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 진실의 문
고등학교 수학시간에 확률과 기댓값이라는 것을 배운다.
친구와 100원씩 걸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승자가 가져가는 내기를 할 경우 이길 확률은 50%이며 기댓값은 100원이다.
이것을 공평한 게임이라고 한다.
친구 100명이 100원씩 걸고 뽑기를 해서 1등이 독식할 경우 이길 확률은 1%이며 기댓값은 100원이다.
이것도 공평한 게임이다.
내기, 혹은 도박을 하기 전엔 언제나 기댓값을 봐야 한다.
강원랜드를 비롯한 카지노의 슬롯머신은 보통 기댓값을 99%에 맞춘다.
누군가는 잿팟이 터지고 누군가는 하루 종일 꽝만 치지만 그 값의 총합은 99에 한없이 가까워진다.
즉, 100원을 내고 게임을 할 때마다 1원씩 손해 보는 구조이며 게임을 하면 할수록 내 원금은 줄어든다.
로또의 경우 기댓값이 뒷면에 적혀 있다.
판매액의 50%를 상금으로 나눠준다.
1000원 로또를 사면 기댓값은 500원이라는 소리.
고액 당첨자에게는 추가로 세금을 떼니 실제 기댓값은 절반 이하가 된다.
스포츠 토토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배당률이다.
10000 배 배당을 정했다가 자금이 몰렸는데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가 되어 버리면 도박사가 망하게 된다.
그래서 배당률을 매우 보수적으로 잡는다.
그 어떤 이변이 일어나더라도 도박사가 손해 보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모든 경우의 수에 당첨금을 확률보다 낮게 주는 것이다.
스포츠 토토의 경우 배당률은 대략 1/4 정도로 매우 낮다.
여기서 세금을 추가로 뗀다.
사람들은 왜 이런 멍청한 짓을 할까?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저게 얼마나 심각한 사기도박인지 알 수 있는데.
차라리 친구와 돈 걸고 기댓값 100%인 공정한 게임을 하는 게 나을 텐데.
큰 수의 매력이 이성을 흔들기 때문이다.
큰 수를 얻을 수 있다면 작은 손해를 감수하는 게 인간의 사고시스템이다.
게임의 뽑기 확률은 명시되어 있다.
그래봤자 게임을 접으면 버리게 되니 기댓값을 0으로 잡아도 된다.
“하지만 이건 팔 수 있잖아. 뽑을 때 엄청난 희열을 얻고, 사용할 때 남들보다 빠르고 강하니 이득이고, 다 쓰고 나서 팔면 그 또한 이득이지.”
메타버스 하이바를 쓴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보다 좋은 게임이 있나?
역시 세계 1위 게임은 뭐가 달라도 달라.
-프리미엄 무기 소환을 진행하시겠습니까? 무기 11개 소환에 미래블록 100개가 차감됩니다.
“가즈아!”
돈이 존재한다. 고로 지른다.
촤르르르륵.
FFFFFDDFFFF.
"와나 이 좃망겜보소.“
F급 9개와 D급 2개.
C급 이상이 뜰 경우가 11%니까 한 개도 나오지 않을 확률이... 거의 0% 아닌가.
와나...
촤르르르륵.
FFCFFFDFDFF.
2연속으로 이렇게 나올 확률이......
촤르르르륵.
FFDDFFDFDFF.
촤르르르륵.
FFCFFFFFFFF.
촤르르르륵.
FDCDFFCFFFF.
......
그리하여 두 시간 뒤.
“오빠 저녁 먹어.”
“S급 23개, A급 1571개, B급 9946개. 쓴 돈은... 4억이네. 그러니까...... 확률이.......”
C급 이상이 11%니까 대충 맞네.
젠장.
초반에 하도 더럽게 뜨길래 이 더러운 게임사가 확률조작한 건가 싶어 기록했다.
S급이 뜰 확률이 0.005%니까 저것도 맞고.
“S급 평균시세가 200만원이니까... 4600만원이고, A급은...”
“오빠?”
예하가 어깨를 톡톡 쳐서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응?”
“뭐해?”
“어...... 수학공부.”
메타버스 화면을 외부에서 볼 수 없어서 다행이다.
메타버스 만세.
예하와 마주 앉아서 밥을 먹었다.
예하가 재잘재잘 떠들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A급, B급 전부 판매하면 대충 1억 회수하네.’
두 시간 사이에 2억 5천 손해 봤다.
큰돈은 아니지만... 기분이 나쁘다.
