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 새로운 질서2
화면엔 채인수가 나와서 다른 화제를 꺼내기 시작했다.
“윤회장의 재산 중 5%를 1차 기부금으로 꺼냅니다. 1차 기부금은 물가급등으로 식량수입이 막힌, 현 사태에서 가장 고통 받는 국가에 긴급하게 지원합니다.”
물가가 상승하고 주가가 폭락하고 있다.
피해액을 따지자면 재산이 많은 이가 많이 잃는다.
하지만 현실적인 고통은 가난한 이가 더 크게 받는다.
이를 국가단위로 확대하자면 가난한 나라, 식량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국가는 전국민이 굶주리게 된다.
“베네수엘라와 브라질, 필리핀을 포함한 식량 위기국 20개국에 긴급구호식량을 보냅니다. 여기에 집행되는 자금은 한화로 1500조원입니다.”
기아 위기국에 브라질이 껴 있다는 게 무섭다.
관심 없는 사람들은 몰랐겠지만 양적완화버블은 10년에 걸쳐 세계전체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2차 기부자금은 3000조원이 준비되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 식량자급을 위한 지원으로 연계됩니다. 한 달 안에 모든 계약이 만료될 것이며 2년 안에 자급자족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미래블록이 없는 세계에선 식량위기가 10년 이상 지속되고 수억명의 사람이 굶어죽게 된다.
식량난은 국가 내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수많은 내전과 전쟁으로 연결된다.
미래를 보고 온 입장에서 최소한 굶어죽는 사람을 없애고 싶다.
이번 기부의 목표 중 하나다.
“3차 기부는 9월 경에 진행될...”
방송으로 채인수의 발표를 듣고 있는데 닥똥이 갑자기 말했다.
“그런데 너희 결혼은 언제 하냐?”
쏴아~
술자리가 고요해졌다.
예하도 나도 애써 외면하던 주제였기에 대충 둘러대지도 못했다.
가오리놈이 말은 많아도 민감한 말은 안하는데 말수가 적은 닥똥은 자주 말실수를 한다.
분위기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야 이제 알거지니까 예하가 시키는 대로 할래. 예하한테 얹혀살기로 했거든. 예하야 어떡할래?”
기둥서방이면 마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지.
농담처럼 떠넘겼는데 예하의 얼굴이 한없이 진지해졌다.
“어... 오빠...... 한국 국적 회복할거야?”
덩달아 진지한 표정을 지어야했다.
“아니.”
“왜?”
“국적을 얻는 것보다 국적이 없는 게 더 나으니까.”
“응... 그치. 결혼...도 필요 없어. 그래도... 결혼식은 하고 싶어. 오빠 나랑 결혼식 해줄래?”
예하가 프로포즈 했다.
남녀평등 사회인데 여자가 먼저 프로포즈하고 여자가 반지를 선물하는 것도 괜찮잖아.
“그래. 결혼식 하자.”
프로포즈를 받아줬다.
“야야! 그게 뭐야?”
“너희 이상해.”
“예하야... 너까지 왜 그러니.”
에휴 소시민들.
왜 난리치는 거지.
가오리가 큰소리로 외쳤다.
“국적은 왜? 한국사람 안하게?”
“한국국적 따서 좋은 게 뭔데?”
“뭐긴! 한국의 치안이나 의료보험이나 인프라 등등. 많잖아.”
“한국 국적이 없으면 이용 못해?”
“어? 아...니네. 한국에도 외국인 많지. 그래도 밉보여서 쫓겨날 수 있잖아. 스티븐 유처럼.”
“그거야 갸가 과했으니 그렇지. 사회지도층 자식 중에 외국 국적 갖고 한국에서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불이익 받는 거 봤어? 당장 한국한공 소유주부터가 외국인이잖아.”
“아...니. 그래도 너희 회사가 타격을 입지 않을까?”
“전 재산 정리하고 백수 될 건데?”
“어. 그러네. 그래도 장점이... 없으려나?”
가오리가 눈과 입을 ㅇ 모양으로 하며 갸웃거렸다.저 표정 나왔으면 말싸움 졌으니 웃으라는 뜻이다.
