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미래스마트폰
2020년은 코로나를 제외하면 많은 것이 좋았다.
중국의 공장이 멈추면서 미세먼지 없는 맑은 날이 계속 되었고, 주식은 3월을 기준으로 연일 오르고 있으며 가장 더운 7월 8월에 비가 꾸준히 와서 여름 더위를 못 느낀 채 지나갔다.
9월이 된 시점에 올해의 주식 수익률은 80% 가량.
2월 고점에서 내리고 3월 저점에서 다시 탔는데도 고작 이 정도다.
운용자금이 적었다면 100배 수익도 가능한 시기다.
진단키트 대장주 시젠이 20배 이상 오르니 그런 기업만 골라 들어가면 된다.
문제는 너무 커져버린 운용자금.
시젠이 저점일 때 300억을 넣었더니 보유지분이 9%가 되었다.
고점에선 6000억을 엑시트 해야 하니 주가가 출렁이고 주주로부터 온갖 욕을 먹게 된다.
수익률은 높지만, 정작 전체 시드에서 0.01%밖에 안 된다.
테슬라, 엔비디아 같은 초대형 주도 20~30조 자금만 받아줄 수 있다.
그마저도 수익실현 할 땐 엄청난 욕을 먹게 되겠지.
3월 3000조를 투자할 땐 전 세계 거의 모든 회사에 분산투자 해야 했다.
주가가 계속 오르고 위탁받는 투자금이 늘어나면서 미래펀드의 운용자금이 7500조를 달성했다.
세계 1위 블랙록에 이은 세계 2위 펀드로 성장했다.
이 중 절반이 내 개인 재산이다.
꾸준히 들어오는 펀드자금을 내 재산과 교체하며 기업을 계속 산다.
매일 매일 인수성공 보고서가 올라오면서 미래그룹 자체의 규모가 커지고 있다.
새로 인수한 기업들의 시총 총합은 7000조 근처에 왔고, 이 중 미래그룹 지분은 30% 가량이다.
당연히 장래 유망한 기업들을 골라 사들이고 있으니 내 지분가치 또한 연일 상승하고 있다.
그리고 미래그룹의 근간인 미래메신저 계열은 추정가치 6000조를 찍었다.
올림픽을 계기로 미친 듯이 성장한 미래게임즈 홀로 2200조의 시총을 기록하며 애플을 제치고 세계 1위 기업이 되었고, 미래쇼핑 또한 1300조의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상장할 생각은 없지만 미래메신저를 상장시키면 역사상 다시없을 그룹이 만들어진다.
모든 가치를 합치면 미래 홀딩스는 2경의 시총을 갖고 있다.
앞으로도 주가는 계속 오를 테니 4경의 시총을 기록할 수 있다.
“미쳤네.”
내가 생각해도 미쳤다.
4경.
여기서 내 개인 재산은 최소 1경.
너무 많은데.
1억도 많고 1조도 까마득한데 1경은 아예 감이 안 온다.
안드로메다 저 너머에 있는 무언가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삐리리릴.
인터폰이 울리고 비서실의 전화를 받아 메신저에 들어갔다.
-지엘전자 핸드폰 사업부 인수합의. 여성부 미래게임즈 매출 1% 요구.
채인수의 메세지다.
지엘전자가 핸드폰사업을 접는 건 알고 있었다.
미리 알고 있으니 싸게 주워오는 건 쉬웠다.
그들이 보유한 특허 포함 기술자 계승 등의 조건으로 4조원에 업어왔다.
지엘 입장에서도 세계시장 점유율 2% 이하로 떨어지며 매분기 적자만 기록하던 사업부를 돈 받고 팔았으니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그런데 여성부는 뭐지.
채인수에게 전화했다.
“여성부는 뭔데요?”
-한국의 게임회사는 매출의 1%를 게임중독 치료를 위해 여성부에 바쳐야 해. 돈 내놓으란 거지.
“아니 미래게임즈 본사는 아일랜드잖아요. 외국회사에 왜 한국 법을 들이대요? 미래게임즈 한국매출에 대한 세금은 한국에 내는데.”
-유성주 사장과 핵심 개발 인원이 전부 한국인이잖아. 애초에 한국의 게임개발회사로 등록된 걸 우리가 샀으니 한국의 회사로 볼 수 있다 이거지.
“헐... 법리적 판단은요?”
-생떼 쓰는 거야. 돈 잘 버는 거 보고 돈 달라고 삐약 거리는 거. 법적으로 절대 지지 않아.
“됐어요. 조까라고 전해주세요.”
-그래도 바지가랑이 붙잡고 울고 늘어지면 귀찮아 지는데.
