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6 부. 솔로우스 - 60 화

솔로우스 – 60

텔리는 인상을 팍 찡그리면서 말했다.

“그 괴수가 형의 냄새를 맡고는 내 냄새로 착각한 모양이야. 암흑의 냄새를 풍긴다는 것은 검은 방에서 태어났다는 증거니까. 설마 그 녀석이 자기 동생 케르케로우스의 냄새를 모를 것 같지는 않고, 분명 바이베노파시스를 나로 착각한 걸 거야. 우린 검은 방 안에서도 같은 곳에서 태어났으니까 아주 비슷한 냄새를 풍기거든. 그리고 지금 뒤쫓아 가지 않으면 바이 녀석이 괴수를 처치해 버리고 말 거야. 그건 안 되지. 얘들아, 어서 가자!”

“텔리님, 그런데 그 집채만 한 늑대가 무슨 불사신인가요? 어떻게 몇 번을 죽었는데도 또 살아나요? 그것도 이번엔 그렇게 끔찍한 냄새를 풍기던데요.”

“모르겠다. 다른 놈들은 다 한 방에 죽는데 그 놈은 어떻게 된 생물인가... 이상해. 솔직히 나도 영문을 모르겠어.”

“텔리님 정도 되시는 분이 어떻게 몇 번이나 같은 일을 하시는 거예요? 살육의 신이시라면서 일을 영 이상하게 하시네. 사람 아니 늑대를 여러 번 죽이는 게 말이 됩니까? 목이 여러 개 달렸기를 했나 아님 심장이 여러 개 달리기라도 했나. 무슨 카드 할부도 아니고 죽이는 것도 나눠서 죽여요?”

“뭐, 인마? 내가 일을 못해? 그리고 카드 할부라는 건 또 뭐야?”

“신용카드도 안 써보셨어요? 그런 게 있어요. 암튼 빨리 그 냄새나는 늑대를 해치워 버리세요!”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그렇게 말한 후 무턱대고 출발하려고 드는 텔리를 보고 알렉시스가 한 발짝 앞으로 나아오면서 말렸다.

“신이시여,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지금 어디를 가신다고 하시는 건가요?”

“못 들었어? 빨리 괴수를 뒤쫓아 가야 한다니까. 아니면 파괴신 바이베노파시스가 그 늑대 괴수를 해치워버릴 거라고. 그럼 그 녀석이 모든 공을 가져가게 되잖아. 아니, 요리는 내가 했는데, 바이 녀석이 먹어치운다는 게 말이 되냐?”

알렉시스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텔리님. 제가 이렇게 말씀드린다고 절대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텔리님의 모습을 좀 보십시오.”

알렉시스가 손가락으로 잔뜩 땀을 흘리고 있는 텔리를 가리켰다. 젊고 건강한 예전 몸이 아닌 중년 남자인 바비의 몸에 들어가 있는 그는 과연 그녀의 말대로 몹시 지쳐 보였다.

“내 모습이 왜?”

“한 눈에 딱 봐도 몹시 지쳐 보이십니다. 혹시 신께서 당신의 공간에 들어가셔서 고된 노동을 하신 게 아니신지요?”

“어, 그랬지. 내 방에 들어가 보니까 예상대로 키쥬아의 환영, 그 년이 내 옛날 몸에서 빠져나와 도망가고 없더라고. 분명 아까 내 환영을 만들어줄 때 내 몸에서 열쇠를 복제한 걸 거야. 그래서 혹시라도 내 방을 맘대로 들락거릴까봐 그 방에 있는 모든 짐을 다른 곳으로 옮겨버리고 방은 없애버렸지. 그러느라고 시간이 꽤 걸렸는데, 뭐 고된 노동이라면 노동이지.”

그러자 미스터 황이 고개를 까닥거리면서 물었다.

“몇 시간이요? 텔리님이 그 방에 들어가신 지 이제 겨우 몇 분 지났는데요?”

실제로 텔리가 자신의 그림자 안으로 들어갔다 나온 건 겨우 몇 분 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안에서 몇 시간이나 있었다고 하니까 이상하게 생각해서 묻는 것이었다.

“그 안과 밖은 시간이 좀 다르게 흘러. 너도 검은 방이나 멧돼지 신수의 공간에 들어가 봐서 알 것 아냐? 다만 난 케르케로우스처럼 그 시간을 조절하는 방법을 몰라서 어떤 때는 시간이 더 빨리 흐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천천히 흐르기도 하더라고. 이번엔 천천히 흘렀던 모양이구만.”

