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6 부. 솔로우스 - 26 화

솔로우스 – 26

그 시각, ‘텔리의 공간’ 안에 있던 텔리와 그 일행들은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만약 알고 있었더라면 그들은 분명 그곳에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아까 미스터 황이 텔리와 알렉시스에게 검은 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을 때, 텔리는 왜 그 얘기를 늦게 말해줬냐며 역정 냈지만, 파괴의 신, 바이베노파시스가 밖에 있을지 모른다며 어떻게 그를 상대할지 고심했다. 검은 방의 일은 고향에 돌아가는 일에 관한 것이어서 중요한 일이었고, 부활한 바이베노파시스와 맞서는 일은 그의 목숨과 관련한 일이어서 그에 대한 대비가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텔리는 자신의 새로운 육체를 여기저기 만져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에이.... 이런 육체로는 도저히 바이, 그놈을 상대할 수 없어. 이건 말도 안 돼.”

알렉시스도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 눈에도 근육도 하나 없이 배가 나오고 둔해 보이기 짝이 없는 텔리의 새로운 육체를 보니 도저히 전투를 수행하기에 적합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텔리는 그녀의 시선을 감지했는지, 그녀를 보고 물었다.

“알렉시스는 넌 이 육체를 보고 어떻게 생각해? 난 솔직히 이 육체로는 부활한 바이베노파시스를 상대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알렉시스는 잠시 말이 없다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신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육체가 그것밖에 없지 않습니까? 음....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 육체라도 쓰시겠습니까?”

“뭐?”

텔리는 깜짝 놀라며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멍청아. 그 얘긴 내가 널 죽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네 몸을 쓸 수 있는 거야!”

“예. 그렇게 되더라도 신께서 필요하시다면.....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하나만 제게 약속해주십시오. 지금 후안이 어떤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를 구해주십시오. 그러면 제 몸을 드리겠습니다.”

“하아아.... 뭐야? 이건 뭐 멍청함의 새로운 단계인가?”

텔리는 어이없어 하며 그만 고개를 돌려버렸다.

“알렉시스, 난 불새가 아니야. 그 녀석이라면 혹시라도 널 다시 부활시켜 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게 그런 능력은 없다. 맞아, 네 몸이라면 조금이나마 바이 녀석을 상대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 그것만 생각한다면 난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널 죽이고 몸을 빼앗을 수 있을지 몰라. 하지만 너가 아무리 네 목숨을 희생해서 내게 몸을 바친다고 해도 내가 후안을 구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난 신이라서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없어. 그리고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는 것도 거짓말이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다시 긴 한숨을 쉬더니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자신의 다른 육체가 있는 석실의 한 모퉁이로 걸어갔다. 알렉시스와 미스터 황도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는 나직이 혼잣말을 했다.

“에이,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좀 근사한 육체를 몇 개 더 구해 놓을 걸.”

그 말을 들은 미스터 황은 얼굴을 찡그렸다.

“그 말씀은 사람을 죽이겠다는 거잖아요? 사고로 죽거나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의 육체를 빼앗는 것도 윤리적으로 말도 안 되는데, 그게 말이나 됩니까?”

그러자 텔리가 고개를 돌려 험한 얼굴 표정을 하고는 미스터 황을 째려봤다.

“아으..... 진짜 생각 같아선 자꾸 혀를 함부로 놀리는 자식을 콱 죽여 버리고 그 몸을 갖고 싶다만.....”

“히익! 뭐라고요?”

텔리는 미스터 황을 아래위로 스윽 쳐다보더니 피식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

“네놈 몸이나 이 몸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아서 관둔다. 아휴..... 한심한 녀석. 몸 꼬라지가 그게 뭐냐?”

“뭐라고요? 지금 그 배불뚝이 중년의 몸과 아직 30대인 제 몸을 비교하시고 말씀하신 거예요? 어이가 없네.”

텔리는 대꾸도 하지 않고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리더니 자신의 육체가 누워 있는 유리관 앞으로 걸어갔다.

“흐음.... 일단 메이크바부터 회수해야겠지.”

그는 몸통이 크게 훼손당한 육체에 양 손을 가져가더니 벌어진 상처에 푸욱 쑤셔 넣었다. 미스터 황은 그 모습이 너무 징그러워서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딴 데로 돌렸다.

‘꾸륵.... 꾸륵....’

텔리가 자신의 육체의 뱃속에 넣은 손을 움직일 때마다 내장이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유리관 안에는 육체에서 다량의 피가 흘러나왔다. 그가 손을 빼자, 그의 양 손엔 피 묻은 작은 물건들이 들려 있었다. 하나는 노란색의 작은 돌이었고 또 하나는 미스터 황이 사용하던 옴니테바였다.

“에이..... 뭐, 일단 이것들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텔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그 피 묻은 물건들은 입에 넣고 꿀꺽 삼켰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석실의 한 부분을 가리키더니 미스터 황을 보더니 말했다.

“야, 쾅식아. 저기 저쪽으로 가보면 소총 한 자루가 있을 거거든? 알렉시스랑 함께 가서 그걸 찾아서 좀 가져와봐라.”

“예? 소총이요?”

미스터 황과 알렉시스는 텔리가 가리키는 곳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알렉시스가 손에서 불을 일으켜 주위를 비추자 어두움 속에서 물건더미가 나타났다.