실소가 나오는 면상을 보면서 말했다.
“한국 국적이 없을 때의 장점은 확실하지. 대놓고 빼돌리는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고 군대 가지 않아도 돼. 내가 시발 진짜 지난 27년 인생을 돌아보건 데 군대 2년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가장 거지같았던 시간이야. 시급 160원을 받고 24시간 일하면서 감옥 죄수보다 못한 밥을 먹고, 장교들의 출세놀음을 위해 전쟁준비와 전혀 상관없는 개뻘 짓을 한 것. 군생활 2년은 한국이란 국가가 국민에게 강요한 세금이야. 국적이 없으면 그딴 거 낼 필요 없지.”
닥똥이 말을 받았다.
“넌 이미 갔다 왔잖아.”
“내 애의 미래.”
곁에 있는 예하의 배를 만져줬다.
전혀 튀어나오지 않았다.
군살하나 없는 매끈한 배.
예하는 거기까지 생각했냐는 듯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닥똥이 반박했다.
“야. 다 그러면 나라는 누가 지켜? 아무도 군대 가기 싫어하지.”
“그건 나라가 고민할 문제지 개인이 의무감을 갖고 책임질 문제는 아니지. 길영주야. 한국 출산률이 바닥이니까 네가 나라를 위해서 아이를 여덟명 낳을래?”
내 말에 닥똥와이프가 끔찍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으... 싫어. 헛소리 하지마.”
닥똥도, 길영주도 모르는 사람이 있는 자리에선 낯가림이 심한데 이런 익숙한 자리에선 편히 말한다.
그녀의 반응을 본 닥똥이 조용해졌다.
“한국의 출산률 문제는 국가전체의 문제지 개인이 책임지고 나서서 짊어질 문제는 아니야. 국가에서 출산률 대책을 세우는 이들이 국가를 위해 애를 다섯씩 낳고 그래? 아니잖아. 한국의 군대가 좆같은 것도 개인이 책임질 문제는 아니지. 국가가 진작에 나서서 군비리 없애고 제대로 전쟁준비만 하는 집단으로 만들었으면 이렇게 되지 않겠지.”
가오리가 튀어나왔다.
“어... 전에 니가 말했던 것 같은 소리네. 국가는 서비스업이다? 이거?”
“어. 세계 화폐인 미래블록이 탄생했으니 앞으로 국적 이동이 점점 간편해져. 이제는 태어난 국가에서 태어난 사상체계에 얽매어 미친정책에 평생 착취당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낯선 곳에서의 삶이 익숙한 곳에서의 착취보다 낫다면 사람들은 전재산을 미래블록에 넣고 국가를 옮겨다니게 되겠지.”
“나라에서 막지 않겠어?”
“못 막아. 전재산이 미래블록에 들어있으니 가난하고 인구 부족한 국가들이 마케팅을 하겠지. 재산 얼마 이상 기부하면 시민권 줌. 이러면서. 이미 몰타에선 예전부터 시민권장사를 해왔고, 그게 확대될 거야. 정치가 개같을수록 인구이탈, 특히 중산층의 이탈이 심해질테니 위기감을 느낀 후에야 군대시스템을 고치는 등 변화가 나올거야. 화폐의 탈중앙화는 국가의 경계를 허물고 그때가 되면 세계의 정치가 훨씬 나아질 거야. 한국의 군비리와 게임규제같은 정신 나간 짓이 없어진다는 뜻이지.”
“니가 미래 얘기하면 그대로 될 것 같아서 무섭다.”
“그대로 될 거다.”
믿어라. 미래에서 왔느니라.
가오리가 잔을 들다가 비었음을 알고 모든 이의 잔을 채웠다.
예하를 제외한 모두가 소주 한 잔을 마셨다.
예하는 아쉬운 지 침을 꼴깍하고는 깐쇼새우를 집어먹었다.
“많이 먹어.”
“어. 이미 평소보다 두 배 먹은 거 같아.”
“배 안 불러?”
“배부른데 억지로 넣는 중임.”
“어. 장하다.”
