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 별이 빛나는 밤에3
“왜 갑자기 교대 디스하냐?”
가오리가 입을 동그랗게 말며 갸웃했다.
이 새끼는 자기 면상으로 개그 치는 걸 너무 잘한다.
“미래를 말하라며?”
“확실한 미래냐? 천기누설인 것이냐? 아닐 경우 넌 전국의 수많은 선생님들로부터 커다란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니라.”
“에휴. 이건 천기누설도 뭐도 아니야. 그냥 뻔한 사실이야.”
“뻔하다고? 교대 망하는 게?”
가오리처럼 주위 사람들도 아리송하게 바라봤다.
“이과생 최상위는 의대를 가지. 왜? 의사가 돈을 잘 버니까. 이건 첫째 이유고 둘째 이유는 실패율이 낮아서야. 의대에 간 수험생의 90%가 의사가 돼. 정말 적성에 안 맞는 사람 일부만 그만둘 뿐 나머지는 거의 다 의사가 돼.”
“어. 교대도 그렇지.”
“문과 최상위는 서울 교대를 가고, 다음 점수는 지방교대를 선택하지. 졸업 학점이 아슬아슬해서 불안하면 지방 쪽 시험을 봐서라도 다들 초딩 선생님이 되지. 대학 들어가는 순간 공무원 합격! 심지어 방학도 있어. 세상에 일 년 중 2달 휴가가 있는 직업이 선생님 말곤 없잖아. 이러니 인기가 좋은 거고.”
“그렇지. 그런데 왜 망한다는 거야?”
가오리가 묻고 나머지도 다들 동의했다.
“에휴. 미래는 갑자기 뿅 하고 나타나는 게 아니야. 과거에서 시작된 현상이 미래로 이어지는 거야. 지금 출산율이 0.8명이잖아. 우리 때 초딩이 학년 당 60만 명이었는데 나중엔 초딩이 20만 명으로 줄어. 그러면 선생님을 줄여야 하지. 문제는 초딩 선생님들이 전부 공무원이고 엔간히 미친 짓을 하지 않는 한 정년을 보장받아. 즉, 지금 월급 받고 있는 선생님을 자르기 힘들어. 그렇다면 새로 뽑는 선생님의 숫자를 줄여야겠지?”
“그러네.”
“신규채용이 줄어들면 교대를 졸업한 예비 선생님들이 취직하는 게 극도로 힘들어져. 초딩임용시험의 경쟁률이 사범대처럼 4:1 5:1로 오르거나 10:1이 될 수도 있어. 임용시험에 붙더라도 초딩선생 자리가 나지 않아서 10년 15년씩 대기해야 할 수도 있어. 지금도 2~3년씩 기다린다고 하더라. 1000명 졸업해서 100명만 선생님이 되고 나머지는 고학력 백수, 영원한 공시생이 되는 거야. 이러면 누가 교대에 가고 싶어 할까? 서울의 교대는 그나마 점수를 유지하겠지만, 지방의 교대는 커트라인이 지옥까지 떨어지겠지.”
“에이. 간단한 해결책이 있네. 교대 입학생을 10분의 1로 줄이면 되잖아. 그래야 고학력 백수가 안 생기고, 영원한 공시생이 안 생기지.”
일동 끄덕끄덕.
이거 참 순수하구만.
“대학의 본질은 수익이야. 대학은 학생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아. 자격증 팔아 돈 벌려고 만들어진 기업이야. 대학이 스스로 이익을 포기한다? 만 명에게 돈을 뜯을 수 있는데 학생의 밝은 미래를 위해 천명만 뽑는다? 그건 불가능해. 몇 년 전부터 교육부에서 감축시키려 하는데 교대에서 돈쓰고 로비해서 입학생을 유지하고 있어. 대학이 스스로 입학생 숫자를 줄이는 건 아무도 입학하지 않으려 할 때뿐이야.”
“젠장.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거 아니냐.”
