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국가2
무수골에서 차량이 나가고 경찰이 강제 수색을 시작한 순간부터 모든 것이 실시간 속보로 떴다.
우리 또한 우리가 당하는 부당한 압박을 모든 국내 기자, 모든 외신기자에게 알렸기에 전세계에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다.
내가 타고 있는 택시의 위치도 옥수동 인근에서 알렸고, 경찰과의 화려한 추격전을 벌였다.
그 모든 게 카를로스 곤의 탈출극에 버금가는 충격을 줬다.
덕택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한국 국적을 포기합니다. 난 이제 미국인입니다.
-Now I'm american
모든 뉴스의 헤드라인이 똑같이 도배되었고 동시에 트럼프의 환영인사가 떴다.
어쩌면 트럼프가 선거에서 이길 수도 있겠는데.
대통령을 소환하고 기다리면서 실시간 트럼프의 축하메세지를 읽었다.
“난 한국이 좋고, 여성부 기금 같은 악법이 존재하는 IT를 빼면 되도록 한국 기업으로 만들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뭐 아무래도 좋아. 30분 후에 자회사 하나를 해외 기업으로 이전합니다. 그리고 10분마다 하나씩 해외로 이전하고, 최종적으로 미래메신저를 이동시키겠습니다. 3시간이면 전부 이전하겠네.”
“윤회장님! 여기! 각하의 전화입니다.”
현관에서 멍하니 듣던 안재철 부장이 전화기를 번쩍 들었다.
카메라가 그를 비췄다.
“녹취록 들었죠? 예비군 훈련장에서 날 납치하겠다던 인간이 저 놈입니다. 날 간첩죄로 잡아넣으려던 놈이 저놈이고요. 이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한 대통령은 저놈에게 전화해서 날 바꾸라고 한 것 같네요. 결국 다 한패군요. 대통령은 아직 출발하지 않은 듯 하네요. 모든 기업이 한국을 떠나라는 소리인가.”
전화는 안 받고 딴소리만 했다.
대통령이 방송을 보고 있었는지 안재철이 전화기에 대고 예, 예 하더니 사색이 되어 인원을 끌고 철수했다.
아니 도주했다.
차라리 현장의 경찰들이 저놈을 잡으면 조금은 수습될 텐데, 체면의 문제인가.
사위가 조용해졌다.
“도사장님. 경호팀 부상자 확인해 주시고, 혹여나 사망자 있는지 알아봐 주세요.”
“예. 회장님.”
후우.
카메라가 다시 내 쪽으로 왔다.
예하는 계속 내 옆얼굴만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화면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예하의 얼굴을 쓸어줬다.
겁에 질렸는지 얼굴이 얼음장 같다.
“애국심. 내가 뭐 입이 찢어져도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외칠 것 같진 않지만, 나름 애국했고 나라를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쓴 것 같은데 아쉽네요. 앞으로는 내 나라 미국을 위해 써야 할 테니까요.”
그래.
니들이 뭔 짓을 했는지 이제 깨달아야지.
“나라라는 건 대통령의 것이 아니고 국회의원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화책처럼 하하호호 모두의 것도 아닙니다. 내 생각에 나라는...... 음. 먼저 먹는 놈의 것? 이었던 것 같네요. 지금 밝혀지고 있는 비리, 그리고 오늘 내가 당한 일을 생각하면 말이죠.”
이게 아쉬운 거다.
차라리 교과서에 이렇게 명확히 밝혀주면 사람들이 속지 않을 텐데.
“나는 나라를 이길 수 없어요. 전재산을 다 써도 한국군보다 강한 군대를 보유할 수 없죠. 한국군이 날 죽이려고 하면 틀림없이 죽겠죠. 그렇다고 대통령이 나보다 강한 건 아니죠. 내가 대통령보단 1000배 강할 것 같네요. 대통령은 나보다 더 적이 많고, 더 많은 견제를 받겠죠. 국회의원은? 정부고위 관료는? 9급 공무원? 징병당한 이등병? 누구도 나라의 주인이 아니죠. 그저 시스템을 갖추고 시스템 안에서 갈리는 인간은 갈리고 빼먹을 위치까지 올라간 인간은 빼먹는, 그런 거대하고 비합리적인 게 나라인거 같아요.”
