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저점잡기
“경호팀님 연락했나요?”
“옛. 변호팀과 회계팀 달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이만.”
인터폰을 껐다.
문을 왜 열어줘?
니들이 오라하면 가야 하냐?
한국은 세계 최고의 법치국가라고.
밖에서 기다려라 끄나풀들아.
피로에 쩔은 예하를 깨워 상황을 설명했다.
잠이 덜 깨 멍 하다가 어떡해 어떡해를 연발하는 예하를 진정시키는데 한참 걸렸다.
대충 씻고, 옷을 입고 있으니 변호팀과 회계팀이 왔다.
채인수와 황영석.
“형들이 직접 왔어요?”
“너만 공격한 게 아니거든. 전 방위적으로 때리고 있어. 여기가 지휘본부다.”
아.
미래 그룹 전체를 때리는 중이구나.
“제 혐의는요?”
황영석이 느긋하게 말했다.
“우선 탈세는 의미 없어. 쟤들도 그냥 찔러본 것뿐이야. 코인 수익에 대한 세금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에 탈세라 할 수 없지. 눈에 띄는 기록이래 봤자 해외여행 한번인데 그걸 탈세자금으로 잡을 수 없고, 이 비싼 집은 미래그룹에서 사옥으로 제공해준 형식이라 문제없어. 지금 팀원 한명이 가서 소명하고 있고, 꼬투리 잡는 건 불가능해.”
예하가 캡슐커피를 한잔씩 타 와서 돌리고 곁에 앉았다.
이번엔 채인수가 말했다.
“그리고 성추행은 네가 나이트에서 싫다는 데 막 만졌다는 군. 너와 BJ제시와 남자 둘이 있었다는데.”
예하와 눈이 마주쳤다.
“아. 그날.”
“설마 진짜는 아니지?”
“그 여자들이 백제그룹 자객이었어요. 오자마자 앵겨 붙고 따로 2차 가자고 집요하게 제안하더라고요. 껄끄러워서 바로 피했죠.”
“문제는 이걸 소명하기 어렵다는 거야. 성추행은 대개 명확한 증거가 없으면 기억력 싸움이 돼. 남자 측의 증언이 일관된 지, 아니면 여자 측의 증언이 일관된 지가 전부야. 그래서 미리 준비한 쪽이 유리하지. 소설이든 사실이든 미리 달달 외우고 일관되게 증언하면 그게 진실이 되니까.”
“음...”
잠시 고민에 빠졌다.
“취해서 기억나지 않아?”
채인수가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오빠. 나도 있었잖아. 내가 증언할게. 나 거의 다 기억나.”
“음... 잠시만요.”
고민된다.
반박이 문제가 아니다.
“그 여자들이요...... 내 쪽으로 온다면 백제에서 싫어하겠죠? 백제에서 돈 주고 위증을 시켰다고 하면 백제에 불리해질 거 아니에요?”
“그렇지.”
“그러면 백제에서 또 죽일까요? 김유현처럼.”
“... 모르지.”
사실 김유현이 자살당할 것은 생각도 못했다.
백제에서 그렇게 극단적이고 멍청하게 행동할 줄 몰랐다.
내가 죽인 건 아니지만.
약간 가책을 느낀다.
못 된 건 백제그룹이지만, 어쨌든 휘말려 죽었으니.
그런 모습 보기 싫다.
“여자들이 위증에 대한 벌은 받게 하되, 죽지는 않았으면 해요.”
“어떻게? 지금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을 텐데.”
“음...... 생각 좀 해 볼게요. 그리고 또 있어요?”
“자산운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겠대. 가짜뉴스를 퍼트려 주가를 하락시키고 바닥에서 주웠으니 주가조작이라는 거야. 그리고 검은 자금의 출처를 찾겠다는 거야. 또 나에 대한 고소도 있었어. 백제 내부 정부를 빼갔다는 거야. 그리고 구형재 사장의 탈세와 임금착취에 대한 고발이 있고 또 네가 보호하는 여자들이 성상납으로 방송출연 했다는 고발에......”
참 많다.
백제가 힘이 없는 게 아니라 상대가 누군지 몰라 지켜봤던 거다.
