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 引繼鐵線2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시몬 볼리바르 국제공항.
한때는 세계의 모든 사치품이 모여들던 곳이지만, 지금은 미국의 제재로 인해 발길이 끊긴 한적한 곳이다.
그곳에 특별기가 내렸고 승객들이 나왔다.
군인들의 안내를 받으며 곧장 기자회견장으로 들어갔다.
“왔다.”
“찍어.”
찰칵찰칵찰칵.
“방문 목적이 뭡니까?”
“동욱윤은 정말 카라카스에 있습니까?”
막무가내의 질문이 쏟아진다.
회견장 중앙에 서 있던 최태수는 미래방송과 연결되었다는 사인을 받고나서 입을 열었다.
“저희는 의료봉사를 위해 입국했습니다. 회장님의 위치는... 모르겠군요. 제가 보고받을 위치가 아니지 않습니까? 하핫.”
최태수가 가볍게 농을 건넸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전쟁위기가 닥치는 베네수엘라는 극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정말 순수한 의료봉사입니다. 다음 질문.”
“카라카스 어딘가에 숨어있는 윤회장을 보호하려 들어온 것 아닙니까? 회장의 지시로!”
베네수엘라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기자가 소리 질렀다.
최태수는 곧장 대답하는 대신 주위를 둘러봤다.
“여기 저와 함께 서 있는 의사들을 보십시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각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석학들입니다. 그런 분들이 윤회장을 보호하라는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받고 목숨 걸고 들어왔다고 생각하십니까? 불가능합니다. 저희는 모두 자의로 왔고 의료봉사를 하다가 가겠습니다.”
최태수는 영어로 말하고 있었고, 주위의 의사들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전쟁의 위험이 일어날 것이 예상되는 데도 말입니까?”
“그렇다면 더더욱 의사의 손길이 필요하겠군요. 화상치료, 총상 치료를 위한 장비와 의료품도 들고 왔으니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겁니다.”
“어쨌든 그 말은 전쟁을 대비한다는 말 아닙니까? 윤회장은 카라카스에 있습니까?”
“하... 그렇게도 들리는 군요. 처음에 말했다시피 전 모릅니다. 여러분이 우왕좌왕하는 것과 똑같이 우리도 진실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미국은 카라카스에 윤회장이 있다고 확신하는 듯 하며, 그로인해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전쟁을 막고 싶고, 막지 못하더라도 최대한 환자를 치료하고 싶습니다.”
최태수의 말이 전해졌는지 추궁하는 질문이 나오지 않았다.
한 여성기자가 질문을 가장한 불만을 던졌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식량입니다! 중국독감보다, 전쟁보다, 더더욱 무서운 것은 기아입니다! 전 국민이 굶어죽고 있습니다. 아픈 이유는 식량이 없어서입니다! 당신들이 아무리 유명하고 아무리 대단한 의사라 해도 식량을 만들 순 없습니다! 우릴 도와주는 게 아니라 그저 사진이나 찍고 가려는 거 아닙니까!”
절규에 가까운 질문을 들은 최태수가 잠시 사람들을 살폈다.
주위에서 호위 겸 감시를 하는 군인들은 정상체중이다.
나라꼴이 무너졌어도 정상적인 식사를 하는 듯하다.
기자들의 절반은 정상체중이다. 일부는 고도비만이 보인다.
그리고 나머지는 빼빼 말랐다.
공항 특별기자회견장에 들어올 정도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기자가 굶주려서 말랐다.
국가 전체 평균체중 30kg 감소.
누군가는 예전처럼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 누군가는 30kg 이상 체중을 잃었을 테고, 누군가는 이미 굶어 죽었겠지.
최태수는 씁쓸한 마음에 단상에 놓인 500ml 패트병을 열어 물 한 모금을 마셨다.
“맞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의사이며 저희는 병을 치료할 뿐 식량을 만들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행위가 의미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빵은 윤 회장이 만들 테니까요. 조금이라도 윤동욱을 도울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돕는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뜻이지요?”
“윤회장이 거듭 말해왔습니다. 어떻게든 깎아내리려는 비방 기사 말고 진짜 기사들을 찾아보세요.”
제한 시간이 되었는지 군인들이 기자들을 몰아냈다.
최태수와 의사, 간호사들은 군인의 안내를 받아 시내로 들어갔다.
도로에는 차가 없고, 거리에는 사람이 없다.
멈춰버린 도시. 멈춰버린 국가.
내전이 벌어진 것도 아니고, 사막에 가뭄이 든 것도 아닌데 전 국민이 굶어죽고 있는 나라.
차창 밖으로 고요한 도시를 보며 최태수가 말했다.
“우린 의료봉사 하러 온 겁니다. 우리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합시다.”
“예.”