“부정적이라기 보단 진실 그대로 말한 것뿐이지. 야 고기 탄다.”
가오리가 고기를 뒤집으며 말했다.
“출산율이 낮아서 초딩이 줄어들면 초딩 선생님이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교대 커트라인이 낮아진다는 거네.”
“어. 몇 년 후면 커트라인이 낮아질 뿐 아니라 지방교대는 미달사태가 나겠지.”
“이건 미래도 뭣도 아니잖아. 그냥 뻔한 사실이구만.”
“내가 말했잖아. 그냥 보면 보이는 거라고. 내가 무슨 예언가도 아니고 어떻게 미래를 예언하냐? 현재의 현실을 보고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거지.”
“쳇. 마술 같은 거네. 알고 보면 단순한 트릭 같은 거.”
“당연하지. 그냥 흐름을 분석하는 거야. 별거 아니야.”
미래에서 왔다고 말할 수 없잖아.
교대처럼 미래가 뻔한 걸로 적당히 물 타기 해야지.
내심 만족하는데 옆에서 예하가 어깨를 톡톡 두드린다.
“응?”
“오빠. 완전 섹시해. 뇌섹남! 섹시한 뇌! 대단해에에.”
예하의 눈에 별이 반짝인다.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닌데.”
“대단해! 굉장해. 찾아보니까 교대 입학점수는 아직 그대론데 오빠는 정확히 그들이 졸업 후 겪을 고생을 미리 알잖아. 오빤 진짜 대단해. 짱짱. 완전 섹시해!”
“어. 응. 그래. 별거 아닌 걸로 감탄해줘서 고맙다.”
“별거 아니긴. 진짜 대단한 거야. 울 오빠 대단하지 않아요?”
예하가 둘러보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엄청나네. 옛날에 넌 아무 생각 없는 줄 알았는데.”
그때 난 아무생각 없던 게 맞단다 한민선아.
길영주랑 닥똥은 둘이 머리를 맞대고 투닥거리고 있다.
또 싸우나?
나의 뇌가 섹시한 연설은 안 들었구만.
“이게 선배님의 재능이라는 거네요. 와아... 전... 연기에 최선을 다해야겠어요. 아무 생각 없이 연기만.”
차정미는 어째서인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다.
“부럽다. 재능. 넌 군대에 가서 자기 재능을 찾았구나. 난 언제 쯤 찾을 수 있을까.”
한민선이가 또 푸념한다.
저 화제는 끝냈으면 좋겠는데 가오리가 덥썩 물었다.
“무슨 재능? 속상한 일 있어?”
“어... 그게...”
한민선이 아까 했던 얘기를 또 했다.
눈물 없이, 아니 술 없이 들을 수 없는 얘기.
술을 마시며 다시 재능의 벽에 관한 화제로 돌아왔다.
한민선의 한탄을 다 들은 가오리가 상황을 정리했다.
“저런. 안 됐네.”
너무 쿨하네.
“우어어. 난 심각하다고.”
“당연히 그러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네가 선택한 건 재능의 길이니까.”
가오리가 신규용어를 썼다.
“어? 뭐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직업을 얻는 길이거든. 그래서 모든 직업들을 분석하고 있는데 크게 두 분류로 나눌 수 있어. 재능이 원천인 직업이 있고, 노력이 원천인 직업이 있어. 예를 들어 스포츠, 이런 건 재능이 원천이지. 가수나 연기자도 마찬가지고.”
“연기는 좀 다르잖아요. 다양한 역할이 필요한데.”
차정미가 끼어들었다.
“얼굴도 재능이야. 연기력 더하기 거기 어울리는 외형도 재능이지. 깡패같은 얼굴, 억척스런 아줌마 얼굴도 재능이겠지.”
“에이...”
“배구 선수는 키 큰 게 재능이잖아. 경마 기수나 마술 기수에게 가장 중요한 재능이 뭔지 알아?”
“뭔데요?”
