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바닥잡기
“아들, 돌아가 봐야 하지 않을까?”
섬 서쪽 해변에서 바다를 보며 점심을 먹는데 엄마가 넌지시 말했다.
“응? 왜요?”
“인터넷에 보니까 우리만 안전한데 있다고 욕하더구나.”
“...... 무시해요. 그냥 뚫린 입이라고 쏟아내는 것 뿐. 고마워하는 사람이 훨씬 많아요.”
“그래도 아들 이미지가 안 좋지 않을까? 아들은 여기서 큰일하고 우리끼리 귀국할게.”
휴가를 핑계로 친척들 전부 모았고, 코로나19가 발생해 발이 묶였다.
전부 내 계획대로.
그런데 되려 날 걱정하신다.
“엄마아빠가 한국 가 있는 게 나한테 더 걱정인데. 그러면 더 못할지도 몰라요. 여기서 같이 있어요.”
“어? 어... 그래. 큰일하는 아들 걱정시키면 안 되지.”
“에이. 그러지 좀 마시라니까요. 막 당당하게 아들 혼내고 그래요.”
“그래! 당당하게 혼내마!”
아빠?
“예하랑은 언제 결혼할 거니? 이 아빠는 손주 보고 싶구나.”
“헐......”
괜히 혼내라고 했다.
결혼어택이라니.
이건 반칙이야. 치사해.
“최... 대한 빨리. 예하랑 말해볼게요.”
예하 찾으러 가야겠네.
도망쳤다.
메타버스에서 작곡가를 만나 노래를 받아 연습하는 예하를 데리고 남쪽 바닷가로 왔다.
저 멀리 보홀섬이 보이는 모래사장.
찰랑대는 해안에 무릎까지 들어가 예하의 손을 잡고 걸었다.
“예하야. 우리 결혼할까?”
“청혼? 이게 청혼임?”
“어? 아니 그냥 생각이 어떤지에 대해 물어본 거야.”
“헤헤. 농담.”
“...... 결혼할까?”
“글쎄. 헤헤헤. 오빠는?”
“해도 좋고 안 해도 좋고.”
진짜 별 생각 없다.
예하는 내 말에 물 속 모래를 퍼 올리듯 발차기를 하며 천천히 걸었다.
“결혼하면... 지금과 뭐가 달라질까?”
“글쎄...... 평생 같이 산다는 약속? 안정감?”
“대한민국 인구절벽에 대한 해결도 되고?”
“그건 국가 사정이지. 개인은 그런 거 신경 쓰는 거 아니야. 개인은 낳고 싶으면 낳고 싫으면 마는 거지.”
국가와 개인을 동일시해선 안 된다.
“그럼 지금과 별 차이 없겠네.”
“그렇겠지. 지금보다 더 좋아지는 건 상상하기 어려워.”
“오히려 유부녀 언니들처럼 인생의 무덤소리 할까봐 무서워.”
...... 여자들도 그런가.
그러고 보니 남자들만 인생의 무덤이라고 하는 것도 이상해.
여자도 결혼하면 잃는 게 많을 텐데.
오히려 여자가 잃는 게 더 많지 않을까.
내가 딴 생각을 하고 있으니 예하가 걸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난 안할래. 국가가 정한 법에 오빠가 얽매이는 게 싫어.”
“그......”
거 혹시 루비가 뭔가 말했니? 그것도 꽤 옛날인데.
루비 이녀니.
“결혼해도 안 해도 오빠랑 내 사이는 같을 것 같아. 그러니 안 할래. 애가 생기면... 결혼식만 하자. 가족만 모여서 단촐하게.”
가족이라면... 우리가족밖에 없잖아.
하지만 성대한 결혼식을 하면... 정재계가 끼어들어 정치의 장이 될 테니 가족끼리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고.
“그러고 보니 왜 애가 안 생기지?”
묶은 거 풀었고 정상작동 된다는데.
예하도 이상 없다고 하는데.
“으이그 힘써.”
“많이 하잖아. 충분히 많이. 섹스 엄청 많이 하는데. 거참.”
“더 많이 하셈. 밤새 괴롭히셈.”
“얘 봐라. 얘. 아줌마 다 됐네.”
“우후후후. 오빠 너무 좋아.”
“아닌데. 예하가 더 좋은데.”
“우흐흐흐.”
“아줌마여.”
“에잇. 힘 좀 팍팍 써요. 밤새 재우지 말란 말이야~”
촤락.
어째서인지 기분 좋아진 예하가 갑자기 물을 뿌린다. 질 수 없다.
3월 둘째주.
세계 2등 감염국 한국의 확산세가 줄어들었다.
대신 이탈리아가 급속도로 치고 올라갔다.
확진자가 늘고 사망자도 매일 200명 수준으로 올라갔다.
한국은 전염을 막지 못했지만, 치료에는 성공했는데, 이탈리아는 의료계가 아예 마비되었다.
