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부. 솔로우스 - 53 화
솔로우스 – 53
독무를 마시고 쓰러져 고통 받고 있는 불세군 병사들 가운데서 에뮤니우스는 다시 두 개의 송곳니를 솔로우스의 목덜미에 꽂아 넣고 생명의 정수를 빨아 마셨다. 몇 번 그의 목젖이 위 아래로 움직이더니 그가 혀로 입가를 핥으며 말했다.
“크으. 이건 마치 한 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그 맛... 아, 그건 과자지. 아무튼 솔로우스 네놈의 생명의 정수도 그렇구나. 네게 궁금한 게 있어서 살려둬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입맛을 당기니 정말 큰일이야. 크크크크.”
그때였다. 숲 속에서 다시 바이베노파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뮤니우스. 동작을 멈춰라. 더 이상 그의 몸을 훼손시키지 마라. 그리고 그 자를 내게 데려와라.”
에뮤니우스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신입니까? 아니면 인간입니까? 그리고 왜 이 자를 원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뭐, 어쨌든 좋습니다. 저는 떳떳하게 정체도 밝히지 않는 당신에게 제 먹잇감을 순순히 양보하긴 싫습니다.”
“크크크크...... 에뮤니우스, 네놈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감히 내게 그런 식으로 대들다니? 네가 쉽게 솔로우스를 양보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곧 후회하게 될 쪽은 네 쪽이다.”
에뮤니우스는 양 미간을 잔뜩 찡그리며 소리쳤다.
“뭐야? 네놈이야말로 웃기는 녀석이로구나! 내가 네놈더러 먼저 정체를 밝히라고 했는데도 협박이나 일삼다니. 좋다. 어디 네가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 이리 나와서 내게 모습을 보이고 어디 한 번 붙어보자!”
에뮤니우스는 당당한 목소리로 정체불명의 목소리의 주인을 자기 앞으로 오라고 불렀다. 물론 그것은 그가 조금 전부터 솔로우스의 생명의 정수를 섭취했기 때문에 자기 몸에 넘쳐흐르는 기운을 느꼈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럴지라도 그 목소리의 주인이 실은 파괴의 신, 바이베노파시스라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 이 만큼 자신 있게 덤벼들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왜냐면 그는 오랫동안 살면서 살육신 텔리만큼이나 무서운 존재를 만나본 적이 없었는데, 그의 형제라고 하는 바이베노파시스를 만난다면 겁을 먹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지금 기운이 뻗쳐서 자신감이 팽배해 있어도 말이다.
“크크크.... 재미있군. 두 최강의 힘을 가진 인간들의 힘이 모이면 신에게도 도전할 수 있다는 의미인가? 에뮤니우스, 네놈이 궁금해하니 내가 누군지 알려주마. 난 죽음의 신, 바이베노파시스다.”
“네? 바이베노파시스...? 죽음의 신이시라구요? 그럼 당신도 우리 세계의 신이시란 말씀이십니까?”
에뮤니우스의 낯빛이 금방 사색으로 변했다. 아마도 그는 이상한 목소리 주인의 정체가 신이라는 것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는 오랫동안 대사제로써 신수를 모셨기 때문에 신과 신수라는 존재는 그에게 있어 동경의 대상이면서 또 여전히 경외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자, 나의 신도들아. 어서 가서 저 불경한 놈에게서 솔로우스를 빼앗아 내게로 데려오너라.... 츠츠츠..... 누구든지 제일 먼저 솔로우스를 데려오는 자에게는... 츠츠츠... 큰 상을 내릴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나와 함께... 치치직.... 엘리시움에 발을 들일 것이다.”
이제 바이베노파시스의 차가운 금속성의 목소리는 거친 질감의 잡음이 섞여 나와고 있었다. 그 소리는 마치 수신 불량 상태의 라디오 방송 같은 느낌이었다. 에뮤니우스는 더 이상 평범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바이베노파시스의 목소리를 듣고 그가 신이라는데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음성의 변화는 분명 그가 무슨 변화를 겪고 있거나 어떤 일을 준비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이크! 사람이라면 저런 이상한 목소리를 가질 수 없을 거다. 그렇다면 저 녀석은 진짜 신인 것이 분명해. 그런데 죽음의 신이라니! 그건 마치 살육의 신, 텔리보다도 더 지독한 녀석인 것 같잖아?! 혹시 목소리가 저렇게 변했다는 건, 화가 났다는 뜻일까? 그럼 저 녀석, 이제부터 뭘 어쩌려는 셈이지?’
