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4 부. 예언자들 - 71 화

예언자들 – 71

이윽고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가지를 쥐고 있는 아저씨였다.

“뭐야! 트럭 드라이버? 감히 날 방해해? 이것들이 전부 죽고 싶은 게로구나.”

그녀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아저씨의 뒤에서 할머니가 나타났다.

“이 미친년이 감히 늑대신령님을 해하려고 해? 이년아! 나아아쁜 년아!”

어떤 작은 할머니가 갑자기 등장해서 자신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니 알렉시스는 당황했다.

“뭐라고 하는 거야? 할머니, 나한테 무슨 문제 있어? 왓? 유 갓 어 프라블럼?”

그녀가 엘리시움어와 영어로 할머니에게 대꾸하자 못 알아듣는 할머니는 버럭하고 화를 냈다.

“네년이 지금 뭐라고 씨부리는 게야! 늑대신령님께서 네 년을 죽이지 않으시고 참으시니 나라도 할아버지들께 부탁드려야겠다!”

할머니가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그러자 온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알렉시스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뭐야? 당신! 혹시 마법사 같은 건가?”

거센 바람이 마당을 가득 채우자 텔리 역시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면서 혼잣말을 했다.

“음. 이건 내가 화장실에서 당했던 것과는 완전히 수준이 다른데? 건물 안이 아니라 밖이라서 더 힘이 증폭되는 건가? 저 할머니, 진짜 신과 같은 능력을 가졌군. 놀라워.”

온 사방에서 온 돌풍이 알렉시스의 몸을 휘감았다. 한 방향에서만 바람이 불었으면 그녀는 뒤로 넘어졌겠지만 지금 바람은 거의 모든 방향에서 불어오고 있었다. 그 결과 그녀는 바람 속에 꽁꽁 갇히게 되었다.

“크으... 바람 때문에 숨을.... 숨을 쉴 수가 없... 어.”

그녀 팔에 타오르고 있던 불길도 거센 바람에 점점 꺼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여전히 화난 목소리로 알렉시스를 나무랐다.

“불 피우는 조그만 재주가 있다고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구나. 급살이다. 이 요망한 년아!”

‘쉬이이익-!’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는 마당 어디에선가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가 났다. 알렉시스 몸통 주위에 노란색의 막이 생겼다. 무언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그녀의 몸을 향해 날아왔는데 메이크바가 발동되어 그것을 막은 것이었다. 텔리는 알렉시스의 메이크바가 할머니의 귀신이 쏜 ‘보이지 않는 화살’ 공격을 막아낸 것을 보고 놀랐다.

‘어? 희한하군. 난 막지 못했던 공격인데, 어떻게 알렉시스의 메이크바는 막아냈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방금 생긴 노란색의 막을 살폈다. 그녀의 메이크바 뒤에 아지랑이 같은 것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게 되었다.

“와, 이것 놀랍군. 불새로부터 받은 불기운으로 메이크바를 보강시킨 거였어. 그래서 물리적인 힘도 막아내고 에너지의 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거로군. 천잰데?”

할머니도 공격을 막아낸 것을 깨닫고 놀라고 있었다.

“요오오망한 년! 쓸데없이 잔재주를 피우는 가 보구만. 네가 그러면 그럴수록 서쪽에서 오신 활 선생께서는 더욱 화가 나실 거다!”

할머니의 말이 옳았다. 방금 전 공격을 막아서 그 ‘서쪽에서 온 활 선생’이라는 귀신이 화가 났던 것일까. 여러 번 공기 중에서 시위를 당기는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알렉시스가 불새의 힘으로 보강한 메이크바의 방어력은 활 선생 귀신의 보이지 않는 화살을 전부 막아내었다. 이쯤 되자 이제 당황한 쪽은 할머니가 되었다.

“흥, 제법인데? 어디 보자. 할아버지가 어서 오셔야 할 텐데.....”

