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4 부. 예언자들 - 72 화

예언자들 – 72

“케르케님!”

건수는 깜짝 놀라서 텔리에게 뛰어갔다.

“아니, 텔리님! 왜 케르케님을....!”

텔리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자기에게 돌진해 오는 건수를 발로 찼다. 건수는 발차기를 맞고 붕 날아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가 다시 일어나려고 하자 이번엔 알렉시스가 달려와 무릎으로 그의 가슴을 찍어 누르고는 불붙은 주먹으로 그를 위협했다.

“움직이지 마! 아니면 내가 널 세상에서 제일 흉악한 모습으로 죽여주지!”

건수는 겨우 목만 돌려서 목청껏 소리 지르며 텔리에게 따졌다.

“텔리님, 왜 케르케님을 죽이셨어요? 케르케님! 케르케님!”

건수가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자 텔리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나야 내 일을 한 것뿐인데 왜 그렇게 흥분하는 거지?”

“텔리님, 당신의 일이라뇨? 당신은 케르케님을 싫어하지 않으셨잖아요? 한편에 서서 베토케로우스를 상대하자고 하셨잖아요! 왜 케르케님을 죽이셨어요? 왜!”

알렉시스는 자기 아래에 깔린 건수가 너무 시끄럽게 하니까 짜증이 났는지, 몸을 띄웠다가 그대로 무릎으로 건수의 가슴을 가격했다.

“컥!”

“조용히 해. 케르케로우스의 사제놈아. 당장 닥치지 않으면 정말 불로 태워죽일 테다.”

알렉시스는 텔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잘했어! 텔리. 아주 아주 잘했어! 자, 이제 케르케로우스의 몸을 내게 줘.”

텔리는 케르케로우스의 사체를 손에 든 채 ‘아!’ 하고 입을 벌렸다.

“아! 케르케로우스의 육체 말이군요.”

“그래. 어서 내게 줘.”

알렉시스는 밑에 깔려 있는 건수와 텔리를 번갈아 보면서 외쳤다. 건수는 그녀를 잡아먹을 듯한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고 텔리는 딴청을 피우면서 미소짓고 있었다.

“어서 줘. 뭐하는 거야?”

텔리는 케르케로우스 사체를 들어 보았다. 케르케로우스는 혀를 내밀고 있는 것이 죽은 것이 분명했다.

“케르케로우스, 내가 정말 당신한테는 별 유감이 없었는데 이렇게 되어서 미안하군. 나도 나 나름대로 사정이 좀 있었어. 뭐, 당신이라면 크게 화낼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좀 미안해서 말이야. 훗훗훗.”

마당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계속 들리는 바람에 방에 있던 펠리시아와 미스터 황, 그리고 두 경찰은 밖에서 나오게 되었다. 펠리시아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본 것은 축 늘어진 케르케로우스를 손에 쥐고 있는 텔리와 불타는 주먹을 한 채 건수를 깔고 앉아서 위협하고 있는 알렉시스였다. 특히 알렉시스는 불타는 주먹을 건수 얼굴 가까이 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위험해 보였다. 펠리시아가 깜짝 놀라서 알렉시스를 불렀다.

“알렉시스! 지금 뭐하는 거예요?”

알렉시스는 펠리시아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펠리시아, 어떻게 된 거야? 너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당장 그만하세요. 어서 건수를 풀어주라고요!”

“하아아.....”

겉모습은 조그만 여자애인 펠리시아가 자기를 보고 명령하듯 말하자 알렉시스는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오늘은 정말 황당한 일이 많이 생기는 날이군. 텔리도 내 명령을 듣고 있지 않지, 저 조그만 여자애도 내게 말을 함부로 하지. 정말 내가 화내는 걸 보고 싶은 거야, 다들?”

그녀가 화를 내자 팔에서 더 큰 화염이 활활 타올랐다.

“꺅!”

“꺄악! 꺅!”

