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부. 솔로우스 - 34 화
솔로우스 – 34
“사.... 사라졌다!”
바로 눈앞에 있었던 건수가 사라지게 되자 베도아는 크게 당황했다. 그런데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건수는 다시 그녀의 시야에 나타나게 되었다. 그는 어느새 그녀 발 앞에 웅크리고 있던 것이었다. 그는 마치 용수철처럼 일어나 그녀의 얼굴을 머리로 받아버렸다.
‘퍼억!’
우스꽝스러운 공격이었지만 베도아는 미처 그걸 피할 겨를도 없었다. 이미 그녀의 두 팔은 긴 칼을 쥐고 있던 두 손과 함께 반대 방향으로 모두 돌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야구 경기에서 타석에 선 타자가 투수가 던진 공을 치려고 풀 스윙으로 휘둘렀는데 알고 보니 그 공은 체인지업이어서 타이밍을 빼앗긴 격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던 것이다. 아, 사실 알고 보니 무지막지한 패스트볼이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녀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고개를 숙인 건수는 튀어오르면서 속도를 늦췄다. 너무 빨리 그녀를 공격하면 방금처럼 그녀의 방어막이 발동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어날 땐 그저 평범한 인간이 낼 법한 속도로 그녀를 들이받았다. 그건 그녀에게 있어 어쩌면 행운이었을 지도 모른다. 만약 그녀에게 방어막을 만드는 노란 돌인 메이크바가 없어서 방어막이 없는 상태로 최고 속도로 움직이는 건수의 박치기를 맞았다면 분명 그녀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을 테니 말이다.
“우웁!”
건수의 기습이 성공하자 베도아의 머리가 뒤로 휙 젖혀졌다. 그녀의 몸이 그대로 뒤로 넘어가면서 땅에 쓰러졌다.
“됐어!”
건수의 입에서 저절로 탄성이 터졌다. 지금까지 검은 늑대들을 상대할 때마다 건수와 케르케로우스는 너무 빠른 속도로 그들을 공격해서 대부분 실패했었다. 그들 중 일부가 몸에 지닌 옴니테바가 만드는 방어막 때문에 그들의 너무 빠른 공격이 저지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건수는 방금 베도아를 공격하면서 속도를 조절하는 법을 몸에 익히게 되었다. 재빠르게 움직였다가 속도를 좀 늦추면서 타격을 입혀야 하는 것이 정답이었던 것이다. 그는 무기까지 들고 있던 베도아와 힘든 싸움을 한 후 한숨을 돌릴 법도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바로 옆에서 다른 병사들을 상대하고 있는 케르케로우스를 도와야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방금 건수가 깨달은 공격 방법을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인지 공격할 때마다 번번이 병사들의 방어막에 좌절되었다.
“야아아!”
건수는 소리를 지르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불새군 병사의 공격을 눈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가볍게 피한 후, 그의 옆으로 돌아가서 보통 속도로 그의 옆구리를 차버렸다.
“으윽!”
공격을 받은 병사는 칼과 방패를 놓치며 저리로 날아가 땅에 쓰러졌다. 자신이 전혀 예상치 못한 엉뚱한 방향에서 무방비인 상태로 얻어맞게 되자 충격이 컸던 모양이었다. 그는 몸을 움직일 수 있었지만 겨우 기어서 도망갈 정도였다. 건수는 다시 시선을 케르케로우스와 그 뒤에 지쳐 쓰러진 스라소니 산신령에게 향했다. 케르케로우스는 아직도 너무 빠른 속도로 병사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가 가하는 충격은 거의 대부분 병사들 주변에 펼쳐지는 옅은 노란색의 방어막이 흡수해서 그들을 뒤로 물러서게만 만들고 있을 뿐이었다. 보다 못한 건수는 케르케로우스에게 소리쳤다.
“케르케님! 공격하실 때 아예 속도를 줄이시거나 아니면 아까 검은 늑대를 공격하셨을 때처럼 정말 빠르게 공격하셔야 해요!”
그러자 케르케로우스가 숨을 헐떡이면서 건수에게 대꾸했다.
“뭐라고? 안들려~! 건수야, 빨리 나 좀 도와줘!”
건수는 말해줘도 못 알아듣는 한심한 케르케로우스를 보고 눈알을 뒤로 굴렸다.
“어휴.... 그게 그렇게 하시면 소용이 없다는데도 잘 못 알아들으시네. 그렇게 공격하면 소용없다구요.”
그는 뛰어올라 바로 옆에 있던 나무의 몸통을 밟고 용수철처럼 튕겨나갔다. 멀리 날아가면서 그대로 케르케로우스에게 달려드는 병사의 방패를 발로 찼다.
