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5 부. 만월의 밤 - 33 화

만월의 밤 – 33

할머니의 시력이 돌아온 것과 사모님의 병이 완치된 것을 축하하는 사람들의 축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카베쿠스가 돌아온 베토케로우스의 진영은 마치 초상집 아니, 지옥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카베쿠스 몸에는 옴니테바가 장착되어 있어 이미 얼굴의 상처가 아물었지만 큰 상흔을 남겼다. 그의 모습을 본 베토케로우스는 심기가 매우 불편해졌다. 그는 연신 그르렁거리며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크르르르..... 그러니까 그 바이베노파시스의 부하라는 놈이 네 눈을 애꾸로 만들었단 말이지!”

카베쿠스는 베토케로우스가 한 단어를 말할 때마다 하늘에서 천둥 벼락이 칠 때 무서워하는 어린아이처럼 벌벌 떨었다.

“죄송합니다. M이란 녀석이 그런 힘을 감추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컹! 시끄럽다! 검은 늑대가 약한 인간 따위에게 그런 꼴로 당하다니! 크르르르....”

베토케로우스는 입을 크게 벌려 매서운 송곳니를 드러내었다. 그는 언제라도 카베쿠스에게 달려들어서 단번에 숨통을 끊을 모습이었다. 자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그의 두 눈이 순간 새빨갛게 불타올랐다. 그것을 보고 카베쿠스는 남은 한쪽 눈을 질끈 감으며 곧 자기에게 다가올 죽음의 운명을 기다렸다.

‘이젠 틀렸다. 주인님께서 이토록 화나셨으니 난 꼼짝없이 죽겠구나. 아아...’

“카베쿠스. 예전과 다르게 넌 요즘 날 계속 실망하게 했다. 그러나 널 보내기 전 내가 분명히 말해두었다. 다시 날 실망하게 하지 말라고 말이다.”

카베쿠스는 베토케로우스에게서 뿜어나오는 박력에 기가 죽어 그만 배를 바닥에 대고 엎드렸다.

“주인님, 죽여주십시오. 주인님을 실망시켜 드린 죄, 죽어 마땅합니다.”

“그래야지. 당연히 네놈을 물어 절반으로 찢어 죽여야만 내 직성이 풀리겠지만, 넌 내가 가장 믿었던 부관이었다. 그리고 지금으로선 널 벌주는 것보다 내일 케르케로우스에게서 검은 방을 되찾아야 하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지. 그래서 이번 한 번만 마지막으로 네게 자비를 베풀겠다.”

“주인님, 절 살려주시겠다는 말씀이신가요?”

“널 처벌하는 것은 내일 이후로 미룰 것이다. 일단 네 목숨은 내일을 위해 아껴두도록 하지. 만약 내가 또 실망하게 된다면 더는 널 용서하지 않겠다.”

“명심하겠습니다. 다시는 실망하게 해드리지 않겠습니다. 주인님, 한 번 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베토케로우스는 카베쿠스에게 할 말을 다 한 후, 그가 꼴도 보기 싫었는지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런 모습을 보고 카베쿠스는 주인이 이제 자신을 쓸모없다고 생각한다고 느꼈다. 그는 바이베노파시스에게 당해 눈을 하나 잃었지만, 그 상처는 이미 아물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것보다 더 깊은 마음의 상처를 얻은 것이었다. 그는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물러갔다.

* * *

늦은 밤, 강원도에 위치한 한 호텔의 방.

건수는 여전히 팔과 상체가 묶인 채 불새군에게 잡혀 있었다. 그가 창고에 잡혀 있을 때 비해 단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젠 조금 더 깨끗한 방에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의 주위엔 조용히 반란을 준비하는 이사우라와 불새군의 삼총사가 모여 있었다. 그들은 목소리를 낮춰서 조심스럽게 내일 실행할 계획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삼총사는 비교적 자유롭게 계획에 대해 말하고 있는 반면에 이사우라는 최대한 말을 아꼈다. 그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건수를 힐끔힐끔 보면서 그를 감시하는 것이었다.

