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 예언자들 - 90 화
예언자들 – 90
텔리는 이디레이아의 말에 황당해서 손까지 흔들면서 말했다.
“화.... 황당하네. 그 일이 뭐? 난 그냥 내가 할 일을 한 것뿐인데.”
이디레이아는 이마에 손을 대고 머리를 흔들었다.
“아무리 몇 천 년을 살았고 몇 만 년을 살았으면 뭐합니까. 나아지는 게 없고 늘 미숙한데요. 어깨 위에 있는 머리는 생각을 하라고 달려 있는 거라고요.”
“뭐? 미숙해? 내가 몇 만 년을 살았어도 미숙하다고?”
텔리는 벌떡 일어나서 이디레이아에게 호통을 쳤다.
“케르케로우스를 죽였다고 자꾸 나한테 뭐라고 하는데, 그건 고통도 느낄 수 없을 만큼 빠른 죽음이었어. 그리고 난 그가 빨리 부활할 수 있도록 그의 시신을 검은 방 안으로 던져줬다고. 그 덕에 지금쯤 그는 벌써 부활 중일 거야. 마치 개운하게 한숨 푹 자는 기분일 텐데 내가 왜 비난을 받아야 돼? 그가 나보다 일주일 전에 검은 방에서 먼저 나와서 이런 저런 일을 당하는 바람에 몸 상태가 안 좋았던 걸 생각하면, 차라리 새로 깨끗하게 부활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그건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죠. 하지만 케르케로우스가 목숨을 잃은 덕분에 제일 이득이 생긴 쪽이 따로 있죠?”
“뭐, 그거야... 케르케로우스가 죽으면 검은 방에 대한 제어력이 약해지니까 아마 그 다음으로 권한이 있는 베토케로우스.....?”
“그래요? 베토케로우스가 이익을 보는 상황이라고요? 왜 그렇게 생각해요?”
“그거야 케르케로우스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서 베토케로우스가 검은 방의 주인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
“아항, 그렇군요.”
이디레이아는 미소를 지으면서 텔리를 흘겨봤다.
“그런데 한 번이라도 그가 왜 그렇게 검은 방을 차지하려고 하는 지 생각해본 적은 있나요?”
“응? 어... 음음... 아니. 없어.”
텔리는 의외의 질문을 받자 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스스로 생각해보니 이디레이아의 말이 옳았다. 그는 단 한 번도 베토케로우스가 왜 검은 방의 주인 자리를 노리는 지,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까 그렇긴 하네. 생각해보니까 왜 그렇게 베토케로우스 그 놈이 그렇게 검은 방에 집착하는 지 이해하기 어려워. 그렇게 소중한 거였으면 처음에 빼앗기지도 않았어야지. 그런데 이상한 게 그것만 있는 게 아냐. 대관절 그 녀석은 왜 이 세계에 와 있는 거지?”
“호호. 그건 알아서 생각하시고요. 아무튼 당신이 이상한 일을 벌이는 바람에 베토케로우스가 원래 일정보다 더 빨리 움직이게 된 거에요. 적어도 다음 주에 일어날 미래가 며칠이나 더 빨리 현실이 되었어요.”
이디레이아는 말을 마치고 음식을 조금씩 먹었다. 텔리는 여전히 팔짱을 끼고 음식에는 손도 건드리지 않았다. 베토케로우스 생각을 하니 짜증이 몰려와서 절로 인상을 찌푸려졌다.
“그런데 당신은 왜 이런 얘기를 해주는 거야? 미래를 볼 수 있는 당신은 원래 아무한테나 예언해주지 않잖아? 그리고 언제나 중립적인 위치를 고수해야 하는 것 아니었어?”
“이젠 내 문제도 되어버려서요. 이대로 가다간 엘리시움은 멸망하게 될 운명이거든요.”
텔리가 팔짱을 풀고 손바닥으로 밥상을 ‘탁!’ 하고 쳤다.
“뭐라고? 엘리시움이 멸망? 도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그건 차차 얘기해 줄게요. 내가 이 할머니의 몸에 깃들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답니다. 지금은 더 중요한 얘기를 전해야 해요.”
이디레이아는 고개를 돌려서 모두에게 말했다.
“어제 여기 왔던 경찰로부터 검은 늑대가 여러분들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었어요. 오늘이나 내일 밤, 척후조가 먼저 여기를 찾아올 겁니다. 위험하니까 그들이 오기 전에 다른 곳으로 피신하길 바랄 게요.”