‘쿵!’
방패가 건수의 공격을 막긴 했지만, 병사는 측면에서 누가 공격해올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대로 몸의 균형이 무너져 옆으로 쓰러졌다. 그러자 케르케로우스가 그의 몸을 올라타고 크게 입을 벌리며 위협했다. 케르케로우스가 동료를 죽일 것 같이 행동하자, 주위를 포위하고 있던 병사들이 순간 움찔해서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섰다.
‘크르르르르-!’
병사는 겁에 질려 덜덜 떨면서 말했다.
“사..... 살려.... 살려줘!”
건수는 그 틈을 타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 불새군에게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보십시오! 케르케로우스님이나 저나 여러분들을 상대하는데 힘이 조금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희 중 아무도 여러분들을 해칠 생각이 없습니다. 아까 저기 링크스 신수님께서 여러분을 쓰러뜨리신 건 모두 오해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케르케로우스님은 여러분 모두가 안전하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검은 방을 통과시켜주실 겁니다. 그러니 뒤로 물러서십시오! 그렇게만 하면 우린 여러분을 해치지 않습니다.”
케르케로우스 일행을 상대하고 있던 불새군 병사들 중 대부분은 말없이 험상궂은 얼굴로 건수를 노려보았다. 그들 중 일부는 건수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건수가 말한 것처럼 케르케로우스와 그의 사제가 자신들을 상대하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잘 알게 되었다. 그 증거가 바로 눈앞에 있지 않은가? 건수는 부관 베도아를 한방에 쓰러뜨렸고 케르케로우스 역시 그들의 동료의 몸 위로 올라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그를 잡아먹을 것 같은 모습이다. 그들 중 아무도 먼저 건수에게 달려드는 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불새군의 포위망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오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원래 릴리카의 부대에 속해 있었던 히메이오스와 헨리라고도 불리는 헤베이투스였다. 그들은 지금까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른 병사에게서 치료를 받고 있다가 이제야 나선 것이었다. 둘은 건수 옆에 나란히 서자 불새군 병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히메이오스가 입을 열어 병사들에게 말했다.
“이봐, 친구들. 여기 있는 케르케로우스님의 사제 말이 맞아. 이들은 우리와 싸울 생각이 없다구. 게다가 검은 방의 주인은 불새군이 전에 그분께 했던 모든 일을 눈감아주시겠다고 했어. 우리에게 어떤 죄도 묻지 않고 엘리시움으로 돌아가게 해주겠다고 하셨잖아.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병사들은 두 명의 불새군 배신자들과 케르케로우스 발 밑에 깔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동료를 번갈아 보았다. 그들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히메이오스는 더욱 목소리를 높이며 주저하는 병사들을 설득하려고 했다.
“모두들 뭘 망설이는 거야? 두 번 생각할 게 뭐 있어? 너희들 우리처럼 이 세계에 20 년 가까이 머물고 싶어? 가족과 친구가 있는 고향을 떠나서 언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기약도 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거야?”
병사들 중 하나가 그에게 대꾸했다.
“그럼 저기 그의 발 밑에 깔린 녀석처럼 살려달라고 빌라는 거냐? 우린 케르케로우스를 보게 되면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어떻게 그를 보고 그냥 지나치라는 거냐고? 불새군이 어떻게 적을 보고 뒤로 물러날 수 있냐고?!”
그러자 그 주위의 병사들이 웅성거리며 외쳤다.
“맞아! 우리가 어떻게 에피로제님을 배신해?”
“그래! 그랬다간 나중에 에피로제님께서 우릴 부활시켜주지 않으실 거야. 불새 신수는 배신자를 절대 용서하지 않으시니까!”
“야! 저런 배신자의 말은 들을 필요도 없어!”
히메이오스는 황당한 표정으로 술렁이고 있는 병사들을 보면서 긴 한숨을 쉬었다.
“멍청이들. 아직도 그런 얘기를 하고 있다니......”
그렇게 말한 후, 히메이오스는 뭐라고 더 말을 하려다가 도로 삼켰다.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자신과 헨리에게 독한 말을 쏟아내는 병사들을 그냥 쳐다보고 있었다. 왜 좋은 기회를 놓치냐고, 이젠 깨어나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입안에서는 계속 쓴 맛이 느껴졌다. 고향에서 온 동료들에게 옳은 길을 가르쳐줘도 계속 같은 곳을 헤매고 있는 그들을 보니 이 세계에서 오랫동안 고생하던 시절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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