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6 부. 솔로우스 - 22 화

솔로우스 – 22

알렉시스와 미스터 황이 달려와 텔리 옆에 외국인의 육체를 내려놓았다.

“텔리님, 육체를 가져왔어요. 이 육체가 맞죠?”

“.......”

하지만 텔리는 이미 상태가 악화되어 거의 말을 할 수 없었다. 알렉시스는 크게 당황하며 소리쳤다.

“신이시여! 새로운 육체를 가져왔습니다! 제발 눈을 떠보세요! 사제, 이걸 어쩌지? 우리가 너무 늦어버린 건가?”

“잠깐만....”

미스터 황이 텔리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그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귀를 거인의 입술에 가까이 대었다. 텔리는 모기 소리처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입.... 입을......”

미스터 황이 알렉시스에게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아냐! 텔리님은 아직 살아계셔. 알렉시스! 빨리 그 육체를 텔리님 입에 갖다 대! 아서! 시간이 없어!”

“그게 무슨 소리야??”

“텔리님이랑 그 아저씨 시신을 뽀뽀시키라고! 빨리!”

“뽀뽀?”

알렉시스는 바닥에서 외국인의 몸을 들어 올리더니 그의 얼굴을 잡고 거인의 입술에 갖다 대었다.

‘슈우우우-!’

그러자 거인과 외국인의 몸에서 밝은 빛이 뿜어 나왔다. 그 빛이 어찌나 밝던지 석실 전체를 구석구석까지 빛으로 채울 정도였다. 알렉시스와 미스터 황은 재빨리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어휴, 눈부셔!”

둘은 몇 분 동안 눈을 질끈 감고 서 있었다. 잠시 후 외국인의 몸을 잡고 있던 알렉시스의 손에 온기가 느껴졌다.

“됐다. 알렉시스, 이제 손을 놔도 된다.”

텔리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자, 알렉시스와 미스터 황은 고개를 다시 돌리며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들의 눈앞에 자신의 팔을 들어 올리며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는 중년의 외국인이 서 있었다.

“신이시여, 다시 돌아오셨습니까?”

그러자 외국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나다, 텔리. 둘 다 수고했다.”

미스터 황은 외국인에게 다가가 그의 몸을 만져보더니 물었다.

“진짜 텔리님 맞죠? 저기 거인의 몸에서 빠져나와서 여기로 들어가신 거죠?”

“그래. 나라니까.”

“세상에..... 두 번 봐도 놀랍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입을 벌리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미스터 황에게 텔리는 손을 들어 그를 한 대 칠 것 같은 포즈를 취했다.

“이 자식아! 내가 언제 뽀뽀하라고 시켰어! 입을 벌려서 내 입에 갖다 대라고 했지! 나더러 남자랑 뽀뽀하라는 거냐?”

그러자 미스터 황은 손을 올리며 방어 자세를 취하며 뒤로 물러섰다.

“에이씨!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들어요? 입.... 입.... 그렇게만 말씀하셨잖아요!”

그러자 텔리는 다시 손을 들고 미스터 황을 때릴 것처럼 하면서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왔다.

“에이그, 이 멍청한 놈아! 내가 아무리 그렇게 말했어도 넌 똑바로 알아들었어야지! 아이, 진짜! 하필이면 이렇게 멍청한 녀석이 어떻게 내 사제가 되어 버려가지고!”

“이씨! 개떡같이 말해놓고서는 어떻게 나더러 꿀떡같이 알아들으란 말이예요! 순 어거지야, 진짜! 기껏 고생해서 살려드렸더니 왜 딴 말을 해요! 우이씨!”

“뭐? 개떡? 꿀떡? 아유...! 그래, 날 살려줬으니 내가 이번에 한 번은 참는다.”

둘이 투닥거리는 것을 보고 있던 알렉시스가 다시 텔리에게 물었다.

“텔리님, 몸은 어떠십니까? 이제 괜찮으신 건가요?”

“후우우..... 그래. 여전히 맘에 드는 몸은 아니지만 뭐,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정말 다행입니다. 하마터면 너무 늦을 뻔 했습니다. 여기 사제가 많은 일을 해냈습니다.”

“그래. 알아. 안다구. 그러니까 내가 이번 한 번은 이 입버릇 나쁜 자식을 살려주겠다고 했잖아. 쯧.”

미스터 황이 텔리에게 물었다.

“텔리님, 그런데 그 몸은 누구 거에요?”

