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폰로이어2
예하가 구글번역기에 한글로 적고, 영어로 바꾸는 걸 보던 채인수가 나섰다.
“나한테 불러. 번역해줄게.”
루비가 이죽댔다.
“치... 영어 따위 잘한다고 젠체하기는. 동욱오빠 말로는 영어 따위에 시간 쓰느니 다른 귀한데 쓰는 게 낫다고 했는데.”
“그래도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게 낫지. 영어에 쓴 시간보다 더 나은 곳에 시간을 쓸 수 있다면 몰라도, 더 나은 목표를 잡지 못했다면 버리는 시간에 영어라도 공부하는 게 낫겠지.”
“치. 흥.”
루비가 고개를 팽 돌렸다.
이상하게 채인수는 여기저기서 많이 채인다.
모닥불도 그렇고 루비도 그렇고 채인수가 만만한가보다.
아직 20대에 엄청난 업적을 이룬, 엄청 똑똑한 엘리트인데 이상하단 말이야.
채인수의 번역하에 핀빙빙의 현재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띄엄띄엄 오는 대답은 매우 느렸고, 짧았다.
- 감시중. 어쩌면 메세지 해킹될 수도.
“놉. 블록체인 방식이라 해킹 불가능. 핸드폰 화면만 들키지 않으면 됨.”
- 이불 속. 뒤집어쓰고 있음.
미래경호 사장 구형재가 왔을 때 핀빙빙의 주소를 알아낼 수 있었다.
즉각 구글맵을 켜고 확인했다.
“어이쿠 오랜만입니다.”
하는 인사를 끊고 빠르게 본론을 전해줬다.
“흐음.”
“핀빙빙의 자택이네요. 상해 부촌이고 공항에서 30분 거리, 항구에서 1시간 거리.”
구형재가 지도를 키웠다 줄였다 하며 도로를 확인하고, 이동 동선을 예측하는지 이리저리 손가락을 휘저었다.
“가능하겠어요?”
고심에 잠겨 있는 구형재에게 예하와 루비가 달라붙었다.
“구해주세요.”
“구해주세요. 제발. 꼭요.”
루비는 핀빙빙에게 동질감을 느끼나보다.
예하도 그렇고.
두 미녀가 달려들었는데도 구형재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경비 인원이 어떻죠?”
-집안 10명 남자, 전원 권총. 집밖. 모름.
단순한 자택연금이 아니구나.
한참 고민한 구형재가 물었다.
“핀빙빙만 구출하면 됩니까?”
“네.”
“그 과정에서 살인이나 희생은 감당할 수 있습니까?”
“음......”
내가 고민할 차례인가.
한참 답이 없자 구형재가 천천히 말했다.
“몰래 숨어들어가 밤에 기습해 자택과 근처에 있는 이들을 일거에 죽이고 핀빙빙만 데리고 항구로 와서 고속 요트로 탈출하는 게 최선입니다. 물론 약간만 계획이 어그러지면 저희 쪽 사상자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구글맵을 보며 작전을 짰는데 현지 상황이 어떻게 변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국에서 날 보호하기엔 과한 전력이지만, 중국에서 군사작전을 하기엔 무리한 전력이다.
PMC자격증이 있지만, 중국에서 공안을 건드리면 어떤 보복을 받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경호팀이 할 수 없는 일이네요.”
“네. 죄송합니다.”
“아뇨. 국가권력과 싸우는 일인데요. 애초에 무리한 생각이었어요.”
잠시 생각을 한 후.
“예하야. 핀빙빙에게 중국이 싫어할만한 무언가 갖고 있냐고 물어봐줘.”
“어.”
라고 예하가 대답했지만, 채인수가 영어로 불러줬다.
한참 후 답변이 왔다.
-폰로이어 작동했음. 첫 1주일 끔찍한 녹음 있음
다시 고민.
“그 파일 미국에 제출 가능? 중국과 평생 싸워야 한다고 말해줘. 그걸로 미국과 협상해서 구출한다고.”
답변이 왔다.
-OK.
“이건 알았다는 뜻이야.”
채인수가 예하에게 친절히 번역해줬다.