좀 아쉽다.
내가 국적을 포기한 이유를 설명하면서도 한국을 미워하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다.
“여자 한명의 범죄에 난 여자 전체를 미워하지 않아요. 중부지방 사람 한명의 범죄에 북당 지지자 전체를 욕하지 않고 조선족 한명의 범죄에 모든 조선족을 미워하지 않고요. 자식을 죽인 엄마 한명을 보고 세상 모든 엄마를 욕하지 않아요. 세금 먹고 사는 600만 준공무원 한두 명의 범죄에 600만 명 전원을 미워하지 않고, 정치인 한두 명의 범죄에 모든 범죄자를 미워하지 않아요. 이번에 게이트가 터지고 수없이 많은 정치인 공무원이 좆됐지만 거기 연루되지 않은 깨끗한 이가 훨씬 많다는 거 알아요. 대놓고 돈 뿌리고 대놓고 돈 버는 합법로비의 미국보다 훨씬 박봉에 훨씬 열심히 일하는 정치인이 많은 거 알고요. 지금 이렇게 국적을 바꿨지만, 한국을 싫어하지 않아요. 그래서 많이 아쉽네요.”
어딘가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한국이 나은데.
“지구에 태어났고, 지구에서 가장 부자가 되었습니다. 4년 만에. 대단하죠? 나 좀 짱이죠? 그렇지만 지구에서 살아가려면 어딘가 국가에 속해야 해요. 내가 돈이 많으니 무국적을 선택하고 어딘가 섬을 사서 왕국처럼 살아간다? 아니면 이집트와 수단 사이의 포기영토, 진짜 국적이 없는 영토를 구매해 신 국가를 세운다? 군대가 습격하겠죠. 지금에 와서 나에게 국가라는 것은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나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많은 옵션 중엔 한국이 가장 좋았어요. 그래서 한국 국적을 유지했고, 많은 돈을 뿌리며 시기와 질투, 미움받지 않으려 노력했죠. 말짱 꽝이었지만요.”
애국심 때문에 한국에 남은 게 아니다.
여러 조건에 점수를 매겨 한국이 가장 높았을 뿐이다.
“저마다 눈치를 보고, 등 떠밀려서, 혹은 인생을 걸고 도전을 했겠죠. 그게 이 결과고. 모든 인간은 매순간 최선의 선택을 하지만, 그 최선의 선택이란 게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다르니까요. 도전적인 성격, 혹은 계파의 수장으로써 인생을 걸고 모험한 사람들이 날 사냥해 부자가 되고 싶었겠죠. 네. 봐줄게요. 이제 미국인이니까 어찌할 수는 없겠네요. 그래도 이렇게 되었으니 하고 싶었던 말 쏟아낼래요.”
진짜 아쉬워서 그렇다.
“애국. 분단국가이자, 휴전국가이고 전쟁위험이 높은 나라로써 애국심 교육이 중요한 건 알지만, 좀 적당히 하세요. 아무리 개소리를 세뇌해봤자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애국심을 갖고 있어요. 나는 기관총 십자화망에 맨몸으로 돌격하고 싶지 않지만, 나 외의 모든 사람은 국가를 위해 목숨 바쳐 애국하면 좋겠다. 이게 애국심의 정체입니다. 최소한 군대 갔다와본 사람은 모두 이런 마음일 거예요. 나 빼고 다른 사람 전부 애국자이길 바라는 마음.”
안중근 의사 같은 진짜 애국자는 백만 명 중 한명 정도겠지.
나머지는 나만 빼고 다른 이들이 애국하길 바라는 이기적애국자다.
게다가 군대에 가면 있던 애국심도 사라진다.
반공을 위해 사람을 모았지만, 애국심을 지우는 노예생활. 이제 그만.
