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5 부. 만월의 밤 - 54 화

만월의 밤 – 54

케르케로우스가 몸에서 다시 빛을 내고 있고, 쓰러졌던 건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릴리카 쪽 병사들이 겁을 먹고는 조금씩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또 그 웅덩이를 흐리는 미꾸라지 같은 목소리 큰 병사가 뒤에서 소리쳤다.

“뭐 하는 거야? 왜 압박을 풀어? 첩자들 체포 안 할 거야?”

제일 앞에서 데디쿠스 쪽 병사들과 대치하던 녀석이 뒤를 향해 소리질렀다.

“하... 하지만 늑대 신수와 그 사제가 있는데...?”

그가 어쩔 줄 몰라 하자 주변의 병사들 중에는 긴장했는지 쿨럭쿨럭 헛기침하는 자도 있었다. 양 측 모두 한껏 긴장해서는 추운 겨울밤 산속에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 * *

그때였다. 아까 케르케로우스에게 맞고는 쓰러져있던 릴리카가 머리를 잡고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우욱...!”

그녀는 여전히 머리가 어지러운지 중심을 못 잡고 휘청거렸다.

“아.... 이런. 하늘과 땅이 막 요동을 치는구나. 그나저나 이 가문의 보물이라는 물건이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죽을 뻔했다. 오늘, 이 물건이 날 몇 번이나 살려주는구나. 라볼타 그놈에게 진심으로 고마운걸? 그 녀석의 시답잖은 예언 덕분에 이걸 챙겨입게 되었으니.”

그녀는 겨우 눈을 뜨고 건수가 있었던 장소를 쳐다봤다. 그곳엔 병사들이 모여 빛을 내고 있는 케르케로우스와 다른 사람들을 포위하고 있었다.

“뭐야...? 지금 저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 * *

쓰러졌던 릴리카가 비틀거리며 일어서자 병사들은 모두 그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서 있는 것을 보자 목청 큰 병사가 기뻐하며 소리 질렀다.

“저기 봐봐! 릴리카님이 일어나셨다. 늑대 신수의 공격을 받고도 살아계셔! 봐라! 저런 분이 우리의 대장님이시다! 릴리카님과 그 부대는 불사신이다! 와아!”

데디쿠스가 몹시 놀라워하며 말했다.

“세상에....! 신수의 공격을 받고도 살아남았다니. 릴리카, 저 여자는 사람이 맞나?”

붉은 수염의 헨리는 여전히 정면에서 대치하고 있는 병사에게 눈을 떼지 않으며 데디쿠스에게 말했다.

“혹시 그 가문의 보물인가 하는 그 그물 옷 덕분이 아닐까? 상당히 특별한 마법이 걸려 있는 것 같은데?”

히메이오스 역시 정면의 병사를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그래도 신이나 신수의 공격을 받고 살아남은 사람의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 만약 그 보물 덕분에 신수의 공격을 버텨낸 거라면 정말이지 호기심이 생기는군. 꼭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물건이야. 진짜.”

사실 지금 떠들고 있는 불새군 삼총사보다 더 놀라고 있는 자는 바로 그녀에게 직접 공격을 가한 케르케로우스였다. 그는 연신 혓바닥을 낼름거리고 있었다. 왠지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을 건수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자, 케르케로우스가 그의 사제에게 말했다.

“야,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 사실 아까 널 구하려고 저 여자 전사를 공격했는데 그게 잘 안 됐나 봐.”

“.....아, 예.”

“사실 진짜 죽일 마음으로 공격했는데, 음.... 뭐가 잘못됐던 거지? 아이, 참. 내가 이렇게나 힘이 약한 신수였나? 하하하... 영 민망하구먼. 쩝.”

“아녜요. 전 케르케님보다 훨씬 많이 공격했는데요. 단 한 번의 공격도 먹히지 않았어요. 그러니 케르케님이 잘못하신 게 아니에요. 그냥 저 여자가 무식하게 강한 거라고요.”

“그.... 그치? 내가 뭐가 문제겠어. 저 여자가 너무 비정상적으로 강한 거야. 그래도 난 신수인데 사람보다 약하다고 하니까 좀 부끄럽다. 쩝. 쩝. 쩝.”

케르케로우스는 진심으로 부끄러워하는 건지 쉬지 않고 혓바닥을 낼름거렸다. 낼름... 낼름... 낼름... 낼름.

* * *

릴리카가 일어서서 비틀거리자 그녀의 경호를 담당했던 최측근 병사들이 달려가 그녀를 부축했다. 그들은 그녀를 경호하며 그녀 편을 들고 있는 병사들의 뒤로 이동했다.

