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6 부. 솔로우스 - 56 화

솔로우스 – 56

지금 깃들어 있는 바비의 몸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줄곧 사용해왔던 자신의 육체의 모습을 한 괴생명체들이 다리를 붙잡고 있는 것을 본 텔리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놔! 이 자식들아! 내 다리를 놓으라고!”

그는 팔을 버둥거리며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는 괴생명체들이 잡고 있는 다리를 들어 올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세게 다리를 잡고 있었는지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 새끼들이 정말 열 받게 하네!”

그는 정신을 집중하고 다리에 힘을 모았다. 곧 그의 다리에서 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내 다리 놓으랬지! 에잇!”

그가 빛이 나는 다리를 움직이자 어두운 바닥 위로 나와 있던 괴생명체 중 하나의 몸이 ‘부욱-’하는 소리와 함께 뜯기면서 바닥에서 분리되었다. 그리고 쏟아져 나오는 온갖 물질..... 그러니까 더 자세히 말하자면 내장 같은 것들이 바닥에 뿌려졌다. 그 녀석은 입에서 소름끼치는 소리를 냈다.

“끼에에에엑-!”

한 생명체가 그렇게 처리되어 한 쪽 다리가 자유롭게 되자, 텔리는 그대로 자신의 반대쪽 다리를 붙잡고 있는 두 괴생명체의 머리를 빛나는 다리로 밟았다.

‘퍽! 퍽! 퍽!’

“이 자식들! 이 징그러운 자식들! 죽어! 죽어!”

텔리는 거의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그는 살육의 신이라는 타이틀에 어울리게, 지금까지 누군가의 생명을 끊을 때 이성을 잃는 모습을 보인 적이 거의 없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괴생명체들을 노려보는 그의 두 눈에 살기가 가득했다. 그의 모습을 한 녀석들이 진심으로 혐오스러웠던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생겼다. 죽은 괴생명체들의 몸을 비집고 또 다른 새로운 괴생명체들이 바닥 아래서부터 다시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들은 올라오자마자 손으로 텔리의 다리를 붙잡았다. 그렇게 그들이 바닥에서 쑥쑥 올라오는 모습은 마치 여름에 잡초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뭐야? 이런 놈들이 밑에 더 있었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퍽! 퍽! 퍽! 퍽!’

텔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발로 괴생명체들의 머리를 밟았다. 그 때마다 그들의 머리는 마치 망치로 때린 수박처럼 ‘퍼석!’ 소리를 내며 깨져버렸다. 텔리 주위에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피와 온갖 물질들로 지저분해졌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다.

“헉... 헉... 헉... 헉...”

겨우 두 다리가 자유로워진 텔리는 허리를 굽혀 거친 숨을 쉬어댔다.

“아.... 이 바비 놈의 몸뚱아리는 정말...... 헉헉헉... 정말 쓸모가 없군. 평소에 운동을 한 번도 안 한 몸이야.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는구먼. 헉헉헉. 한 마디로 너무 후졌어. 그에 비하면 이전에 사용하던 몸이 정말 맘에 들었는데...... 헉헉헉. 방금 저 역겨운 녀석들 때문에 다시 사용하고 생각이 싹 사라졌어. 제길!”

그는 다시 허리를 펴고 이디레이아를 노려 보았다.

“이제 네년 차례다. 날 이런 식으로 모욕하다니, 절대 용서하지 않겠어. 아주 갈기갈기 찢어주마! 이디레이아!”

그의 말을 들은 이디레이아는 다시 한 번 두 어깨를 올렸다 내려놓으며 텔리가 별로 무섭지 않다는 듯한 제스쳐를 취했다. 그녀의 도발에 더욱 화가 난 텔리는 크게 소리치며 그녀에게 달려갔다.

“죽어라! 이디레이아!”

그러자 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어둠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 여기저기서 손과 팔이 쑥쑥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아무 것도 없는 공기 중에 갑자기 수십 개의 손이 나온 것이었다.

“아니!”

