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4 부. 예언자들 - 95 화

예언자들 – 95

릴리카가 지내고 있는 호텔에서 한 블록 떨어져 있는 곳에 있는 또 다른 호텔. 그곳의 한 객실에서 리버티 레코드의 사장, 맥스 라볼타가 묵고 있었다. 어제 밤을 새워가며 릴리카와 술을 마셨던 그는 몇 시간 전에 방에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지도 못한 채로 침대에 누워 잡을 자고 있는 중이었다.

“쿠우..... 그그그.... 쿠우..... 음..... 안... 안... 돼... 릴리카. 가지 마.... 위험... 릴리카!”

그런데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잠꼬대를 들어보니 아마도 릴리카가 그의 꿈에 나온 듯싶다. 그는 계속 몸을 뒤척이면서 괴로워했다.

“네... 여신님.... 당신이 알려주신 미래.... 음음... 소용 없습니... 음음..... 제 말을... 안 들어요... 아음음음... 뜨... 뜨거워... 그윽.. 그윽그윽... 헉!”

라볼타는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소리를 내다가 눈을 번쩍 떴다. 꿈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몰라도 그의 온 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뭐야.... 또 악몽이잖아. 후우우....”

그는 방금 전에 봤던 것이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요즘 릴리카가 나오는 악몽이 계속되고 있어. 그리고 오늘은 또 다른 누굴 본 것 같은데..... 여신.... 여신이라고 했던 것 같아. 난 그녀의 얼굴을 보지도 못했고 그녀는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왜일까? 난 그녀가 여신이라고 생각했다. 이상하게 낯이 익은... 그리운 느낌이야. 마치 어머니 같은....?’

그는 손목의 시계를 보았다. 오전 7시 50분. 아직 그가 활동을 시작하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눈이 뻑뻑해서 시계 다이알을 오래 쳐다보기 힘들었다. 그는 눈을 다시 감고 하품을 하며 생각했다.

‘아마 릴리카도 지금은 절대 일어나있지 못할 거야. 잘됐어. 오늘은 그녀가 정말 꼼짝없이 방에 틀어박혀서 어디에도 못나가게 하고 싶었거든.’

그는 타는 갈증을 느꼈다. 눈을 감은 채로 손을 뻗어 생수병이든 뭐든 마실 수 있는 것을 찾으려고 더듬었다.

‘이런... 제길. 머리맡에 물을 갖다 놓았는 줄 알았는데.’

“베마시... 베마시! 여기 물 좀 갖다줘!”

그가 졸린 눈꺼풀을 간신히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호텔 방? 아휴 맞다. 난 한국에 와있지. LA에 있는 베마시가 여기 있을 턱이 있나.”

그는 여전히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 채로 겨우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세면대 옆에 컵에 수돗물을 받아 꿀꺽꿀꺽 마셨다.

“아... 이제야 살 것 같군. 그런데 눈이 왜 이렇게 뜨겁고 아프지....”

그는 화장실에 온 김에 아픈 눈에서 느끼는 열감을 없애려고 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푸... 푸.... 어푸..... 으응?”

세수를 하는데 자기 얼굴의 느낌이 이상했다. 그가 고개를 들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려는데 어른거리는 눈앞에 왠 젊은 여인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우왁! 누구야!”

그는 너무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그랬더니 거울 속의 그녀도 똑 같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것이었다. 그는 혹시 자기 뒤에 누가 서있나 싶어서 휙 하고 뒤를 돌아봤다. 그러나 등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고 거울을 쳐다보는데 거기엔 나이든 중년 남자인 그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여전히 젊은 여인을 한 누군가가 자기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게... 이게.... 어떻게 된거야?”

그는 자신의 볼을 잡아당겨 보았다. 그랬더니 거울에 비친 여인도 역시 자기의 볼을 잡아당기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손을 들어 보았다.

“털... 그래, 이건 내 손이 맞는데? 그럼 저기엔?”

그가 거울을 바라보자 그 여인도 역시 자기의 손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 손은 내 손이 맞아. 그렇다면 내 얼굴만 이상해진 건가?”

그는 다시 볼을 잡아당겨 보았다. 역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내 얼굴이... 내 얼굴이 다른 사람의 얼굴로 바뀌었어!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지! 이.. 이건 말도 안돼!”

그는 혼비백산하여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는 침대 주변에 던져노흔 자신의 핸드폰을 찾았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하룻밤 사이에 내 얼굴이 바뀌다니! 그것도 젊은 여자의 얼굴로!”

그는 서둘러 핸드폰을 찾아서 자신의 얼굴을 셀프 촬영을 했다.

‘찰칵.’

그가 핸드폰으로 찍은 자신의 얼굴을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도 면도를 하지 않아 짧은 털이 수북한 그의 얼굴 그대로였다.

“뭐야... 이젠 내가 환각을 보는 건가? 내가 도대체 어제 무슨 술을 얼마나 마셔서 이렇게 된 거지? 아니면 20대 때 너무 방탕하게 살아서 이렇게 된 건가?”

그는 손으로 자꾸 자기의 얼굴을 만지면서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거울을 쳐다보았다. 그의 원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휴우우..... 내가 헛것을 보았었나 보군. 뭐야, 정말 깜짝 놀랐잖아. 아니, 이참에 술을 끊어야겠어. 브레인 셀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도 모르잖아?”

그는 너무 놀란 속을 다스리려고 다시 세면대 옆에 비치된 컵으로 수돗물을 받아서 단번에 들이켰다. 그리고 그가 컵을 놓으려는 그 순간, 그는 다시 한 번 깜짝 놀라게 되었다. 거울의 비친 자신의 얼굴이 다시 그 여자로 되어 있는 것이었다.

“와아아악! XXXX!”

그는 무서워서 더 이상 화장실에 있지 못하고 침대로 달려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미쳐버리겠네! 도대체 내가 어제 뭘 마신 거야? 아니, 여기 설마 유령이 나오는 호텔인가? 으어어어.....”

자기 방에 유령이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온몸을 사시나무떨 듯 떨어댔다.

“체... 체크아웃을 해야 하는데..... 무서워서 프론트까지 갈 수가 없네. 젠장! 으아아아... 드드드.”

턱이 어찌나 떨리던지 이가 부딪히다 못해 잇뿌리까지 뻐근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때였다. 뒤집어쓴 이불 밖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호호호.....”

누군가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라볼타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베... 베마시? 당신이야? 한국에... 온 거야?”

“아뇨. 그녀는 LA에 있잖아요.”

이불을 뒤집어쓴 채 그는 소리쳤다.

“꾸에엑! 귀... 귀신이다!”

“호호호. 귀신이요? 이거 왜 이래요? 우린 이미 구면이잖아요.”

“구면? 난 당신이 누... 누군지 모르는데...! 누.... 누구야? 누구세요? 다... 당신 누군데 내 방에 들어온 거요? 어... 어떻게 들어왔어요?”

“당신 꿈에서 몇 번이나 만났었는데 날 기억 못하는 군요. 섭섭하네요.”

“꿈! 꿈이라고?”

라볼타 사장이 순간 용기를 내서 덮은 이불을 치웠다. 그 앞엔 방금 전 거울 속에서 봤던 젊은 여인이 서 있었다.

“제 소개를 하지요. 당신의 꿈속에서 몇 번이나 나타났던 이디레이아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날 운명의 어머니라고 부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