“음.... 총이라.... 드디어 저 양반이 현대 문명인답게 싸우려고 하는 건가?”

미스터 황은 오랫동안 여기 저기 파헤쳐 보다가 바닥에 깔려 있던 소총을 발견하고는 집어 들었다.

“오, 이건가 보네. 와, 이거 M16이잖아? 텔리님! 소총 찾았어요!”

그러자 구석에 있던 텔리가 대답했다.

“좋았어. 거기 탄창에 총알도 있을 거거든?”

미스터 황은 탄창을 빼보았다. 텔리의 말대로 총알이 들어있었다.

“네. 있어요!”

“좋았어. 너 군대에 있었으니까 총 쏠 줄 알지? 거기서 나한테 총을 쏴봐.”

“총이야 쏠 줄 알지만...... 예? 텔리님께 쏘라고요?”

“그래. 나한테 쏴.”

텔리는 그렇게 말하더니 눈에서 하얀 빛을 뿜어냈다. 어두움 속에서 자기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미스터 황은 지금 텔리가 하는 말이 잘 이해가지 않았다. 다짜고짜 자기에게 총을 쏘라니.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에이, 설마 살육의 신인데 별 일 있겠어? 별별 이상한 재주도 많이 가지고 계시더만.’

미스터 황은 노리쇠 후퇴 고정 후 탄창을 결합했다. 그리고 노리쇠멈치를 눌러 탄알을 장전한 후 어둠 속에서 텔리의 눈이 빛나는 곳을 향해 겨눴다. 그리고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조정간을 연발로 놓고는 갈겨버렸다.

‘타타탕-! 타타타타탕-! 타타타타...... 틱.’

총성이 어두운 석실을 가득 채웠다. 탄피가 마구 튀어 나왔다.

“와우-! 총 쏘는 거 오랜만이네. 허허허.”

미스터 황은 놀란 얼굴을 하며 웃어댔다. 그런데 갑자기 텔리가 그의 앞에서 불쑥 나타나더니 손을 뻗어 살짝 뒤로 밀어버리는 것이었다.

“어억!”

미스터 황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튕겨나가 돌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텔리는 화가 났는지 씩씩 거리면서 소리를 질렀다.

“야, 이 미친놈아. 신호도 안 보냈는데, 왜 갑자기 연발로 갈기고 지랄이야! 깜짝 놀랐잖아! 메이크바가 잘 작동하는 지 보려고 총을 한 번만 쏘라고 한 건데, 만약 방어막이 잘 가동되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어!”

미스터 황은 허리를 잡고 일어나며 억울한 듯이 말했다.

“어휴. 실수에요! 연발인줄 모르고 방아쇠를 당겼던 거에요. 처음엔 저도 놀랐는데 텔리님이야 워낙에 무적이시니까 괜찮으실 줄 알았죠. 그리고 저한테 불빛으로 신호도 주셨잖아요? 그건 이미 준비가 끝나셨던 거잖아요?”

“너가 놀라긴 뭘 놀라! 너 인마 일부러 나 놀래키려고 그런 거지? 신호를 기다렸어야지! 이 자식이 말이야. 날 한 번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려고 수를 써?”

“오해입니다! 오해! 실수한 거라고요.”

옆에서 둘을 지켜보던 알렉시스는 이러다간 끝이 없겠다 싶어서 둘 사이에 껴들었다.

“신이시여, 부족한 사제의 일이 급한 것이 아닙니다. 검은 방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하면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어서 서두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텔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시스, 네 말이 맞아. 이런 시시한 녀석에게 시간을 허비할 게 아니지. 자, 다들 내 손을 잡아라. 함께 밖으로 나가자.”

텔리가 양손을 내밀자 미스터 황과 알렉시스는 각각 그의 손을 잡았다. 잠깐 그들의 눈앞이 깜깜해지는가 싶더니 몸이 공기 중에 붕 뜨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깜깜했던 시야가 서서히 돌아오자, 미스터 황과 알렉시스는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미스터 황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아까 함께 있었던 데디쿠스를 찾았다.

“뭐야... 그 불새군 녀석. 우릴 기다릴 줄 알았는데 그새 어디로 가 버린 거야?”

알렉시스도 혼자 사라진 데디쿠스를 걱정했다.

“데디쿠스가 어딜 간 거지? 이 주변이 아직 안전한지 알 수가 없으니 이왕이면 우리와 함께 움직이는 편이 나을 텐데.”

텔리가 주머니를 뒤지며 클로브 담배를 찾다가 지금 들어가 있는 바비의 옷에는 담배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만사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그의 일행에게 말했다.

“쩝. 얘들아. 오늘 밤은 이것저것 일도 많은데다가 잘 풀리지도 않으니 난 슬슬 짜증나기 시작한다. 그 불새군 녀석은 그냥 놔두고 우린 어서 검은 방에나 가보자. 거기만 괜찮은지 확인한 다음엔 이 산에서 내려가서 좀 쉬고 싶다. 그리고 아.... 담배가 똑 떨어져서 말이야. 마음이 막 불안해진다. 빨리 뉴욕으로 돌아가고 싶네.”

알렉시스는 사라져버린 데디쿠스를 더 찾고 싶었지만 텔리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셋은 검은 방의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