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캠핑2
키스를 하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입을 붙인 채 몸만 움직이니 요가하듯 요상한 자세를 취하게 됐지만, 원래 섹스란 게 이성적 행동이 아니다.
키스하면서 예하의 안락의자에 다가가 어깨를 잡고 살살 위로 들었다.
눈을 감고 있던 예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대로 어깨를 감아 키스하면서 이인삼각 하듯 천천히 이동해 참대로 갔다.
옆무릎이 침대에 닿자 예하를 그대로 앉히면서 키스를 이어갔다.
“흐아. 흐읍. 하아.”
키스를 하면서 전신을 쓸었다.
두꺼운 털 스웨터를 입은 예하의 어깨부터 등허리를 빠르게 스쳤다.
실수인척 엉덩이를 스윽 쓸고 올라갔다가 다시 빠르게 내린다.
옆구리를 쓸고 배에 왔다가 다시 옆구리를 쓸고 가슴을 스쳤다.
“하아. 하. 하아.”
말없이.
쓰다듬는 데만 집중한다.
등과 옆구리를 쓸다가 가슴에 손이 닿았다.
신음에 변화가 없다.
다시 옆구리를 만지다가 가슴을 쓸고 가슴에 오래 머물렀다.
모양이 바뀔 정도로 슬며시 쥐었다.
“흐브!”
눈을 감고 있던 예하가 어딘가 찔린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감각에 이성이 침투하는 순간이다.
아까부터 가슴을 쓸었고, 감각이 고조되어 신음이 커졌는데, 기분 좋은 거기가 가슴이란 걸 이성이 눈치 채자 긴장이 터진 것이다.
잠시 키스를 멈췄다.
손을 가슴에 올린 채로 눈을 똑바로 봤다.
“하지마?”
“어? 에? 아니. 나... 괜찮아. 괜찮은데......”
“애매해.”
피식 웃으면서 침대에 누웠다.
앉아있는 예하가 당황해서 발버둥친다.
“오빠. 진짜 괜찮아. 해줘. 하자. 나 마음의 준비 천 번 했어. 진짜진짜.”
“그래. 하자.”
예하를 당겨 옆에 눕혔다.
뻣뻣하게 긴장한 예하가 차려자세를 취한다.
발은 침대 밖 바닥을 짚은 자세.
며칠간 키스를 하는 데엔 익숙해 졌는데 예고된 다음 전개 때문에 긴장한 것 같다.
긴장한 예하의 볼을 쓸면서 한참 봤다.
너무 예쁘다.
예하는 어쩌면 개성이 없다.
코 큰애, 눈 큰애, 이런 딱 느껴지는 특징이 없다.
모든 조합이 적당해서 모나지 않은, 딱 예쁜 얼굴이다.
그래서인지 감정이 쉽게 전해진다.
상큼한 아이돌 노래를 신나서 부를 땐 과즙미가 철철 넘치고, 슬픈 발라드를 부르면 불치병에 걸린 드라마 여주인공처럼 보인다.
지금 예하는.
첫사랑에게 고백받은 두근두근 새내기.
한참 보고 있으니 긴장해서 눈을 감고 있던 예하가 슬그머니 눈을 뜬다.
“왜 웃어?”
“어? 나 웃고 있어?”
“어. 활짝.”
“기뻐서.”
“왜?”
“좋아서. 그리고 많이 참았거든. 고문당했지.”
“힝. 그건... 갑자기 마법 걸려서. 힝 미안.”
“아니 화내는 건 아니야.”
가볍게 버드키스를 하고.
또 얼굴을 한참 봤다.
얘랑 할래.
결혼하자고 하면 할래.
재산분할?
아 몰라. 얘랑 살고 싶으면 사는 거지.
나중에 재산분할 당하더라도 할래.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하지 뭐.
평생.
“브레이크를 줄게.”
“에... 어?”
“남자가 흥분하면 가끔 반응을 못 읽을 때가 있거든. 신음과 고통소리가 비슷해서 헷갈리기도 하고. 멈추라는 말이 진짜 멈춤인지 좋다는 건지 모를 때도 있고. 그러니까 브레이크를 줄게. 그 말을 하면 어떤 상황이든 바로 브레이크를 밟을게.”