“잠깐만. 너희들 이런 중요한 얘기를 저 녀석과 한 방에 있는데 할 수 있는 거야?”

“저 녀석이라뇨? 늑대 사제요?”

붉은 수염의 뚱보 헨리가 그녀의 어깨너머에 있는 건수를 보면서 되물었다.

“그래. 저놈이 우리 계획을 다 듣고 있잖아. 너희는 그게 아무렇지도 않아?”

“글쎄요. 그게... 우리는 이미 저 녀석과 한배를 탄 것이나 다름없어서요.”

히메이오스는 머리를 긁적이며 느긋한 톤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사제 녀석이 검은 방의 늑대에게 우리에 대해서 잘 말해주는 것까지도 계획의 일부 아닙니까? 아니, 계획의 완성이죠. 저 녀석이 우리와 늑대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니까요. 사실 우리 계획을 누구보다 더 자세히 알아야 하는 거잖습니까?”

“흐으으응...!”

이사우라는 뜨거운 콧김을 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너희는 마치 불새군을 떠나는 것뿐만 아니라 아예 에피로제님을 떠날 것처럼 구는구나? 그런 거냐?”

“.......”

이사우라는 잠시 기다렸지만 삼총사는 명쾌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침묵을 지켰다. 그들의 대답을 듣지 못한 이사우라는 그들 모두에게 경멸의 눈길을 보냈다.

“일반 성전 전사인 너흰 어떤지 몰라도 난 일단 에피로제님께 은총을 받은 처지다. 그분을 배신할 생각까진 하지 못했어.”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데디쿠스가 무겁게 닫혔던 입을 열었다.

“그럼 저희를 배신하실 수 있으십니까? 저희는 단지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을 뿐입니다. 히메이오스가 들은 얘기가 있습니다. 그가 살던 곳에 이 지구로 갔다가 돌아온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몇 백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놀라울 정도로 갈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다른 고향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 모습이 변할 동안 지구에 있었던 그는 거의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는 거지요.”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데디쿠스는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히메이오스와 함께 옴니테바에 대해 연구할 때 들은 얘기입니다. 만약.....”

“히메이오스! 말해봐. 지금 데디쿠스가 하는 얘기가 무슨 뜻이야?”

이사우라는 데디쿠스의 말을 끊고 히메이오스에게 날카로운 목소리로 질문했다. 그는 깜짝 놀라며 무서워서 그녀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데디쿠스를 보면서 대답했다.

“저 역시 전에 고향에서 봤던 일을 그대로 동료들에게 말해줬을 뿐입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거짓말은 더더욱 아니고요!”

“자세히 말을 해봐. 데디쿠스가 한 얘기가 무슨 뜻인지!”

“그게... 제가 어렸을 때 저희 고향에 지구에 갔던 사람이 하나 있었어요. 그가 떠난 지 몇백 년인가 지나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때 마을에서 성대한 잔치를 차려줬던 게 기억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잔치 중에도 계속 말도 없었고 얼굴도 울상이었어요. 그걸 보고 마을의 장로가 그에게 다가가서 오랜만에 고향에 오니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니까, 그가 슬퍼하면서 대답하던 게 기억납니다. 자기가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왔는데 이미 시간은 몇백 년이 흘러있었고 부모는 세상을 떠났으며 자신은 그대로인데 친구들은 다 나이가 들어 늙어버렸다고 푸념했습니다. 전 그 일이 기억나서 동료들에게 말해줬던 거에요.”

이사우라는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그게? 그게 말이 돼?”

히메이오스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대답했다.

“전 진짜 있었던 일을 얘기한 것뿐인데요. 모르죠. 엘리시움과 지구는 시간이 서로 다르게 흐르는 건지도요.”

“뭐? 시간이 서로 다르게 흐른다고?”

이사우라는 그 말을 듣고 어이없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