“이거? 너가 알아서 뭐하게?”

“흥!”

미스터 황은 자기가 고생해서 살려줬지만 여전히 자신을 홀대하는 듯한 텔리에게 짜증이 나서 고개를 홱 하고 돌렸다. 텔리는 자신의 새로운 육체의 얼굴을 손으로 만지면서 말을 이어갔다.

“이건 몇 달 전 뉴욕에서 구한 거다. 마피아 거야. 그를 죽이고 내가 그의 몸을 가졌다.”

몇 달 전, 뉴욕에서 텔리는 러시아 갱단의 보스, 블라디미르 바빌로프의 부탁을 받고 그의 경쟁 상대였던 마리오 보로니를 죽이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가 지금 들어가 있는 육체는 스태튼 아일랜드에 위치한 보로니의 맨션에 잠입할 때 그곳을 지키고 있던 마피아를 죽이고 뺏은 것이었다.

“이 몸 주인.... 흐음.... 그놈 이름이 뭐라고 하더라?”

텔리는 몸의 원 주인의 이름을 기억해내려고 양미간을 찡그렸다.

“음음.... 뭐라더라..... 아, 생각났다. 바비! 그래, 다른 마피아 놈들이 이 녀석을 보더니 바비라고 불렀었어. 이 몸의 주인의 이름은 바비야!”

미스터 황이 텔리를 보고 인상을 쓰더니 말했다.

“아니... 뭐, 마피아라고 하니까, 대충 지금 그 육체의 주인이 악당이었다는 건 알겠는데요. 그래도 그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다는 건 좀..... 찝찝하지 않습니까? 자기가 죽인 사람의 몸에 들어가서 그의 이름을 기억해서 그의 목소리로 말한다는 게.... 어후. 텔리님의 그런 부분이 전 정말 이해 안 가네요. 으으으... 소름끼쳐요. 정말 기분 나쁘네!”

그 말을 듣자, 텔리는 얼굴이 시뻘게지면서 벌컥 화를 냈다.

“뭐라고? 찝찝해? 기분 나빠? 아니, 이 자식이 진짜 돌았나? 아니면 말 못해서 죽은 귀신이 붙었나? 야! 너가 먼저 이 몸이 누구 거냐고 물어서 답해준 거잖아! 답변을 듣고서 기분 나쁘다고 헛소리를 지껄일 거였으면 처음부터 아예 묻지를 말았어야 할 것 아니야!”

텔리가 언성을 높이자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알렉시스가 냉큼 나섰다.

“신이시여, 우리 사제가 좀 눈치가 없기는 해도 이번에 닥쳐온 위기를 넘기는데 공을 세웠으니 부디 용서해 주세요. 아마 신을 보지 못하고 자란 지구인이라서 우리와 다른 것 같습니다. 또 생각하는 수준이나, 기준이나 순서도 좀 다른 것 같고요.”

텔리는 턱을 긁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화가 안 풀렸는지 콧구멍으로 뜨거운 김을 내쉬었다.

“아닌데.... 이 자식은 그냥 나한테 맞먹으려고 까부는 것 같은데...?”

“신이시여, 사제와 함께 있던 불새군 병사가 밖에 있습니다. 아직 주변에 혹시 있을지 모를 늑대가 위협이 될 수도 있으니 어서 나가서 그를 구해주시면 안 될까요?”

“하! 내가 뭐 하러 불새군 놈을 구해줘?”

“그래도 저와 함께 불새군 일을 하셨던 적도 있으셨잖습니까? 그리고 저 데디쿠스란 녀석은 케르케로우스님과 건수를 돕는 듯 보였습니다. 혹시 밖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 어서 이곳을 나가시죠.”

그 때, 미스터 황이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이 두 손가락을 튕겼다.

“아, 맞다. 텔리님, 큰일이 났어요. 아까 저기 검은 방 입구에서 불이 나고 막 폭발하고 일이 났었어요. 막 그 안에서 늑대들이 몸에 불이 붙은 채로 튀어나와서 산 채로 타 죽고 난리도 아니었다니까요. 빨리 거기 가보야 해요. 그 금색 털 가진 늑대님도 건수도 아까 제게 얘기를 들은 다음 거기로 뛰어가더라고요.”

“뭐? 검은 방에서 일이 났어? 그걸 왜 지금 얘기해? 이 멍청아!”

미스터 황이 해준 얘기를 들은 텔리와 알렉시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검은 방은 그들의 세계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고 하니까 매우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