할 것이다. 그들은 너희를 숲 속으로 유인하려고 하는 것일 뿐, 죽이려고 달려들려는 것이 아닐 것이다. 늑대가 나타나서 공격하면, 1 열의 3 명이 한 조를 이루어 방패를 들고 방어하고 그 뒤에 있는 한 명이 칼로 놈을 공격한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놈들의 피해는 쌓이게 될 것이고 놈들은 전면으로 공격을 감행할 거다. 결국 수적으로 우리보다 우세한 놈들은 총력전을 택하려고 할 것이고, 그 때 우리의 2 열부터는 대사제님과 사제들과 함께 불의 그물을 준비하고 있다가 녀석들에 던진다. 녀석들은 자기들의 머릿수만 믿고 있다가 큰 코를 다치게 될 거야.”

데비아나는 그녀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병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보면서 말했다.

“중요한 것은 맨 앞에서 방패를 들고 있는 너희 1 열이다. 늑대 몇 마리가 어디에선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너희 동료를 공격해도 허둥대지 않아야 한다. 동료가 목덜미를 물려 숲속으로 끌려 들어간다고 해도 절대 따라가선 안 돼. 알겠지? 숲 속에 들어가면, 그땐 더 많은 늑대들이 너희를 공격해올 테니까.”

“옛!”

병사들은 검은 방의 입구를 뒤로 하고 방어대형을 만들었다. 데비아나가 부관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한 가지가 좀 이상하군. 분명 리베우스는 죽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누가 늑대들을 이끌고 있는 거지? 지휘관도 없이 어떻게 다시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는 건가?”

베도아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대답했다.

“글쎄요. 근본이 사람과는 또 달라서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것들이라 예상하기가 어렵습니다. 분명 아까 도망갔을 땐 다시 돌아올 것 같은 모습이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아.... 어쩌면 베토케로우스가 직접 늑대들을 이끄는 게 아닐까요?”

“뭐? 베토케로우스가?”

“예. 데비아나님도 아까 두 패잔병 녀석들이 하는 말을 들으셨잖습니까? 이곳에 베토케로우스가 있다는 것 말입니다. 그렇다면 도망쳤던 늑대들이 다시 공격을 하려는 것이 다 설명됩니다.”

데비아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 병사들 가지고는 그를 상대하기가.....”

“예. 절대로 무리입니다. 지금이라도 후퇴하시는 편이 나을 듯 싶습니다.”

“이놈들을 소탕하러 왔으니 우리가 할 일을 하고 어서 이 세계를 떠나자. 음..... 베도아, 네 말이 옳았어.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나도 베토케로우스가 있는 곳으로 올 줄 알았다면 검은 방을 통과하면서까지 리베우스 놈을 쫓지는 않았을 거다.”

“예.”

베도아는 데비아나가 또 다시 무모한 결정을 내린 것이 영 불만스러웠지만, 이미 그녀와 운명을 같이 하는 부관인 이상 그녀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 방금 데비아나와 베도아가 나눈 대화의 내용은 절반은 맞고 나머지는 틀린 것이었다. 베도아의 예상대로 다시 공격을 감행하려는 늑대들을 이끄는 것은 베토케로우스일 거라는 부분은 옳았다. 베토케로우스는 텔리와의 두 번째 대결에서 그를 거의 죽음에 몰아넣은 후, 그의 전사인 알렉시스를 처치한 후 다시 검은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는 늑대들의 정신을 지배한 후, 검은 방 앞에 있을 한 줌의 적들을 제거하라고 했던 것이다. 다만 그는 두 가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는데, 한 가지는 겨우 한 줌의 적들, 즉, 케르케로우스와 그의 일행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과 새로 나타난 불새군의 존재를 미처 몰랐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실수는 알렉시스를 제거하려고 했을 때, 릴리카와도 대결하게 되어 시간을 많이 낭비했던 것이다. 그가 그렇게 쓸데없이 여유를 부리는 바람에 다 죽어가는 줄만 알았던 텔리가 새로운 육체로 되살아나서 세 번째 대결을 하게 되어 패하게 된 것이었다. 만약 텔리와의 두 번째 대결에서 그가 그렇게 손쉽게 승리를 가져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중간에 승부를 포기하고 검은 방 쪽으로 도망쳤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지금 이곳에 있는 불새군들은 베토케로우스를 맞닥뜨리게 되었을 것이고 그들에겐 지옥 같은 악몽이 되어버렸을 것이었다.

