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 게임 스탑
윌리엄 핸리가 내려온 후 한국까지 방문한 파티사들에게 시간을 줬다.
구글의 사장이 직접 올라가 파티에서 구글의 역할과 목표, 발전방향을 말하고, 복스바겐 사장이 올라가 복사바겐의 협력 범위와 직접 개발할 완성차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파티는 매우 느슨한 연합체이며 각 사는 파티를 통해 얻는 경험을 개인의 완성차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
구글은 플랫폼 AI를 통해 자사의 AI를 발전시킬 수 있고, 현기차는 파티의 조립생산을 담당함과 동시에 자사 차량에 자율주행 모듈을 추가할 수 있다.
일본의 한 브레이크 시스템 전문회사는 3년 내에 모든 시스템을 갖춘 완성차를 출시하겠다는 포부를 밝혀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경험의 공유와 느슨한 연합.
테슬라의 시장독식을 막아 시간을 벌고, 결국에는 각자가 자율주행 완성차를 만들게 되는 목표.
이런 목표가 없었다면 이토록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파티에 뭉칠 수 없었을 것이다.
타사의 독립과 시장 경쟁을 막지 않는다.
애초에 막을 수 없다.
최종 선택은 소비자의 몫이다.
그래봤자 결국엔 파트별로 최상의 부품을 선택할 수 있는 미래자동차 플랫폼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아 지겨워.’
노인네들의 자화자찬과 허황된 꿈이 끊이지 않는다.
집에 가서 누워서 뒹굴거리고 싶은데 떠날 수 없다.
한국까지 초대해 놓고 회장이 자리를 박차고 떠나면 엄청 욕먹겠지.
대기업들의 비전발표가 끝나자 특정 부품만 제조하는 중형기업들의 차례가 되었다.
이때부터 분위기가 요상해졌다.
“윤회장님의 큰 뜻을 이어받아 최우선적으로 최선을 다해 협력하겠습니다.”
“윤형. 나보다 위대하니 형 맞지. 형을 믿고 끝까지 따를게.”
“오늘은 자동차 부품사 1억명의 노동자가 해방된 날입니다.”
용비어천가를 시작으로 정철의 사미인곡, 속미인곡까지 2절 3절 뇌절 찬양이 이어진다.
듣기 민망할 정도로 칭송하고,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는 할아버지도 있다.
하청 조지기.
기업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은 노동자 임금 깎기가 가장 쉽고 하청 조지기가 두번째로 쉽다.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 모두 그러하다.
완성차의 오더를 받아 부품을 생산 납품하는 모든 하청회사는 똑같은 고통을 겪는다.
자동차라는 커다란 산업에서 중소기업은 하나의 부품일 뿐이고, 여러 벤더에 납품하는 회사는 거의 없다.
회사의 모든 매출이 완성차 회사 하나에 쏠리니 모든 갑질, 단가하락을 감내해야 하며, 이익률이 조금이라도 오르면 갑사에선 그마저 빼앗아간다.
언제나 모든 나라에서 그래왔다.
그랬기에 부품사들은 이 기회가 얼마나 좋은지 알고 있다.
하나의 판매 채널이 두개의 판매 채널로 느는 것이며, 더 이상 갑사의 막무가내 요구에 끌려다니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기존 갑사보다도 규모가 더 크다.
미래자동차 플랫폼에서 살아남는다면 규모가 훨씬 큰 완성차 회사와 동등한 위치의 발언권을 얻게 된다.
“저희는 기업의 총력을 다해 미래자동차 플랫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이것이 존경하는 미스터 윤의 크고 깊은 뜻이라 믿습니다.”
진짜 민망할 정도로 빨아제끼네.
내가 뭐했다고. 나 원 참.
“고객의 이익이 최우선. 최선을 다 해 이 뜻을 지켜나가겠습니다.”
민망해 죽겠네.
“상 생.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회사의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미래그룹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니들 대체 사람을 얼마나 괴롭힌거니?
완성차 회사 신입사원이 부품업체 사장을 발로 찬다더니 그거 레알이냐?
“같은 오더가 들어오면 미래자동차에 우선 배정하겠습니다. 어떤 압박이 오더라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저기요 형들. 여기 완성차 회사들의 갑질을 폭로히는 자리가 아닌데.
<나 차축제조회산데 매일 18시간씩 일한다>
ㄴ 야근비용은 나와?
ㄴㄴ 안나와
ㄴㄴㄴ 그런데 신고안해?
ㄴㄴㄴㄴ 사장형도 나란히 서서 일한다 사장은 매달 10만원 번다
ㄴㄴㄴㄴㄴ ㅋㅋㅋㅋㅅㅂ
인터넷에도 분위기에 동조하는 글이 속속 올라온다.
한국 뿐 아니라 일본, 대만에서도 비슷한 폭로가 줄을 잇는다.
