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세 얼간이4
“굉장한 만화야. 처음 하루까지는 진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봐.”
“하루? 만화 속 하루가 길어?”
“아니 현실시간 하루. 읽다보면 서너시간마다 휴게소가 있어. 잠깐 쉬고 갈 타이밍 안 주면 사람들이 다 굶어죽거나 방광 터져 죽을 정도로 몰입감 있어. 만약 나 돈이 생기면 그거 꼭 리메이크 하고 싶었거든. 너무 대단하고 원피스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은 만환데 세계관이 너무 커지면서 작가님이 방전된 듯 대충 완결지어 버렸어. 그게 너무 아쉬워. 그건 꼭 제대로 완결지어야 해.”
원피스를 뛰어넘을 작품이라.
허풍이겠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손해 볼 일은 없겠네.
“그래. 해라.”
“어? 진짜지?”
“어. 해.”
“망해도 돼?”
“어. 얼마든지. 하고 싶은 거 해. 하다 망하면 또 하고, 그거 하다 다른 게 하고 싶으면 다른 거 하고. 그거 하다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살고 싶은 대로 살아.”
돈 걱정은 하지 마라.
똑똑.
“미녀 분들 왔습니다. 자자. 앉으세요. 비싼 술. 비싼 술 많이 마시며 놀아요.”
웨이터가 들어왔다.
“자기소개 게임~ 푹 짝 가오리~”
갑자기?
우리 이야기 중이었는데?
“캬하하하. 푹 짝 예하”
예하가 더없이 행복해 보인다.
그럼 모든 게 좋다.
자기소개 게임 덕인지 여자들은 10분 넘게 앉아있었지만, 끝까지 숫기 없는 닥똥 때문에 결국 나갔다.
여자들이 나가자마자 닥똥이 말했다.
“그럼 난 프로야구단 사줘!”
“어. 사줄게.”
“너 그 생각 하고 있었냐? 옆에 있는 여자한테 집중 안해?”
“아. 야구단 생각으로 가득차서 보내버렸네.”
아냐. 그거 아냐.
핑계가 적절치 못해.
“야구단. 얼마지?”
“글쎄. 모르지.”
“얼만지도 모르고 사달라는 거냐? 크크 미친 새끼.”
하긴.
우리끼리 격의나 예의를 차리는 건 사치다.
그냥 막 던지고 막 말하지.
진짜 사달라는 건 아닐 것이다.
내일 술 깨면 농담이었다고 말하려나.
그래도 사줘야지.
“매년 100억이면 되겠지 뭐.”
“어. 그 정도면 되지 않을까?”
“우와. 오빠들. 진짜 재벌자제들 같다.”
예하가 빙글빙글 웃었고, 내가 부언했다.
“아니지. 재벌2세나 3세는 이렇게 돈 못 쓰지. 용돈 1억 받는 게 고작일 걸. 나만 이렇게 할 수 있지. 으하하하.”
“우와. 오빠 짱.”
“에유 졸부놈.”
“제일 꼴보기 싫은 게 돈지랄이라던데.”
“그럼 해주지 마?”
“사주세요.”
“형 나 백억만.”
“후후후. 경배하라.”
“영광영광핸즈프리~”
“그 이름 위대한 핸플이시어~”
“렛츠 그랜절 타임~”
둘이 그랜절을 시도하다가 가오리가 우스꽝스럽게 자빠졌다.
“꺄하하. 이 오빠들 진짜 웃겨.”
예하는 오늘 별거 아닌 걸로도 빵빵 터진다.
“하게 해줄 거지? 뎀마 리메이크해도 되지?”
“하래두. 내일 당장 팀 꾸려줄게.”
“그럼 나 학교 때려치운다.”
“어. 적성 안 맞으면 접어. 그딴 대 다니지 마. 대학 나와 봤자 소용없어.”
가오리는 훗날 방망이 깎는 노인이 된다.
현재 백제전문대 치기공과를 다니는데 내년에 졸업해 치아 가공 회사에 들어간다.
치과에서 이빨 모형을 보내주면 플라스틱을 자르고 갈아 모형과 똑같이 만들어 주는 일을 한다.
기본급은 150 정도이고 성과급으로 자기가 만드는 개수만큼 가져가는데 한 달 쉬지 않고 15시간씩 일하면 700만원 넘게도 가져간다.