“체중. 몸이 가벼운 것도 재능이야. 몸이 가벼워야 말에 부담이 덜 해서 말이 더 잘 뛸 수 있어. 그래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수들은 몸무게가 40키로대야. 다 같이 똑같이 노력하면 몸무게 가벼운 사람만 경쟁에서 승리해서 살아남는 거지. 이런 사소한 디테일이 왕과 거지를 나누는 게 냉혹한 프로의 세계야.”
“우와.”
“프로의 세계가 그런 거 드라고. 나도 조사하면서 알았고.”
가오리 놈이 열심히 일하나보다.
직업을 분석하고 그 직업을 얻기 위해 필요한 과정을 분석하면서 저런 세세한 것까지 알게 된 것 같다.
“위너 테익스 올. 육상 세계 1위는 돈 방석에 앉지만 탈락한 수천명은 한끼식사를 걱정해야 하는 세계. 그런 게 재능의 세계고 스스로 선택했다면 어쩔 수 없는 거겠지. 하지만 직업의 99%는 재능을 요하지 않아. 성실함과 노력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99%야. 문제는 노노노 니가 그 쪽을 보고 있지 않다는 거지.”
한민선이 자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
“어. 너랑, 중고딩들 모두. 화려하고 큰돈을 버는 재능의 영역만 바라보고 있지. 하지만 거의 모든 직업은 재능이 아닌 노력이 필요한 직업이야. 그 쪽으로 눈을 돌려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
“예를 들면?”
“의사. 의대에 입학한 사람의 90% 의사가 되잖아. 탈락한 10%도 적성에 도저히 안 맞아서 그만둔 거지 따라가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의대는 어떻게든 의사로 만들어서 돈방석에 앉게 만들어줘. 이게 재능의 영역일까? 개나소나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인거야. 성실하게 수업만 외운다면 말이지.”
의사 디스.
내가 하던 걸 가오리도 똑같이 한다.
그쪽 세계를 자세히 알아보면 누구나 이렇게 되겠지.
개나소나 할 수 있는 직업.
100명의 야구꿈나무 중 한 명만 프로야구선수로 살아남는 건 특출난 재능의 영역.
100명의 의대입학생 중 100명 다 의사 될 수 있는 건 개나소나 할 수 있는 노력의 영역.
정말 의사가 되고 싶은 10만 명을 모아 성실히 공부시키면 10만 명의 의사를 배출할 수 있다.
의사는 위대한 직업이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이다.
차정미가 끼어들었다.
가오리의 장점은 처음 본 사람도 편히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능이 필요 없다는 건 이상한데요? 스타의사가 있잖아요.”
“업계 안에도 잘하는 사람, 업계 최고인 사람은 있지. 재능의 차이는 모든 업계에 존재하니까. 스타요리사, 스타강사 등등 다 있지. 하지만, 평균적으로 도전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지. 세상의 모든 직업이 그래. 가수나, 프로농구선수처럼 태어나면서 타고난 재능이 중요한 직업은 얼마 없어.”
“어. 그런 거 같네.”
“니 고민은 지금 어마어마한 돈을 벌고 화려하게 살 수 있는 엄청난 재능의 직업을 찾을 수 있을까? 이건 거 같아. 실제 세상엔 성실함만 필요한 직업이 대부분인데 말이야.”
“어... 내가 그랬나.”
한민선이 가오리한테 일침을 얻어맞고 날 봤다.
도와달라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일확천금의 꿈을 놓쳤으니 성실하게 일하며 평균적인 돈을 벌고 삶의 만족도 얻을 수 있는 일을 해봐. 그러면서 여가시간에 이것저것 해봐. 나무블록으로 뭘 만들든가, 그림을 그리든가. 이것저것 하다보면 네가 몰랐던 재능을 찾을 수도 있겠지.”
“그... 래.”
어쩌면 잔인한 조언이다.
스스로 재능의 길을 포기했으니 평범하게 살라고 시켰다.
하지만 이게 옳지 않을까.