[이탈리아, 긴급 간호보조사 채용]
확진자가 15000명을 넘긴 이탈리아에서 미래그룹이 제안한 간호보조사를 채용하기로 했다. 미래 그룹의 앱 미래대학에서 기초지식을 수료한 지원자는 비대면 시험을 본 후 채용되면 월 급여 300만원선에 임시 채용된다. 이 급여의 절반은 미래그룹이 기부형식으로 지원한다.
-캬 미쳤따리
-그런데 전염병때만 쓰고 버린다는 거잖아
-어쨌든 필요한 일이잖아
-아무것도 모르는 애한테 맡기는 건데 환자가 더 안 좋아지지 않을까?
-전문적인 건 간호사가 하겠지 이름부터 간호보조잖아
-현재 간호사가 부족해 의료진이 죽어나가고 있음
-암튼 잘한 일임 한국도 죽어나가는데 좀 채용하지
이탈리아를 따라 세계 각국에서 간호보조사를 채용하기 시작했다.
의료인프라가 부족한 아프리카에선 간호사와 의사를 빠르게 육성하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실습 없이 학습한 임시 의료인이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지만, 그래도 권위의 벽이 허물어졌다는 데 의의가 있다.
타우바트 섬에 머물면서 여유 있게 노닥거린 건 아니다.
V자 반등한다는 것은 알지만, 정확히 언제인지 얼마에 반등하는지는 모른다.
그래서 매일 회의를 해야 했다.
새벽, 점심, 저녁.
각국 주식시장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세계 정상이 발표를 할 때마다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해야 한다.
물론 이건 각국 펀드매니저와 지사장이 분석해 권순진이 취합한다.
그래도 회의는 회의.
긴장한 채 때를 기다리는 것도 나름 피곤한 일이다.
절망에 사고 환희에 팔아라.
너무도 지겹고 당연한 말.
하지만 맞추기 더럽게 힘든 말.
과연 절망이 언제일까.
지나고 보면 그 때가 절망인줄 안다.
지나고 보면 그 땐 아무것도 아니기도 하다.
지나고 보면 그때보다 더 깊은 절망이 있기도 하다.
실제 겪는 당시엔 언제나 불안감뿐이다.
그래서 알아채기 힘들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땐 절망이 확연히 보였다.
“끝났어. 최소 2년 이상 바닥을 길 거야.”
독일 지사장인가.
중얼거리는 걸 들으니 지금이 절망인 줄 알겠다.
코로나 사태가 퍼지고, 모든 금융맨들은 심혈을 기울여 분석하고 투자방향을 정했다.
크루즈선을 운용하는 회사는 끝장이야. 주가가 1/20로 하락했다.
영화관? 죽었어. 주가가 1/5로 하락했다.
마스크 만드는 회사? 호재네. 주가가 상승했다.
백신? 치료제? 바이오주들은 제자리를 유지했다.
이게 사람들의 일반적인 대응.
그런데 주가가 폭락하고 세계에 퍼지는 속도와 사망자 수를 보아하니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유럽의 자동차회사들이 공장문을 닫는 걸 보니 하루 이틀에 끝날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바이오주마저 하락한다.
심지어 마스크를 만들어 떼돈을 벌고 있는 방역회사들마저 주가가 폭락했다.
2년 후.
주가는 2년 후를 선반영한다.
정확히는 금융맨들이 2년 후 늘어날 매출을 분석해 미리 들어가는 것이다.
한국의 라면 회사들이 해외공장계획을 발표한 순간 폭등한 주식은 3년 후 폭발적으로 늘어날 매출을 생각해 폭등했던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마스크 만드는 방역회사 주가가 떨어진다는 것은.
당장은 돈을 벌더라도 2년 후면 다 같이 망할 거란 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마스크 만들 공장이 폐쇄되게 생겼으니 마스크관련주마저 폭락하는 것이다.
즉.
진정한 절망에 빠졌다는 소리다.
절망에 사라.
3월 15일.
미국이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언했다.
기준금리를 최저로 낮추고, 코로나 사태로 힘든 기업의 채권과 어음을 무제한 사들이기로 천명했다.
미국의 발표대로라면 이 세상에 망할 기업은 단 하나도 없다.
코로나로 모든 직원이 사망하더라도 기업의 주가는 그대로다.
세상에 이런 비상식적인 기적이.
시장의 절망과 미국의 선언이 겹쳐졌다.
“포지션 전환합니다.”
“앗. 아니 이건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2008금융위기는 돈만 멈춘 건데, 이건 사회 전체가 멈춘 겁니다. 실물경제가 죽었다고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지사장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내가 생각해도 하락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고, 이정도 사태에 고작 30%하락 후 반등하는 건 너무 짧지만.
“양적완화. 생각보다 졸라 쎄요. 롱포지션으로 갑니다. 레버리지 먼저 정리하고, 다음으로 공매도 정리합니다. 마지막에 원자재. 지금 나스닥 지수가 7000이네요. 7000 기준으로 정리합니다. 열흘은 주겠죠. 한 발 먼저 움직입시다.”
“예......”
지사장들이 이건 아니라는 식의 표정을 지었지만, 어쩌겠어.