“아하! 그러니까.....”

“사제! 당신은 잠깐만 좀 조용히 있어!”

알렉시스는 자꾸 얘기를 방해하는 미스터 황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텔리에게 고개를 돌려 자신이 해야 할 얘기를 시작했다.

“텔리님께서는 벌써 여러 번 베토케로우스와 대결하셔서 힘을 많이 소진하셨습니다. 그리고 잠시도 쉬지 않으셨는데 어떻게 또 다시 베토케로우스와 일전을 벌이시겠다는 말씀이신가요?”

“야, 그럼 어떡해? 바이베노파시스가 내가 다 해 놓은 일을 혼자 독식하게 만들라고 하는 말이야? 내가 다 거의 다 끝냈던 것 아니야? 내가! 내가! 내가! 그런데 그 놈이 그 괴수를 끝장내기라도 하면 그 명예는 형에게 돌아간다고!”

“텔리님, 제 생각엔 그건 별로 현명한 판단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텔리님의 상태는... 절대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텔리님의 상태는 단 번에 베토케로우스를 제압하시기 힘든 상태로 보입니다. 일단 그 괴수는 바이베노파시스에게 맡겨 두시고 지금은 천천히 그 쪽으로 이동하시는 게 맞다고 전 봅니다.”

텔리는 그 말을 듣고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헛소리야? 왜 내가 바이에게 먹이를 갖다 바쳐야 하냐고?”

텔리가 성을 내기 시작하자 알렉시스는 조금 긴장한 듯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제 뜻은 그게 아닙니다. 아까 이디레이아 여신님의 공간에서 두 분이 나누시는 대화를 저희도 들었지 않습니까? 마치 신께서 다른 두 형제에게 비밀로 하실 만큼 중요한 것을 간직하고 계신 듯 했는데요. 바이베노파시스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야야야! 그건 너가 함부로 말할 게 아니야. 아예 입에도 올리지 말아야 하는 거라고!”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일이니까 말입니다. 바로 그 일 때문에 텔리님께서 부족한 체력까지 낭비하시면서 다시 신의 공간까지 들어가셔서 키쥬아의 환영이 아직 예전의 몸 안에 있는 지 직접 확인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지금은 그것을 지키시는 게 더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텔리는 눈알을 한 바퀴 돌렸다.

“음.... 네 말이 맞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베토케로우스는 내가 다 죽여 놓은 것인데.... 쩝.”

“제가 듣기에, 신께서는 파괴신 바이베노파시스도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하시고 계시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렇죠?”

“아, 그건 그렇지. 그 녀석이 내게서 아주 중요한 것을 빼앗으려고 무모한 일을 벌이는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럼 텔리님은 언젠가는 파괴신을 제거하실 거잖습니까?”

“그... 그렇지. 결국엔 그렇게 되겠지? 바이는 절대 포기를 모르니까 말이야.”

“그럼 텔리님께서 노리고 계셨던 괴수를 그가 함부로 채어가서 끝장을 내버렸다면 그 구실을 만들 수 있지 않습니까?”

텔리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두 손이 자동으로 올라가며 박수를 쳤다.

“야아. 그러네. 뭐, 보통 사람도 아니고 신을 추수해야 한다면 이유가 분명하게 있어야 하니까!”

“네, 그렇습니다. 또, 바이베노파시스가 텔리님만큼 능력이 뛰어나지 않아서 베토케로우스를 제대로 해치우지 못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일단 둘을 붙여놓으시고 파괴신이 괴수를 만나 힘들어 할 때, 신께서 나타나셔서 괴수를 죽이신다면, 그 또한 위기에서 그의 목숨을 구한 것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설마 자신의 목숨을 구한 텔리님으로부터 그가 소중한 것을 빼앗는 것을 계속 할 리도 없고요. 그러니 지금은 조금 천천히 이동하시는 게 옳다고 봅니다. 그 간에 바닥난 체력도 회복하실 겸 말입니다.”

텔리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야... 알렉시스.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상당한 전략가로구나. 방금 진심으로 감탄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그저 제 마음에서 우러난 충심을 보였을 뿐입니다.”

텔리와 알렉시스, 둘의 대화를 들어보면 그 사이의 분위기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대화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미스터 황의 얼굴은 시간이 갈수록 어두워졌다.

‘뭐야? 알렉시스. 완전히 웃기는 여자네. 나더러는 이디레이아님의 공간에서 있었던 일은 입도 뻥끗하지 못하게 하더니, 자기는 잘도 써먹었잖아? 이거 알고 보니 아주 여우네. 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