“적당히 주려고 해도 줄 수가 없잖아요. 미래 게임즈 매출의 1%만 영업이익으로 챙기는데 1%를 여성부에 바치라니. 그럼 바로 적자잖아요. 미친년들.”
-애초에 정치라는 게 그런 거지. 지들도 돈 받을 생각은 없어. 그저 자기들 생존신고 하는 거야. ‘학부모님들 내가 당신들의 자식들을 위해 게임회사 조지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자기가 일하고 있다고 생색내려고 던진 소리야. 우리가 거절하면 온갖 기사 뿌리면서 악담을 퍼붓겠지.
“이제 미래게임즈 규모라면 그런 거 무시해도 되지 않을까요?”
-돼.
“그럼 조까라고 해요. 건드리면 깨문다고 경고해줘요.”
-어.
별 하잘 것 없는 새끼들이 앵겨붙고 지랄이야.
2020년 9월 15일.
사장단과 함께 지엘전자 본사를 방문했다.
수백명의 기자가 몰려든 가운데 지엘그룹 회장과 악수하고 사인하고 다시 악수하고.
인수가 끝났다.
자잘한 기업 인수는 지사 사장이 했지만, 이건 워낙 큰 사업이기에 직접 나왔다.
채인수가 제발 좀 나오라고 애걸하기도 했다.
지엘스마트폰 인수.
액수만 놓고 보면 그리 큰 건 아니지만.
“저희 목표는 시장 점유율 50%입니다.”
꿈은 크다.
한마디 해달라는 기자들에게 목표를 말하고 성수동으로 돌아왔다.
성수동에서는 비전 발표를 준비 중이다.
남의 회사에서 발표하는 건 실례니까 본사로 옮겼다.
이것도 내가 직접 하라는 거 극구 싫다고 거절했지.
고스란히 몰려온 기자들을 앉히고 미래방송 카메라를 설치한 후 채인수가 입을 열었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아이비엠이라는 공룡이 살았습니다.”
동화구연 하고 있네.
저 형 정치에도 뜻이 있나.
“아이비엠이 퍼스날 컴퓨터의 시대를 열었을 때, 아이비엠은 덩치가 너무 크고 너무 둔해서 자신의 먹이를 이웃들에게 가져오라 시켰습니다. 마소에 도스를 만들라 시켰고, 인텔에, 일본기업에 먹이를 주워오라 시켰습니다. 그 결과 껍데기만 아이비엠일 뿐, 그 내부에서 수많은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게 40년 전이군요.”
동화구연 하던 채인수가 씩 웃으며 말투를 평상시처럼 바꿨다.
“IBM의 정책 덕에 수많은 글로벌 기업이 성장할 수 있었고, 세세하게 나뉜 컴퓨터 부품 섹터에서 집중적인 연구가 이뤄져 더 빠른 발전이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소비자에게도 큰 이득이 되었죠. 컴퓨터 살 때 제조사 보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습니까? 다들 원하는 부품을 조합해서 사죠. 부품을 모아 조립하는 제조사는 그리 중요치 않고, 각자 입맛대로, 형편대로 부품을 선택해 조립하죠. 이런 경향은 노트북에도 이어져 노트북의 제조사는 중요치 않고, 내부에 들어가는 부품을 보고 고르는 시대로 이어졌죠.”
채인수가 물 한잔을 마셨다.
한편 현장에서 보고 있는 기자들, 그리고 방송을 보고 있는 시청자 중 눈치 빠른 이들이 잽싸게 행동했다.
미래그룹의 지엘스마트폰 인수발표때부터 하락하던 세계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주가가 거침없이 폭락했다.
미래 그룹이 선전포고의 운을 띄웠으니 이제 포탄이 날아갈 것이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IBM이 먹이를 나눠주지 않고 부품사에 최소 수익만을 강요한 채 홀로 독식했다면 퍼스날 컴퓨터 가격은 훨씬 비쌌을 겁니다. 그래서 미래그룹은 부품이 중시되는 컴퓨터조립시장이 소비자에게 더욱 유리하다 판단했습니다. 이를 스마트폰에도 그대로 적용하겠습니다.
애플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25%입니다. 그런데 애플이 주문한 부품들을 받아 실제 완성하는 폭스콘의 영업이익률은 1%입니다. 알다시피 지난 10년간 전 세계 모든 애플폰을 제조한 폭스콘의 이익률은 1% 미만이며 주가도 10년째 제자리걸음입니다.
이건 끔찍한 갑질입니다.
애플은 부품제조사가 아닙니다. 애플에 들어가는 부품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상섬전자이며 정작 애플은 스마트폰 부품을 생산하지 않습니다. 그저 오더를 넣어 조립해 판매하는 메이커상입니다. 이런 애플의 영업이익률이 이토록 높다는 것은 그 아래 깔린 하청업체들이 끔찍한 갑질에 신음한다는 소리죠.