“에...... 어떻게?”
“글쎄. 그만 이라는 말은 실수로 나올 수 있고. 음. 네가 이성을 갖고 진심으로 멈추라고 해야 하니까... 스탑? 아니. 조심해? 음... 그만혀유~ 이거 좋다.”
“풉 모야?”
“충청도 사투리로 해야 해. 따라 해봐 그만혀유~”
“그만혀유~ 푸하합. 이거 뭔데?”
“한창 행위 중에 네가 정말 멈춰야 할 거 같으면 이렇게 말해. 뜬금없이 이런 소리가 나면 나도 정신이 확 들겠지. 하아. 잠깐, 하아 안돼. 하아 무리. 이런 말로는 이성이 돌아오지 않거든.”
“하하합. 오빠. 진짜. 신음소리 진짜 크큽.”
예하는 긴장이 풀렸는지 배를 잡고 웃는다.
한참 킥킥 웃더니 미소를 머금은 채 바라본다.
“원래 남자들은 다 이렇게 해?”
“그럴 리가. 아무도 안 이럴걸. 나도 처음이야.”
“오빠도? 왜? 왜 갑자기?”
“미움 받기 싫어서. 어떤 식으로든 상처주기 싫어.”
“아. 어...... 그런데 멈추라고 하면 진짜 멈출 수 있어?”
“몰라. 아마도... 너보다 쾌감이 우선이면 계속 할 수도 있고, 쾌감보다 너한테 미움 받기 싫은 게 크면 멈추겠지.”
루비가 오줌 쌌을 때 반성했다.
그러지 말아야겠다.
멈추라면 멈춰야하는데 그땐 의례적인 말인 줄 알았지.
“헤에. 착하네. 착해착해.”
예하가 엄마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는데 이번엔 모성애가 뚝뚝 떨어진다.
천의 얼굴을 가진 아이다.
마주 웃으면서 가슴에 손을 올렸다.
슥슥 스치듯 건드리는데 예하가 익살스런 표정을 짓는다.
“그만하세유~”
멈췄다.
이러라고 준 브레이크가 아닌데.
“에헷. 착해.”
“그래. 이제 엑셀은 니가 밟아.”
“어. 어?”
“멈추라고 해서 멈췄잖아. 그런데 남자가 곧장 맘대로 시작하면 브레이크가 의미 없지. 신호등 빨간 불을 니가 켰으니 파란불도 켜야지.”
“에?”
“해달라고 말해야 한다고.”
“에? 여자가 어떻게 그런 걸 말해요.”
존댓말?
“뭐야? 남자만 하고 싶은 거야? 나만 쓰레기야? 여자는 하기 싫은데 남자의 욕심을 받아주기 위해 억지로 받아주는 겨?”
장난으로 브레이크 밟은 벌이다.
“후에? 미아안. ...... 해주세요.”
“진심을 담아서 간청해야지 다시 시작하지.”
장난 못하게 해야지.
“에에에. 오빠. 해주세요.”
심쿵.
누운 채 꿈틀꿈틀 웨이브 치면서 애절한 표정으로 말하는데 심장 터질 뻔 했다.
좀 더 놀릴까 했지만 내가 못 참겠다.
입을 덮고 목과 어깨를 쓸다가 살며시 내려갔다.
가슴이 느껴진다.
c컵 정도 되려나. 스웨터와 브라 아래 뭉클한 가슴을 살며시 주물렀다.
“후아. 하. 후읍 읍! 오빠! 그만. 잠깐... 아... 그만혀유~”
제길.
브레이크 뺏을까.
이러라고 준 게 아닌데.
예하한테 처음으로 짜증이 났다.
한 말이 있으니 멈추긴 했다.
“왜?”
“방송. 방송시간.”
나름 이유가 있었구나.
“모닥불피디랑 말 했어. 혼자 방송 할 테니까 둘이 실컷 하라던데.”
“진짜? 진짜진짜?”
고맙게도 예하가 활짝 웃는다.
