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 젊으니까 아프다
주방에서 춘장을 볶고 양파를 투하하는 예하를 보며 테블릿으로 뉴스를 봤다.
[미래블록, 안정화 포기의 의미]
미래블록은 일본의 양적완화를 핑계로 고정환율을 포기했다. 이게 무슨 뜻일까? 다들 궁금할 것이다.
일본이 돈을 마구 찍어내니 종이를 찍어 실제 가치 있는 미래블록과 바꾸는 것이 다른 나라의 사용자가 피해를 본다.
미래블록을 통해 거래되는 선박, 자동차, 휴대폰, 심지어 구리와 리튬같은 원자재를 얻기 위해 일본이 하는 노력은 돈을 마구 찍어 미래블록을 발행하는 것뿐이라는 뜻이 된다.
이렇게 될 경우 일본은 돈을 찍는 수고만으로 수백조 가치의 재화를 얻으며 그 재화는 다른 화폐보유자들로부터 조금씩 걷어 들이는 결과를 낳게 된다.
여기까지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그룹은 일본에 전쟁을 건 것일까?
아니다.
양적완화는 전 세계의 추세이며, 전 세계 모든 정부가 항상 돈을 찍어냈다. 한국조차 돈을 찍어 전 국민에게 지원금을 뿌리고 있다. 심지어 현 시점 양적완화의 규모가 가장 큰 나라는 미국이다. 즉, 미래그룹의 이번 선언은 전 세계 모든 정부를 향한 경고다.
함부로 양적완화를 하니 미래블록 사용자들이 자신의 정당한 재산가치를 잃고 있다. 미래블록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칼을 빼든 것이다.
다만, 전쟁을 선포했으니 전투가 벌어지는 건 필연적인 순서. 과연 미래블록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본인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아. 우릴 보호하려고. 윤형니뮤...
-그저 갓동욱...
-이런 의미였구나
-늦어, 분석을 한 달 동안이나 하냐
-ㅋㅋㅋㅋㅋ 원래 뒤돌아보는 게 쉽습니다 미리 예측하는 게 어렵지
-윤형은 갓이기 때문에 이길 수 있다구!
꽤 예리한 분석이다.
미래블록의 스테이블 포기 후 한 달.
베네수엘라 안가에 쳐박힌 지 열흘.
그 사이 세계는 내 의도를 알아차렸다.
세계 모든 이가 바보일 리 없고, 내 의도를 전부 숨길 수도 없다.
고위급끼리 분석해낸 정보가 점점 퍼지고 언론에까지 보도되며 내 작전의 의미가 적나라하게 알려지게 되었다.
[일본 폭락의 원인]
알다시피 일본의 엔화는 달러-위안화-유로화에 이은 세계에서 네번째로 규모가 큰 화폐다. 국가 단위로 치면 세계 3위 경제대국이다.
그런 일본이 몰락하고 있다. 미래그룹의 발표 이후 일본 증시는 한달 연속 하락중이다. 다른 국가의 증시가 20% 하락 후 조정과 횡보를 거치는 동안 일본 증시는 40% 폭락해 코로나 공포가 만연하던 2020년 봄보다도 더 낮은 가격에 내려왔다.
일본 정부는 이 모든 게 미래그룹 때문이라고 강력히 규탄하며 미래그룹의 자국 내 활동을 정지시키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그런데 이게 미래그룹 때문일까?
본 기자는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다. 일본 내 미래그룹 협력사 30여개가 도교거래소를 벗어나 미래거래소로 이전했다. 이들 기업의 주가는 오르지도, 떨어지지도 않는 횡보를 거듭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가 뭘까?
금융은 더없이 차갑다. 애국심이나 인간의 선의가 끼어들 수 없는 장소다. 주가는 가장 냉정한 가치판단이다. 그렇다면 일본 증시가 하락할 때 미래거래소의 주가가 그대로인 건 무슨 의미일까?
주가 하락의 원인이 기업에 있지 않다는 뜻이다. 기업은 그대로다. 그런데 화폐의 문제로 엇갈렸다. 엔화의 불안정성에 일본 기업들이 폭락하고, 미래블록의 안정성 때문에 미래거래소 기업들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흑자도산. 들어봤을 것이다. 멀쩡히 잘 돌아가는 기업이 외부 원인으로 인해 망하는 현상. 일본 기업들은 이 일을 겪고 있다.
올해 연말. 일본은 이자 포함 500조원의 국채를 갚아야 한다. 세금으로는 충당할 수 없는 금액이다. 일본은 500조의 국채를 추가 발행해 갚아야 한다. 그런데 현 분위기로는 국채가 팔릴 것 갖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양적완화를 통해 돈을 찍어내 갚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양적완화를 추가하면? 일본의 엔화는 신뢰를 더욱 잃게 된다. 자칫하면 짐바브웨달러 같은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올 수도 있다.
현재 일본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뿐이다. 양적완화를 추가하거나.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거나.
애석하게도 둘 다 결과는 똑같아 보인다.