“우이씽. 나도 이 정도는 안다고요.”
왠지 만만한 채인수.
“형. 미국 대사관에 접촉해볼래요?”
“핀빙빙을 구해달라고 하고, 대신 중국의 약점을 미국에 주겠다는 거지?”
“네. 뭐 대단한 건 없겠지만, 한창 중국 때리기에 열 올리는 트럼프라면 좋아하겠죠. 중국 인권문제를 꼬집을 수도 있고.”
위구르 인권도 챙기는 인권주의자 트럼프라면 관심 있겠지.
“그래.”
“망설이면 따로 주한미군에 몰래 천억 기부한다고 해 보세요. 그냥 순수한 기부요.”
“그... 럴 필요까지 있을까?”
“나중에 핀빙빙 구출했을 때 할 말이 있어야죠. 그리고 그 정도 대가가 있어야 미국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나서지 않을까요? 중국 공안을 건드리는 일인데 걔들도 꽤 높은데서 허가해야 움직이겠죠.”
“그래. 일단 협상해볼게.”
“네 부탁해요.”
핀빙빙 구출은 내 손을 떠났다.
직접 로켓 쏘면서 달려드는 적 천만 명을 죽이고 구출하고 싶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아이구 계속 쓸모없는 사람이 되네. 이거 민망하게.”
구형재가 씁쓸하게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루비가 느끼는 심정과 비슷하려나.
“불가능한 걸 억지로 하는 것보다 천 배 낫죠. 사장님의 판단이 옳아요.”
“허허. 미안허이.”
위로가 통하지 않으면 언급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우울한 구형재와 술잔을 나눴다.
핀빙빙은 보름 후 구출되었다.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공안 내부의 협조를 받아 다섯 명의 공안 변절자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넘어갔다.
확실히 프로는 다르다.
채인수의 여동생 채선화.
백제그룹 해체 때 도움을 줬고, 지금은 사회단체인 옳은사회만들기시민행동연대의 대표가 되었다.
현재 표적은 조승학과 함께 범죄를 저지르던 청한무역 2세와 FVV 식품 2세다.
그들의 범죄사실을 조사해 증거를 획득하고, 추가로 두 회사의 약점을 세세히 살폈다.
그리고 드디어 행동에 들어갔다.
“반갑습니다. 채선화입니다.”
반 협박을 하며 약속을 잡은 채선화가 여유있게 인사했다.
청한무역의 대표 마청한은 언짢은 얼굴로 명함을 받았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요?”
자신에게 몰래 배달된 소포.
거기엔 아들의 범죄 증거가 들어있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나오라는 말과 함께.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채선화는 느긋하게 자료들을 꺼냈다.
“조승학 아시죠? 백제그룹 3세. 그와 친분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조승학의 코톡 화면부터 보여줬다.
조승학과 대화하며 서로 범죄를 자랑하는 글들.
“저희는 조사했고, 증거를 찾았습니다.”
피해자를 찾아 설득하고 약간의 보상금을 주고 고소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들의 녹취파일도 잠깐 틀어줬다.
“그래. 알겠는데 원하는 게 뭐냐니까?”
채선화 뒤에 있는 경호원이 움찔할 정도로 분노한 목소리.
채선하는 차분히 말했다.
“당신의 아들이 자수하는 겁니다. 감옥에 가서 이상과 같은 범죄사실을 시인하고 형사상의 죗값을 받고, 민사상의 보상을 할 것. 그리하면 됩니다. 저희는 사회를 정화하는 게 목적입니다.”
일을 크게 벌일 생각은 없다.
자살한 하지혜와 그외 피해자들의 한만 풀어주면 된다.
성범죄 피해자는 누구도 사건이 이슈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사건이 알려지면 주위사람들의 동정이 2차 가해를 일으켜 피해자를 더 죽고 싶게 만든다.
으드득.
마청한이 이를 갈았다.
“거부하면? 무시하면?”
“백제그룹이 해체된 건 아시죠? 똑같이 가야죠. 귀댁 아들의 범죄를 전국민에게 알리고 기업에 공매도를 때리고 횡령, 탈세를 고발해 백제처럼 해체시켜야죠.”