거기 전해진 진심이 너무 므흣해서 좋다.
그러곤 또 시무룩.
“하지만. 시청자랑 약속했어. 한 시간만 쉬다온다고. 히잉.”
“그깟 놈들 필요 없어. 후원 따위 얼마 되지도 않고, 필요도 없어. 소식전달만 하면 되는데 오늘은 할 말 다 했잖아.”
“하아. 안 댕. 약속이잖아.”
그래.
그만 조르자.
“알았어. 나가자.”
대체 언제 할 수 있는 거니?
잔디밭 한켠에 마련된 캠핑 세트장.
요리하던 숯불 드럼퉁이 치워지고, 커다란 모닥불이 피워져 있다.
모닥불PD의 성명절기.
캠핑 나와서 엄청난 고급요리를 직접 하고 엄청 많이 처먹처묵하고 모닥불을 피워두고 불멍을 한다.
말도 안 한다.
그냥 불 보는 거다.
그러다 배부르고 등 따스해서 잠들어버린다.
코골다가 방송 끝.
신기하게도 말없이 불멍하는 부분이 반응이 가장 좋다.
사람들을 하루종일 웃길 필요가 없다.
불멍 방송을 보는 것만으로 치유가 된다.
“어? 제시 빨리 왔네. 거기 앉아.”
“넹. 언니 쉬어영.”
마이크를 찬 예하가 모닥불 옆에 가 앉았다.
“난 이게 쉬는 건데. 불 보는 게 좋아. 거기 신입사원님은 그 옆 의자에 앉아도 돼.”
방송화면을 보니 예하와 모닥불피디랑 모닥불만 보인다.
가운데 모닥불을 두고 한걸음 뒤에 여자 둘이 앉아 불을 보고 있다.
예하 바로 옆, 앵글에 안 닿는 의자에 앉았다.
“신입사원님아. 옆의 아이스박스 열고 맥주 한병만. 크루져.”
시키는 게 참 자연스럽네.
내가 진짜사장인 거 알면서도.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열자 수많은 병맥주 사이에 얼음이 채워져 있다.
2월 말 추운 날씨지만, 모닥불이 워낙 커서 춥지 않다.
파란색 칵테일맥주를 꺼내 건네줬다.
이거 오랜만에 보네.
“어? 뭐야? 파워레이드?”
예하의 말에 댓글창이 ㅋㅋㅋ 와 커엽으로 도배되는 걸 보고 말없이 한 병 건네줬다.
“우와. 달다. 맛있다.”
처음 먹는 맥주맛에 예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웃었다.
방송 화면을 보니 모닥불PD는 불을 보면서 자기 세계 속에 침전했고, 예하는 웃고 신기해하고 병 뒤쪽 설명서를 보다가 불을 보고 또 웃는다.
화면으로도 기분 좋은 게 느껴진다.
행복해 보인다.
일렁이는 불길이 미녀의 얼굴에 주홍빛 파도를 그린다.
마치 씨지 같은 몽환적 아름다움이 웨이브를 탄다.
예하의 옆얼굴을 보다가 송출 화면을 보니 시간이 쭉쭉 간다.
안 먹어본 칵테일맥주를 하나씩 마셨다.
모닥불과 예하가 맥주 달라고 할 때마다 아무거나 집어주고.
“너무 좋아요. 나 지금 너무 행복해. 캠핑 너무 좋아요.”
예하는 이보다 더 할 수 없을 것처럼 행복해 보인다.
“그대 내 곁에 선 순간 그 눈빛이 너무 좋아~ 어제는 울었지만 오늘은 당신 땜에 내일은 행복할거야~”
감성에 젖은 예하가 갑자기 노래를 시작했다.
예하가 노래를 하면, 채팅이 줄어든다.
다들 손가락에 힘을 잃고, 노래에 빠져든다.
진정 행복한 표정으로 사랑을 노래하는 예하의 목소리에 빠져 움직이지 못한다.
“지나간~ 세월모두~ 잊~ 어버리게~ 당신 없이 아무것도 이제~ 할 수 없어. 사랑밖에 난 몰라.”
하.
좋다.