미래 펀드에서 내 권위는 절대적이고 내가 쌓은 업적은 기적적이다.
게다가 들어간 돈의 절반 이상이 내 개인 돈이다.
차트를 통해 보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 거래량.
하락세가 지속될 때 거래량이 늘면서 가격변동이 줄면 전환신호다.
차트마저도 시장변화를 말해주고 있다.
“팔아요. 최대한. 10퍼 정도 손해 봐도 되요. 원유도 정리해요.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보안입니다.”
1370조였던 자금은 하락배팅을 통해 35% 늘어났다.
무려 490조 수익.
돈이 복사되는구나.
한 달 만에 상섬전자 살 돈을 벌었다.
전부 기부할 돈이지만 일단은 투자금으로 돌리다가 그때그때 빼서 주면 된다.
게다가 펀드에 300조가 넘는 엄청난 자금이 몰려들었다.
사우디 국부펀드마저 거금을 맡겼다.
이 자금을 바탕으로 대출을 더 늘릴 수 있다.
이 모든 걸 롱포지션에 쏟아 넣는다.
세계 주식시장의 거래량이 폭발하면서 매수세를 받아줬다.
절망한 사람들이 더 이상 못 버티겠다며 내던지는 물량을 넙죽넙죽 받아먹는다.
마스크관련주마저 하락하는 비관적인 상황에 다들 주식시장을 영원히 떠나겠다며 바닥에서 던지고, 그 물량을 받아 공매도 대여물량을 갚고 새 주식으로 들어간다.
“바이오 1순위, 화학 2순위, 전기차 3순위, 물류, 유통 4순위. 기억해요.”
반등하면 어떤 섹터가 오를 것인가.
우리 아저씨들이 열심히 분석했고, 1,2,3순위가 정해졌다.
4순위는 내가 고집해서 넣었고.
물론 최우선 순위는 옵션과 ETF 2배, 3배 상품들이다.
결론을 아는 독자라면 레버리지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지.
2000조를 넣으려면 일부 섹터만으로 되지 않는다.
모든 섹터에 돈을 넣고 비중만 조절해야 한다.
고점에서 정리한 미래 IT 자회사들 주식도 이번에 채워 넣어 80% 까지 올릴 생각이다.
하루, 이틀, 사흘.
6거래일동안 주가는 제자리를 기었고, 70%를 포지션 체인지를 했다.
7거래일 째 8%가 올랐고, 워낙 큰 자금이 움직인지라 미래펀드의 포지션체인지에 대한 찌라시도 조금씩 퍼져나갔다.
-미래펀드가 롱 잡았대!
-어? 뭐? 올라타자
-오른다고? 진반등이야?
이런 양아치들.
스스로 판단할 것이지.
8거래일째 0.5% 하락했고, 9거래일째 6% 상승했다.
3월 26일.
3일 동안 저점에서 14% 올랐다.
이제 누구도 내 판단에 의문을 표하지 않는다.
내가 또 맞췄다.
정확히 저점을 잡았다.
시발!
저점 잡았다고!
스읍, 하.
스읍, 하.
“얼마 남았어요?”
권순진이 긴장해서 말했다.
“그... 16% 남았습니다. 공매도 수량 2%와 원유, 원자재 선물 14%가 남았습니다.”
“하... 어쩔 수 없죠. 가격 생각하지 말고 매수 물량 나올 때마다 팔아주세요.”
매도 우선순위를 둬서 다행이다.
주가는 반등했지만, 원자재 선물은 아직 바닥이니까.
이것도 참 웃긴 현상이다.
원자재가격이 폭락했다는 것은 공장이 멈추고 생산이 멈췄다는 건데 주가는 폭등했으니.
양적완화.
비정상적인 현상은 언젠가 바로잡히게 된다.
그때 거대한 폭발음이 울리겠지.
“수고하셨어요. 예의주시하되 볼밴드 폭등하는 건 비중조절해주세요. 쌍바닥 찍을 수도 있으니 뉴스 분석 계속 해 주시고요.”
나는 계속 상승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모른다.
내가 이런 판단을 한 이유를 설명해야 하므로 아저씨들을 굴린다.
돈 많이 받는 분들이니까, 많이 굴려야지.
“존경합니다.”
“한수 배웠습니다.”
“절망, 양적완화, 거래량. 삼박자 모두 맞추셨습니다.”
흥.
이제 와서 아부해봤자 하나도 기분 좋지 않거든.
“예하야. 해루질 할까?”
“어? 그럴까? 소라 따자! 오빠 기분 좋아 보이네.”
“아니 하나도 좋지 않은데?”
스읍, 하.
스읍, 하.
시발 바닥 잡았다고!
바닥 잡았을 때 얼마나 기분 째지는지 모르지?
으오오오오오오!
- 작가의말
하나씩 떡밥회수...일단 의사개혁부터...
글을 뒤에서부터 구성해 앞으로 오니까 초반부가 산만하고 정리안된채 넘어가고... 막 이래서... 힝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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