할머니는 이상하게 리듬을 타면서 기괴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몇 달 전 산에서 검은 늑대를 막아낼 때 산불을 지르고 췄던 그 이상한 춤이었다. 할머니 곁에 있었던 아저씨는 왠지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 그녀로부터 조금 멀리 떨어졌다.

그 와중에 돌풍은 점점 거세게 불었다. 하지만 알렉시스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아지랑이가 그 바람을 점점 몰아내고 있었다.

“네? 장군님. 더 이상 동쪽에서 바람을 불러 오실 수가 없다고요? 아아... 이런 그러면 어떡하죠? 아,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이제 곧 할아버지가 오셔서 합류하실 겁니다.”

할머니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처음과 다르게 자신이 밀리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귀신들이 그녀에게 와서 상황을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지금 그녀가 말하는 것을 보면 더 이상 돌풍이 와서 알렉시스를 잡아두기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인데 할머니의 소매에서 꺼낼 카드가 점점 줄어간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아, 이제 오셨다! 북쪽에서 오신 할아버지, 저년을 벌해주세요!”

할머니가 조금 늦게 찾아 온 귀신에게 알렉시스를 벌해달라고 부탁했다.

“급살이다. 급살!”

알렉시스는 자기 머리 위에서부터 가해지는 엄청난 압력을 느꼈다. 한 번, 그리고 두 번.... 마치 누군가가 거대한 망치로 자신을 못처럼 생각하고 쳐서 땅에 박아버리려는 것 같았다.

“아아... 허억!”

그녀는 두 팔을 올려서 위에서부터 가해지는 충격을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방금 전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던 아지랑이는 충격을 받을 때마다 자꾸 흩어지는 것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저 할머니, 무슨 마법사라도 되는 거야?”

텔리는 마치 물 건너 불구경처럼 알렉시스와 할머니의 대결을 지켜보다가 한 마디 했다.

“이건 뭐 버티는 알렉시스도 놀랍지만 저 할머니의 능력은 어디가 끝인지 알 수가 없구만. 지구에도 무서운 존재가 있구만. 솔직히 많이 놀랐어.”

알렉시스는 텔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텔리, 어서 도와줘. 날 구해달라고! 크윽! 크윽!”

텔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전 이미 당신에게서 마지막 명령을 받았고 그 이후에는 어떤 명령도 받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 명령만 지키고 전 계약파기할 거거든요.”

“야! 개수작 떨지 말고 어서 날 구해! 큭! 큭!”

알렉시스가 말하는 중에도 머리 위에는 프레스 기계처럼 위에서 찍어누르는 큰 압력이 연속으로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는 끝내 몇 번을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텔리는 가만히 서있을 뿐 그녀를 도울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텔리, 제발! 이러다 나 깔려 죽겠어!”

“아니~요. 난 몰라~요.”

알렉시스는 좀 더 다급해진 목소리로 텔리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쿱! 컥! 텔리... 제발! 난 이제 한계야.”

순간 텔리의 눈이 번쩍하고 빛났다. 그는 무릎을 한 번 굽혔다가 피면서 뛰어오르더니 순식간에 알렉시스의 맞은편으로 이동했다.

“자, 할머니. 이제 그만해. 아님.....”

텔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들어올렸다. 건수와 아저씨는 그를 보고 경악했다.

“케르케님!”

“늑대신령님!”

다름 아니라 그의 손엔 지쳐서 숨을 헐떡이는 케르케로우스가 들려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주위의 귀신들이 급히 전해주는 상황을 듣고는 즉시 춤을 추던 것을 멈췄다. 그녀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텔리에게 물었다.

“텔리 신령님. 무슨 일입니까? 늑대신령님께 왜 그러십니까?”

텔리는 ‘피식’ 하고 웃었다.

“뭐긴 뭐야. 내 일을 하는 거지. 할머니, 잘 멈췄어. 아직 알렉시스는 죽으면 안 돼. 살아있을 때 이걸 봐야 하거든”

그는 말을 마치고 새끼 늑대인 케르케로우스의 목을 비틀었다.

‘우드드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