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5 부. 만월의 밤 - 68 화

만월의 밤 – 68

에뮤니우스가 베토케로우스 가까이 가서 그의 상태를 살폈다. 자세히 보니 아직 그의 숨이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아까 텔 리가 공격했던 배와 목덜미가 시커멓게 타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썩어가고 있었다. 그 역겨운 냄새에 에뮤니우스는 재빨리 손으로 코와 입을 가렸다.

“윽! 지독한 냄새!”

에뮤니우스의 인기척을 느낀 베토케로우스는 붉은 눈을 가늘게 뜨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에뮤.. 니우스..... 헉헉.”

베토케로우스가 쓰려져있는 자리에서 꼼짝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에뮤니우스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뭐, 어쨌든 됐어! 아직 베토케로우스님이 살아계시는군. 움직이지 못하시니 다행이야. 그렇다면 이제 내가 생명의 정수를 흡수하기만 하면 되겠어. 그 후엔 과연 내 몸이 어떻게 변할까? 설마 단번에 신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흐흐흐.’

에뮤니우스의 입이 흉측하게 십자 모양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베토케로우스는 그것을 보고 입을 크게 벌려서 자기에게 다가오는 에뮤니우스 다리를 물어뜯으려고 했다.

“크앙!”

베토케로우스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에뮤니우스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아니! 베토케로우스님. 무사하셨습니까?”

“헉헉... 에뮤니우스.... 내게 허튼짓을 하면 용서하지 않겠다.... 헉헉.”

그러자 에뮤니우스는 십자 형태로 갈라진 입을 정상으로 되돌리면서 시치미뗐다.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허튼수작이라뇨? 당신의 종은 끝까지 당신에게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무력할 줄 알았던 베토케로우스에게 아직도 저항할 힘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 에뮤니우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재빨리 땅바닥에 꿇어 엎드려 절했다.

“헉헉...... 내 주위에 카베쿠스가 있다. 그를 내게로 데려와라.”

“카베쿠스.... 이 주변에....? 아아, 어디 있을까요?”

“컹! 어서!”

“윽! 예. 알겠습니다.”

베토케로우스는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상태였지만 그의 기백은 에뮤니우스를 간단히 압도했다. 에뮤니우스는 벌벌 떨면서 일어나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곧 그의 시야에 땅에 쓰러져있는 애꾸눈 늑대가 들어왔다.

“아, 저기 있군.”

에뮤니우스가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카베쿠스는 입에 거품을 문 채 혀를 길게 빼고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죽어있잖아?”

그 말을 들은 베토케로우스는 다시 한 번 짖으며 에뮤니우스를 나무랐다.

“카베쿠스는.... 죽지 않았다. 어서 그를 내게 데려와라.”

“아, 예... 예.”

에뮤니우스가 카베쿠스의 두 앞발을 잡고 끌어오려는데, 카베쿠스의 몸이 살짝 들썩였다. 베토케로우스의 말대로 아직 완전히 숨을 거두지 않았던 것이었다.

‘크르르....르르....’

카베쿠스가 실눈을 겨우 뜨면서 에뮤니우스를 보고 힘없이 그르렁거리자 에뮤니우스는 그의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했다.

‘놀랍군. 과연 베토케로우스님의 부관인가. 아니, 그보다도 텔리는 얼마나 무서운 놈이길래 이 둘을 이렇게 만들어 버리고도 멀쩡해 보였던 거지? 정말 그놈은 상상을 뛰어넘는 놈이로구나.’

에뮤니우스는 다 죽어가는 카베쿠스의 다리를 잡고 땅에서 질질 끌어서 베토케로우스 앞에 가져다 주었다. 베토케로우스는 비틀거리며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그는 부관의 비참한 모습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울부짖었다.

“크으으윽..... 카베쿠스! 너가 이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죽어가다니! 내가 가장 아꼈던 나의 자손인 널 이렇게... 이렇게... 허무하게 잃게 되다니....! 크아아앙!”