저명한, 세계 어디를 가든 떠받들어지는 위대한 의사들이 조용히 대답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의사들을 열 명씩 나눠 카라카스 시내 곳곳에 분산했다.
군인들이 지켜주는 임시진료소가 설치되었지만, 보호가 아닌 감시의 역할이었다.
도시 남쪽 빈민가의 임시진료소에 자리잡은 최태수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멀리 숨어서 지켜보는 사람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랐다.
기아.
모두가 해골바가지처럼 보인다.
전 국민 평균 체중 30kg 감소는 숫자보다 훨씬 끔찍한 비극이었다.
“어쩌죠?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아요.”
인도에서 온 간호사가 중얼거렸다.
최태수는 인터넷에서 본 비장의 수를 꺼냈다.
정파이.
초콜렛 범벅인 파이를 여럿 꺼내들자 아이들 몇몇이 주춤주춤 다가왔다.
이제 시작이다.
와글와글.
“먹고, 진료하자. 백신도 맞고 정파이도 먹고.”
뼈에 가죽만 뒤집어쓴, 배만 뽈랑 나온 아이들을 진료하니 어른들도 접근하기 시작한다.
“먹을 건 더 없나?”
“예. 일단 코로나 검사부터......”
“코로나 따위가 문제가 아니야. 우리에겐 빵 하나가 더 소중해.”
“예......”
그걸 누가 모르나.
장님이라도 알 수 있건만 방법이 없을 뿐.
유조선도 나포되는 상황에서 식량을 쌓은 배가 들어오는 건 불가능하다.
브라질이나 콜롬비아에서 밀수해야 하는 데 그건 가격이 수만 배 뛰고 그마저도 막혀서 압수당하기 일쑤다.
씁쓸한, 효과가 거의 없는 의료봉사였다.
저녁이 되어 호텔로 복귀하자 손님이 왔다.
“아, 기자회견장에서?”
“예. 시몬포스트의 기자 레베카입니다. 인터뷰 가능할까요?”
복도를 지키던 장교는 얼마든지 하라고 했다.
베네수엘라의 사정을 대대적으로 알리는 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듯 했다.
빼빼마른 기자와의 심층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윤회장이 미래블록을 만든 의미를 깨달으라고 하셨지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입니까?”
“윤회장의 그간의 행보를 돌아보십시오. 윤회장은 이런 일을 막고자 했습니다. 베네수엘라 국민 전체가 굶주리는 충격적인 일, 실시간으로 터키라는 국가가 붕괴하고 있는 사고를 없애려고 노력했습니다.
저희는 그 행보에 동의했으며 그를 조금이라도 지원하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우리라는 존재가 윤회장의 선한 의도를 알리는 데 도움을 줄 것이며 남의 나라 전쟁이야기가 각자에게 도움이 되는 변화를 막으려는 시도라는 것을 알려줄 것입니다.
그런 뜻이 있기에 여럿 유명한 의사들이 뜻을 모아 방문한 것입니다.”
질문을 던졌던 레베카가 최태수의 답변을 곱씹으며 다시 말했다.
“정확히 어떤 의도인지 말해줄 수 있습니까? 국민들을 위해, 세계인들을 위해 쉽고 명확하게 설명해 주십시오.”
기자의 말에 최태수가 할 말을 정리하며 천천히 말했다.
“윤동욱 회장은 미래의사회를 만들었습니다. 각국 의사협회가 숫자를 제한하는 의사의 수를 늘리기 위해서죠. 많은 사람을 뽑아 교육해 수많은 의사를 양성해 배출하는 게 미래의사회의 목적입니다.
이건 윤회장에게 돈이 되는 사업이 아닙니다. 애초부터 돈을 뿌릴 생각으로 시작했죠. 엄청난 돈을 투입해 수많은 의사와 간호사를 양성했고, 코로나 시대를 버티는 데 도움을 줬죠.
윤회장은 왜 자기돈을 버려가며 이런 일을 했을까요? 그의 표현으로는, 울타리를 걷는다고 하더군요.
울타리. 각국 의사협회가 의사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둔 울타리. 그것을 치워주려고 미래의사회를 만들고 거액을 투입한 겁니다.
윤회장이 개인의 의료서비스를 원했더라면 그럴 필요 없었죠. 개인적으로 의사를 고용하는 게 훨씬 저렴하고 효과적이죠. 그는 오직 세상을 더 좋게 만들려고 돈을 퍼부은 겁니다.
의사협회는 전체 인원수를 제한합니다. 각국에서 인원수를 제한해 의사가 되면 무조건 돈을 잘 버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그를 미끼로 몰려든 지원자 중 최고의 인재만을 뽑고 교육해 의사로 만듭니다. 다들 이게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사는 신성한 직업이며, 높은 도덕성이 필요한 중요한 직업이라 생각한 거죠.