-네, 좋은말씀 잘 들었습니다 물론 읽지는 않았습니다
-요약충 나와라
-일본 망함ㅋㅋㅋ
-양적완화ㅋ 사기ㅋ 모라토리엄ㅋ
-옆나라 일본이 망하면 한국도 망해. 어떻게든 살려야지, 윤동욱ㅆ새때문에 우리까지 망한다
ㄴ너 유니끌로 알바지?
한 달.
슬슬 내 진의를 세계가 알기 시작했다.
“오빠, 먹자.”
“어? 어. 반찬 꺼낼게.”
반찬을 까는 사이 예하가 두 그릇의 짜장면을 상에 올렸다.
레토르트 데우는 줄 알았는데 춘장 볶고 고기, 양파 넣어 제대로 만들었다.
“대단하네?”
“우후후. 가수 망하면 요리사 할 거야. 요리 재미쪙!”
“그래. 네가 하면 잘 될 거야. 손님 미어터지겠네.”
오픈키친 만들어서 예하가 직접 요리하는 모습 보여주면 사람들이 줄을 설 테고, 그걸 매일 실시간 방송하면...... 어라 대기업보다 많이 벌겠네.
역시 예쁜 건 사기다.
예쁘면 실패할 수 없는 기울어진 세상.
“안 먹어?”
“잘 먹겠습니다.”
면은 우동면이다. 반죽할 시간까진 없었나보다.
그보다 맛있다.
약간 달긴 하지만, 예하가 당 떨어졌다고 호소했으니 달게 먹어야지.
“맛있다.”
“그치? 역시 백씨 레시피가 짱이야. 우후후.”
짜장면의 특성상 금방 먹고 내가 설거지를 했다.
예하는 커피를 내리면서 내가 보던 기사를 봤다.
“이제 대충... 이해가 된다. 헤헤헤.”
“고생한 보람이 있네.”
“일본 주가가 반토막 났다는 게... 버블이 절반이었다는 뜻이야?”
“더 떨어질걸?”
“왜?”
“말했잖아. 외통수라고. 아베는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했어. 일본은 추가 양적완화 외엔 어떤 길도 없어.”
설거지를 마치고 손에 묻은 물을 행주로 닦은 다음 대충 펴서 싱크대에 널었다.
그 후 예하 옆에 앉으며 예하가 읽을 만한 기사를 찾아 열었다.
[엔화의 미래. 신뢰를 잃은 화폐의 미래]
화폐는 사회적 약속이다. 사회에서 신뢰하지 않는 순간 화폐는 아무 가치 없는 쓰레기가 된다. 그렇기에 화폐는 언제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버넹키의 양적완화는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다. 내가 돈을 갖고 있는데 누군가 돈을 마음대로 찍어내고, 앞으로도 무한히 찍어낼 것이 예측된다면 누가 화폐를 들고 있을까? 양적완화를 할수록 내가 가진 화폐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달러는 거대하다. 너무 많은 것들이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미국이 찍어낸 3경원의 화폐는 달러 전체에서 보면 티끌만큼이다. 그래서 아직 흔들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엔화는 다르다. 미래블록이라는 훌륭한 대체제가 등장했다. 미래블록은 유로화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통화량을 획득했으며, 엔화와 달리 함부로 찍어낼 수 없다.
앞으로도 정부 마음대로 찍어낼 엔화를 들고 있을래? 아니면 미래블록을 들고 있을래?
엔화가 폭락한 이유는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엔화가 신뢰를 잃었으며, 양적완화의 의미를 모르던 사람들이 미래블록 덕에 문제점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하가 기사를 끝까지 읽은 것을 본 후 차분히 물어봤다.
“이해 돼?”
“어? 얼핏. 그러니까... 양적완화가 돈을 마음대로 찍어내는 거라서 아무도 들고 있지 않을 거라는 거지?”
“맞아. 일례로 양적완화가 시작된 10년간 전세계 주식과 부동산이 꾸준히 올랐어. 이건 돈이 더 풀렸으니 주식과 부동산에 돈이 몰렸다고도 볼 수 있지만, 달리보면 위험한 현금을 갖고 있느니 수량 한계가 있는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현금을 바꿨다고 볼 수도 있어. 양적완화의 단점이지.”
“어... 이해 한 것 같아.”
예하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겨우 대답했다.
“자 봐봐.”
새로운 기사를 열어줬다.
[일본 세 번째 소비세 인상 단행]
지난 아베정부 시절 일본은 5%였던 소비세를 8%로 올렸다. 그럼에도 부채를 감당할 수 없었던 일본은 2019년 다시 10% 인상을 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소비세를 13%로 올렸다.
일본 정부는 미래블록의 공격으로 인해 인상할 수밖에 없었다고 발표했다. 일본 국민 대부분은 정부의 발표를 믿고 미래그룹을 욕하는 데 동참하고 있으며 미래메신저 지우기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미래블록 때문일까?
일본은 이미 부채의 늪에 빠져있다. 매년 경상수지 200조원 흑자를 거두면서도 매년 부채가 늘고 감당해야 하는 이자비용이 늘고 있다.