“릴리카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물론이지. 약간 어지러울 뿐이야. 너희 중에 누구든 비알리쉬크바를 가지고 있다면 이리 좀 줘봐.”

그녀의 요청에 최측근 병사들 중 하나가 품속에서 작은 빨간 돌을 꺼냈다. 릴리카는 잠시 그 돌을 머리에 대고 힘을 집중했다.

“아아. 그래 금방 나아지는군. 그나저나 내가 쓰러져 있던 중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은데,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건가?”

“데디쿠스가 적 앞에서 무기를 내려놓은 후, 계속 전사들에게 케르케로우스에게 항복하자고 선동하던 중에 바메파논이 놀라운 웅변술로 다른 병사들을 결집시켰습니다. 그 뒤로 양쪽이 대치 중입니다. 케르케로우스와 그의 사제는 데디쿠스 뒤에 숨어있습니다.”

“음. 그렇군. 그러니까 우리가 둘로 나뉜 거로군.”

“저쪽은 데디쿠스와 그 친한 동료들을 포함하여 10 명 정도입니다.”

“저런 병신 놈들. 지금 단 한 명도 아까울 이 상황에! 비켜봐. 내가 지휘하겠다.”

릴리카는 빌린 비알리쉬크바를 돌려주고는 병사들 앞에 섰다. 그녀가 나타나자 병사들은 양 갈래로 흩어지며 그녀에게 길을 내주었다. 그녀가 아까 공격을 받기 전과 같이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데디쿠스와 뜻을 같이하는 병사들은 몹시 두려워했다. 그녀는 경쾌한 걸음걸이로 데디쿠스 쪽 병사들에게 걸어가면서 그들을 쳐다봤다. 그들의 눈동자 속에 공포심이 가득했다. 그녀는 10 명을 보면서 피식 웃더니 말했다.

“그래. 너희들은 내가 죽기를 바랐겠지. 하지만 난 이렇게 멀쩡히 잘 살아있다. 케르케로우스의 기습은 내게 통하지 않았어. 그게 다 위대하신 불새의 신수 에피로제님께서 내게 불어 넣어주신 힘 덕분이다!”

음. 아니잖아. 불새의 은총 때문만은 아니고 네 가문의 보물 덕도 있잖아. 그녀는 병사들이 보라는 듯, 멋지게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고 난 후 말을 이었다. 병사들은 어찌 됐든 인간인 그녀가 신수의 공격을 받고도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 감동하여 환호성을 질렀다.

“자, 난 너희들 반란 세력에겐 더는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너희들 모두는 여기서 내 손에 죽어!”

그녀는 말을 마침과 동시에 옆에 서 있던 병사의 손에서 칼을 뺐더니 그녀 앞에 있던 다른 병사의 목에 칼을 꽂아 넣었다.

“컥!”

입과 목에서 피를 흘리며 땅에 쓰러진 병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즉사해 버렸다. 그의 주변에 있는 나머지 반란군은 꼴사납게도 손을 덜덜 떨며 아무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릴리카는 그들을 보고 쓴웃음을 짓더니 뒷걸음질을 하며 옆에 있는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저 쓰레기들을 전부 죽여버려!”

“옛!”

릴리카의 명령이 떨어지자, 주위의 그녀 병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데디쿠스의 병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양 측의 병사들은 서로 뒤섞여 격렬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 * *

케르케로우스와 불새군 양 세력이 싸우기 시작한 지 꽤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검은 늑대 베토케로우스는 카베쿠스에게 명령을 내렸다.

“재밌는 구경을 하게 되는구나. 의외로 불새군의 대장이 케르케로우스를 상대로 잘 싸우고 있다. 하지만 저들이 케르케로우스를 상대하기는 역부족이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검은 방의 문이 닫힐 수도 있겠다. 그렇게 되면 내가 검은 방을 되찾기 까다로워지겠지. 카베쿠스, 너와 네 늑대들도 나가서 릴리카를 도와줘라.”

“예, 주인님. 그런데 저 한심한 인간 놈들이 생긴 게 다 거기서 거기라서 어느 쪽이 릴리카 편인지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쿠쿠쿠. 상관없다. 케르케로우스를 목표로 하되, 방해되는 놈이 있으면 그냥 죽여버려라.”

“예. 주인님.”

베토케로우스의 명령이 떨어지자, 애꾸눈 늑대 카베쿠스는 하늘을 보고 길게 울었다.

“어우우우우~!”

그러자 그 장소 주위에 대기하고 있던 모든 늑대들이 길게 울며 카베쿠스의 신호에 응답했다. 곧 수십, 수백 마리의 검은 늑대들이 사납게 짖으면서 숲속에서 뛰쳐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