그런데 윤회장은 다른 말을 하더군요. 의사는 기술직이다. 기술을 익히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의대 학생으로 뽑히면 대부분 의사로 완성되는 게 증거다. 의료기기 판매사원이 의사대신 수술을 하듯 누구나 수술을 할 수 있다. 높은 도덕성? 의사협회를 통해 배운다고 해서 성폭력, 성추행 하는 의사가 없나? 협회가 관리하더라도 의사의 범죄는 똑같이 일어나며 오히려 협회에서 범죄자를 보호하기에 더 많은 범법행위가 일어난다 했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제가 만나본 의사들을 떠올렸습니다. 발전하는 의술에 관심이 없어서 환자의 팔다리를 일단 절단하고 보는 노인네. 매일 술을 마셔서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환자의 환부를 너덜너덜하게 만드는 주정뱅이. 어린의사를 노예로 다루고 간호인력을 성폭행하는 범죄자. 그런 자들이 협회라는 울타리의 보호를 받으며 삽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윤회장이 미래의사회를 만들어 거액을 투자한 건 의사협회라는 울타리를 없애기 위함이었습니다. 의사의 숫자제한을 없애 공부 잘하는 사람만 공부와 상관없는 기술직에 일할 수 있는 한계를 없애는 거죠.
돈을 벌려고 의사가 되는 게 아니라, 의술의 신성함을 알고 뛰어드는 젊은이들을 모두 받아들이되 범죄행위를 할 경우 강력하게 처벌해서 미친짓을 못하게 만들려고 한 겁니다. 의사 전체의 수익을 줄어들겠지만, 진짜 실력 있는 기술자는 큰 돈을 벌게 되고 대다수의 일반인은 전보다 더 저렴하게 더 훌륭한 의술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이게 윤회장의 뜻입니다.
저희는 수많은 ‘의료기술자’를 양성했고, 코로나 시대에 폭증하는 환자를 보살폈습니다.
베네수엘라까지 온 의사들은 그 선한 목표에 공감했기에 미래의사회에 합류했고, 지금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레베카가 최태수의 긴 말을 곱씹으며 말했다.
“저... 전 의사 얘기를 물어본 게 아닌데요. 윤회장이 미래블록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변화를 물었습니다.”
“같은 겁니다. 울타리를 걷는다. 탈중앙화라고 해도 되겠네요. 의사의 울타리, 의사가 의사협회라는 중앙에서 탈출하듯 사람들이 화폐라는 울타리에서 해방되는 걸 원한 겁니다.”
“그... 좀 더 쉽게 말해주실 수 있나요?”
“예. 베네수엘라는 화폐 시스템이 망가졌습니다. 그래서 고통 받고 있고요. 동의하시나요?”
“예. 그렇죠.”
“국가를 지탱하던 석유 수출이 끊겼죠. 동의하나요?”
“예.”
“그런데 베네수엘라의 땅은 어디로 사라졌습니까? 살 집이 사라졌습니까? 농장과 목장이 사라졌습니까? 전부 그대로 있죠. 그런데 왜 모두 굶주리게 되었을까요?”
“전부 미국 때문이죠!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모르시죠? 남미의 수많은 대통령이 반미를 외쳤다가 CIA에게 암살당했고 우린 100년 넘게 착취당해왔습니다. 당신은 남미 출신이 아니라서 미국이 남미에게 어떤 간악한 짓을 했는지 모를 겁니다.”
“네. 전 몰라요.”
최태수가 짧게 말하고는 레베카를 가만히 바라봤다.
“죄송합니다. 흥분했네요.”
인터뷰를 이끌어야 하는 입장에서 흥분하고 자기 주장을 한 건 큰 실수다.
레베카의 사과를 받아들인 최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윤회장의 말에 따르면 화폐는 돈을 교환하는 수단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발행하고 회수하는 권한이 정부에 있는 한 그것은 무소불위의 칼이 되기도 하고 국민을 통제하는 가장 악랄한 수단이 됩니다. 국가가 가진 가장 강력한 권력이 화폐라고 하더군요. 아, 이것도 인터뷰가 있어요. 찾아보시면 되요.
윤회장이 미래블록을 만들고 세계에 뿌린 건 화폐가 뿜어내는 권력을 개개인에게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게 화폐 탈중앙화라더군요.”
- 작가의말
글 초중반에 오지게 혼났던 의사협회 이야기는 여기서 완성됩니다
반복되는 이야기를 없애고 싶은데 책으로 8권 분량 이전의 이야기다보니 다시 정리해야 할것 같았습니다
탈중앙화와 울타리는 같은 말입니다 어... 뭐... 사랑해요 올해안에 완결지어볼게요 으뜨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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