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6 부. 솔로우스 - 19 화

솔로우스 – 19

갑자기 텔리가 거인의 모습이 되어 자기 앞에 나타나자 베토케로우스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서 크게 당황했다.

“텔리, 이놈! 다 죽어가던 네가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려서 다시 살아났느냐!”

텔리는 입가에 알 수 없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안 가르쳐 줘, 인마. 어차피 곧 죽을 놈에게 뭐 하러 말해주겠냐? 너 같이 멍청한 놈에게 알려준다고 해도 아마 이해할 수도 없.....!”

‘크르르르... 컹! 컹!’

베토케로우스는 텔리를 향해 사납게 짖더니 그에게 달려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는데 텔리를 보자 분노가 끓어 오른 모양이다. 그렇게 되자 이제 놀란 쪽은 텔리였다. 한 눈에 봐도 비실거리던 베토케로우스에게 허를 찔린 것이었다.

“아니, 이 음흉한 늑대가 힘을 아껴뒀었나 보구나!”

베토케로우스는 힘차게 위로 뛰어올라 거인 텔리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사실 텔리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고 했지만 힘이 부족했는지 겨우 가슴까지밖에 올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우습게도 텔리의 두 손은 그의 중요부위를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자신의 몸통을 베토케로우스에게 내주게 되었다.

“헉! 개들이 달려들어서 제일 먼저 무는 급소가 몸의 중간이라고 들었는데 배를 물다니!”

텔리는 선택을 잘못한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괴수의 날카로운 이빨이 피부를 뚫고 들어왔다.

“우아아악!”

텔리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로 젖히자, 그를 물고 있던 베토케로우스는 체중을 실어 그의 몸을 뒤로 쓰러뜨렸다. 두 거대한 괴물은 ‘쿵’하고 큰 소리를 내며 땅에 끄러졌다. 텔리는 자신의 가슴과 배를 물고 있는 베토케로우스를 주먹으로 치면서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괴수는 몇 번이나 두드려 맞으면서도 조금도 입을 벌리려고 하지 않았다.

“아악! 이 미친 늑대가 한 번도 아니라 두 번이나 내 몸을 망가뜨리다니! 이 망할 놈아! 저리 떨어져!”

텔리는 발을 버둥거리며 등 뒤로 기어갔다. 그러면서 몸에 붙은 괴수를 떨어뜨리려고 몸을 좌우로 격렬하게 비틀어댔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몸을 비틀어도 그의 몸 위에 올라 탄 베토케로우스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아악! 아파! 이 자식아! 아이씨! 힘도 없는 늑대 자식이 진짜 끝까지 나를 귀찮게 하는구만!”

그렇게 크게 외치더니 그는 손으로 괴수의 목을 잡고는 힘껏 비틀어 버렸다.

‘우두둑!’

베토케로우스의 목에서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리더니, 괴수는 거인 텔리의 몸을 물어뜯다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엎어져 죽어버렸다. 그리고 그것이 전설의 괴수라고 불리던 베토케로우스의 마지막이었다. 엥? 진짜 그렇게 허망하게 끝이 났냐고? 정말 그랬다. 적어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보고 있었다면 그 사실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특히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던 릴리카의 앵글에선 분명 그랬다. 두 신과 신수의 신화적인 대결을 예상했던 릴리카는 그 결말이 너무나 어이없게 끝나는 모습을 보고 그저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아니, 분명 신과 신수가 격돌하는 엄청난 싸움인데, 어떻게 이렇게 둘 다 모습이 엉망일 수 있지? 나도 예전에 에피로제님의 정복전쟁에 앞장섰던 전사로써 별별 전쟁터에 다 있어봤지만 이건........ 그냥 동네 불량배들이 서로 멱살 잡고 싸우는 수준이 아닌가? 신화나 역사책에 나올 법한 그런 결투가 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끝나버리다니!’