예하와 속닥이는데 닥똥이 말했다.
“결혼을 안 하는 것도 같은 이유야?”
“결혼한다는 게 국가에다 신고한다는 거잖아. 국적이 없는데 어디에 신고해?”
“그...래도. 음. 넌 엄청 유명하고 유능하니까 봐주더라도 니 자식은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학교에서나 사회 나가서 국적 없다는 게 엄청 괴로워질 것 같은데.”
“니가 현재 시점에서 아이가 큰 후를 상상하니까 그렇지. 20년 후의 세계는 지금과 완전히 달라질 거야. 울타리 없는 탈중앙화 시대가 돼. 아이의 미래를 현재 기준으로 따지면 안 돼. 80~90년대생들은 부모세대의 강요로 죽어라 공부했지만, 결과는 300만 대졸백수잖아. 그때부터 ‘20년 후엔 일자리가 부족해지니 해외로 나갈 준비를 하자.’ 했거나 아예 즐겁게 노는 학창시절을 보냈으면 덜 억울했을 텐데 대학 4년 버리고 수천만원 버리고 알바인생이 된 건 너무 안타깝잖아.”
“어. 맞아. 그러니까 20년 후에는 국적 문제가 지금과 전혀 다를 거란 거지?”
“어.”
“모르겠다. 니가 그렇다면 맞겠지.”
이해가 쉽지 않은지 닥똥이 갸웃하며 술잔을 들었다가 빈 것을 보고는 술을 따랐다.
길영주가 닥똥이 술을 못먹게 막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결혼식은 어떻게 할 거야?”
길영주가 예하를 보며 묻자 예하는 나를 쳐다봤다.
생각 안 해봤는데.
“어떻게 할래? 일반적인 결혼식장에서 할래? 아니면 오랜만에 타우바트 섬이나 갈까? 아니면 메타버스?”
“음... 몰라.”
예하는 술잔을 찾다가 아차 하고는 물컵을 들었다.
삐졌네.
조심해야 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화려한 결혼식을 하자! 예하 널 위해서!”
“오올!”
“역사상 최고 부자니까 최고 화려하게 해야지.”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고?”
“몰라.”
인터넷에 물어보자.
그날 밤 내 미래커뮤니티 페이지에 공지글을 올렸다.
예하와 결혼하려고 하는데 한푼도 없음.
화려하게 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음.
누가 아이디어 좀.
내가 개인커뮤니티에 글을 쓰는 일은 1년에 한두 번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상주하며 모니터링 하고 있다.
내가 쓴 글은 곧장 기자들과 인플루언스에게 공유되어 퍼져나갔고 세계의 각종 커뮤니티에서 화려한 떡밥이 되었다.
“오늘이지?”
예하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벽을 쓸었다.
무수골 저택.
정치인 로비용으로 만들어졌지만 내가 삼켜버린 대형주택.
“12시에 낙찰되면 주인이 바뀌어. 그땐 이삿짐 싸야지.”
“어... 아쉽다.”
4년을 살았는데 보내줘야 한다.
내 전재산에는 이집도 포함되어 있으니.
미래그룹의 자회사인 미래경매에선 모든 물건이 NFT화 되어 올라간다.
기존 경매와는 다르고 코인회사나 메타버스 회사의 NFT와도 다르다.
개인이 신청하면 미래경매에서 메타버스 데이터를 찍고, NFT를 만들어준다.
경북청송의 과수원을 NFT로 올리거나, 인천의 중고차를 NFT로 올리는 식이다.
신청자는 받은 NFT를 받고 싶은 가격에 시장에 내놓는다.
비싸게 내놓았다가 사려는 사람이 없으면 스스로 가격을 내린다.
사고자 하는 이는 적당한 가격이 나오면 사고 낙찰일 전에 마음이 바뀐다면 다시 시장에 내놓는다.
낙찰일이 되면 거래가 완료되고 주인이 바뀐다.
기존 경매와 비슷하면서도 훨씬 합리적이고 무엇보다도 수수료가 제로에 가깝다.
무수골 저택도 NFT로 시장에 내놓았다.
여기서 얻은 수익도 기부금에 포함된다.
