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5 부. 만월의 밤 - 46 화

만월의 밤 – 46

잠시 후 카베쿠스가 불새군 무리를 이끌고 도착한 곳은 완만한 경사가 아래로 향한 숲속이었다. 그가 멈추자 뒤따라 오던 무리가 일시에 걸음을 멈췄다. 뒤쪽에 있던 릴리카가 맨 앞으로 걸어왔다.

“왜 걸음을 멈췄나? 다 온 건가? 검은 문은 어디 있지?”

“아래쪽입니다. 저 아래를 내려가시면 평지가 있습니다. 검은 문은 그 근처에 있다고 제 주인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곳에서 여러분들과 잠시 만나시겠다고 하십니다.”

“저 아래쪽으로 내려가라고?”

릴리카는 옆에 떨어져 있는 큰 나뭇가지를 하나 주웠다. 그리고는 손가락에 힘을 집중시켰다. 그녀가 하얗게 빛나는 손가락을 튕기자 손가락 끝에서 불이 일어났다. 나뭇가지에 불을 붙이더니 그것을 앞으로 내밀어서 어두운 아래쪽을 비췄다.

“어디 보자. 앗!”

불타는 나뭇가지가 어둠을 밝히자, 불빛에 반사된 수많은 번쩍이는 눈빛들이 나타났다.

“저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부하들입니다. 아까부터 함께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카베쿠스가 별것 아니라는 듯 대꾸하자 릴리카는 카베쿠스를 힐끔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네. 자네 말대로 아래 공터로 내려가서 당신의 주인과 만나겠네.”

그 말을 듣고 카베쿠스는 하늘에 고개를 쳐들고 한 번 길게 울었다. 베토케로우스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그리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다시 자기가 있던 자리로 돌아가면서 릴리카는 횃불을 몇 개 더 만들어서 병사들에게 나눠줬다. 그들은 그 횃불을 받고는 몇 개 더 만들어서 주위를 밝히기 시작했다. 그들이 산길을 걸어 내려가는데, 조금 전 릴리카가 봤던 늑대의 눈들은 다 어디론가 주변에 숨어서 사라져버렸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 * *

카베쿠스와 불새군이 다다른 곳은 계곡물이 흐르는 냇가로 꽤 넓은 공터였다. 릴리카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어두운 하늘에 보름달이 떠있었다.

‘보름달이 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 빛 덕분에 웬만큼 시야가 보장된다는 거야. 아니었으면 깜깜한 어둠 속에서 전투를 치를 뻔 했으니까.’

그녀는 병사들을 바라봤다. 그 중 한 명이 엽총을 지팡이 삼아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많이 지쳐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잠시 쉬게 해주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그녀가 손으로 신호를 보내자 이사우라가 병사들에게 쉬어도 좋다고 소리쳤다. 불새군 병사들은 물가로 다가가 하나둘씩 앉아서 물을 마셨다. 카베쿠스는 뒤에 서서 고개를 위로 쳐들고 길게 울었다. 그러자 숲속에 있던 늑대들이 긴 울음소리로 응답했다. 그들의 울음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그 소리에 놀라서 불새군 병사들은 물을 마시다 말고 경계의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우우우~’

‘어우-!’

잠시 후, 늑대들의 울음소리보다 몇 배는 더 큰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누가 듣더라도 베토케로우스의 울음소리가 분명했다. 모든 늑대들이 울음소리가 일제히 멈췄다. 카베쿠스가 릴리카에게 걸어가 말했다.

“불새의 성전사시여. 저의 주인님께서 오십니다.”

그 말을 듣자 릴리카는 옷매무새를 매만지더니 병사들의 앞으로 나아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행동을 본 이사우라와 병사들이 모두 그녀 뒤로 집합하고는 똑같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지금까지 인기척도 나지 않던 숲속에서 많은 수의 늑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릴리카는 고개를 들고 눈만 움직여서 수풀의 움직임을 보고 늑대들의 수를 가늠하려고 했다.

‘지금까지 전혀 인기척을 내지 않더니 자기들의 주인이 온다고 하니 모습을 드러내려는가 보구나. 수가 생각보다 많다. 100 마리? 200 마리? 아니, 더 많을지도 몰라. 도대체 이렇게 많은 수의 늑대들이 이 세계에는 왜 왔을까? 어차피 검은 방의 문은 그쪽 세계에서도 열 수 있을 텐데 말이야. 굳이 이 세계까지 올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부터 검은 방 안으로 쳐들어갔어도 됐지 않았을까?’

그녀가 혼자서 그렇게 열심히 상황을 분석하던 중이었다. 그녀 앞에 있는 어두운 수풀 속에서 여러 마리의 늑대들이 튀어나오더니 바닥에 배를 대고 납작 엎드렸다. 베토케로우스가 거기서 나올 것이 분명했다. 이윽고 어둠 속에서 붉게 타오르는 화염 덩어리 두 개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불덩어리가 두 개? 하지만 저런 빨간 색의 불꽃은 처음 본다.’

두 개의 불덩어리가 그녀가 있는 자리 방향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짐승의 앞발 하나가 보름달 달빛 아래 밝은 곳에 나타나자 그녀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베쿠스보다 몇 배는 큰 짐승의 실루엣이 천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베토케로우스가 완전히 그녀 앞에 드러났다. 온몸이 새까만 털에 뒤덮여 있는 괴수는 붉게 빛나는 두 눈을 그녀에게 고정하고 거대하고 하얀 이빨을 드러냈다. 릴리카가 그의 얼굴을 보자,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던 두 개의 붉은 불꽃은 다름 아닌 그의 두 눈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 마침내 고대의 괴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 뒤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에뮤니우스가 작은 목소리로 릴리카에게 말했다.

“릴리카님, 절 거짓말쟁이 취급하시더니, 이젠 제 말을 믿으시겠죠? 크크킄.”

릴리카는 에뮤니우스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온 신경은 오직 베토케로우스에게 가 있고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있어서 곧 터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카베쿠스가 일어나 베토케로우스 뒤로 걸어가더니 다른 늑대들과 마찬가지로 배를 땅에다 대고 넙죽 엎드렸다. 릴리카는 오랜만에 신적인 존재를 만나게 되어 다소 긴장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베토케로우스에게 말했다.

“불새의 신수 에피로제님의 성전사, 릴리카 칼라스가 위대하신 신수 베토케로우스님을 뵈옵니다. 저희를 아군으로 받아주시고 검은 방의 문이 있는 이곳까지 인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자 베토케로우스는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히더니 붉게 불타오르는 두 눈을 그녀에게 고정했다. 그리고 느릿한 말투로 대답했다.

“성전사라..... 불새는 자신의 신전 전사들을 그런 특별한 이름으로 부른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 건방진 불새가 너희를 그렇게 부른다고 해서 굳이 나도 그런 명칭을 들을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나를 보고 신수라 칭하였느냐.... 크크크. 그래, 한때는 너희들 인간들이 날 그렇게 부르곤 했었지. 하지만 네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의 얘기다. 아까처럼 날 괴수라고 불러도 난 상관하지 않겠다.”

베토케로우스는 일을 열고 말하는 첫 마디부터 그녀와 불새군을 비꼬기 시작했다. 하지만 릴리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대답하는 말 한마디가 혹시라도 괴수의 심기를 거스른다면 그녀도 불새군 병사들도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