‘적어도 본전은 찾아야지. SS급 무기가 평균 2억. 5강 무기가 평균 7억이니까...... 앞으로 6억 써서 SS급 뽑으면 이득. 오호. 돈 버는 방법이 여기 있었군.’
“오빠?”
“미안 예하야. 급히 할 일이 있어서.”
오빠가 홍콩민주화 운동을 위해 할 일이 많단다. 얘야.
양치질만 하고 게임에 접속했다.
촤르르르륵.
촤르르르륵.
촤르르르륵.
촤르르르륵.
촤르르르륵.
하얗게 불태웠다.
SS급이 나올 확률은 S급의 1/100.
하지만, S급 97개가 나올 동안 SS급 하나가 나오지 않았다.
“와나 썅. 이런 운빨좃망겜 같으니라고!”
분노.
쓴 돈은 15억원.
“이게 말이 돼? 상철이형이 확률 장난해놨나?”
의심.
‘얼마 안 되네. 오늘 하루 이자의 만 분의 1이네. SS급만 뽑고 싸우자. 방어구는 대충 맞추자.’
타협.
‘15억이면 굶주리는 베네수엘라 아이 15만 명에게......’
우울.
<띠링. 정저우 위령비 수호전 퀘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반전.
“어?”
알림음과 함께 퀘스트가 종료되고 아무것도 없는 베네수엘라 시골로 몸이 이동되었다.
리얼타임 퀘스트의 경우 현실의 시간이 흐르기 때문에 2시간~8시간 사이로 잘라서 등록한다.
내가 받은 퀘스트의 지속 시간이 끝나버렸다.
게임의 로그창을 열었다.
-당신의 공적치입니다.
킬 : 0 어시 : 0 데스 : 2
적에게 준 대미지 : 0
적에게 받은 대미지 : 2417
적을 강하게 만들고 아군의 사기를 꺾었습니다.
당신의 공적치는 -241 입니다.
수뇌부에서는 당신을 커뮤니스트 스파이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전투 등 중요한 임무를 받을 수 없습니다.
“와......”
휴먼의 기술력이 여기까지 발전했군요.
퀘스트 공적 계산법은 핀빙빙을 포함한 민주화단체가 정했겠지.
게임이라는 특성상 공산당 끄나풀이 섞여 들어오는 걸 막을 수 없으니 그들이 배신하지 않도록 이런 장치를 걸어놨구나.
“그보다 내가 빨갱이라니. 내가 빨갱이라니.”
내가 빨갱이를 족치려고 얼마나 많이 지르고 있었는데.
빙빙 누나, 이거 실수한 거야.
“오빠? 안 자?”
“미안 예하야. 난 지금 매우 중요한 기로에 서 있어.”
가지 못한 길을 후회하느니 다 가본 후 후회하자.
질렀다.
기계적으로 지르다가 화려한 이펙트가 나타날 때만 눈을 슬쩍 떠 확인했다.
수많은 방어구 중 견갑만 고등급이 나오지 않아서 추가로 지른게 천만 미래블록.
그래도 해 냈다.
사흘 후.
SSS급 무기.
평균 SS급 방어구들.
이 정도면 지구 지존급이겠지.
얼마나 썼는지는 생각하지 말자.
자신감을 돈으로 샀다.
당당한 발걸음으로 퀘스트 게시판에 갔다.
<정저우 위령비 수호전. 성과에 따른 미래블록 보상>
여전히 전쟁중이군.
퀘스트 신청을 했다.
곧장 알림음이 왔다.
-수뇌부는 당신을 적에게 이로운 존재, 아군에게 해로운 존재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전투 관련 임무를 맡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승낙하겠습니까?
“와나! 내가 얼마를 썼는데! 비행기 하나를 쏟아 부었는데! 빙빙 누나 이거 실수한 거야.”
빡친다.
핀빙빙에게 전화해 강력하게 컴플레인 걸고 싶을 정도다.
다행히 마지막 이성은 남아있었다.
“승낙.”
공적치가 쌓이면 전투 임무를 맡을 수 있겠지.
몸이 중국 정저우로 이동했다.
조용하다.
주위를 둘러봤다.
넓은 평야에 전쟁의 상처가 가득한 도시가 보이고, 한쪽에 세기말 탑 같은 게 올라가고 있다.
사람들이 탑 여기저기 붙어서 높이 쌓아 올리고 있다.
퀘스트 탭을 눌러 임무를 확인했다.
-화강석을 채취해 탑 앞 자재창고에 옮긴다. 화강석 100개 당 공적치 1을 획득한다.
“......”
피라미드 노예네.
이걸 해야 하나?
지존급 장비를 들고 땅이나 파야 하나?
어째서 인간은 게임 속에서도 노예노동을 하는가.