사람 사는 세상이 다 똑같지.
갑질은 한국 회사만 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잘했다는 건 아니고.
아침에 시작한 기업설명회가 중간중간 축하공연과 애니메이션 관람 등을 거쳐 저녁에 끝났다.
그리고 이어진 연회.
부품사들의 찬양대회가 극에 달했다.
나 뭔가 잘못했나.
여기 북한이야?
여기 좀 무서워.
다음날 테슬라의 비전발표가 급작스럽게 열렸다.
로봇인척 인형옷을 입은 남자가 춤을 추고, 뜬금없이 유리강도 테스트를 하겠다며 쇠구슬을 던져 테슬라 유리창을 깼다.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
주가는 폭락했다.
같은 날 애플카의 비전발표가 열렸다.
애플감성이 가득한 발표회엔 미래자동차보다 완벽한, 정말 꿈에 그리는 그런 세계를 보여줬다.
다만 어떻게?와 언제까지?가 빠졌다.
애플은 스마트폰과 애플카까지 2연타를 맞고 하루에 무려 20%가 폭락했다.
“꺄아아아.”
“언니언니. 이춤추자. 이거이거.”
“음악 주세요.”
아래층이 시끄럽다.
덕유산에서 더욱 친해진 트비스타가 몰려와서 예하, 루비와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다.
떠들고 먹다가 노래하고 춤추고 댓글보고 대답하다가 자기들끼리 수다를 떤다.
난 2층 컴퓨터방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다.
“짜잔! 세계최고의 부자가 뭐하는 지 볼까요?”
예하와 비글떼가 문을 벌컥 열었다.
천만원짜리 컴퓨터의자에 누워 기울어진 화면을 보며 미래커뮤니티 레딧의 베스트 글을 보고 있었다.
헐렁한 츄리닝은 무릎이 늘어나 있고, 상의엔 아침에 라면국물이 묻어 있다.
“야이! 일하잖아. 나가!”
내 컴퓨터 옆에 검색용 컴퓨터가 나란히 있고, 뒤쪽 30여대 컴퓨터엔 오토프로그램이 알트코인 수십조 어치를 빨아들이고 있다.
저 화면이 공개되고 분석되면 그것만으로 수조원 손해.
“힝. 놀고 있으면서!”
“재미없는 뉴스 보지 말고 같이 놀자요!”
“오빠, 내려와앙.”
단체 애교.
녹아내릴 뻔했네.
“일하는 거야! 썩 나가!”
-ㅋㅋㅋ대박
-저애교를 버텨야 부자가 되는건가
-정신력의 힘
-트비스타한테 버력했죠? 안티팬 1억이 생성됩니다.
-그냥 유머사이트 보는 거 같은데?
-월스트릿베츠? 저기 미국의 디씨주갤이잖아ㅋㅋㅋㅋ
“힝.”
신나서 날뛰던 비글떼가 꼬리를 축 내리고 쫓겨났다.
그들이 쫓겨나든 말든 방금 올라온 베스트글에 집중했다.
<게임스탑 공매도 140%! 숏스퀴즈 기회!>
-터트리자
-공매세력 다 죽이자
-1000달라 만듭시다
2021년 1월 13일.
떴다.
기다리던 정보가 나왔다.
즉시 전화를 들었다.
“순진형. 사람 좀 지원해줘요.”
-어떤?
“기업 재무 분석하고 영어 뉴스 긁어모으고 미국 쪽 투자 조언해줄 사람이면 되요. 아, 로빈후드에 제 개인계좌 하나 만들어주고요.”
-로빈후드? 우린 직통계좌가 있는데.
“아뇨. 로빈후드여야 해요. 계좌에 가볍게 5조만 넣어주세요.”
-그래. 사람도 곧장 보낼게.
30분 쯤 후 1층이 부산해지고 광년이처럼 떠들던 여자들이 민망하게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컴퓨터실에 네 명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김하나입니다.”
“어... 간단한 잡무 지원인데.”
너무 고위급이 오셨네요.
벤처투자 팀장으로 내 개인자금을 비상장 회사 280여개에 투자하는 일을 하다가 지난해부터 M&A팀 팀장을 겸해 4000조 계약을 성사시킨 여자.
자산운용사 넘버 투인 분이 이런 누추한 곳에 오시면 어떻게 해요.
“제가 자원했어요. 마침 맡았던 일이 끝나서 한가했거든요. 회장님 얼굴도 보고 투자의 눈도 배우려고요. 괜찮죠?”
젊은데 사회생활 잘한다.
다행히 김팀장을 따라온 세 명은 20대 막내급으로 아무것도 모른다.
“네. 어차피 금방 끝나니까요. 일단... 게임스탑이라는 회사 분석해주시고요, 공매도, 풋, 콜 전부 확인해주세요.”
“예.”
김하나의 지휘 하에 자리가 세팅되고 컴퓨터를 켰다.