으드득.
마청한이 이를 갈았다.
“횡령? 내가? 우리 회사가 얼마나 깨끗한데 감히.”
당당한 말에 채선화가 피식 웃었다.
“자신 있으면 마음대로 하시죠. 거부한 걸로 알겠습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집 없다.
모든 기업은 횡령, 탈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회사를 소유한 회장 입장에서 집을 산다고 생각해 보자.
10억짜리 집을 사기위해선 회사 돈 19억을 본인 앞으로 돌리고, 소득세 45%를 내야 한다.
세금을 내고 남은 10억으로 집을 산다.
내 회사를 운영해 돈을 벌었지만, 그 돈을 쓰기 위해선 쓰는 만큼의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회사 명의로 산다면 10억만 쓰면 된다.
회사의 지출로 잡히기 때문에 매출대비 수익도 줄어들어서 27.5%에 달하는 법인세도 줄어들게 된다.
회사의 돈으로 산 사택을 회장이 마음대로 쓴다고 앞에서 욕할 직원은 없다.
그렇기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회사 돈을 쓰게 되는 것이다.
모든 회사가 똑같다.
조준선 일가는 그의 할아버지때부터 백제그룹을 소유했다.
그럼에도 본인 지분이 너무 적은 건 세금 때문이다.
1천억 어치 지분을 본인 명의로 만들기 위해선 대략 900억 원의 세금을 내야하며 이후로도 재산세를 계속 내야 한다.
하지만 회사 자금으로 지분투자를 하면, 이건 법인세도 줄이고 1900억 어치의 지분을 갖게 된다.
회사의 소유권을 빼앗기지만 않는다면 회사 명의로 투자하는 게 언제나 두 배 이익이다.
그렇기에 소유주가 오래되고 2세 3세로 내려온 회사일수록 총수일가의 지분은 2~5%선에서 움직이며 대부분의 자회사 지분을 회사가 갖게 된다.
회사의 소유권만 확실하다면 회장일가는 회사 사택에서 살고, 회사 차를 타고 다니며 회사 카드로 생활하며 살아간다.
윤동욱이 살고 있는 옥수동 아파트도 회사 사택이다.
모든 회사가 이렇고 탈세를 증명하기 힘들기에 평소에는 국세청도 무시하지만, 회사가 엄청난 사고를 일으키면 그땐 탈세와 횡령 혐의를 씌워 해체해버린다.
삼푸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삼푸그룹 회장 일가의 죄에 탈세와 횡령이 추가되었고, 성수대교, 서해훼리호 등 각종 참사를 일으킨 기업이 박살날 때마다 모두 동일한 죄가 추가되었다.
한참 부들부들 떨며 노기를 가라앉힌 마청한이 협상을 제의했다.
“아들을 다그쳐 알아보겠소. 그... 자료들 복사본 좀 받을 수 있겠소? 자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겠소.”
씹어 먹듯 꾹꾹 누르며 내뱉는 말에 채선화가 가져온 자료들을 넘겼다.
“부디 현명한 판단을 하길 바랍니다.”
피해여성들을 위해서 이슈가 되지 않고 죄값만 치르기.
이를 위해 부수입을 포기했다.
마청한과 헤어진 채선화는 FVV 식품 대표 길주명을 만나 같은 제의를 했다.
하지혜의 한이 풀리길 바라며......
회사로 돌아간 마청한은 자신의 곁을 20년간 지킨 비서실장을 불러 받은 자료를 넘겼다.
“미래 그룹이 우릴 공격한다. 이게 사실인지 조용히 알아봐.”
“헉. 예.”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도 조사해봐. 돈 아끼지 말고. 최선을 다해.”
“예.”
“없던 일로 묻을 수 있도록 그놈들 약점을 찾고.”
“예. 맡겨주십시오.”
“영훈이 튀어오라고 시키고.”
“예. 알겠습니다.”
그날 회장실에서 아들의 곡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 작가의말
100% 픽션입니다... 그러므로 세금에 대해 틀린 부분이 있다면 픽션이라서 그런겁니다...
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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