그렇다. 한 마디로 둘의 너무 ‘인간적인 모습’에 그녀는 실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녀의 눈에 비친 둘의 대결은 마치 인간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동네 불량배들이 투닥거리는 개싸움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아니, 오히려 인간 전사들은 전쟁터에서 목숨을 내놓고 싸우니까 그 모습이 더 비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과 신수는 죽어도 얼마든지 다시 부활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을까? 그들의 결투는 마치 철없는 애들의 장난질 같아 보였다. 그 모습에 실망하게 된 릴리카는 평소 생각했던 신들이 가진 위상에 대해 마음속에 조금씩 의문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다른 건 몰라도 신들을 향한 신앙심에 있어서는 그래도 문제없었던 그녀였는데 그런 마음이 생긴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흠... 혹시 이 신들과 신수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존재들이 아닌 것은 아닐까?’

왜, 예전엔 왕과 왕족들이 고기를 먹어도 뼈다귀에 붙은 살점을 먹지 못하고 물린 적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왕이 음식을 먹을 때, 뼈다귀를 잡고 뜯고 또 빨아먹으면, 아랫사람들이 보기에 그 꼴이 흉해보여서 위신을 세우고 체통을 지키기 위해 고기를 잘게 갈아 먹었다는 얘기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번에 릴리카가 목격한 텔리와 베토케로우스의 대결은 그야말로 그녀가 가진 신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게 만들었다.

텔리는 손으로 자기의 몸을 물고 죽은 베토케로우스의 입을 힘겹게 벌리고는 그의 머리를 옆으로 밀어버렸다.

“헉헉.... 아으으으...... 아프다... 메이크바도 없어서 도저히 이놈의 공격을 막을 수가 없었어. 후우후우...”

그의 가슴과 배에는 아까 육체에 생긴 것과 비슷한 상처가 생겼고 또 당장 치료가 필요할 수준이었다. 그는 누운 채로 고개만 들어 아래를 보니 몸에 난 엄청난 상처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상처들을 보면서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아까랑 똑같이 되어 버렸잖아? 가지고 있는 육체들 중에 이젠 마땅한 것도 없는데 이걸 어째? 저 망할 늑대 놈이 전부 다 구멍 내고 찢어놔서 이거 더 이상 쓸 수도 없겠구만. 그럼 뭘 걸쳐야 하나? 뭘로 바꿔야 하냐고? 아, 짜증나!”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순간 그의 눈에 릴리카가 들어왔다.

“오, 릴리카가 있었군? 잘 됐다. 너 여기 와서 내 몸을 좀 일으켜 봐라. 어서!”

“에에엣?”

지금까지 텔리가 했던 혼잣말을 다 듣고 있던 릴리카는 깜짝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육체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저 신이 왜 나를 부르지? 방금 자기가 들어갈 육체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설마..... 설마 나를 죽이고 이 육체를 가져가려는 것 아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또 다른 기억이 꼬리를 물었다. 바로 계곡에서 텔리가 처음 등장했을 때 자기 옆에 서 있던 불새군 위병을 단숨에 죽였던 일이 기억났던 것이다.

‘아까 저 신이 착각해서 내 부하를 손짓 한 번에 죽여 버렸었잖아? 저 정신없는 이가 날 죽이는 거야 벌레 잡아 죽이는 것보다도 더 쉬운 일일 텐데, 이 시점에 날 부르는 게 영 이상해. 맞아! 분명 날 죽이고 내 몸을 가져가려고 하는 거야! 오, 안 되겠다. 여기 저 신과 같은 공간에 있으면 위험해! 어서 검은 문을 통해 엘리시움으로 가야겠다.’

그녀는 ‘원하는 이는 누구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엘리시움으로 보내주겠다’는 케로케로우스의 약속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꾸준하게 케르케로우스를 죽여야 한다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만 고집했던 그녀였지만 처음으로 마음을 바꾼 것이었다. 그렇게까지 마음먹게 되자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검은 문 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쏜살같이 달려가는 릴리카를 본 텔리는 기가 막혔다.

“야! 야! 살려줬더니 왜 도망가? 네 목숨을 살려줬는데 내 몸 하나 일으켜 주는 것도 안 해주냐? 야! 돌아와!”

릴리카가 시야에서 멀어져 보이지 않게 되자 텔리는 겨우 들고 있던 고개를 다시 떨어뜨리며 낙심했다.

“난 그저 내 방으로 돌아갈 수 있게 몸을 일으켜 달라고 했을 뿐인데....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릴리카, 저 나쁜 년. 하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