코인거래를 하는 컴퓨터들은 모니터만 껐다.
한 시간 만에 김하나가 결과를 들고 왔다.
“우선 게임스탑의 적정시총은 4000억. 주당 5~6달러가 적절하겠네요. 그런데 현재 21달러이고 시총은 1조 7000억입니다. 과하게 올랐습니다.”
“공매도는요?”
“주식 총수의 140%입니다. 과하게 몰렸습니다.”
“140%면 허매도 아닌가요?”
“아뇨 이론상 가능합니다. 공매치고, 공매물량을 받은 사람이 재차 대여하면 무한대로 공매할 수 있어요.”
주가가 과하게 올랐고, 너무 오른 주가를 본 공매세력이 과하게 공매도를 쳤다.
롱과 숏 모두 누가 봐도 과열된 상황.
그래도 일반적으론 과하게 오른 주식은 언젠가 제자리를 찾아간다.
김하나의 분석을 들은 후 내 컴퓨터의 모니터를 보여줬다.
월스트리트베츠란 커뮤니티에서 공매도 세력과 싸우자는 개미들의 호소글이다.
“이들의 힘은 어느 정도일까요?”
커뮤니티의 분위기를 확인하라 시켰다.
“음. 솔직히... 반반입니다.”
“더 오를지? 폭락할지 모른다는 거죠?”
“개인적으론 손대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이성적인 가격을 생각하는 게 아니네요. 내가 손해 보더라도 어떻게든 한방 엿 먹이자는 거 같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전 상승할 거라 생각해요.”
“그렇다고 개미들의 단합력이 좋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어느 정도 오르면 수익실현을 하고 빠지는 이가 나올 테고 그 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폭락이 올 수 있어요.”
“그 전에 빠지면 되죠. 여기에 뛰어들 건데 정보 수집 좀 해주세요. 그리고 비슷하게 과열되고 있는 회사들 찾아주세요. 솔직히 요즘 주식판은 좀 미쳐 있잖아요. 이성이 아닌 감성의 영역으로 봐 주세요.”
“예.”
김하나에게 지금까지 했던 설명은 당위성을 만들기 위한 설명이다.
미래를 알기에 이건 간단한 유흥이다.
카메라를 켜 내 로빈후드 계좌를 비추고, 게임스탑 주식 매집을 시작했다.
“영상은 왜 찍으시는 건가요?”
“나중에 공개하려고요. 큰 손해를 본다면 영상 공개해서 내가 니들과 함께 싸워줬다! 이래야죠.”
“아. 좋네요. 마케팅 효과 따지면 손해는 없겠네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엄청난 이득을 볼 생각이다.
매집을 시작하자 21달러인 주가가 다음날 39달러까지 올랐다.
과도하게 오르자 공매도 세력인 시트론에서 짤막한 논평을 냈다.
-개미새끼들이 뭉쳐봤자 물벼락 한대 맞으면 죄다 흩어진다. 열 배나 오른 주식이니 이제 수익실현 물량이 쏟아지면 모두 박살날 거다.
비웃음.
적정주가 5달러인데 40달러까지 오른 주식.
바이오나, IT처럼 신기술을 기대할 수도 없는, 오프라인 게임팩 판매회사다보니 누가봐도 왜 올랐는지 이해 할 수 없는 주식.
시트론의 논평은 일견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는 개개인의 분노를 몰랐다.
잘 오르던 주식이 공매세력의 보고서 한방에 추락하는 걸 수없이 경험한 개미들은 공매도 세력에 대한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다.
거기다 대고 곧 망할 회사라며 욕을 했으니.
“레딧 분위가 심상치 않네요. 결집하는 게 보여요.”
“김팀장님. 이거 자동 매수 프로그램 좀 봐 주세요. 일정량 매도 물량이 나오면 자동으로 잡아먹게.”
“네.”
수익실현 물량이 쏟아진다.
개미들의 소액 물량을 삼키다보면 대량 물량이 쏟아진다.
현재 주가 40달러인데 30달러 매도에 쏟아진 폭탄들.
누가 봐도 주가를 낮추려는 세력의 수작이다.
그 물량들을 몽땅 잡아먹었다.
덕분에 공매세력의 의도와는 다르게 주가는 꾸준히 상승했다.
겨우 3일 만에 게임스탑 주식 천만 주, 전체 물량의 14%를 보유하게 되었다.
-대주주 순위 바꼈다.
-YDW 누구냐?
-몰라. 뉴스 나온 거 있어?
-어쨌든 가즈아~
-동욱윤 스펠 아니냐? DWY
-헐 맞네. 윤형 왔다!
시트론의 보고서는 불붙은 집에 기름 붓는 격.
대주주 YDW의 등장은 월스트리트베츠에 네이팜탄을 쏜 격이 되었다.
- 작가의말
키리취님 또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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