미래그룹이 전면에 나온 순간부터 고소, 고발과 여론전을 준비했겠지.
참 더럽다.
“막을 수 있어요?”
“전부. 미리 준비했잖아. 대신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몇 달 걸릴 테고, 그때까지 지저분하게 서로 똥 묻히며 레슬링 하는 거지.”
“깔끔한 게 좋은데.”
“심장을 찌르는데 얌전히 죽어주겠어?”
“하긴......”
대화하는 사이 아홉시가 되었다.
버릇처럼 핸드폰으로 주식 사이트를 열었다.
역시나 모든 백제 관련주가 하한가로 직행했다.
19조였던 백제 시총은 우리가 진입할 때 7조까지 떨어졌다.
현재는 50조.
바닥에서 7배 올랐고, 오늘 30% 떨어졌으니 35조가 되었다.
미래펀드 계좌를 보면 몇 분 만에 3조 이상이 증발했을 것이다.
“얼마나 떨어질까요?”
“글쎄.”
“전문가는 따로 있잖아.”
권순진에게 전화했다.
“기사 봤어요?”
-어 난리야. 세무서놈들이 컴퓨터 몽땅 들고 가려는데, 회계팀 법무팀 와서 막아주고 있어. 아무 문제없을 거야.
“정신없겠지만... 백제 얼마나 떨어질까요?”
-하락 원인은 미래 그룹이 박살나서 인수가 무산되는 불안감이겠지. 그렇다면 15조에서 25조 사이에서 춤을 출 거야.
“지금 우리가 팔고 저점에서 주우면 조작인가요?”
-우리가 터트린 게 아니니까 법적 문제는 없지. 대신 대주주 공시 때문에 엄청 욕을 먹을 거야.
“그럼 저점에서 추가로 구매하면요?”
-그건 문제없지.
“자금은 얼마나 있어요?”
-펀드에 들어온 자금이 6조야. 대기 중인 건 2조.
“네. 알았어요. 그러면...... 형도 와 봐요. 여기서 계획을 세워보자고요.”
권순진도 불렀고 채인수 황영석과 긴 대화를 나눴다.
미래그룹 관련 고소를 살펴 디펜스 가능한지 확인하고, 언론이 쏟아내는 수없이 많은 의혹을 보며 하나하나 반박할 준비를 했다.
그러다 보니 점심이 되었다.
곁에서 노트북을 들고 항목별로 정리해 반박 방식을 정리해 출력하던 예하는 갑자기 생겨난 실검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오빠......”
하얗게 질린 예하가 날 당기며 인터넷 창을 가리켰다.
BJ제시 샤워영상 유출
BJ제시 성상납 영상
BJ제시 스폰
BJ제시
BJ제시 술접대
한순간에 실검에 줄이 섰다.
보자마자 열이 확 올라온다.
얼굴이 뜨거워지고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아 시발. 시발 새끼.”
뱃속에서 욕설이 끓어오른다.
“조승학 개새끼.”
스읍, 하.
스읍, 하.
스읍, 하.
스읍, 하.
“이 씹새끼. 죽여 버린다.”
진정되지 않는다.
한참 식식대는 데 황형이 머그컵 하나를 앞에 놓는다.
“유자차야. 마셔.”
고개를 드니 모두 걱정스럽게 쳐다본다.
예하마저도.
예하 넌 네가 제일 화나야 하지 않냐.
왜 너보다 내가 먼전데.
스읍, 하.
스읍, 하.
“죄송해요. 미안해 예하야.”
“아니야. 다 이해하지.”
“누구나 그런 상황이면 그럴 수밖에.”
예하는 말없이 내 옆구리에 얼굴을 가리며 안았다.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예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음을 냉정히 가라앉혔다.
지금 가장 화낼 사람은 예하다.
“예하야. 미안한데, 영상 찾아봐도 돼?”
“찾아봐. 전국에 다 퍼졌을 텐데 뭐.”
“그래.”
각자 노트북으로 영상을 찾았다.
성상납, 스폰, 성접대 등은 비슷비슷했다.
룸에서 술을 따르는 예하.
협박용으로 찍어둔 걸 뿌려버린 것이다.