에뮤니우스는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었다. 무슨 일이 터질지 불안하다면 인질로 잡고 있던 솔로우스를 버려두고 어서 빨리 도망갔어야 할 텐데 그 와중에도 계속 그의 목을 물고 생명의 정수를 빨아먹는 것이었다.
‘아아아.... 안 돼. 솔로우스, 이놈을 어떻게 구한 먹잇감인데..... 다시는 이런 질 좋은 생명의 정수를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을 거야!’
아마 에뮤니우스에게 있어 솔로우스에게서 생명의 정수를 뺏는 것은 생존본능 보다도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인 듯 보였다.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하지도 못할 정도로 완전히 그 일에 중독된 것이었다.
가장 먼저 수풀을 빠져나왔던 사신교의 4 명의 신도들, 즉, 병사의 칼에 손목을 잘렸던 덩치 좋은 제임스, 거의 목을 잘렸던 호리호리한 체격의 로버트, 아직 공을 세우지 못한 연로한 미스터 월슨 그리고 또 한 명은 끝내 도망가던 불새군 병사들을 따라잡고는 그들과 일전을 벌였다. 사신교의 신도들은 아무런 무기도 없는 맨손이었지만 칼에도 죽이않는 불사신의 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불새군 병사들을 제압하고 살해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그들은 똑같이 공을 세워서 엘리시움으로 들어가는 티켓을 얻었다고 크게 기뻐했다. 어차피 적을 하나씩만 제거하면 받게 되는 상이었으니 누가 더 많이 공을 세웠다느니 누가 가장 못했다느니 논공행상을 벌일 일도 아니었다. 그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웃고 떠들면서 서로를 칭찬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조금 전, 바이베노파시스의 새로운 메시지를 듣게 되자 그들의 마음속에 묘한 감정이 번져나갔다. 그 메시지의 내용은 엘리시움에 들어가는 조건 외에도 큰 상을 내리는 것은 물론 그곳에 발을 들일 때, 바이베노파시스 옆에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그런 말을 듣게 되자 그들은 이젠 엘리시움에 들어간 후의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뚱뚱한 제임스가 손목과 어깨의 상처가 아무는 것을 보면서 말했다.
“세상에! 바이베노파시스님과 함께 엘리시움에 들어갈 수 있다고? 그건 마치..... 개선장군 같은 모습이잖아?”
그의 말을 들은 나머지 3 명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하고 싶은 말은 똑같았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뚱뚱한 제임스는 날씬한 로버트의 표정을 가장 많이 살폈다. 아무래도 나머지 2 명보다는 그를 라이벌로 생각하는 듯했다. 로버트보다는 몸이 무거운 자신이 불리하다고 느꼈던 건지, 제임스는 제일 먼저 에뮤니우스를 향해 뛰어나갔다.
“에잇! 저놈은 내거야! 내가 개선장군이 될 거라고!”
눈치만 보고 있던 나머지 3 명은 제임스의 갑작스런 출발에 허를 찔렸다. 그들 역시 그의 뒤를 쫓아 뜀박질을 시작했다.
사신교의 4 명의 신도들이 접근할 때까지도 에뮤니우스는 솔로우스의 목을 물고 생명의 정수를 빨아 마셨다. 흡혈귀같이 보이는 그의 모습에 4 명의 신도들은 순간 움찔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누구라도 머뭇거린다면 4 명 중에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큰 상과 명예를 얻게 될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아니면 훨씬 뒤에서 달려오는 다른 신도들 중 하나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었다. 어느덧 가까이에 와서 숨을 헐떡거리며 붉게 충혈된 눈으로 자신을 사냥감처럼 바라보고 있는 4 명의 사신교 신도들을 보자 에뮤니우스는 그제야 솔로우스의 목에서 입을 뗐다.
“너희들, 마치 모습이 굶주린 악귀들 같구나!”
그랬다. 십자 형태로 갈라진 입을 벌리며 배에서 촉수를 뽑아놓고 있는 에뮤니우스도 괴물같은 모습이었지만, 숨 가쁘게 헐떡이면서도 그를 죽이고 상과 명예를 얻으려는 4 명도 절대 사람같이 보이지 않았다. 에뮤니우스의 말대로 그들은 악귀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바로 명예만을 쫓아 살인도 저지르는 악귀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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