간주 구간인 듯 예하가 어깨를 흔들며 리듬을 타는데 색소폰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맥주를 들고 있었네.
한 모금 마시고 방송에서 행복하게 웃는 예하를 보다가 주위를 봤다.
저쪽에서 구형재 사장과 경호팀이 드디어 술자리를 편다.
야간팀 일부만 금주고 나머진 이제 마시며 노는 거다.
캠핑 와서까지 고생하는 분들.
어쩔 수 없지. 모두가 놀 순 없으니까.
둘이 어깨동무하고 뭔 진지한 얘기를 하던 아이티 형들과, 따로 한 테이블 잡고 소주를 마시던 채형 황형 권형 정형 등 전부 이쪽을 보고 있다.
예하의 노래는 세상을 멈추게 하는 힘이 있으니까.
예하의 옆얼굴을 보다가 방송화면의 예하를 한번 보고 고개를 들었다.
“무심히 버려진 날 위해~ 울어주던 단 한 사람~”
2절인가.
하늘에 별이 한 두개만 보인다.
펜션 주위 가로등을 전부 켜서 많이 보이지 않는다.
한두 개 밝은 별 사이로 모닥불 불똥이 불꽃놀이 하듯 춤추며 올라가다가 사라진다.
별이 되지 못하고 사라지는 빛.
수없이 많은 시도를 하지만 별이 되어 영원히 빛나는데 성공한 불똥은 없다.
그래도 끊임없이 하늘을 향해 도전한다.
“좋다.”
아. 무심코 말해버렸네. 마이크에 섞이려나.
“그리운~ 바람처럼~ 사~ 라 질까봐~ 사랑하다 헤어지면 다시~ 보고 싶고 당신이 너무 좋아~”
늦가을 낙엽 지는 숲에서 콘서트 듣는 느낌이다.
내 재산이 얼마드라.
코인 5조가 넘고, 백제 지분 계산하면 10조 가까이 될 테니 대충 15조네.
이거면 개인재산 한국 1위인가.
재산이 이렇게나 많지만.
남 방송하는 데 옆에 곁다리로 혼자 앉아 초라하게 병맥주를 마시고 있다.
하지만.
돈을 어떻게 써도 이 자리에서 이 분위기에 맥주 한모금 마시며 예하의 얼굴을 보는 것보다 행복하기 힘들 것 같다.
이거면 좋지 않은가.
욕심 좀 줄이자.
즐기자.
예하랑 섹스 많이 하고, 먹는 다는 것에도 즐거움을 느껴보자.
여운이 남았는지 한참 가만히 있던 예하가 발 앞의 장작 대여섯개를 장작통에 넣었다.
화라락. 타닥. 타닥.
불길이 강해지며 별이 되려 도전하는 불똥도 많아진다.
고개를 들어 별과 불똥을 멍하니 봤다.
한참동안.
드르렁. 드렁.
모닥불PD는 코를 골며 잠들었다.
불도 거의 꺼져가고.
예하가 하나씩 집어넣던 장작도 다 끝났다.
“에. 오늘 방송은 마칠게요.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내일아침에 모닥불언니랑 해장라면 요리로 찾아올게요. 시작 시간요? 몰라요. 잠깨고 밍기적하다가 허리아파서 더 이상 못 누워있을 때 시작? 에헷헷. 잘 자요. 모두.”
예하가 능숙하게 클로징멘트를 하고 촬영PD가 송출을 껐다.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고생했어. 빨리 정리하고 우리도 이제 술 마시자!”
와아아아~
야외 방송이다 보니 조명팀과 카메라팀이 계속 바빴다.
음식은 먹어도 술은 못 마셨지.
“아이구~ 같이 드십시다. 이리 오시요.”
구형재 사장이 촬영팀을 초대하고.
예하는 슬쩍 다가와 미소 짓는다.
“오빠. 우리... 들어가자. 추워.”
달아올랐구먼.
나도 그래.
- 작가의말
54,55편은 (19)에 올리며 읽지 않으셔도 스토리 진행과 무관합니다
검색 '벼락부자'로 찾는게 가장 편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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