물론 눈썰미와 손재주가 있어야 하며 하루 15시간씩 매일 쉬지 않고 즐기며 해야 한다.
치과에서 준 모형에 맞춰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크면 환자 이빨 사이에 안 들어가니 빠꾸 먹고, 너무 작게 만들면 이빨에 틈이 생겨서 빠꾸 먹어 돈을 못 받는다.
치과에서 떠온 틀이 잘못되었어도 돈을 못 받는데 절대 갑인 치과에 항의할 수 없는 일이니 그저 삭히고 넘어가야 한다.
주말 없이 400씩 벌며 살던 가오리는 사는 게 이해되지 않는단 소리를 되풀이했다.
20년 동안 공부한 모든 지식이 무의미하다고.
그냥 처음부터 틀니 깎았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라고.
그랬던 일조차 3D 프린트의 발전으로 사라져버렸고.
배운 걸, 뭣 하러 배웠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랬었다.
“넌 임마. 방망이 깎는 노인이 되면 안 돼.”
지들끼리 만담을 떠들던 가오리와 닥똥이 돌아봤다.
“응?”
“좋은 세상 가셨네.”
“후. 힘들었다.”
“해치웠나?”
“아앗. 그 말을 하면 부활한다고!”
“예하씨. 우리 3차 갈까요? 저 친구는 경찰 아저씨가 집에 배달해주실 거에요.”
“꺄하하. 오빠들. 너무해.”
이 새끼들이.
“가오리. 너. 넌 임마. 네가 갈 길은 치기공이 아니라 영업이야.”
44살까지 살면서 항상 느끼던 거다.
“뭔 개소린데.”
“초중고 12년. 대학 4년 합이 16년. 온갖 지식을 가르치잖아.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대충 직업이 4000만개 있으면 그 중 1000만개는 딱 하나의 기술만 필요할걸. 바로 말빨.”
취했나?
세상을 구르고 돈 벌기 위해 온갖 잡일을 다 해보며 느낀 절절한 경험을 알려주고 싶다.
틈만 나면 가르치려 드는 걸 꼰대마인드라고 하나.
이게 왜 나빠?
“...... 어?”
“기업의 마케팅. 보험이나 각종 상품의 영업직, 중고차 딜러나 여기 나이트의 형님 등등등등 정말 수많은 직업이 말빨 하나만 있으면 돼. 근데 넌 그게 되잖아. 그게 대단한 거지. 굉장한 기술이지.”
“맞아. 넌 모르는 사람하고 말할 수 있잖아.”
갑자기 닥똥의 동맹.
“그게 뭐 어쩌라는 건데.”
“그걸 살리라고. 대단한 재능이잖아. 천만개의 직업이 그 기술을 필요로 하는데 어디서 가르치는 게 아니고, 넌 말빨을 갖고 있잖아.”
“맞아 개새끼야. 졸라 부럽네. 특히 오늘.”
“그래. 넌 닥똥이 갖지 못한 걸 갖고 있어.”
“오빠, 그런 거 사기꾼 양아치라며.”
예하가 끼어들었지만 무시.
살짝 취한 것 같긴 하다.
“어쨌든. 세상은 잘못됐어.”
“맞아. 말빨 있다고 인정받는 세상.”
“왜 말빨 학과는 없지? 졸라 쓸모없는 학과만 있고.”
“맞아. 세상이 잘못됐네. 그런 걸 가르쳐야지.”
“이건 교육제도의 폐해야.”
“맞아.”
닥똥과 절절이 공감하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짝.
“캬하하하. 이 오빠들 진짜.”
우리만큼 취한 예하는 정신 나간 대화에 또 빵 터져서 웃었다.
똑똑.
문이 열리고 여자가 온다.
“푹 짝 닥똥!”
바로 자기소개 게임을 하고 10분정도 어색한 시간이 지나자 다시 우리만 남았다.
여자 있을 땐 한마디도 못하던 닥똥이 소리쳤다.
“말빨이 문제였어. 핸플 니 말이 정답이야.”
“말빨은 기술이고 공부해야 하는 학문이지.”
“나이트는 놀러오는 곳이 아니었어. 자기를 갈고 닦는 곳이야.”
“맞네. 객관적 자아성찰과 자기반성을 끝없이 되새기게 되는 곳이군.”
짠.
닥똥과 둘이 한잔했다.
