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양식2 미래다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여기 좀 봐주세요.”
어쩌겠어.
웃어야지.
기자도 들어왔네.
공무원 참 대단하다.
“이거이거 내 조카가 해초양식 연구소에 있는데 써보심이.”
“자네 혹시 내 손녀 아는가? 여기 이 사진. 자네와 같은 회사라는데.”
“중국과는 언제 화해할 겁니까? 미래그룹때문에 지금 중국에서 한국에 압박을 넣고 있지 않습니까?”
“약소하지만 별장 키입니다. 주소는......”
“제시님은 안 오셨나? 사인지도 가져왔는데.”
어쩌겠어.
웃어야지.
이런 입장에 놓인 것도 참 오랜만이다.
“인수형, 고생이 많았어.”
귓속말로 칭찬해줬다.
“후후. 저녁마다 맛난 거 많이 먹어서 나쁘진 않았어.”
나쁘지 않긴 개뿔.
적당히 비위 맞춰주며 미래 그룹의 행보를 여는 역할을 했다지만, 내가 워낙 공격적이었어야지.
한참 적당히 응대한 후 채인수가 일어섰다.
“... 이상 미래 수산의 청사진입니다. 이에 양식장 건설을 허가해주고 관계당국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국가소유인 바다 위에 양식장을 만들려면 국가의 허가가 필수다.
공무원을 만나는 건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다.
긴 설명이 끝나니 관계자들이 한소리씩 했다.
“음... 해양순시선의 반경이 줄어드는데. 모든 경로를 재확인해야하고 비상시 출동까지 고려해야...”
옳은 말.
“일개 업체의 수출 판로를 국가가 책임져달라니. 이거 형평성 논란이......”
옳은 말.
“갑자기 수억마리의 물고기를 기르면 환경변화로 떼죽음을 당할 수 있고, 기존 양식장에도 피해가 갈 수 있는데......”
옳은 말.
“일단 관련 대학에 수십억의 연구비를 줘서 환경변화를 연구해 달라 해야 하니 1년 이상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옳은 말에 섞은 개소리.
교수랑 반씩 나누려고?
“양식장을 그렇게 늘리면 사료 값도 폭등할 테고, 어구 값도 폭등할 테니 기존 양식업자와 상의해봐야 하는데......”
옳은 말이지만, 돈 내놓으란 말.
“어민들이 가만있을 리 없습니다. 격렬한 저항을 받을 겁니다.”
옳고 가장 힘든 말.
이게 문제다.
시골을 건드리기 힘든 이유.
양식장이 만들어지면 기존 양식업자의 수익이 줄어들고, 기존 어민이 활동할 영역도 축소된다.
개인이 만든다면 막걸리 한잔하며 친해지면 해결될 일이지만, 기업이 끼어들면 무한정 퍼주어야 한다.
안 그러면 생존권 때문에 드러눕는다.
어떻게 하면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채인수 대신 나섰다.
이러기 위해 나왔으니까.
“돈은 낼 수 없습니다. 한 푼도.”
“그럼 안 됩니다. 설마 하하호호 웃으며 섞여 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야밤에 쪽배를 타고 와서 그물에 구멍을 내면 3년 양식한 게 몽땅 사라집니다. 그런 일이 없으리라 생각합니까?”
저 사람이 해양수산부 과장이었나?
젊은데 똑똑하다.
젊은데 이 자리에 나온 걸 보면 행시도 패스하고 똑똑한 삶을 살아왔겠지.
그러니 솔직히 설득해보자.
“미래 수산은 양식장 천 개를 건설하는 걸 시작으로 만 개의 양식장을 만들 겁니다. 각자 매년 목표 출하량이 100톤인 대형 양식장이죠. 그리고 오만 명을 고용할 겁니다. 최소 3년간 한 푼도 얻지 못하겠죠. 건설비가 양식장마다 2억. 3년간 인건비가 1억 5천. 총합 10조를 쓰네요.”
엄청난 액수에 다들 입이 다물어졌다.
저 돈 다 내 개인 주머니에서 나온다.
“추가로 10년간 적자가 날 경우 내 개인 돈으로 인당 5000만원을 보장할 겁니다. 자칫하면 적자가 조 단위로 불어나겠죠. 반대로 이익이 생길경우 영업이익율 10% 초과분은 고용인들에게 성과급으로 분배할 겁니다. 원금 회수에 30년 걸리겠네요. 투자 대비 버는 게 없단 뜻입니다. 내가 왜 이런 정신 나간 짓을 할까요?”
침묵.
할 말 없겠지.
저기 뒤쪽에서 공무원 연줄로 들어온 기자만 신나게 글을 쓰고 있다.