여기서 잠깐.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양적완화를 단행하고 있다. 미국의 4분의 1, 중국의 5분의 1 규모인 일본으로썬 무리하게 돈을 찍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 돈이 추가되었다면 경제가 나아져야 한다. 그러나 아베노믹스 10년간 일본의 경제는 꾸준히 나빠졌다. 빚을 돈 찍어서 갚는 행위라도 했으면 소비세 인상 같은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 말아야 할텐데 그조차 없었다는 뜻이다.
1당 독재. 나라를 망쳐도 자민당. 이것이 일본의 현실이다. 고령화 사회로 인한 실업률 감소가 아베에 대한 지지율을 올리고, 무지막지한 양적완화가 불러온 ‘이웃나라 거지만들기 정책’으로 수출환경이 좋아진 것도 지지율로 연결되었으며, 주변국 모두와 강경한 영토분쟁을 하는 것도 지지율로 연결되었다.
그 뒤에선 어마어마한 비리가 이어진다. 거액의 동일본지진 복구비용이 누구 주머니로 갔는지 모르는 게 일본의 현실이다. 그래도 되는 게 일본 국민은 정치에 대한 감시를 포기했다. 총리나 고위공무원의 비리가 걸려서 짤리더라도 자민당이 이어서 집권하니 똑같은 비리가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비리가 이어지는 와중에 일본의 빚은 계속 늘고, 일본의 양적완화는 빚을 눈덩이처럼 늘리며, 양적완화를 했음에도 소비세를 인상하는 처참한 현실이 일어나고 있다.
-기레기가 야당에 돈받고 쓴듯
-일본애들 어차피 인터넷 안되서 못 읽음
-ㅋㅋㅋㅋ열도침몰한다아아
-소비세 올려서 메칸더 만들고 있답니다 글 내려주세요
-제2차 태평양전쟁 비용이라구욧!
기사를 읽은 예하가 또 미간을 모으고 곱씹었다.
주름 생기겠네.
살살 만져서 주름을 펴 줬다.
“어... 오빠... 그러니까... 오빠 말보다 위험한 상황이라는 거지?”
“그래. 미래블록의 스테이블 포기로 약간 앞당겨졌지만, 그게 아니었어도 일본의 소비세 인상은 필수였어. 전에 슬쩍 말했던 테이퍼링과 소비세. 이건 일본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야. 솔직히 첫번째 소비세 인상은 할 수 밖에 없었어. 그땐 서프사태와 동일본지진 2연타를 맞아서 망하기 직전이었으니까. 그런데 두번째 인상은 달라. 어마어마한 돈을 복구비용이랍시고 쏟아버렸거든. 토목. 토목이라는 게 꼭 필요하긴 한데 돈 빼먹으려고 마음먹으면 무한정 훔칠 수 있는 게 토목이야. 건물같은 건 결과물이 남으니 크게 빼먹기 힘들지만, 터널이나 교량 같은 건 땅속 상황에 따라 같은 결과물에도 두 배의 단가차이가 나거든. 일본은 엄청난 양적완화로 돈을 찍어내서 몽땅 토목에 쏟아 부었어. 그 결과 아무도 가지 않는 동일본지역에 유령도로 따위만 잔뜩 생겼고, 아마도 대부분은 정치가의 뒷주머니로 갔을 거야. 그렇게 버려진 돈은 고스란히 일본의 빚에 추가되어 지금 일본을 낭떨어지로 밀고 있어.”
“어... 그렇게 들으니 일본이 불쌍하다.”
“정치의 중요성이지.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보여? 한국은 남당과 북당이 매일 싸우잖아. 서로 지지율이 비등하고. 서로 정권을 잡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상대의 실수를 찾고 있지. 뉴스를 볼 때마다 참 짜증나겠지만, 이건 좋은 정치야. 정치인의 가족과 사촌까지 샅샅이 수색하니 돈을 빼돌리기 힘들지. 그런데 일본은 이런 게 없어. 소비세 5%를 8%, 10%로 연달아 올렸어. 한국이었다면 당장 탄핵과 정당해체수준의 비난이 쏟아질텐데 일본은 반응이 없었지. 돈에 미친 아베는 더욱 더 돈을 찍어서 어디론가 슈킹했고, 결국 일본은 모라토리움을 앞두게 된 거야.”
“에휴. 죄없는 사람들이 고통받고?”
“어. 특히 이번 경우는 젊은 층에 모든 짐이 부과돼. 내가 양적완화를 싫어하는 이유고.”
또 얘기가 길어지겠네.
예하가 또 당이 떨어졌는지 머리를 흔들었다.
내가 괴롭히는 건가?
- 작가의말
모두 상상입니다 일본이 추가로 소비세 올릴지 내릴지 몰라요 상상이에요
내가 형들 괴롭히는 거 아니죠?
그냥 일본 좃됐대ㅋㅋㅋ하고 넘어가세요
일본을 사랑하시는 분들껜 죄송합니다, 일본의 현재 상황이 양적완화를 소개하기 가장 편해서 주 타겟으로 잡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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