안 되는 걸 부여잡고 평생 좌절하며 사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뭔가 씁쓸하다.”
“우리 회사 일 해볼래? 직업 분류하는 일. 직업별로 사람을 컨택해 인터뷰하고 업계 사정을 조사하는 일이야. 변리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일과 준비할 것, 평균적 비용. 국궁 선수가 되기 위해 필요한 일과 업계전망과 평균 수익. 구더기 양식업자의 삶과 애환. 뭐 이런 걸 조사하고 있어. 이 일 하면서 수천가지 직업을 살펴보면 하고 싶어질 일이 생기지 않을까?”
갑작스런 가오리의 취업제안에 한민선이 고민했다.
“그래도 돼? 그냥 아무나 뽑는 거야?”
“말했잖아. 거의 모든 직업이 성실함과 노력만 있으면 되는 거라고. 뽑아놓고 노력 안하면 자르는 거지.”
“어... 이것도 네 돈으로 하는 거지?”
한민선이 날 보며 물었다.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해도 돼?”
“가오리가 해도 된다면 하면 되지. 누굴 뽑든 상관하지 않으니까.”
“아니. 공채로 뽑힌 사람한테 미안하잖아. 낙하산이잖아.”
가오리가 호들갑을 떨었다.
“걱정 노노노. 신입사원하고 똑같이 돈 줄거임. 월 350 끝. 그리고 넌 재능 있어. 주로 인터뷰 위주로 할 거니까.”
“내가 인터뷰에 재능이 있다고? 내가 뭘 잘하는지도 모르잖아.”
“예쁘잖아.”
“우와. 여성부가 들으면 기겁할 소리를.”
“예쁜 것도 재능이지. 모델도 아나운서도 스튜어디스도, 미모점수는 없지만 예쁜 사람으로 뽑잖아. 인터뷰 하는 입장에서도 예쁜 사람은 못생긴 사람보다 호감도에서 먹고 들어가잖아. 대화 분위기도 편해지고, 좀 더 진지하게 대답해주고. 그게 재능이지.”
“어.... 그래.... 내 나름의 재능이 있는 건가.”
한민선은 연영과에서도 예쁜축이었다.
일반인 중엔 압도적으로 예쁜 얼굴.
그것도 재능이다.
연기만 잘했다면 성공 했을 텐데.
옆에 있는 예하의 어깨를 안으며 말했다.
“잘해봐. 니 길을 찾아봐.”
이 이상은 못 해준다.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 할 수 없다.
이 정도의 도움이 한계다.
한민선은 뭔가 후련해진 얼굴로 잔을 들었다.
“노력만 하면 할 수 있는 일. 일단 열심히 해 볼게. 하다보면 뭔가 보이겠지.”
“계속 그 일 해도 되고. 직업은 계속 변하니까 계속 업데이트 해야지.”
“알았어.”
짠.
다들 후련한 얼굴로 잔을 부딪쳤다.
말 잘하는 가오리의 주도로 별의별 직업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셨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걸 내뱉었다.
“가오리. 대학 없애자.”
“어?”
“한 8000억이면 되겠네. 미래대학 만들자. 현재 존재하는 대학 다 죽이자.”
“어?”
킬더대학.
- 작가의말
글 구상할 때 친구들이 노닥거리고 떠들며 사회현상을 전달하는 파트를 많이 넣었는데 글초반 세얼간이 때부터 많이 혼나서 최대한 줄이고 줄여쪄염 ㅜㅜ
의사나 교대에 대한 악감정은 전혀 없습니다
그냥 무조건 좋다라는 상식을 삐뚜로 봐 봤어요...
자료를 보니 2022 초등임용시험 경쟁률이 3:1 평균 발령대기 기간 3년으로 예측된다던데 신기할정도로 입학점수가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자기 인생이 걸린 선택인데 좀 더 조사해보시지... 몇년 후 시위와 뉴스가 도배된 후 미달사태가 난 후 입학정원을 줄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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