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5 부. 만월의 밤 - 58 화

만월의 밤 – 58

베토케로우스는 멀리서 케르케로우스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케르케로우스가 옴니테바를 몸속에 가지고 있는 검은 늑대들을 상대로 고전하는 것을 보고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케르케로우스, 어서 진짜 실력을 보여라. 설마 검은 방에서 몸을 받은 네가 저 녀석들의 메이크바 따위를 뚫지 못해서 쩔쩔매는 건 아니겠지?”

그의 붉은 눈이 번쩍이면서 이마 한가운데서 하얀빛이 났다. 그는 그와 정신적으로 연결된 늑대들의 마음속으로 직접 명령을 내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지시에 따라 일반 늑대들은 뒤로 물러서고 옴니테바를 몸에 지닌 늑대들만 케르케로우스 주위로 모여들었다. 베토케로우스는 입맛을 다시며 혼잣말을 했다.

“자, 케르케로우스, 네놈에게 옴니테바를 가진 녀석들만 골라서 보냈다. 내가 이렇게까지 신나는 자리를 마련해줬으니 이제 넌 거기에 어울리는 춤을 춰야지? 흐흐흐.”

* * *

케르케로우스는 이미 옴니테바를 지닌 몇 마리의 늑대와 고전하는 중이었는데, 사방에서 새로운 검은 늑대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새카맣게 달려오는 늑대들을 보고 하도 기가 막혀서 꽥 소리를 질렀다.

“야! 여기 있는 늑대들만으로도 난 너무 벅찬데 이건 너무 하잖아!”

옴니테바를 지닌 검은 늑대들은 처음에는 두 마리에서 네 마리로, 그리고 여덟 마리로 불어났다. 곧 케르케로우스의 주변은 온통 그 특별한 검은 늑대들로 가득하게 되었다. 그들이 동시에 그를 공격했지만, 그들은 도저히 그의 빠른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했다. 그는 점점 속도를 높여갔는데, 움직임이 너무 빠른 나머지 시력이 좋은 늑대들조차 그의 위치를 파악하기 힘들어했다. 늑대들에게 타격을 입힐 때 발동되는 옅은 노란색의 방어막을 본 후에야 그가 어디쯤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케르케로우스는 지치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늑대들을 때려눕혔다. 하지만 메이크바가 발동되어 그들을 보호하는 바람에 그들은 쓰러졌다가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일어나는 것이었다. 케르케로우스는 고개를 저으며 저 멀리서 자신을 보고 있는 베토케로우스를 향해 외쳤다.

“베토케로우스, 이건 말도 안 돼! 이 녀석들은 맞아서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나는데 어떻게 싸우라는 거야? 그러니까 그만 좀 보내라고!”

* * *

멀리서 그를 지켜보고 있는 베토케로우스는 지금 마치 무슨 경기를 즐겁게 관람하는 듯이 쿡쿡 웃어댔다.

“저 녀석, 쓸데없이 시간을 소비하는데? 아무래도 검은 문이 닫힐 때까지 시간을 끌려고 하는 작전인 게 뻔히 보이는데 말이야. 그게 다 쓸모없는 짓이라는 걸 모르는가 보군. 혹시 그런 것이 아니라면 지금 상대하고 있는 늑대들의 수가 너무 적어서 그런 건가? 왠지 꼭 지금 상황을 즐기는 것 같은 모습이야. 그렇다면 더 보내줘야지.”

베토케로우스는 더 많은 늑대를 케르케로우스에게 보내기 위해 늑대들에게 명령했다. 다시 한번 그의 눈에서 붉은빛이, 이마에서는 하얀빛이 났다.

“자... 나의 늑대들아. 저 멍청한 케르케로우스가 한 자리에서 꼼짝하지 못하도록 옆에서도 위에서도 그를 둘러 쌓아라. 쉬지 않고 공격해서 어서 그가 지치게 만들어라. 그는 끝내 항복하고 스스로 내 앞에 걸어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 내가 그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주고 손수 목을 칠 것이다. 크하하하.”

* * *

베토케로우스가 명령을 내리자, 더 많은 늑대가 그에게 몰려오는 것을 본 케르케로우스는 그 중에 유독 눈에 띄는 늑대 한 마리를 보았다. 바로 베토케로우스의 부관인 카베쿠스였다.