막말로 1% 이익률에 허덕이던 폭스콘이 직접 오더해서 직접 제작해도 애플폰과 똑같은 성능이 나오지만, 25% 이익을 가져가던 애플은 폭스콘이 파업하면 직접 제작할 능력이 없습니다.
이에 미래그룹은 선언합니다.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PC시장처럼 부품 조립 시장으로 바꾸겠습니다. 매년 20개 이상의 표준모델을 발표해, 최저가, 최적가, 최고가 모델을 출시하겠습니다.
스마트폰 내부의 부품을 다양하게 바꿔 국가별, 인터넷 속도별 최적화된 모델을 구매할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또한 전용 OS 없이, 구글, 마소, 미래 등 다양한 OS를 선택할 수 있게 해 드립니다.
오늘 인수한 지엘 스마트폰은 앞으로 단순히 조립회사가 됩니다. 전 세계 천여 개 부품기업과 파티를 이뤄 다양한 부품을 다양한 조합으로 조립하게 됩니다.
이 목적은?
부품기업과의 상생이 목적이며 스마트폰의 소비자 가격을 20% 이상 낮추기 위함입니다.
소비자 우선 기업.
최소 이윤 목표기업.
미래그룹은 떼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최소이윤으로 최대한 많은 부품기업과 상생하며 시장 자체를 소비자 위주의 선택 시장으로 바꾸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아직 망설이고 있는 부품 기업들은 망설이지 마십시오. 애플이 갑질하면 혼내주겠습니다. 파티에 합류하십시오.”
발표가 끝났다.
단순히 멋진 폰을 만들겠다고 선언하는 게 아니다.
스마트폰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소리다.
채인수가 발표를 마치자 휴대폰 주식시장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하락하던 애플과 상섬의 주가가 주춤주춤 망설이더니 슬쩍 올라 시초가 근처에 머물렀다.
대신 중국 스마트폰 기업들이 거침없이 폭락했다.
특히 오포, 비보는 회사가 망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너졌다.
‘정확하네.’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채인수를 보며 주가차트를 보는데, 세상엔 똑똑한 사람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하는 애플과 상섬.
둘의 기술력과 신제품을 부품 조립시장이 따라잡기 힘들다.
하지만 중국은 다르다.
전 세계 스마트폰 판매량 40% 이상을 독점하는 세계 1위 스마트폰 생산국 중국.
기술력 부족으로 프리미엄 시장에선 열세지만, 중저가 폰을 위주로 가장 많은 폰을 팔아왔다.
미래그룹의 발표는 정확히 그들의 시장을 노리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애플과 상섬을 따라잡을 수 있겠지만, 아직은 불가능하다.
당장은 중국이 차지하던 시장을 먹어 기술력을 키운 후 프리미엄 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
기자회견을 끝내고 사장단과 식사하는 자리.
밥을 먹으며 쏟아지는 기사를 보는데 참 재밌다.
[중국, 스마트폰 기업에 무제한 지원 약속]
저런 무서운 짓을.
중국의 무제한 지원으로 한국의 LCD 산업이 몰락하고 중국이 독점하게 되었는데.
[미국, 미래그룹의 패러다임 환영. 중국에서 공정하지 못한 지원을 할 경우 중국산 스마트폰에 거액의 관세를 매기겠다]
내 뒤엔 미국이 있다.
미국의 거의 유일한 스마트폰 제조사 애플은 중국에 개인정보를 넘긴다는 강력한 의혹을 받고 있고, 미래그룹은 중국과 대놓고 싸우는 중이다.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정치생명을 걸고 있는 트럼프로선 애플보다 미래가 예뻐 보일 수밖에 없다.
미국이 애플대신 우리의 손을 잡아준 이때 시장 점유율을 늘린다.
“사장은? 정했어?”
“모르겠어요. 중요한 사업인데 외부인한테 맡기기 불안한데. 상철이 형이 하면 안 되요?”
내 말에 청바지에 체크남방을 입은 김상철이 국그릇에서 고개를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싫어.”
그러세요. 이 개썅마이웨이 코더 같으니라고.
“그냥 외부인사로 영입하자. 딱히 손댈 생각 없잖아.”
“그렇긴 하죠. 큰 돈 벌 생각은 없고. 그럼 형이 알아서 뽑아줘요.”
스마트폰 사업부는 미래IT의 자회사가 아닌 홀딩스 직속으로 붙는다.
덩치가 크고 사업 성격이 다르기에 IT 아래에 붙일 수 없다.
이제는 초기멤버가 아닌 외부인사도 핵심 사장단에 들어와야 한다.
- 작가의말
저는 애플 싫어하지 않습니다. 세계 최고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는 매우 훌륭한 기업입니다
Commen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