“애국심 세뇌는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 교육입니다. 나라에서 약탈하고, 착취하고, 죽이고, 무고한 이를 감옥에 넣어도, 그래도 한국에서 버티고 살아라, 하는 끔찍한 교육입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이제 국가의 정의를 바꾸세요. 태어났으니 태어난 나라에 충성하고 목숨 바치고 돈 없으면 군대 끌려가라, 이것 좀 그만. 시대에 맞춰 국가 시스템을 바꾸세요. 국가가 모든 걸 통제하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정부의 역할을 세금을 걷어 뿌리는 것으로 보지 말고, 타국 정부보다 매력적인 정부가 되어 국민의 이탈을 막기 위해 노력하세요. 미국의 상속세 인하를 보면 이해가 가지 않나요? 국민이 타국으로 이동하려 하면 나라에서는 막을 수 없습니다. 법인이 외국으로 이동하려고 하면 국가에서는 막을 수 없습니다.
십여 년 전부터 국가마다 법인세 할인경쟁을 시작했습니다. 저마다 법인세를 낮춰 기업을 유치하고 투자를 유치하려 합니다. 비싼 법인세를 조금 받느니 저렴한 법인세를 많은 기업에게 받아 부유한 국가를 만들려고 하죠. 아일랜드가 이런 식으로 수많은 글로벌 기업을 유치해 수십조의 세수 수익을 얻고 있어요. 마찬가지로 부자의 이민을 유치해 국가 자체의 재산을 늘리려고 노력하고요.
정부는 통제하고 군림하는 왕의 위치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어느 쇼핑몰로 갈까? 하고 고르는 서비스업이 되었습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요. 법안 발전이 기술 발전보다 느린 건 알지만, 외국에서 시작한 걸 이제 따라줬으면 해요. 언제까지 쥐꼬리만 한 권력으로 국내의 불쌍한 사람들만 괴롭히고 뒷돈 받고 세금 빼먹으며 살 겁니까?”
향후 정부의 개념이 바뀐다.
이걸 좀 이해해줬으면 한다.
정부는 서비스업이 된다.
손님이 최대한 만족감을 느끼고 붙어 있게 만들어야 한다.
통치하고 계도하고 교정하고 가르치고 교화시키려 해선 안 된다.
정부는 목자가 아니고 국민은 어린양이 아니다.
정부는 다른 국가 정부들과 서로 손님유치 경쟁을 하는 서비스업이 된다.
띠디디디.
알람이 울렸다.
“안타깝네요. 교통 통제하며 달렸으면 도착하고도 남았을 텐데. 음. 미래웹소설, 미래웹툰을 해외로 이전하겠습니다. 유치를 희망하는 국가는 입찰해 주십시오.”
이유는 다르지만 1년 전 미래 애니메이션을 세네갈로 이전했다.
본사를 해외로 이전했을 뿐 고용한 사람은 대부분 그대로다.
한국에서 일하고 재택근무를 한다.
다만 본사가 얻는 수조원의 수익에 대한 법인세가 세네갈 정부로 들어갈 뿐이다.
같은 이치로 미래웹소설과 웹툰이 해외로 가면 법인세가 해외로 간다.
그 뿐, 별반 변하는 게 없다.
한국 정부가 벌어들이는 세금이 해외 정부로 갈 뿐이다.
넷슨, 놋네 그룹이 일본에 지주사를 뒀다 해서 한국에서의 기업활동에 지장을 받는 건 없다.
글로벌 시대.
임시계약직 정치인 따위가 기업을 압박하면 기업은 본사를 해외로 옮기면 된다.
법인세 인하경쟁.
미국마저도 법인세 인하 혹은 면제를 미끼로 기업을 유치하려 경쟁하고 있다.
향후 모든 나라가 법인세를 인하하고 자국 기업에 법인세 혜택을 주며 어떻게든 기업을 잡으려는 노력을 한다.
이런 세계의 흐름을 한국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 이전이 자유로운 시대.