“어... 오! 저 녀석은 좀 특별한 놈인데. 베토케로우스 옆에 늘 붙어 있던 녀석이지. 게다가 뒤따라 오고 있는 건 에뮤니우스가 아닌가. 저놈들까지 내게 온다면 일이 정말 복잡해지겠다. 그럼 큰일 나지.”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모든 방향에서 달려드는 검은 늑대들의 공격을 피했다. 그는 부지런히 반격했지만, 번번이 메이크바가 발동되는 바람에 별 소용이 없었다.

“이놈들아! 난 아예 느리게 공격하는 방법을 모른단 말이야! 도대체 메이크바 같은 요상한 물건은 누가 만들어서 날 이렇게 고생시키는 거야! 큰일났네. 에잉!”

케르케로우스는 위기 상황이라고 말하면서 말투는 느긋하기 짝이 없었다.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아니면 아직도 숨겨놓은 비책이 있는지, 누가 옆에서 본다면 헷갈릴 정도였다.

케르케로우스가 정면에서 늑대를 공격하고 있을 때였다. 측면에서도, 후면에서도 여러 마리의 늑대가 동시에 뛰어올라 그에게 날카로운 발톱을 들이댔다.

“어이쿠!”

아무리 몸놀림이 몇 배는 빠른 케르케로우스도 이번만큼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비명이 새어 나왔다.

‘콰직!’

그런데, 그때 측면에서 뛰어올랐던 두 마리의 검은 늑대 중 한 마리가 공중에서 멈춰서더니 그대로 아래로 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체는 여전히 땅에 완전히 떨어지지 않은 채 공중에 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케르케로우스가 탄성을 질렀다.

“오오! 링크스 신수가 아닌가!”

스라소니 산신령은 입에 늑대를 문 채로 투명 위장을 풀었다. 그랬더니 아무도 없던 곳에 그의 모습이 돌연 간 번쩍하고 나타났다. 갑자기 이상한 맹수가 나타난 것을 보고 늑대들은 일제히 조금씩 뒤로 물러나서 으르렁거리며 그를 경계했다. 그는 입에 물고 있던 늑대시체를 땅에 뱉고는 케르케로우스를 보고 씨익 웃었다.

“방금 보니까 이런 시시한 녀석들 때문에 꽤 고생하고 있는 것 같던데 말이오. 이제 내가 왔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허허허.”

“아니, 내가 고생하려고 한 게 아니라 원래 내 공격이 너무 빨라서 그런 건데...”

케르케로우스의 변명이 다 끝나기도 전에 스라소니 산신령은 다시 몸을 투명하게 만들더니 그 주변에 있는 늑대들을 전부 도륙하기 시작했다. 늑대들은 주변이 어두운 데다가 적이 보이지도 않으니 크게 당황했다. 사방에서 허둥지둥하는 늑대들이 차례로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 케르케로우스는 부끄러운지 혀를 낼름거렸다.

“아이, 링크스, 당신은 동작이 느리니까 이 녀석들의 메이크바가 발동되지 않는 거잖아. 나도 동작이 그렇게 느릴 수만 있으면 얘네들은 벌써 다 죽었지. 아이, 참. 사실 나처럼 하는데 더 힘든 건데. 잉.”

케르케로우스는 툴툴거렸다. 자기는 열심히 공격한다 해도 늑대들의 메이크바가 전부 막아버릴 테니, 별로 할 일도 딱히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뒤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뭘 그렇게 투덜거려요? 방금 보니까 이놈들 중 한 마리도 제대로 못 잡던데. 꼴이 영 한심하군. 훗훗.”

케르케로우스가 뒤를 돌아보자 그의 눈앞에서 검은 늑대 한 마리의 몸통이 둘로 쫙 찢어지는 것이었다. 검은 늑대의 피가 그의 얼굴에 튀자 케르케로우스는 고개를 흔들어 피를 털어내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윽! 이건 또 누구야?”

그의 앞엔 텔리가 늑대 피를 뒤집어쓴 채로 양손엔 몸이 둘로 쪼개진 늑대의 다리들을 쥐고 있었다.

“이 몸 등장. 훗훗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