가오리도 잔을 들었지만, 혼자 처먹으라고 껴주지 않았고, 예하는 웃다가 잔을 못 들었다.
“초중고대 16년 동안 학교 다니는 대신 나이트에 매일 출근했으면 지금쯤 매일 천만 원 벌지 않을까?”
“세계 최고의 보험왕. 세계 최고의 자동차 딜러. 세계 최고의 영업맨. 뭐든 골라잡을 수 있겠네.”
“우린 졸라 개 쓸데없는 거에 이십년을 허비하고 버린 거였어.”
“교육부개새끼.”
초중고를 졸업하고 치기공을 전공한 가오리가 한 일은 그 길고 긴 교육과 전혀 무관한 손재주와 진득함만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닥똥과 나 또한 그랬고.
세상의 교육은 졸라 쓸데없다.
“어. 그러니까 리메이크는 거절?”
“아니. 해. 해도 돼. 망하면 또 차려줄게. 그보다 난 너를 100대 기업 회장 쯤 만들고 싶거든. 그러니까 좀 더 크게 생각해. 니 말빨을 살릴 수 있는 100대 기업.”
“리메이크 하려면 작가 설득하고 사람들 모아야 하니 말빨이 필요하지 않아?”
“어? 그러네.”
“맞다. 나 또 하고 싶은 거 있어. 나는 압제와 폭거에 신음하는 바츠를 해방시킬거다.”
닥똥의 선언에 예하가 물었다.
“바츠가 뭐야? 오빠?”
“응. 바츠서버는 린이지 1서버로써 거대혈맹이 장악해 사냥터 통제, 레이드보스 통제 등을 하여 모든 일반 유저가 고통에 신음하는 곳이야. 거기 게임머니를 잔뜩 사 내복단을 모아 독재자를 무너뜨려 행복한 서버로 만들 거야.”
“......?”
저건 거절.
“신이시여. 저 새끼 쫌.”
갑분싸를 못 이겨 거국적으로 한잔 들었다.
똑똑.
웨이터가 여자 둘을 데리고 왔다.
오오오.
오늘 들어온 미녀 중 가장 예쁘다.
대략 예하의 0.5정도 되는 연예인급 미모다.
복장도 방어력이 매우 높아 보이는 착 달라붙는 미니스커트.
“자자자. 여기 앉으시죠. 자기소개 게임을...”
“앗. 나는 여기!”
“엣. 나도 이 오빠가 마음에 드는데.
ㄷ자 소파에서 예하와 난 가장 안쪽, 뒷편에 무대가 보이는 유리 앞에 앉아있다.
그런데 새로 들어온 여자들이 굳이 안쪽에 있는 내게 오려고 한다.
“그 쪽은... 파트너가 정해져 있는데요. 우선 이쪽에.”
예하가 내 옆에 앉아있지만 미녀들은 무시했다.
“싫어요. 전 이분이 마음에 들어요.”
“나도 여기. 혹시 둘이 결혼했어요? 사귀세요?”
도리도리.
“그럼 상관없네.”
여자 하나가 내 옆에 앉아 팔뚝을 잡아끌어 가슴사이에 폭 안는다.
다른 여자는 예하를 밀어내고 비집고 들어와 같은 자세를 취하고.
두 여자의 가슴 네 개가 양팔을 포근하게 감쌌다.
예하는 벙찐 표정으로 나이트에선 원래 이러는 건가 고민했다.
“아름다운 현대 여성. 적극적인 자기표현.”
“아니. 왜.”
“저따위에게 왜.”
친구놈들은 오장육부가 찢어지는 아픔을 얼굴에 승화시켰고, 난 한껏 비웃어 줬다.
“훗. 오징어들.”
“이건 사기야.”
“붕괴된다! 세계가 특이점을 돌파했어!”
“에휴. 패배자들은 언제나 현실을 부정하고 눈을 감더라. 눈을 뜨고 거울을 보거라. 못 생긴 게 보이지? 그게 니들이다.”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들었다.
- 작가의말
써놓고 읽어본니 취하는 거 같네 정신없어
며칠 사이에 김프 5%가 10%로 상승
찬물 끼얹는다고 혼나려나...
당연한 말씀이지만 버블이 아니라 진실가치를 찾아 가는 걸 수도 있고, 더 오를 수도 있고, 떨어질 수도 있으니 투자는 언제나 자기판단. 성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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