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5 부. 만월의 밤 - 55 화

만월의 밤 – 55

가장 앞에 서 있던 병사가 릴리카의 기습으로 죽게 되자 케르케로우스와 건수는 제일 앞에 나와서 릴리카의 병사들을 상대했다. 그리고 둘의 움직임은 너무 빨라서 도저히 사람의 눈으로는 따라잡기 힘들 정도였다. 건수의 다리가 움직일 때마다 릴리카의 병사들은 하나둘씩 쓰러졌다. 다만 그는 도무지 사람을 죽일 만큼 강하게 마음을 먹지 못해서 최대한 약하게 그들을 찼다. 그에 반해 케르케로우스는 조금도 그들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그는 단단히 작심한 듯 발톱을 세우고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의 몸에서 빛이 번쩍일 때마다 반드시 한두 명씩 불새군 병사들이 쓰러졌는데 그들의 시체는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참혹한 모습이었다. 데디쿠스와 두 친구들은 아까까지만 해도 오랫동안 동료였던 자들에게 칼을 뽑는 것이 영 꺼림칙했지만 그들 편에 섰던 병사가 릴리카에게 당하는 것을 보고나서는 마음을 단단히 먹게 되었다. 특히 붉은 수염의 헨리는 꽤 오랜 전투 경험이 있어서 몇 명의 병사들을 상대하면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릴리카는 처음엔 뒤에서 부대를 지휘하려고 했으나 점점 포위선이 밀리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맨 앞에 가서 싸우기 시작했다.

건수는 릴리카가 다가오는 것을 보더니 케르케로우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케르케님. 릴리카가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제 공격은 저 여자에게 조금도 통하지 않으니 케르케님께서 상대하셔야 할 것 같아요.”

“음. 나도 저 괴물을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은데. 알았어. 저 여자는 내가 맡는다.”

케르케로우스는 자신이 입으로 물고 있던 불새군 병사의 시체를 뱉더니 휙 날아올라 릴리카에게 달려갔다.

“아까 공격은 잘 통하지 않았으니 그럼 이렇게 한 번 해볼까?”

그의 빛나는 몸에서 전기 스파크 같은 것이 ‘파즈즈-’하며 튀더니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릴리카에게 날아갔다. 릴리카는 손에 불꽃을 쥔 채로 케르케로우스에게 휘둘렀으나 그녀의 느린 공격이 그의 움직임을 따라 잡을 리 없었다. 케르케로우스가 그녀의 몸을 강타하자 릴리카는 다시 한번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크억!”

그런데 분명히 공격을 성공시켰음에도 왠지 케르케로우스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아니야! 또 틀렸어. 저 불새군의 대장, 도대체 뭘로 만들어진 몸을 가지고 있는 거야?”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쓰러졌던 릴리카가 방금 공격당한 부위에 손을 대며 일어났다. 케르케로우스가 보니 그녀 주위에 옅은 노란색의 막이 펼쳐져 있었다.

“음. 메이크바까지 가지고 있었구나. 그러니 속도가 빠른 내 공격이 제대로 통할 리 없지.”

한층 더 속도를 높인 공격을 펼친 케르케로우스였지만 역으로 너무 빠른 공격이라 그녀에게 전혀 통하지 않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가지고 있는 방어를 위한 정령석인 메이크바는 총알 혹은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발사체에 반응하는데, 케르케로우스의 공격이 그것들만큼이나 빨라서 방어막이 발동되었던 것이었다. 발동된 메이크바 방어막이 그녀가 입고 있는 금색 그물 옷의 능력에 더해져 거의 완벽하게 충격을 흡수해버렸다. 케르케로우스는 전혀 피해를 입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릴리카를 보고 난색을 보였다.

“아... 인간 중에 저런 능력을 갖춘 사람이 있다니. 이거 일이 정말 힘들게 되었군. 저 여자가 저 정도로 실력이 대단하니까 18년 전에 불새가 나를 죽이라고 보냈던 거야. 아이고.”

릴리카는 케르케로우스의 공격을 두 번이나 막아내자 이젠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

“역시 이 그물 옷이 날 또 살렸어! 과연 보물은 보물이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전에 라볼타가 내게 데이트 신청했을 때 그냥 못 이기는 척하고 한번 받아주는 건데. 호호호!”