애국심을 세뇌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착취당하라고 교육하지만.
당장 나부터가 그렇게 하기 싫다.
대통령과 정치인 전원과 그 가족, 친지들과 부자들과 그 관련자들이 전재산을 기부하면 애국심이 생길 것 같기도 하지만 평생 생기지 않겠지.
“국민은. 어린 양이 아닙니다. 이끌려고 하지 마세요. 국가는 정치인의 것이 아닙니다. 경쟁에서 승리해 높은 자리에 앉으니 다 가진 것 같죠? 당신들의 권력은 아주 잠시 스쳐가는 임시 계약직입니다. 50년 전, 30년 전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세상은 당신들 생각보다 빨리 변하고 쉽게 흔들립니다. 안정을 찾지 말고, 뒷돈을 생각하지 마세요. 조금 있으면 그 어떤 재산도 은닉할 수 없는 세상이 오고, 그 어떤 비밀 대화도 녹음되는 세상이 옵니다. 그러니 시스템을 미래에 맞춰 바꾸고, 다른 나라 정부들과 서비스 경쟁을 하세요.”
바뀔까?
분명 국가 간 법인세 인하경쟁을 봤을 텐데.
모른다면 직무유기고 알고도 가만히 있었다면 무능한 거다.
할 말 다 한 것 같다.
“예하야, 말할래?”
“으응? 응. 에... 우리 오빠 미워하지 마세요.”
하더니 눈물을 뚝뚝 흘린다.
아쉽지만, 울 정도는 아닌데.
예하가 너무 걱정하는 것 같아서 안아줬다.
-크윽. 나의 제시님이
-다가진새끼
ㄴ고추는작을거야
ㄴㄴ고소들어간다 입벌려라
-정부가 서비스업이래 뭔소리냐?
ㄴ내일쯤 요약정리 올라오겠지
-나의 제시에게서 손떼!
-아... 염장질당했다
댓글창에 불이 났다.
띠디디디디.
“10분 더 지났네요. 이번에는...”
자회사 표를 봤다.
“미래스마트폰 본사를 해외 이전합니다. 유치신청 받겠습니다.”
국가 간 기업유치경쟁.
10년간 법인세 1%, 혹은 무료, 혹은 노동자 임금 지원 등 수많은 혜택이 담긴 유치신청서가 날아오겠지.
한국은 아무 도움도 주지 않고 세금만 받아먹을 찬스를 제 발로 걷어찬 거고.
제발 미래를 좀 이해해라.
도윤정이 다가와 화면 밖에서 말했다.
“대통령 도착했습니다.”
“오라고 해요.”
잠시 후 열려있는 현관으로 수많은 경호원이 나타나고 70대 노인이 등장했다.
저새끼 때문에 국적을 버리게 됐네. 시발.
존댓말 하기 싫다.
“하이. 아임 미국인 윤동욱.”
앉은 채로 왼손을 주머니에 넣고 오른손을 뻗었다.
악수하자.
- 작가의말
앞으로 정부는 타국정부와 손님유치 경쟁을 하는 서비스업이 된다.
라는게 챕터4의 주제입니다.
미래에 대한 예측은 당연히 100% 제 뇌내망상입니다
정직원편부터 여기까지 정치적 이슈가 될 내용들을 몰아넣고 몰아쳐서 최대한 빠르게 진행했습니다 너무 압축해서 읽기 힘드셨을거 같은데 저부터가 이번 챕터를 빨리 끝내고 싶었어요 ㅜㅜ
여러모로 힘들었거등요
애국 이라는 단어와 정부의 역할 이라는 단어는 그냥 한번 읽어보시고 스스로 기준을 잡으시길 바랍니다. 제 말은 절대 정답이 아닙니다.
쓰면서 보니 삼성을 떠올리실 것 같은데 그쪽을 노리고 한 게 아닙니다
글에 거듭 적었듯 죄 지은 사람은 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아... 그렇다고 반대쪽도 아니고 전 두 당 다 싫어요
모라카노님 후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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