건수가 손을 들더니 말하기 시작했다.
“일전에 할머니와 함께 검은 늑대 무리를 물리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그 녀석들이 사납긴 해도 이번에도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디레이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그땐 분명히 늑대들이 잘 물리쳤죠. 그런데 이번엔 그들 뒤에 베토케로우스가 있습니다. 그는 지금 궁지에 몰린 탓에 상당히 화가 나있는 상태에요. 그 밑에 있는 그의 부하들도 덩달아 몹시 사나워져 있는 상태랍니다. 여러분들 중 한 사람이라도 그들 손에 떨어지게 된다면 아주 무서운 일을 당할 거예요. 어제 그 경찰처럼 말이죠.”
건수가 이디레이아에게 다시 물었다.
“어제 경찰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요?”
그러자 텔리가 그녀를 대신해서 답했다.
“먹었다는 거야.”
“네?!”
“그 경찰들을 잡아먹었다고. 그게 베토케로우스가 적에게서 정보를 얻는 방식이야. 그렇게 해서 정보를 ‘섭취’하는 거지.”
엘리시움어를 알아듣는 이들은 텔리의 말을 듣고 모두 경악을 했다. 텔리는 고개를 들어 천정을 바라봤다.
“내가 그들을 살려줬어도 소용없었군. 어차피 그들은 어제 죽는 운명이었던 거야.”
“그건 아니에요.”
이디레이아가 텔리의 말을 반박했다.
“둘 다가 죽은 게 아니라 그 중 한 명이 죽은 거예요. 하지만 죽은 사람도 당신을 안 만났으면 살 수 있는 길이 있었어요. 또, 당신이 어제 케르케로우스를 살해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둘 다 살아있었을 거예요.”
텔리는 발끈했다.
“그래서 뭐? 내가 여기 오고 싶어서, 있고 싶어서 있는 것도 아니잖아? 나도 이 시점에 여기 올 운명이니까 그리 된 거지!”
이디레이아는 다시 슬쩍 미소를 흘렸다.
“호호. 누가 당신 때문이래요? 어차피 텔리, 당신은 누가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잖아요? 게다가 당신에겐 생사여탈권이 있는데 누가 감히 당신이 하는 일에 참견하겠어요?”
“으음. 그렇지. 난 그 권한이 있잖아.”
이디레이아의 말 한 마디에 곧 흥분하고 금방 진정되는 텔리를 보니, 건수는 비로소 아까 텔리가 한 경고의 뜻을 조금 알아차릴 수 있었다.
‘텔리님이 말씀하신 저 여신의 무서움이란게 바로 저건가? 왠지 이디레이아님은 손가락 하나 들지 않고도 텔리님을 상대할 수 있는 것 같아.’
이디레이아가 텔리를 보고 말했다.
“텔리, 아까 내게 물어볼 게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아, 이제야 질문할 수 있는 내 턴이 돌아온 건가?”
텔리는 이제야 자신이 이디레이아에게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디레이아가 빙의한 할머니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보았다.
“뭐... 뭐야? 얘가 상태가 왜 이래? 이거 설마.... 또?”
“호호... 호... 미안하게 되었네요. 할머니가 날 영 버거워해서 말이에요. 아무래도 난 곧 떠나야 할 것 같은데요?”
“야! 야! 안 돼에에! 그럼 딱 하나만 알려줘. 푸라 글로리아! 그거 뭐에 쓰는 거야? 그리고... 그리고 내 형, 바이는 어디 있어? 그 음침한 부엉이 신수놈은 왜 자기 사제인 쥬니아를 사지에 몰았던 거야?”
“푸라... 글로리아..... 그게 정 궁금하면... M에게 직접 물어봐요. 그들도 베토케로우스의 뒤를 따라오고 있으니까요.”
“뭐? 걔들도 여기에 온다고? 여기 도대체 뭐가 있어서 그런 거야?”
이디레이아가 빙의한 할머니는 숨이 차는지 거친 숨을 내쉬었다.
“헉... 헉... 에뮤니우스... 그도 M과 함께 있어요. 헉헉.... 그들이 여기 오는 이유는.... 헉.... 헉헉.... 열려 있는.... 검은 문.... 아아아....”
그 마지막 말을 마치지 못하고 이디레이아는 떠나고 말았다. 그녀가 몸에서 떠나자마자 할머니는 깊은 잠에 빠졌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