“제가 내보낸 불체자가 11만명입니다. 개인적으로 고용한 기자들이 찾아내고, 경찰과 출입국관리소에 신고하고, 불체자를 설득해 비자 연장을 돕고, 거절당할 경우 출신국으로 송환되는 비용과 소정의 이사비용을 지불했습니다. 여기 들어간 돈이 수천억입니다. 제가 왜 이랬을까요? 미쳐서 그랬을까요?”
지난 1년간 내보낸 불체자가 11만명이다.
그들의 생활상을 보면 현대판 노예제도가 따로 없다.
착한 농장주를 만나 제대로 임금을 받고, 숙소와 대포폰을 받고 본국 송금도 수수료 없이 해낸 이도 있지만, 임금을 반값밖에 못 받고 그마저도 숙소비용, 약값 등으로 다 뺏기는 이가 대부분이었다.
여자들은 더 비참해서 낮에 일하고 밤엔 성노예로 사는 이가 태반이다.
그러고도 돈을 거의 다 뺏긴다.
난 불체자를 싫어하지 않는다.
독일에 간 한국인 광부가 이 악물고 고생했듯, 불체자들 또한 타지에 나와 이 악물고 고생하는 훌륭한 청년들이다.
그렇다고 농어촌의 사람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엔 착한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을 뿐이다.
느낌적으론 착한 사람이 더 많다.
다만, 착한 사람은 한명을 도울 수 있지만, 나쁜 사람은 백 명을 괴롭힐 뿐이다.
난 내 돈을 써서 인권유린을 당하던 불체자를 도운 것이다.
“나 때문에 시골에 인력난이 심하다더군요.”
“예. 맞습니다. 그 때문에 민원이 끊이질 않습니다.”
신안군 군수가 대답했다.
불체자가 없어져서 민원이라니.
불체자를 만들어 달라는 건가.
“전 이 사업을 기부라고 생각합니다. 내 돈 10조를 써서 지방을 살리는 겁니다. 그 시작은 어촌이고요.”
“이게 어떻게 기부입니까? 어민들의 반발은 생각보다 훨씬 심할 겁니다.”
똑똑한 해수부 과장이 대답했다.
“제 목적은 한국을 잘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잘못된 걸 고치면 잘 살게 되겠죠. 불체자는 없어야 합니다. 불체자가 없어서 일손이 부족하다? 일손이 지방에 가게 만들면 됩니다. 그 시작이 양식업이 되겠죠.
내 돈을 퍼부어서 양식장을 만듭니다. 5000만원 더하기 성과급에 혹한 젊은이들이 양식장에 갑니다. 지방에 돈이 돌고 젊은 피가 들어갑니다. 결혼하면 지방 인구도 늘겠죠. 지방 상권도 살 것이고, 지방에 병원도 생길 것이고, 지방 땅값도 오르겠죠.
반면 서울의 부동산 가격과 지하철의 포화도, 도로 사정 등 모든 게 좋아질 겁니다. 이걸 위해 내 돈 10조를 퍼붓는 겁니다. 이해됩니까?”
“그런 복잡한 걸 어민들이 이해할 리 없지 않습니까? 미래그룹은 이미 어민들의 적입니다.”
노예를 뺏어갔으니 미워하겠지.
그런데 노예를 부리지 않는 이들도 미워하려나.
“나쁜 사람은 내가 뭘 해도 미워할 겁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크겠죠. 하지만 실제 선량한 대다수는 우리를 조용히 지지할 겁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정부에서 법적으로 허가해 달라는 겁니다.”
“중국과의 통상은? 우리가 일개기업을 대놓고 도울 수 없습니다.”
“우리도 중간 무역회사를 껴서 우회 수출할 겁니다. 중국이 초법적인 짓을 하는 것만 막아주시면 됩니다.”
“음. 조사해보겠습니다. 우선 환경영향조사와 양식업계 동향 등을 알아본 후 다시 하죠.”
“그때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예. 그렇습니다.”
“후우.”
결국 이거군.
기다려라.
공무원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사업은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둘 중 하나다.
사업가는 성공에 배팅하며 스스로의 선택으로 배팅금액을 넣는다.
공무원은 입장이 다르다.
성공해봤자 본인에게 떨어지는 건 밥 한 끼가 고작이다.
모든 공무원이 부패한 게 아니고, 대다수 공무원은 철밥통을 사수하기 위해 부정부패를 스스로 멀리한다.
반면 실패하면 책임져야 한다.
자기 의지도 아닌 일개 사업가의 생각으로 시작된 사업인데 허가해줬다는 이유로 온갖 욕을 먹고 승진이 막히거나 옷을 벗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공무원은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해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될 때 허가해주게 된다.
그런데 사업가 입장에선 이게 미치는 거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게다가 공무원 손에 멈춰있는 사이 그 아이템을 누군가 홀랑 가져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완벽한 사업 아이템을 다른 부자에게 파는 건 공무원 입장에서 옷 벗을 일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선택을 앞당기기 위해 저희는 언론플레이를 시작하겠습니다.”