가격은 700억원.
150평 복층 저택 10채와 4층 본관건물, 넓은 정원이 포함된 가격이다.
내놓는 즉시 팔렸고, 700억 상당의 미래블록이 이미 계좌로 들어왔다.
이미 손을 떠났다.
이제 와서 다시 사려면 시세에 맞춰 돈을 줘야 하는데 현재 저택의 NFT 가격은 6200억이 되었다.
열 번 가량 주인이 바뀌면서 계속 가격이 오른 덕이다.
호가창에는 6600억에 매수하겠다는 신호가 떠 있다.
“저게 서울시지?”
“어. 말 많이 나오던데.”
서울시에서는 무수골 저택을 구매해 미래블록 박물관으로 만들겠다는 발표를 했다.
공무원답게 발표 후 예산을 책정하는 사이 꾸준히 가격이 올랐으니 서울시에서는 그때마다 서울시 예산을 당겨오느라 한 발 씩 늦었다.
지금은 아예 신문에 기사를 내며 국가를 위해 양보하라는 투로 말하는 중.
시민들은 세금으로 그렇게 비싸게 살 필요가 있냐며 반대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낙찰시간까지 30분.
현재 주인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막판에 팔지 않을까 싶다.
“10분 남았다. 어? 바꼈다.”
“어디?”
호가창을 보니 6800억 원 매수가 떴고, 보유자는 그 가격에 잽싸게 팔았다.
서울시의 6600억 원 매수신청이 그대로 있는 걸 보면 서울시는 아니다.
“누구지?”
“몰라. 누굴까?”
“에휴. 뭐 우리랑 상관없지. 예하야. 짐 싸자.”
“진작 다 쌌지롱.”
뚜루루루.
-비서실의 나선혜입니다. 본사의 채인수 사장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연결하겠습니다.
내 핸드폰은 방에 있구나.
“네.”
-동욱아. 낙찰자한테 전화 왔다.
“어. 누군데요?”
-브라질 정부. 너한테 100년간 무료 임대하겠대.
“어... 네? 왜요?”
-식량지원 고맙다고 쏜대. 기사로 내면서 이미지 관리 하겠지. 우리가 브라질에 보내는 식량이 70조원 아니냐. 앞으로도 잘 보이겠다고 뇌물 쓰는 거지.
“헐. 그럼 그냥 살아도 되겠네요.”
-어. 그 얘기였어. 짐 풀어. 끊자. 나도 집에 전화해야 해.
“네. 떙큐.”
옆집 사는 채인수도 자기 집에 전화해야 한다.
전화를 끊으니 예하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다.
“안 나가도 된대?”
“어. 100년 동안 그냥 살면 돼.”
“와. 와아아. 아. 좋다. 신난다. 에헤헷. 영주언니한테 전화해야겠다.”
오늘 집에서 나가면 닥똥펜션에서 몇 주 정도 놀기로 했는데.
기다리고 있을 영주에게 사정을 설명해야 한다.
“어이 가오리!”
옆집 사는 가오리에게 전화했다.
“파티다! 놀자. 닥똥네로 와.”
닥똥펜션에 음식이 준비되어 있으니 예정대로 가서 논다.
노는 이유만 바뀌었을 뿐이다.
전화하는 사이에 낙찰시간이 지나 주인이 확정되었고, 브라질 정부는 훈훈한 기사를 발표했다.
- 작가의말
죄송해요오. 넣고싶은 메세지를 다 넣고 나니까 갑자기 번아웃이 왔어요
뒷이야기 전부 준비되어 있고 두시간만 쓰면 한 화 쓰는데 그냥 키보드가 안눌렸어요 죄송해요오
어떻게든 매일연재로 완결까지... 그런데 구정이네. 최대한 성실하게 쓸게요. 엔딩까지 전부 준비되어 있으니 그냥 쓰기만 하면 되요오 죄송해요오...
현재 식량문제는 정말 심각한거 같애요 브라질이 기아국에 지정될 정도면 남미 전체가 초토화란 얘긴데... 아... 몰라요... 주식 아직 안뺐는데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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