* * *

여전히 나무 위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던 에뮤니우스는 나무 아래에서 여러 마리의 검은 늑대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허어... 검은 늑대들이 점점 더 많이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다. 그렇다면 그건 베토케로우스가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텔리와 다시 싸운다고 하더니, 이번엔 괴수가 이긴 걸까? 제길. 그럴 줄 알았다면 도망치지 말았어야 했잖아. 어떡하지? 지금 내려가서 늑대들과 합류할 수도 없고 말이지. 내가 괜한 짓을 해서 좋은 기회를 날려버린 것은 아닐까?’

그는 고개를 들어 검은 방의 입구에 몰려있는 불새군 병사들을 보았다.

‘저들은 해봐야 몇 십 명 정도야. 아무리 솔로우스가 저들 중에 있다지만, 그 역시 그저 인간이지. 도저히 신수와 겨룰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게다가 그 무서운 살육의 신까지 이긴 괴수라면.... 그래, 저들에겐 승산이 없어. 지금이라도 내려가서 늑대들과 함께 불새군을 박살내야 나중에 괴수를.... 아니, 베토케로우스님을 뵈었을 때 잘 보일 수 있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나무에서 내려가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늑대들이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벌써 공격을 시작하는 구나.’

* * *

숲속에서 검은 늑대 한 마리가 크게 짖었다.

‘컹! 컹! 컹!’

그러자 몇 마리 늑대들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수풀 밖으로 뛰쳐나갔다. 데비아나는 두 방향에서 달려오는 늑대들을 보면서 병사들에게 외쳤다.

“우리의 대형을 무너뜨리려는 것이 놈들의 전략이다. 분명 빠르게 공격하고 도망갈 것이다. 우리는 지금 검은 방을 등지고 서 있다. 즉, 우린 3 면만 방어하면 된다. 1 열은 방어만 하고 기회를 봐서 2 열은 반격해라! 옆의 사람이 공격당했다고 해서 절대 늑대들을 따라 숲 속으로 가선 안 된다. 분명 더 많은 수의 늑대들이 숲속에서 숨어 있을 거야! 따라 들어가면 당하게 된다.”

‘컹!’

두 방향에서 튀어나온 몇 마리의 늑대들은 높이 뛰어올라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우왓! 늑대가 달려든다!”

병사 중 하나가 소리를 지르자, 그 옆에 있는 동료들이 함께 방패를 늑대에게 갖다 대면서 외쳤다.

“겁내지 마!”

“방패로 막아!”

하지만 늑대의 동작은 그렇게 위협적이진 않았고 그저 가볍게 방패를 박차고 다시 땅에 내려왔다. 그러더니 다시 또 한 번 달려드는 것이었다. 처음에 겁을 먹었던 병사는 눈을 질끈 감으면서 앞으로 방패를 밀었다. 그러자 이번엔 늑대가 더 높이 뛰어올라 병사를 뒤로 넘어뜨리는 것이었다. 병사는 깜짝 놀라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을 뽑으려고 더듬었다.

“으아아!”

그가 허둥대고 있는데, 늑대의 이빨이 그의 목덜미에 파고 들었다.

“끄아아아아!”

비명을 지르고 있는 병사와 늑대 주위에 병사들이 방패를 들고 둘을 포위했다. 데비아나가 외쳤다.

“뭐하나? 어서 뒤에서 칼로 늑대를 찌르란 말이다! 동료를 잃을 셈이냐?”

그러자 뒤에서 누군가가 나타나 옆에 있는 병사의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들더니 위에서부터 수직으로 늑대의 등을 칼로 찔렀다. 그의 칼은 늑대의 배를 뚫고 나와서 밑에 깔린 병사의 배꼽에 닿을락말락한 위치에서 멈췄다. 번개같이 빠르고 정확한 솜씨였다. 주위에서 탄성이 터졌다.

“우아아아! 됐어!”

“잘 했어!”

모두가 방패를 두드리며 늑대를 처치한 병사를 칭찬했다. 그런데 병사들은 환호성을 멈추고 조용해지는 것이다. 모두 그의 얼굴을 보며 눈을 깜박거렸다.

“누구지.....? 넌?”

“헤베이투스. 아니, 그냥 헨리라고 불러줘.”

“헨리....?”

늑대를 해치우고 병사를 구한 것은 다름 아닌 붉은 수염의 헨리였다. 원래 그와 히메이오스는 이미 부상을 입어 대형의 마지막 줄에 있었지만, 헨리는 검은 늑대와 싸우길 원했다. 그래서 제대로 된 무기가 없었지만 늑대가 나타나자 앞으로 뛰어나갔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