“뭣이.”
“아니 왜.”
“고정하시오. 이건 당연한 수순이오.”
사극 아저씨 누구냐.
“저는 좋은 일을 하려고 이 사업을 계획했습니다. 반쯤은 기부사업이죠. 소외된 지방경제를 살리기 위함입니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지방에 외국출신만 남게 되고 나중에 자치구가 생긴다고 이 아저씨들아.
“불체자가 당하던 처우를 공개하고, 그들을 괴롭힌 농장주, 어민을 공개박제하고, 농어촌의 민낯을 공개하고 감성돔양식, 전복양식, 능성어 양식 업자의 수익을 공개하겠습니다. 그들이 선박 경유보조를 받는 양을 공개하고 그들이 자기 suv차에 1년간 한 번도 주유하지 않았는데 차를 굴리는 것을 공개하고 생활상과 노동시간을 공개하겠습니다.”
어업은 힘들다.
그래서 많이 번다.
힘드니까 많이 버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사람의 기본 습성에 있다.
‘남는 거 하나도 없어요. 밑지고 파는 거야. 밑지고.’
상인들은 왜 무조건 이렇게 말할까?
이래야 한 푼이라도 도움을 받으니까.
현재 얼마를 벌든 상관없다.
공돈이 추가되면 좋으니까 무조건 남는 게 없다고 말한다.
이건 인간의 기본 습성이고, 모든 사람이 이렇게 행동한다.
어민들도 인간의 기본 속성을 따를 뿐이다.
그들의 솔직한 삶을 열어준다.
“아니 왜 그렇게까지 합니까? 그들은 누군가의 아버지고 할아버지입니다. 그들의 가족 친척까지 모두 등을 돌릴 겁니다. 그러면 미래그룹이 망할 텐데 왜 그럽니까?”
과장아저씨 똑똑해.
“제가 많은 이들과 싸우고 있죠. 의사와 싸우고, 외국인 노동자와 싸우고 이젠 어민에게 싸움을 겁니다. 누군가 쉽게 큰돈을 버는 걸 깨트리고 있습니다. 왜 이럴까요? 안 보이나요?
세상엔 착한 사람이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쉽게 큰 돈을 벌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노동가치에 비해 적은 돈을 벌며 근근히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들을 박살내면, 대부분의 착한 사람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게 됩니다. 나는 기왕 큰돈을 벌었으니 한국이란 나라를 좀 더 살기 좋게 만들 생각입니다.”
내 취미를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꿀꺽.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돌아보니 광진구청장이다.
“저... 혹시 정치에 뜻이 있으십니까?”
......
저 사람 뽑은 사람 전부 대가리 박어.
“정치 생각 없습니다. 우선, 외인 단체부터 조질 겁니다. 불체자들은 외인 조직으로부터 가장 심한 학대를 받았습니다. 외인단체가 불체자의 집을 대신 잡아주고, 핸드폰을 대신 개통해주고, 송금을 대신 해주는 대신 거액을 뜯었죠. 그들의 죄에 대한 증언과 증거도 모았습니다.”
외국에 나가면 한국인이 가장 큰 적이라고 한다.
타국에 가면 어쩔 수 없이 한국인의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약자인 그들을 뜯어먹기 가장 쉬운 건 한국인이 맞다.
다만 이건 한국인의 종특이 아니다.
전 세계 모든 나라가 똑같다.
동족을 괴롭히는 건 동족이다.
불체자들은 외국인 노동자 조직에게 돈을 뺏겨왔다.
외삼촌의 과수원에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 중 일부는 불체자였겠지만, 외삼촌은 용역회사가 요구하는 대로 정상임금을 줬다.
그 돈을 떼먹는 건 용역회사와 외노자 단체였다.
외삼촌처럼 대다수 어민과 농민은 불체자를 가엾이 여긴 착한 사람이다.
오히려 미래그룹을 성토하고 불체자를 괴롭힌다고 떠들고 있는 단체야말로 불체자의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들이다.
“불체자가 당한 고통을 공개하고 실상을 퍼트리며 지방의 삶을 공개하고 우리가 지방을 잘 살게 만들기 위한 현실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꾸준히 설파할 겁니다. 그를 위해 내 돈을 막 퍼준다는 걸 자랑할 겁니다. 그런데 이걸 막는다? 정부에서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전 행동하기 전에 먼저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내 돈 10조원을 뿌려 어촌을 잘 살게 해주려는 프로젝트. 이걸 막은 공무원으로 기록되고 싶습니까?”
협박하려고 불러 모은 게 아닌데 어쩌다보니 협박처럼 됐네.
- 작가의말
시스템 소설.... 정치적 중립... 정치충 아웃 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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