예하의 옷차림이 차분하고 2차가 없고, 미성년자였고, 터치 없었고, 뭐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술집에서 술을 따랐다는 게 문제다.
그리고 샤워영상.
단체 샤워장 같은데 뿌연 서리가 렌즈에 잔뜩 껴 있다.
저 멀리 사람들이 있구나 정도만 분간 할 수 있다.
몇 개의 살덩이가 있구나, 정도만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지 국내 사이트들도 지우지 않고 있다.
개놈들.
“예하야. 이거 너 맞아?”
“맞아. 클라우드에 있던 거야.”
도저히 누군지 모르겠는데.
그나마 다행이다.
아닌가. 예하가 느낄 수치심은 똑같으려나.
누군가는 저 희미한 영상이 예하의 알몸이라고 인지하며 딸 치겠지.
스읍, 하.
스읍, 하.
“술집 영상은 클라우드에 있었어?”
“아니.”
“그럼 조승학이 따로 갖고 있었겠네. 핸드폰, 집 컴퓨터에도 없었으니.”
“내 것만 따로 모아 놨나봐. 아니면 다른 언니들 자료도 따로 모았으려나.”
스읍, 하.
스읍, 하.
“일단...... 조승학은...... 잠깐 진정 좀 할게요.”
마음을 가라앉히자.
2회차다.
44살까지 살았다.
대단하진 않지만, 나름 경험이 많잖아. 진정하자.
“후우. 의도가 뭘까요?”
잠시 침묵 후 가장 경험이 많은 황영석이 말했다.
“타임에 갭이 있어. 아침에 터트린 건 우리에 대한 고소, 고발. 우리가 정신없이 소명하고 자료를 찾길 바라는 거지. 그리고 점심에 하나 터트렸으니, 저녁이나 내일 아침에 또 다른 걸 터트릴 거야. 아마도... 주가가 떨어지길 바라는 거겠지.”
권순진이 이어받았다.
“지분이 모자라다는 뜻이야. 싸게 지분을 끌어 모으고 싶단 뜻이지.”
“그럼요. 거기서 최대 이익을 뽑아보죠. 주가조작으로 잡혀가지 않는 한도에서. 우리 무기가 뭐 있죠?”
백제를 공격할 무기와 언론에 발표할 이슈를 모아 각자 평가했다.
권순진을 중심으로 무기를 던질 순서와 상승폭을 예측하고 그에 따라 사고 팔 수량과 가격을 정했다.
“이대로 가고, 변수가 계속 생길 테니까 그때그때 계속 수정해요.”
“그래.”
각자 과업을 체크하며 흩어졌다.
다음 주 수요일이 임시주총날.
백제그룹을 사냥하느냐 마느냐가 정해지는 날이다.
그날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예정이다.
모두 떠나니 예하와 둘만 남았다.
예하는 곁에 성실히 자료를 정리하고 타임라인에 맞춰 배열하는 걸 도왔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지금도 정신없이 타자 치며 계획도를 뽑고 있다.
뒤에 앉아 안았다.
“쉬어.”
“아냐.”
“오늘 방송 쉬어도 돼.”
손이 뚝 멈췄다.
“댓글창이 난리가 날 거야.”
“고소할거지 오빠?”
“할 수 있으면 전부. 명예훼손으로. 합의는 없고.”
“하지마 오빠. 속은 거잖아.”
“속았어도 같이 욕하면 공범이지. 입은 재앙의 근원이니까. 그게 싫으면 방송하지 마. 모닥불한테 맡기면 해 줄거야.”
“오빠.”
예하가 고개만 돌려 바라봤다.
두 눈이 닿을 만큼 가깝다.
그 눈엔 냉정한 의지가 차 있다.
“난 오빠한테 어울릴만한 멋진 여자가 될 거야.”
......
뭔 소리세요?
내가 부족해서 불안해 죽겠는데.
“내 뉴스가 터진 건 불운이야? 아니면 누군가의 악의야?”
“...... 악의.”
“지고 싶지 않아. 불운하다고 울면서 숨지 않고, 맞서 싸울래. 그래도 되지?”
“내가 했던 말이구나. 그래. 하고 싶은 대로 해. 최대한 서포트할게.”
