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6 부. 솔로우스 - 77 화

솔로우스 – 77

자신의 등 뒤에서 텔리를 발견하자 화들짝 놀란 솔로우스는 몸을 움찔거렸다. 너무 놀라 몸이 그만 굳어 버린 것이었다. 텔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검게 변한 자신의 팔을 뻗어 화염 속으로 집어 넣은 다음 솔로우스의 목을 틀어쥐었다.

“으윽! 아니.... 어떻게.....!”

텔리의 검은 손이 자신의 목을 조르자, 솔로우스는 크게 당황했다. 그의 길고 흰 눈썹이 올라가며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의 두 눈을 드러냈다. 텔리는 한 쪽 입꼬리를 위로 올리며 미소를 보였다.

“이 자식아! 감히 네가 나를 공격해? 응?”

목을 조르고 있는 손에 힘을 주면서 텔리가 말했다.

“자식아! 먼저 저 세상으로 가서 에피로제의 둥지나 하나 만들고 있어. 그래, 맞아. 내가 그 건방진 불새 놈을 다시 만나면 다시는 부활할 수 없게 완전히 죽여 버릴 거니까!”

“컥! 컥!”

텔리는 비록 양 발과 한 팔만을 암흑의 육체로 변화시킨 것이지만, 얼마나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일을 빨리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솔로우스가 두 손으로 텔리의 손을 떼어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텔리의 손에 들어간 힘은 점점 세지는 것이었다.

“그만 가라! 망할 놈아!”

“끄윽... 끅..... 에피... 로... 제....님!”

솔로우스는 두 손을 자신의 이마에 갖다 대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한 마디를 말했다.

“나... 와... 함께..... 가자.... 살육신....!”

대사제의 이마에서 빛이 번쩍하고 뿜어져 나왔다.

“어엇! 이 미친놈이 진짜!”

순간 텔리는 솔로우스가 무슨 일을 저지르려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몸에 있는 힘을 전부 터트리면서 텔리와 함께 죽을 작정을 한 것이었다. 텔리는 솔로우스의 목을 조르던 손을 놓고 재빨리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솔로우스의 몸으로부터 엄청난 양이 빛이 뿜어져 나왔다.

“아앗! 안 돼!”

그는 고개를 돌리며 소리 질렀다. 그의 눈앞이 금세 새하얀 빛으로 채워졌다. 동시에 뜨거운 열기가 몰려와 그를 뒤덮었다.

* * *

솔로우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점점 커져서 반구형의 하얀 빛 덩어리가 되었다. 그 빛의 덩어리는 텔리와 솔로우스의 주변을 캡슐처럼 감쌌다. 그리고 그 빛의 덩어리는 점점 부풀어 오르며 터질 듯 했다.

그때였다.

‘콰아아아아-!’

검은 방의 입구에서 주위의 어둠보다도 더 시커먼 물질이 마구 터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온 사방을 뒤엎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치 태풍이 상륙한 바다의 성난 파도가 작은 바위를 덮치듯, 위에서부터 텔리와 솔로우스를 둘러싸고 있는 하얀 빛 덩어리를 그대로 삼켜버렸다.

검은 방의 입구에서 쏟아져 나온 그 시커먼 물질은 다름 아닌 검은 방의 암흑이었다. 그것은 숲 속의 어둠보다도 더 검은 것이었다. 암흑은 삽시간에 주위를 모두 시커멓게 뒤덮었는데, 그 범위는 검은 방의 입구로부터 몇 백 m 반경, 아니 그 보다 더 넓은 지역에까지 이르렀다.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 그러니까 땅 위에 있는 산 것과 죽은 것 모두를 눈 깜짝할 새에 완벽하게 덮어버렸다. 암흑은 칠흑같이 어두운 것이었기에, 그곳은 마치 땅 위에 우주의 어두움이 깔린 것 같았다. 모든 것이 공허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듯 했다.

“콰아아아......”

솔로우스가 생명을 내던지며 만들었던 반구형의 빛의 덩어리는 암흑 속에서 잠시 주변을 흔들더니 그리 크지 않은 소음과 함께 소멸해버렸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방의 입구에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더니 암흑이 덮고 있는 범위의 땅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연기는 정확하게 암흑이 뒤덮은 곳까지 퍼지더니, 위로는 하늘까지 닿아서 밤하늘을 새카맣게 가려버렸다. 더 이상 밤하늘의 달빛과 별빛이 그 아래 땅을 비추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보통의 연기라면 점점 더 넓은 지역으로 퍼져나갔을 것이었는데, 검은 방의 입구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는 정확하게 한정된 구역까지만 퍼지는 것이었다. 그 한정된 구역은 정확하게 땅 위에 있는 암흑이 덮고 있는 영역까지였다. 곧 연기는 암흑이 뒤덮은 영역을 위 아래 구분없이 시커멓게 만들어버렸다. 그건 마치 투명한 유리 상자 안에 검은 연기를 가득 주입한 것 같다고나 해야 할까? 그렇게 그 일대는 암흑과 검은 연기가 검은 박스를 씌운 것 같이 되어버렸다. 일단 그토록 완벽하게 빛을 차단해버렸으니, 혹시라도 누군가 그 안에 있다면, 아마도 자신이 불이 꺼진 어두운 방에 들어와 있다고 착각할 수 있을 정도였다. 즉, 암흑과 검은 연기는 그 일대를 빛도 소리도 없는 공간인 검은 방과 비슷한 환경으로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잠시 후, 누군가가 어두운 암흑의 공간 바로 앞에까지 걸어왔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신기 할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는 운명의 여신, 이디레이아였다. 그녀는 검은 연기가 만든 벽 바로 앞까지 걸어오더니, 암흑과 검은 연기가 뒤덮인 곳에 발을 들이려고 했다. 하지만 고개를 양 옆으로 짧게 흔들며 포기했다.

“암흑은 몰라도 이 검은 연기만큼은 나라도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으니까 말이야. 아무래도 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포기해해야겠어. 어흠... 흠.”

그녀는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입을 열었다.

“호호호. 암흑과 검은 연기라니... 설마 이 땅에서 이런 풍경을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이렇게까지 급하게 일을 처리하다니...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인데요?”

이디레이아는 도대체 누구에게 말을 거는 것이었을까? 그녀는 손을 뻗어 검은 연기로 되어 있는 벽에 손가락을 찍어 보았다. 그리고는 재빨리 손을 거두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이 검은 연기는 아주 독성이 대단하군요. 그 만큼 당신의 상태가 몹시 불안정하다는 거겠죠? 안 그렇습니까? 검은 방의 수호자? 말씀을 좀 해보시죠?”

이디레이아가 ‘검은 방의 수호자’란 단어를 언급하자,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던 검은 연기로 되어 있는 벽이 꿈틀하면서 움직였다. 그러더니 검은 연기가 공간 안에서 소용돌이치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디레이아는 그것을 보고 희미한 미소를 짓더니, 말을 이어갔다.

“아니, 제가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데 제대로 반응을 보여주시라니까요?”

그러자 검은 연기 속에서 날카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듣는 사람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우면서도 못으로 철판을 긁는 것 같은 기이한 소음이 섞여 있었다. 아마 보통 사람이 그 목소리를 들었다면, 십중팔구는 손으로 귀를 막았을 게 분명했다.

“지지직.... 이디레이아..... 돌아가라.... 이곳은 네가 올 곳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