펠리시아는 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알렉시스 팔의 화염이 커지는 것을 보고 무서워서 소리를 질렀다. 강 소장과 임 순경 역시 알렉시스의 팔이 불타고 있는 데도 멀쩡한 것을 가슴 졸이면서 보고 있었는데 펠리시아의 비명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래서 그들도 소리를 질렀는데 펠리시아의 비명과 거의 흡사한 수준이었다.

텔리가 죽은 케르케로우스를 손으로 들고 털을 몇 번 쓰다듬어 주고 있는데 그의 앞에 갑자기 검은 문이 열렸다. 그는 다시 한 번 케르케로우스의 얼굴을 보면서 사과했다.

“이봐, 미안하게 됐어.”

그렇게 말하고는 죽은 케르케로우스를 검은 문 안으로 던졌다. 알렉시스는 깜짝 놀라서 쓰러진 건수를 무릎으로 누르다 말고 일어났다.

“너 지금 뭐한 거야? 왜 케르케로우스를 그 안으로 던져?”

“아, 이거? 그의 장례식 같은 거지. 죽었으니까 검은 방 암흑 속에 묻어준 거야. 훗훗훗.”

“이 자식이 그걸 말이라고! 안 돼! 케르케로우스! 내가 그의 몸을 다시 가지고 나오겠어!”

알렉시스는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면서 자기도 검은 문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거기서 다시 케르케로우스를 꺼내 오려는 것이었다. 쓰러져 있던 건수는 알렉시스가 검은 방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 벌떡 일어나서는 달려와서 그녀의 다리를 잡고 함께 땅에 넘어졌다.

“놔라! 케르케로우스의 사제!”

“안 돼! 못 가!”

건수는 땅에서 일어나 아직 쓰러져있는 알렉시스의 발목을 잡고 들어 올렸다. 그 다음, 그가 한 자리에서 바퀴의 축처럼 빙글빙글 돌자 그녀의 몸이 바닥에서 서서히 떠올라 풍차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휭휭휭-’

“이 미친놈아! 어지럽잖아. 어서 나를 놓아라!”

“안 돼! 케르케님의 몸만은 절대 가져갈 수 없어! 안 돼!”

건수가 점점 속도를 빨리 하며 제자리에서 마구 돌자 알렉시스는 원심분리기에 잘못 들어간 사람처럼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끄윽..... 날 놔라.....”

“안 돼!”

“와하하핫. 저건 또 뭐야. 무슨 프로 레슬링도 아니고 불새 성전 전사와 케르케로우스 신전 전사가 저렇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싸운다니! 이거 역사에 길이 남을 광경이로구만. 와하하하. 배꼽이야. 하하하!”

텔리는 건수가 알렉시스의 발목을 잡고 자이언트 스윙을 하는 어이없는 모습에 폭소했다. 저것이 과연 성인들, 그것도 성전의 용맹한 전사들이 싸우는 모습이라니.

건수는 일전에 죽은 지 오래된 케르케로우스의 뼈를 가지고 검은 방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 후 다시 육체가 부활한 케르케로우스를 만났기 때문에 죽은 케르케로우스가 검은 방에 들어갔다면 다시 부활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그의 사체를 가지고 나오려는 알렉시스를 사력을 다해 막는 것이었다. 그렇게 여러 바퀴를 돌자 그도 한계가 왔는지 알렉시스의 발목을 놓았다. 그리고 어지러움을 못 이기고는 그도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

‘휘익-’

‘퍽!’

그러자 알렉시스의 몸이 붕 날아서 머리가 담장에 부딪히더니 힘없이 땅에 쓰러졌다. 어지러움에 손을 이마에 대고 있던 건수는 그녀가 벽에 머리를 부딪히고 땅에 쓰러진 것을 보자 덜컥 겁이 났다. 그는 두려운 마음에 네 발로 기어가서 알렉시스를 보았다.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코에 손가락을 대보았다. 숨을 쉬는 것 같지 않았다.

“아....어쩌지. 숨을 안 쉬는 것 같은데.... 아....”

건수는 덜덜 떨면서 주위 사방을 둘러보았다. 사방에 자기를 보는 눈들이 있었다.

“아아...! 설마 죽은 거야? 설마..... 아아아악! 내가 사람을 죽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