“고마워. 오빠. 오빠 믿고 지르는 거야.”
예하가 킥킥 웃더니 짧은 키스를 했다.
그리고 방송에서 말할 내용을 타이프했다.
“언니. 1주일만 쉬세요. 구경만 해줘요.”
예하가 모닥불PD를 말렸다.
“싫어.”
“이제 전쟁이예요. 목숨 건 전쟁. 제 기사 터져 나온 거 봤죠.”
“그래서 화나. 같이 싸우자 전우여~”
“제가 혼자 감당해야 해요. 이번만 빠져주세요. 제발요. 그래도 나오겠다고 하면 집에서 내보낼 거예요.”
예하가 여전사의 눈을 하고 있다.
천의 얼굴.
역시 모든 배역이 잘 어울... 아니.
그 의지에 모닥불PD는 주눅 들었다.
“어... 대신 지켜보다가 못 버틸 거 같으면 난입할게.”
“고마워요. 언니.”
그리고 방송이 시작되었다.
언제나처럼 저녁 7시에 방송을 켰다.
하루 종일 실검에 올라 있었기에 방이 열리자마자 시청자가 우루루 몰려들어왔다.
응원, 힘내, 중립기어 박자, 아이엠그루트, 뻔뻔, 욕설, 창녀 등 온갖 채팅이 빛살처럼 올라간다.
저 중엔 백제에서 돈 주고 고용한 알바도 많겠지.
아나운서핏 복장을 한 예하가 차분하고 냉정한 표정으로 방송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말씀드릴 것은 채팅하실 때 주의해달라는 것입니다. 현재 30여명의 모니터링 인원이 모든 글을 캡쳐하고 있습니다. 사실이 아닌 말을 할 경우 허위사실 유포, 욕설을 할 경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에 공지된 사실인데 미래그룹에서는 현재까지 914명에 대한 고소를 진행 중이며 전원 합의 없는 처벌을 하기로 했습니다. 빨간줄 그어진다는 뜻이죠. 오늘은 특히 조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채팅창이 깨끗해졌다.
아임엠그루트라는 알 수 없는 말만 도배된다.
“우선 저에 대한 입장은 다음 주 월요일에 말하기로 했습니다. 그때까진... 마음대로 상상하세요. 다음 소식은. 미래 그룹 어떤 사원에 대한 성추행 고소가 있었습니다. 성추행 의혹에 대한 해명을 다음 주 월요일에 하겠습니다. 이에 대해 중대한 부탁이 있습니다. 성추행 고소인께 말씀드립니다. 현재 가족과 함께 있지 않다면 앞으로 가족과 생활하시길 바랍니다. 특히 다음 주 월요일 저희가 발표하는 순간 가족과 함께 있어 주세요. 혹시 저희에게 의탁하신다면 절대적으로 생명을 보호해 드리겠습니다. 저희를 못 믿으시면 오지 마시고, 가족과 친구를 불러 반드시 함께 생활하길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누군가 김유현씨처럼 되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당신께 일을 지시한 이들은 살인자들입니다. 조심해주십시오. 당신들의 생명이 걱정되어 드리는 말입니다.”
죽지 마라.
예하의 절절한 말이 인터넷 세상에 퍼졌다.
이 말만으로 죽일까?
못 죽이겠지.
모르겠다.
설마 결박해놓진 않았겠지.
사람은 왜 돈 한 두 푼에 목숨을 거는 걸까.
죽지 마라.
물론 무고죄와 명예훼손죄는 받아야겠지만.
- 작가의말
모르실법한 용어에 대한 걱정이 듭니다만... 전부 설명하면 가뜩이나 난잡한 글이 더 난잡해질 것 같고, 몰라도 읽는데 문제 없다고 생각해서 설명 없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아는 분을 위한 반가움으로 남기려는 마음도 있고요. 노래제목 적지 않고 넘어가는 것도 같은 이유에요
긔긔리사이클 같은거나 아이엠그루트 같은 철학적드립 하나하나 다 설명할수가 읍쓰예...
아이엠그루트는 발생원인과 사용법이 진짜 철학적이지 않나요? 드립이 궁금하신 분들은 스스로 찾아보셔야 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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