텔리는 깜짝 놀라 달려가던 것을 멈추었다. 그 주위에 뻗어 나온 팔들과 손들은 그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 그것들의 목적은 한 가지였다. 바로 이디레이아를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손에 이어 팔이 나온 다음엔 상반신이 쑥 빠져나왔다. 이번에도 괴생명체들은 뉴욕에서 온 텔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탤리는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히익! 뭐.... 뭐야? 내가.... 아니, 너희들이 더 있었어? 도대체 얼마나 더 있는 거야?”

텔리가 손에 힘을 집중하고 아래로 뻗자 그의 손에서 하얀 빛을 내는 실이 하나 스르륵 내려왔다. 그는 그 실을 마치 채찍처럼 휘둘렀다. 그 빛의 채찍이 닿을 때마다 괴생명체의 몸은 마치 두부가 잘리듯이 잘려버렸다. 물론 잘린 녀석들의 몸에서 온갖 것들이 피와 함께 아래로 떨어진 것은 당연하다.

텔리는 빛의 채찍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그 때마다 괴생명체들은 하나씩 죽어나갔다. 그리고 온 사방이 그들의 조각들로 가득하게 되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다.

“후우우......”

어느 정도 많은 수의 괴생명체들이 처리되자, 텔리는 마치 클로브 담배를 피울 때처럼 연기를 내뿜는 시늉을 냈다.

“아... 담배가 땡긴다. 땡겨! 정말! 응?”

텔리는 지쳤는지 눈을 한 번 질끈 감더니 위를 쳐다보았다.

“뭐... 뭐야!”

그의 머리 위에는 수십, 아니 수백의 콧수염 텔리들이 아무 것도 없는 어두운 공간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 중엔 한 데 모여 뒤엉킨 채로 마치 천정에 매달려있는 샹들리에 같이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온 사방에서 괴생명체들이 그를 붙잡으려고 튀어 나온 것을 보니 텔리는 기가 막혔다. 수가 너무 압도적으로 많았다. 평소의 몸 상태라면 또 모를까, 지금 지쳐있는 그가 도저히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가 이디레이아에게 물었다.

“야, 이디레이아! 넌 내게 무슨 악감정이 있어서 이러는 거냐? 도대체 네가 원하는 게 뭐야?”

이디레이아는 한손으로 머리카락을 이마에서 뒤로 쓸어 올렸다. 그리고는 그런 질문을 한 텔리가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면서 대답했다.

“내가 원하는 게 뭐냐고요? 아니, 이런...... 왜 했던 얘기를 또 하게 만들지? 내가 원하는 건 당신과 당신 일행이 여기 와서 자리에 앉는 겁니다. 아까 계속 얘기했잖아요.”

“뭐?”

텔리는 그녀의 말에 기가 막힌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미스터 황을 바라보았다. 그는 황당하다는 듯 그의 사제를 바라봤다. ‘겨우 그렇게 간단한 일을 가지고 이런 상황을 만든 거야?’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자 미스터 황이 한쪽 눈을 찡그리며 텔리에게 말했다.

“절 왜 그런 표정으로 보세요. ‘뭐 겨우 그런 거였냐?’ 이런 생각하시는 거예요? 여신님 얘기가 맞아요. 처음부터 의자에 앉으라고 하셨다고요. 그것뿐이었어요. 그런데 텔리님께서 이렇게 난리를 피우신 거라고요.”

“.......”

“지금 와서 ‘내가 그랬었나?’라고 생각하셔도 소용없어요. 다 텔리님이 시작하신 거라고요. 그리고 이런 일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으세요? 전 텔리님을 뵌 지 얼마 되진 않지만 벌써 이런 일을 셀 수도 없이 경험했어요. 아, 솔직히 이젠 이런 일이 생기는 거요. 진짜 지긋지긋해요!”

“.......”

그래, 미스터 황의 말이 맞다. 텔리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자, 미스터 황이 짧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어서 우리 그냥 저기 가서 의자에나 앉자고요.”

텔리는 썩 기분이 좋은 얼굴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지금 당장 미스터 황을 죽여버리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있는 곳은 이디레이아의 공간이었다.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조금 전에 다 깨닫지 않았던가. 그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이디레이아가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