베토케로우스는 고개를 처들어 하늘을 보더니 길게 울었다. 그 슬픔 가득한 긴 울음소리는 마치 자기보다 먼저 숨이 끊어지게 된 카베쿠스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 같았다.

“어우우우우- 어우우우우-”

에뮤니우스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이런! 아직 검은 늑대의 신수는 비교적 멀쩡히 움직일 수 있지 않은가? 만약 내가 아까 베토케로우스님의 정수를 빨아먹으려고 했다면 뼈도 추리지 못할 뻔했다. 큰일 날 뻔했군. 휴우우....’

베토케로우스는 힘없이 땅에 쓰러져 죽어가는 카베쿠스의 얼굴을 혀로 핥았다.

“카베쿠스... 네 복수는 내가 하겠다. 반드시 텔리 그놈을 열 조각으로 찢어 죽일 것이다. 컹!”

그 말을 마치고 베토케로우스는 입을 크게 벌리더니 카베쿠스를 산채로 머리부터 삼켜버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끄윽... 끄윽.... 끄윽....’

“흐익!”

그의 곁에 서 있던 에뮤니우스는 그것을 보고 너무 놀라서 그만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는 고개를 돌리며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었다.

‘아... 아니! 자신의 부관을 산채로 입에 넣고 삼키고 있잖아! 느... 늑대가 아니라 사실은 뱀이었던 건가! 너무 끔찍해서 도저히 못 보겠다!’

하지만 베토케로우스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조금씩 카베쿠스의 몸을 삼키기 시작했다. 베토케로우스의 몸집이 워낙 커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사실 카베쿠스도 지구의 보통 늑대들보다는 몸집이 컸다. 어떻게 된 식도이길래 저렇게 큰 덩어리를 씹지도 않고 삼킬 수 있는 것일까?

‘끄으윽.... 끄으윽...... 컥! 컥!’

베토케로우스의 목에서 나는 끔찍한 소리는 에뮤니우스의 신경을 날카롭게 자극했다. 그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네발로 기어서 그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카베쿠스를 전부 삼켜버린 베토케로우스가 그를 보더니 말했다.

“하아아... 꼴사납구나. 에뮤니우스. 네가 네발로 걸어 다닌다 해도 늑대가 될 수는 없는 법. 더군다나 카베쿠스의 자리를 너가 메꿀 수도 없다.”

에뮤니우스는 기어가다가 그 말을 듣고 놀라서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예? 제가 누구의 자리를 메꾼다고요?”

“난 인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니 카베쿠스의 자리는 한동안 공석이 될 것이다.”

에뮤니우스는 기가 차서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방금 자신의 부관을 꿀꺽하고 한입에 삼킨 걸 봤는데 내가 왜 당신에게 그 부관 자리를 달라고 하겠어? 왜? 나도 당신의 뱃속으로 삼켜버리려고? 내가 먼저 사양할 참입니다.’

베토케로우스는 잠시 눈을 감더니 호흡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힘을 끌어올리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후우후우후우.... 후우후우후우....”

그러자 곧 그의 몸이 밝은 빛에 휩싸이게 되었다. 몇 초 지나자 그 빛은 점점 사라졌다.

“카베쿠스에게 줬던 내 힘의 일부를 다시 거두었다. 일단은 잠시나마 살 수 있게 되었군.”

에뮤니우스가 자세히 보니, 아직 베토케로우스 몸에 시커멓게 변한 부위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풍겨오는 썩은 냄새도 여전했다.

‘아까보다는 활기가 있어 보이시는군. 하지만 몸에 난 상처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데?’

자신의 몸에 난 상처를 살펴보고 있는 에뮤니우스를 보고 검은 괴수가 말했다.

“검은 방과 계약을 맺은 난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 쉽게 죽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와 케르케로우스의 육체는 검은 방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지.”

“아! 그러면 다시 회복하신다는 말씀이군요.”

“아니, 텔리가 내게 준 상처는 보통 상처가 아니다. 아마 난 얼마 안 가서 죽게 될 것이다.”

“아... 그렇다면.....”

“하지만 죽게 되더라도 그건 그놈을 죽이고 난 다음이 될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