릴리카는 이번엔 양 주먹에 불을 붙이고 케르케로우스에게 달려들었다. 케르케로우스는 건수에 이어 자신의 공격도 통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자 쉽게 그녀를 공격하지 못했다. 그저 그녀의 느린 공격을 요리조리 피할 뿐이었다. 그러자 그녀는 더욱 기세등등해져서 케르케로우스를 도발하기까지 했다.

“이 더러운 늑대 놈아! 신수나 되는 놈이 겨우 인간인 나를 못 꺾어서 공격 한번 못하고 있는 거냐?”

“어휴. 나라고 너보다 못하고 싶은 줄 아냐? 나도 명색이 신수고 또 자존심이란 게 있는데?”

케르케로우스는 다시 한번 몸을 번쩍이더니 ‘쾅!’ 하는 굉음과 함께 그녀에게 돌진했다. 그는 발톱을 단단히 세우고 그녀의 몸을 찢으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발동된 메이크바와 충격을 반사하는 그물 옷 때문에 조금의 타격도 입히지 못했다. 그러자 케르케로우스의 입에서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다.

“와.... 그래도 내 발톱은 거대한 나무도 반으로 쪼개고 바위도 부수는 힘이 있는데, 하나도 안 통하네. 진짜 해도 너무 한다. 야, 불새군 대장. 너 진짜 인간 맞냐?”

“시끄럽다. 날 공격해서 죽일 수 없다면 순순히 내게 와서 에피로제님의 화염을 맞고 죽어라!”

릴리카는 화염이 타오르는 두 주먹을 마구 휘둘러대며 열심히 케르케로우스를 공격했다. 인간인 건수와 달리 케르케로우스는 완전히 다른 신체를 가지고 있어서 그녀를 공격해서 되돌아오는 충격에 끄떡 없었다. 그 결과 그녀와 공격을 주거니 받거니 하게 되었는데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자 둘은 잠시 숨을 고르려고 떨어졌다.

“하아하아하아. 어서 이리로 와서 순순히 죽어다오. 이 늑대야!”

“그게 무슨 소리야? 말도 안 돼. 너라면 그럴 수 있겠니?”

여전히 큰 살의를 드러내지 않고 있는 케르케로우스의 침착함에 점점 체력을 잃어가고 있는 릴리카는 더욱 짜증이 났다. 그녀는 다시 두 주먹에 화염을 붙이고는 늑대 신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케르케로우스는 어떻게 해도 그녀를 쓰러트릴 수 없으니까 그만 뒤로 훌쩍 뛰어올라 피해버렸다. 사실상 그녀에게 패배를 인정한 셈이다.

* * *

케르케로우스가 릴리카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착지하자마자 온 사방에서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온몸에 힘을 집중시켜 천리안을 발동시켰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적들의 위치를 파악한 후 온 사방을 향해 사납게 짖어댔다.

“컹! 컹! 컹컹컹! 크르르르르.....”

그가 적들에게 다가오지 말라고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방에서 몇 십 마리가 되는 검은 늑대들이 숲속에서 튀어 나왔다. 그들의 눈빛을 본 케르케로우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내가 아무리 경고한다 해도 너희가 들을 수 있을 리 없지. 너희들 모두 이미 정신을 베토케로우스에게 빼앗겨 있으니 말이다. 하아아..... 할 수 없지.”

케르케로우스는 한숨을 한 번 쉬더니 몸을 한 번 번쩍였다. 마치 밤하늘에 번쩍이는 번개처럼 빠르게 몸을 움직이자 몇 마리의 검은 늑대가 그의 발톱에 몸이 몇 조각으로 찢기며 땅에 떨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의 표정이 밝지 못했다. 그가 공격한 늑대 중 두 마리가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들 주위에 옅은 노란색의 막이 펼쳐져 있었다.

“하이고. 너희들에게도 메이크바가 있구나. 아, 너희 몸에 박힌 건 좀 더 특별한 거였는데. 그걸 뭐라고 하더라? 아, 옴니테바라고 하던가? 참 여러모로 나를 힘들게 하는 밤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