인간에 대한 근원적 고찰을 하며 상점창을 열었다.
곡괭이를 검색하니 1미래블록짜리 곡괭이가 보였고,
<SSS급 곡괭이 나올 확률 2배>
광고가 보였다.
“게임은 해로운 것이구나.”
촤르르르륵.
촤르르르륵.
촤르르르륵.
촤르르르륵.
내가 바보도 아니고 A급 두랄루민 합금 곡괭이에서 멈춰 섰다.
돈도 얼마 쓰지 않았다.
깡. 깡. 깡. 깡.
땅을 때린다.
두랄루민 합금이 단단한 화강석을 쪼개 네모반득한 대형벽돌로 만든다.
게임이니까 가능한 거겠지.
A급 곡괭이와 평균 SS급 삐까뻔쩍한 방어구에서 나온 추가스탯 덕에 엄청난 속도로 화강석을 캐냈다.
주변 노동자들이 부러움에 몸서리치다가 다가와 묻곤 했는데 외국어라 알아들을 수 없고, 말풍선으로 뜬 구글 통번역도 개판이라서 입을 꾹 다물었다.
남이 부러워할 땐 입을 다무는 게 좋다.
신비감 이라고 하지.
부러워하는 시선.
이 맛에 게임한다.
몽땅 가방에 넣어 탑으로 이동.
움직이지 않는다.
무게 허용치의 40배나 가방에 들어갔단다.
‘아 유성주형, 게임이 왜 이래. 진짜 개떡같은 게임을 만들어놨어.’
운송할 수 있는 한계치 294개만 들고 이동했다.
다가갈수록 커지고 높아지는 탑.
그 앞에 자재창고들이 있다.
창고에 화강석을 넣고 주위를 봤다.
탑 전체를 설계하는 사람이 거대한 설계도를 들고 탑 건설자에게 설명을 하고 있다.
설명을 들은 사람이 작은 설계도를 받고 자재창고로 와서 다양한 재료를 들고 탑 위로 올라간다.
탑 여기저기에 사람들이 매달려 건설하고 있다.
바닥에서 10층 높이에 커다란 글자가 조각되어 있다.
<2021년 정저우 홍수 사망자 8200명 명단>
중국 공산당은 올해도 수해를 입었다.
지난 해 싼샤댐 붕괴만큼은 아니지만, 아직 복구하지도 못했는데 재차 큰 비를 만난 것이다.
싼샤댐이 사라져 수량조절이 불가능했던 장강은 올해 여러 차례 넘쳤다.
그래도 미리 대비했으니 인명피해는 거의 없었다.
문제는 하남성.
황하유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그 중에서도 정저우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7월 폭우로 정저우에서만 58명이 죽었고 하남성 전체에서 302명이 죽었다고 중국 공산당이 발표되었다.
예전 같으면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을 중국스러운 상황.
하지만 미래커뮤니티가 있고, 익명 게시판이 있다.
수해로 가족을 잃거나 시신을 묻은 이들이 익명 게시판에 글과 증거를 올렸고, 홍콩민주화 세력은 이를 집계하고 증거를 모았다.
공산당의 스파이들이 익명커뮤니티에 숨어들어와 제보자를 확인하고 현실세계에서 잡아가는 짓을 반복했지만, 가족을 잃은 이들의 진실고백이 끊이지 않았다.
덕분에 확인된 사망자 수가 정저우에서만 8000명, 하남성 전체에서 29000명이다.
공산당은 이 많은 숫자의 죽음을 덮고 넘어가려 한 것이다.
홍콩 민주화 세력은 현실에서 자취를 감췄다.
코로나를 핑계로 중국 공산당이 홍콩을 폐쇄했고, 모든 민주화 시위가 종료되었다.
다만 가상공간에선 매일 전쟁이 벌어지며 현실 무기를 쓸 수 없는 공산당과 전세계 민주화 세력의 전투는 비등비등 하다.
서드 어스는 사람을 통제하려는 중국공산당과 자유를 지키려는 민주화 세력이 2년 째 전쟁중이다.
<2021년 정저우 홍수 사망자 8200명 명단>
그 아래 작게 새겨진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다.
<2020 우한 생체실험 사망자 명단>
그 곁엔 새로운 명단이 있다.
저것도 집계했구나.
다가가서 보려했다.
<띠링. 공적치가 부족해 접근할 수 없습니다. 간악한 커뮤니스트들의 파괴공작을 막기 위한 조치이니 공적치를 올려 다시 시도해 주십시오.>
“아놔... 제길.”
- 작가의말
쉬어가셍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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